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116
Chapter52. 바보가 되는 법(2)
아이들은 한참을 놀다가 잠이 들었다.
그제야 진호도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수고하셨어요. 처음인데 굉장히 잘 하시네요.”
“정신없이 지나갔네요. 제대로 한지나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진짜로 잘 하셨어요. 보통 처음 오면 애들 등쌀에 못 이겨서 퍼지기 마련이거든요.”
동료 직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시설 특성 상 봉사자들은 많이 오는 편인데 제대로 일하다 가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놀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곤 했다.
체력이 부족해서 뻗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애들이 마술을 좋아해서 다행이네요. 저기 선우 저 아이도 마술을 꽤 좋아하던데.”
“아, 그렇죠. 애들이 마술이라면 껌뻑 죽어요. 그리고 선우는 아마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술사였던 걸로 알아요.”
“아, 돌아가신 건가요?”
“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죠. 보면 참 딱한 아이에요. 어머니는 생계 때문에 하루 종일 일만 하시는데, 아이 상태가 저러다 보니······”
혀 차는 소리에 진호가 선우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마술을 보며 한참 놀다가 지쳤는지 완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고롱 고롱 코 고는 모양새는 또래 아이와 같았다.
“이렇게 보면 보통 애들 같은데 말이죠.”
“그렇죠. 잘 때는 다들 얼마나 천사 같은지.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이 죄는 아닐 텐데. 치이다, 치이다 이곳까지 온 아이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그래도 선생님들이 잘 대해 줘서 다행이네요.”
“최선을 다하는 거죠. 저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행복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직원의 눈에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좋은 사람이다, 진호는 그 눈에서 마음을 읽었다.
적어도 아이들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자, 그럼 우리는 다음 일 준비하러 갈까요?”
“일이 또 있습니까?”
“일은 언제나 있죠. 자, 따라오세요.”
아직 하루 일과가 끝나려면 먼 것 같았다.
#
며칠 정도 일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지적 장애 아이들은 대부분 일차적 반응에 민감했다.
좋다, 싫다가 극명하고 그 반응이 굉장히 오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에는 좋고 누군가에게는 싫은 답을 하려면 한 쪽 귀를 막는 편이 나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 될 때 그 사람을 보다 좋아했다.
“선우야. 나와서 놀기 싫어?”
선우, 이 아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선생님이 마술 안 보여줘서 그래? 마술 말고도 재밌는게 많이 있잖아. 선생님이랑 블록 쌓기 할까?”
“······”
“아니면 그림 그리기? 원장 샘이 색연필 많이 사 줬어. 선우가 좋아하는 동물 그리자. 어때?”
마술을 제외하고는 뭘 하자고 해도 반응이 없었다.
보통 아이들 나름 기준이 있어서 그걸 만족하면 어떻게든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선우는 달랐다.
어떤 걸 제안해도 전부 거절만 했다.
“에효. 선우는 힘들 겁니다. 밥 먹는 것도 원장 선생님이 겨우 설득해서 가능해진 거지. 전에는 밥 먹이는 것도 일이었어요.”
“그렇게 심각했습니까?”
“그렇죠. 처음 시설에 올 때는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말도 한 마디 안 하고 벽에 기대어 땅만 보고 있는데······”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시설 내 아이들이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한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걸 드러내는 것에 반해 선우는 반응 자체가 없었다.
반응이 드러날 때는 오로지 마술을 볼 때 뿐이었다.
“혹시 선우 아버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듣기로는 마술 트릭을 준비하다가 사고사를 당했다고······”
“그걸 선우가 본 건 아니겠죠?”
“글쎄요. 그렇게까지 자세하게는 모르겠네요. 나중에 어머님 오면 한 번 물어보죠.”
“그, 참. 그런 걸 질문 받는 것도 고통 일 텐데.”
누구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는 법이다.
과연 이걸 물어봐도 괜찮은 걸까.
진호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
시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 갈 때.
진호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선우의 곁을 지켰다.
“죄송합니다, 제가 또 늦었죠.”
아이들 다 떠나고 마지막에 찾아 온 선우 어머니.
“괜찮습니다. 제가 선우랑 놀고 있었거든요. 일이 많이 바빴나 보네요?”
“네, 네. 갑자기 잔업이 몰려 들어서. 선우랑 같이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일인데요, 뭐. 그보다 잠깐 시간 좀 될까요?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진호의 부탁에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 상태 때문에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선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얌전히 잘 있었어요. 다만, 너무 얌전히 있어서요. 마술을 보여 줄 때 말고는 바닥만 보고 있는 게······영 걱정이 되네요.”
“아. 아직도 그러는군요.”
선우 어머니 얼굴 위로 그림자가 번졌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상태를 주시하지 못한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혹시 선우가 좋아 할 만 한 다른 활동이 없을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전 선우가 얌전히 있으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너무 무책임한 거겠죠?”
“아,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님도 일이 바쁘고 그러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죠.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면 같이 알아냈으면 할 뿐입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정신없이 굴었죠.”
장애 아동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배 아파 난 자식이라고 해도 사람에게 쌓이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피해 갈 수 없다.
진호는 주눅 든 선우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부모도 힘듭니다. 힘든 건 죄가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지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인가요?”
“전 부모님을 원망 해 본 적 없어요. 두 분 모두 힘들어 지치거나 짜증내거나 할 때가 있어도요. 자식인 전 알고 있었으니까요.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어린 시절이 힘들었던 건 진호 만이 아니다.
