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121
Chapter54. OST(2)
“네?”
하명주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저 친구 말이에요. 목소리가 좋은 거 같아서. 혹시 같이 OST작업에 참여하나 싶어서요.”
“하. 하하. 아니에요. 선아는 그냥 장비 세팅 같은 허드렛일 하는 친구죠.”
“그런가요?”
마음에 드는 목소리였지만 가수가 아니라고 하니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선아야, 넌 가서 작업 시작한다고 전해.”
“네.”
하명주는 아예 선아를 밖으로 내보냈다.
“공연 끝나고 따라와서 일 배우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걸 제가 거둬 준 겁니다. 요즘은 저런 애들이 참 많죠.”
“그래도 배우겠다고 노력하니 기특하네요.”
“하하. 주제에 무슨 노래를 하겠다고. 저렇게 끙끙 대 봐야 얼마 못 가고 나가떨어질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재능이 안 되니, 금방 포기하겠죠.”
“재능 말입니까?”
“네. 저나 진호 씨 같은 타고난 사람과는 다르다 이거죠. 아쉽지만 이 바닥은 재능이 구할 아닙니까.”
진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재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남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 않았다.
“가죠. 일단 소리부터 뽑아 봅시다.”
일적인 부분으로만.
하명주와의 선을 그었다.
#
OST작업은 그럭저럭 진행됐다.
목소리가 좋은 편인 진호였지만 노래는 역시 달랐다.
하명주의 지도하에 열심히 노력 해 봤지만 실력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차피 보정 되니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도 썩 달갑지는 않았다.
“다른 건 쉽게 되는데 말이야. 노래는 왜 안될까.”
답답함에 발코니로 나왔다.
전생을 깨우치고 나서 무언가를 습득함에 불편함이 없었던 터라 지금의 난행이 꽤 힘들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기분일 텐데.
“전생에서 아무리 노래를 잘했어도 현생에서는 어림없다 이건가? 거······응?”
혼자서 뱉는 신세한탄이 길어 질 무렵.
진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밖인가?’
발코니 언저리에서 맴도는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 목소리 들어 본 거 같은데.”
희미하지만 기억에 남는 목소리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다 손바닥을 마주치며 외쳤다.
“그 여자잖아. 선아였나?”
워낙 맑고 깨끗한 목소리라 기억에 남아 있다.
진호가 발코니에 몸을 기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어림짐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가 볼까?’
호기심은 항상 이기는 법이다.
진호는 어느새 발코니 아래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
작업을 진행 중인 스튜디오 밖은 작은 숲이었다.
일종의 휴양림 같은 건데, 은근히 나무가 빡빡해서 들어가면 주변이 깜깜했다.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면 스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인공호수 주변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예상했던 대로 선아였다.
호수 주변 벤치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노래를 뽐내고 있었다.
“······기쁜 그대. 마음속의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노래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짙은 발성이 묻어나 굉장한 호소력을 내뿜었다.
슬프게 듣자면 슬프고 기쁘게 듣자면 기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굉장히 독특한 매력의 노래였다.
“울지 마요. 내가 곁에 있지 못하니······”
“저 노래.”
진호는 선아가 부르는 노래가 지금 작업 중인 OST임을 알아챘다.
하명주의 목소리나 자신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기에 알아채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만큼 선아의 목소리는 독특했다.
“알잖아요! 내가 보는 것을······!”
마지막 고음 파트.
쭉 뻗어 나가는 음색은 강하게 아름다웠다.
진호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소리에 이끌려 한 걸음 나아갔다.
빠각.
그리고 나뭇가지를 밟았다.
노래 부르던 선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지, 진호 씨?”
“아! 죄송해요.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만.”
“어, 언제부터 들었어요?”
“중간부터? 제가 방해를 하고 말았군요.”
“아, 아니에요. 그런 건. 되레 제가 실례했네요. 쉬는데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선아는 허리를 크게 굽히며 사과했다.
“사과 할 필요 없어요. 따라온 제가 잘못이죠. 노래가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제 노래가 좋았어요?”
“네. 주변에서 그런 얘기 못 들었어요? 굉장하던데. 당장 가수로 데뷔를 해도 먹힐 수준으로 보였어요.”
어두운 숲속에서도 붉어지는 선아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마스크와 안경으로 가리지 않은 선아의 얼굴은 제법 귀여운 티가 났다.
20대 중반이라 생각했던 걸 초반으로 낮출 정도.
“평소에 밖에서 연습을 하시나 봐요?”
“아. 네. 안에서는 연습하면 안 되거든요.”
“응? 왜요?”
“명주 선생님이 워낙 엄격하셔서. 기본부터 하고 노래를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진호가 하명주를 떠올렸다.
말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하명주가 그런 의도로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재능 운운하던 말을 고려해 보면.
“저, 저기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아, 잠깐만요. 선아 씨. 선아 씨 맞죠?”
“네. 제 이름이 선아에요. 유선아.”
“혹시 이번 OST에 같이 참가하지 않을래요?”
“······제가요?”
“아무리 들어도 목소리가 너무 아까워서요. 제작사 대표님하고 감독님한테는 제가 말을 해 볼게요. 명주 씨하고 얘기해서 같이 작업 한 번 해봐요.”
진호가 불쑥 제안했다.
그냥 보내기에는 선아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녀의 목소리라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였다.
“전······모르겠어요. 아직 노래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명주 선생님이 허락해 주실 지도 잘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너무 아까워서 그래요. OST. 해보고 싶지 않아요?”
“해보고 싶어요!”
빨간 얼굴로 당차게 외쳤다.
금세 ‘죄,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전 노래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래도 선아 씨 목소리가 좋은 것 정도는 알 것 같네요. 가능하다면 같이 작업해서 좋은 결과물 만들었으면 해요.”
“제가 그래도 될까요?”
“하기 전 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하지만 안 하고 모르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어요?”
선아가 빨간 얼굴을 들어 진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명주 선생님에게 말 해 볼게요.”
“기대할게요. 우리 작업.”
진호의 말에 색이 더 진해졌다.
#
다음 날 스튜디오 작업실.
진호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진 채 방문했다.
노래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한 가지 즐거움이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응?”
하지만 작업실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을 때.
진호는 무언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감을 감지했다.
“명주 씨. 선아 양이 안 보이네요.”
“자꾸 귀찮게 굴어서 다른 일 맡겨 뒀습니다. 참 나. 주제를 알아야지. 허드렛일이나 하던 주제에 무슨 노래인지.”
“······무슨 얘기를 한 건가요?”
“자기도 이번 작업에 참여하면 안 되냐고 묻더군요. 웃기지도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는 안 한 것 같다.
진호는 하명주의 얼굴에서 선아와의 대담을 유추했다.
“목소리는 좋아 보이던데. 작업에 참여시키면 안 되는 겁니까?”
“어림없죠. 소리만 그럴싸하지 노래에 재능이 없어요. 괜히 설치다가 다른 사람들 피곤하게 할 뿐이죠.”
“그래도 하고자 하는데 기회라도 주는 게 어떨까요?”
“진호 씨. 너무 그렇게 무르게 대하면 안 돼요. 재능 없는 애들은 그냥 딱딱 쳐내야죠. 괜히 희망만 가지고 뛰어들었다가 망가집니다.”
하명주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물론, 이번 작업의 책임자는 명주 씨죠. 그 부분을 제가 침범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일의 경계는 분명히 해야죠.”
“하지만 영화의 주연 배우로서 의견 전달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네요. 전 선아 양을 작업에 참여시키고 싶습니다.”
“······”
입술을 씹는 하명주의 얼굴은 짜증 그 자체였다.
작업에 관여하는 진호에 대한 짜증일지 다른 무엇에 대한 짜증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호 씨. 자꾸 이러면 작업만 딜레이 됩니다. 영화 스케줄에 맞춰야 하지 않나요?”
“저도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마찰은 불가피하죠. 전 이런 의견 다툼에 익숙합니다.”
“아니, 왜 고작 그런 계집애 하나 때문에 작업을 딜레이 시키냐 이 말입니다!”
“선아. 유선아라는 이름이 있지 않나요?”“그······!”
울컥,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진호가 눈치 챘다.
단순한 짜증 그 너머의 무언가가 있었다.
“다시 말씀 드릴게요. 선아 그 아이는 그냥 목소리만 조금 좋은 뜨내기에요. 제가 받아서 잡일 시키면서 키우고 있지만 딱 거기라고요. 진호 씨가 신경 쓸 사람이 아니라 이겁니다.”
“정말 그렇다면 작업에 한 번 써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명주 씨 말대로 재능이 없는 아이라면 그 길로 포기하면 될 터. 이렇게 말싸움 할 시간에 한 번 해보는 것이 훨씬 나을 거 같은데요?”
“싫다고요. 싫단 말입니다! 내 작업, 내 일입니다!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겁니까!”
결국 감정이 넘쳤다.
핏대 선 얼굴로 하명주가 소리쳤다.
“하, 하지 마세요. 괜히 저 때문에······”
그때, 소란을 듣고 찾아 온 건지 선아가 나타났다.
큰 안경 너머로도 흔들리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 너 때문이다! 넌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기에 이런 사단을 만들어! 내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잡일이나 제대로 하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가! 여긴 너 같은 계집애가 있을 곳이 아니야! 가서 네 일이나 똑바로 해!”
쏟아내는 말들이 하나같이 독했다.
선아는 잔뜩 주눅 든 모습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선아 씨.”
“······네?”
“전 두 분 관계가 어떤지 모릅니다. 작업에 관해서도 책임자가 아니라 강요 할 수 없고요. 하지만 제가 어제 들어 본 선아 씨 목소리는 분명 훌륭했어요. 그렇기에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런 선아를 붙잡은 건 진호의 목소리.
그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선아의 안경 너머를 직시했다.
“노래. 하고 싶어요, 아니에요?”
“그······”
“답하지 마! 이봐요, 진호 씨! 계속해서 선 넘는데 이러면 곤란합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배우라고 그래도 엄연히 선이 있는데······”
“하고 싶어요!”
“너!”
말을 자르고 튀어나온 선아의 외침.
하명주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이 확 올라갔다.
“폭력은 곤란하죠.”
그 손은 중간에서 진호가 낚아챘다.
하명주가 용을 써 보지만 돌에 끼인 듯 요지부동이었다.
“노래하고 싶다. 확실한 거죠?”
“······네. 하고 싶어요. 안 된다고 계속 말 하지만 하고 싶어요.”
“그거면 됐습니다.”
진호가 하명주의 손을 풀어주고 선아의 어깨를 잡아서 돌려 세웠다.
“전 그녀에게 걸겠습니다.”
진호는 선아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