부모도 힘들었고 그만큼 괴로웠다.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 겪어 본 진호가 가장 잘 알았다.
“아. 진호 씨도 겪은 게 있었군요.”
“자식도 커가며 다 이해하게 되더군요. 그러니 너무 그렇게 주눅 들어 계시지 않아도 됩니다. 선우 어머님은 잘하고 계세요.”
“······”
순간, 선우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마 이런 격려를 듣는 건 처음일 것이다.
불쌍하다, 걱정이다, 동정의 목소리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괜찮아요, 더 우셔도.”
한 동안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
울음을 다 털어내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선우 어머니의 말을 따르자면 선우는 부친의 사망을 목도하거나 이런 건 아니다.
다만, 선우 아버지가 어떤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선 길에 사고를 당한 거라 그 기억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했다.
“선우야. 오늘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
“마술 보여주면 나올 거고?”
마술이라는 소리에 선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알았어. 선우가 원하니까 특별히 마술을 보여줄게. 대신 다 보고 나면 선생님한테 어땠는지 말을 해 줘야 해. 알았지?”
끄덕이는 선우.
진호는 그 시선을 가슴에 담은 채 마술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준비물도 꽤 챙겨온 터라 다채롭게 마술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신기한 걸 좋아하는 건 보통 아이나 지적 장애 아이들이나 매 한가지였다.
‘선우도 좋아하네. 그리고······’
그 과중을 진호는 유심히 바라봤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교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마술 재밌게 봤어?”
“네! 재밌어요! 코끼리! 코끼리!”
“히히. 나도 마술 하고 싶다! 토끼가 뿅!”
아이들은 들떠서 외쳤다.
“그럼 자기가 마술 해보고 싶다. 이런 사람?”
“저요, 저요! 저 마술 해보고 싶어요!”
“저도 할래요! 태균이 보다 제가 더 먼저 들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아이들 용 마술 도구를 가지고 와 직접 마술을 경험 할 수 있게 해 줬다.
대단한 건 아니고 색이 변하는 천이나 무늬가 변하는 카드 정도.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마술사가 된 것처럼 떠들었다.
“아, 아니야!”
그때. 끼어 든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조금 떨어져 마술을 지켜보던 선우였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고정 한 채 주먹만 꽉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뭐가 아니냐? 이거 마술이다! 나 마술사야, 히히.”
“아니라고! 그거 다! 마술 아니야!”
시선은 마주치지 못해도 목소리는 강경했다.
처음 보는 선우의 모습이었다.
“선우야. 애들이 하는 게 마술이 아니라고?”
“아,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럼 선우는 마술에 대해서 잘 알아?”
“나······나는 아는 걸. 그걸 마술이 아니니까.”
진호는 선우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우는 아이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바닥과 허공만 번갈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 그 동안 마술 연습했지?”
“······”
“선생님이 마술 보여 줄 때면 혼자서 손으로 하는 법 흉내 내곤 했잖아. 선우한테는 마술이 익숙하니까. 그렇지?”
“나, 나 마술 배워야 했어요. 그래서 봤어요.”
“그래. 그래. 그렇게 마술을 배웠는데 애들이 하는 건 마술이 아닌 거 같아?”
“저거 아닌데. 마술 아닌데.”
선우는 확실하게 마술 테두리에서 강하게 반응했다.
진호가 가지고 온 마술 도구들이 마술이 아니라는 것도 지적 할 만큼.
“그럼 선우한테 진짜 마술은 어떤 거야?”
“대, 대단한 거. 엄청나게 멋진 거. 저거는 가짜야.”
“대단한 마술사를 알고 있었나 봐?”
“으, 응! 나는 아는 걸. 엄청나게 대단한 마술사! 내가 마술 열심히 연습하면 다시 만날 수 있어. 응!”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으, 응! 약속 했는걸.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꼭 다시 만나기로! 그러니까 나는 마술 연습 해.”
진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선우가 아버지와 한 약속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선우가 오로지 마술에만 반응한 이유도.
‘이건 너무 안타깝잖아······’
이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이해시키는 것도 그렇지 않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선우가 약속 한 사람은 굉장히 대단한 분이었나 봐.”
“응. 응.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마술사.”
“그래. 그렇구나. 그럼 그 대단한 마술사와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하겠네?”
“응.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꼭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어.”
“······그렇구나. 근데 선우야. 마술사가 되려면 그냥 마술만 연습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진호도 확신하지 못했다.
아이의 세상을 부수는 진실이 정답일지, 마냥 겉도는 거짓이 정답일지 알 수 없었다.
“왜?”
“마술사는 굉장하거든. 선우도 마술사가 공연 할 때 많은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거 알지?”
“으, 응.”
“마술사는 여러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하거든. 친구도 많아야 하고 운동도 잘해서 건강해야 해. 그래야 많은 마술을 할 수 있거든. 그냥 마술만 하는 건 대단한 마술사가 아니야.”
지금은 그저 한 발 꺼내는 것으로 만족 할 뿐이다.
이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마술사가 아니야?”
“응. 선우가 훌륭한 마술사가 되고 싶다면 많은 걸 해야 해.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내야 하고 밥도 잘 먹어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 그리고 웃어야지. 마술사는 항상 웃거든.”
“웃······어?”
“기억해 봐. 네가 아는 대단한 마술사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선우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미소가 얼굴에 걸려 있었다.
“이렇게?”
“응. 잘하네, 선우.”
“알았어. 나, 이렇게 열심히 하면 다시 만날 수 있구나.”
“······”
답은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정답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호는 웃으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