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161
Chapter72. 전력질주(2)
늘어선 카메라.
쏟아지는 시선.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진호는 천천히 물병을 쥐어 목을 축이고는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시선이 한 층 뜨거워짐을 느꼈다.
“무엇부터 답을 하면 좋을까요?”
사회자의 눈을 보며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 부터겠네요. 이유. 어째서 이런 일을 시도하고 있는 건가요?”
첫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진호는 사회자를 지나쳐 관중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입술을 달싹였다.
“굳이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도전일 겁니다.”
“도전이라. 새로운 일에 도전 말인가요?”
“새롭기는 하지만 완전히 낯선 일은 아니죠. 제가 배우를 그만두고 사업가가 된 건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더 궁금하네요. 배우로서 도전 할 영역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 굳이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틀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목숨을 노리는 조직이 있습니다, 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필요한 건 포부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찍다보면 다들 느낄 겁니다. 현실적인 제약점이 굉장히 많다는 점을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장소, 촬영 장비, 그래픽 작업 인력, 홍보 팀, 시나리오 작가진 등. 말하자면 끝도 없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회사를 만들었다 이건가요?”
“만든 건 아닙니다. 전 어디까지나 구심점이죠. 영화나 드라마. 공연을 하더라도 제가 기준이 되어 줄 겁니다. 불합리한 계약은 없도록, 잘못 된 관행은 철폐하는 것으로. 좋은 환경에서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뽑아내어 문화적 가치를 드높이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이상향입니다.”
말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그 말의 달콤함이 현실의 벽을 낮춰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호의 호소력 깊은 목소리는 청중을 흔들었다.
“하지만 향간에서는 회사의 기반이 중국 미디어 회사 황천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지원을 받고 있음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중국 자본에 국내 영화판이 먹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럴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연합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갑이 될 수 없습니다. 작품에 필요한 재원이 정해지면 여러 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를 완성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런 협력관계가 잘 돌아갈까요? 같은 나라 회사끼리도 마찰이 심한 판에 나라마저 다른데.”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완벽한 태엽장치를 꿈꾼 건 아니었다.
“마찰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죠. 다만, 행동으로 보여 줄 뿐입니다. 이번에 제작한 영화처럼 말이죠. 힘을 합쳐서 만들면 이런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예시죠.”
“결과가 좋으면 따라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있는 겁니다.”
“허허. 굉장한 자신감이네요.”
“네. 저는 홍 진호니까요.”
진호는 겸손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는 배우 개인이 아닌 J.H의 대표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청중들 사이에서 섞여 나오는 감탄에 그저 웃었다.
“재밌군요. 오늘 인터뷰가 더욱 흥미로워 질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깊어지는 인터뷰.
이제 초입부였을 뿐이다.
#
인터뷰가 나간 이후로 반응이 엇갈렸다.
지나친 과욕과 망상이라는 비난부터 대단한 도전정신이라는 칭찬까지.
여론을 들끓고 연일 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제 필요한 건 강한 추인가.”
왕호룽은 추이를 지켜봤다.
J.H의 설립은 동서양을 막론해서 큰 이슈였다.
거대 미디어 회사들도 경계를 할 만큼 자금과 기술력이 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크다고 개념을 부술 수는 없다.
여전히 주요 미디어 산업은 서양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부수기 위해서는 그만큼 커다란 작품이 필요했다.
“감독과 작품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진호 님이 선택하면 바로 추진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이건 우리가 강제 할 일이 아니다.”
“늦어지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진호 님이 작품을 선택해서 바로 촬영 할 수 있도록······”
“아니. 그래서는 안 되네. 천인이 하늘에서 내렸듯이 그가 고를 작품도 인위적이어서는 안 돼.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야 하는 거지.”
왕호룽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인간이 전력으로 일을 처리하더라도 성사는 결국 하늘에 달려있다는 믿음.
그렇기에 다음 작품은 하늘이 정해야 했다.
“회장님.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당의 움직임도 수상쩍고, 일전에 주시하신 이들의 행동 역시 기묘해 졌습니다. 자칫 위험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믿게. 우리가 하는 일은 일생의 과업이네. 과업에 위험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 믿고 정진하면 하늘이 길을 열어 줄 걸세.”
“······”
하늘이 총과 칼도 막아 줄 수 있는 걸까.
비서는 왕호룽의 신념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런 신념을 가질 자신도 없었다.
“회장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저 따를 뿐이었다.
#
진호도 이번 작품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그가 개입한 작품이 크게 흥행을 한 터라 후속작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드라마로는 풀리지 않는 갈증.
영화에서 그가 보여 줄 압도적인 힘을 사람들은 갈망했다.
그렇게 선택이 어려웠다.
“아니야. 좋은 감독이기는 하지만 내 구상과는 어울리지 않아.”
“이 분은?”
“나와 맞지 않아.”
감독을 고르고 시나리오를 고르고.
몇 주째 차기작에 대한 검토를 반복했다.
황천에서 보내온 명단이 있었지만 그 길고 긴 리스트를 다 뒤짐에도 선택은 요원했다.
“오빠는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데?”
“글쎄. 무어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워. 그냥 붕 뜬 듯 기분만 남아 있을 뿐이야.”
“기분?”
“응. 마냥 그리고 싶은 기분. 수채화 같기도 하고 유화 같기도 하고 자화상 같기도 한. 나도 잘 모를 그런 기분만 남아 있어.”
“어렵네.”
너무 부풀어 올랐다.
충만한 마음은 두 눈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커버려 무엇을 꿈꾸었는지조차 모호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진호는 자신에게 그 답을 하지 못했다.
“조급해 하지 마. 천천히 시간을 두고 살펴보자고. 오빠가 하고 싶은 영화여야 하는 거잖아. 이럴 때 떠밀려 고르면 후회 한다고.”
“응. 고마워.”
조급해 하지 않는 것.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이다.
개인일 때와 집단의 수장으로 있을 때의 부담감이라는 건 차원이 다르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영화가 만들어지고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다.
이런 왕성한 활동이 지역에서 매몰되는가, 밖으로 나아가는가는 큰 보폭으로 결정 될 일이었다.
“그럼 선생님이 직접 써보면 안 돼요?”
“······응?”
구석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세미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되잖아요. 선생님 연출이나 감독 역할도 꽤 한 걸로 아는데.”
“에이 그래도 감독과 배우는 다르지.”
“그래도 자기 마음은 자기가 가장 잘 알잖아요. 그리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그리는 쪽이 좋지 않아요?”
“직접 그린다.”
진호가 세미의 말을 농담으로 넘기지 않았다.
완전히 날것으로 감독이 되는 건 무리겠지만 핵심이 되는 부분은 되레 남보다 자신이 나았다.
자신의 이 애매한 감정을 타인에게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해 볼까?”
그렇게 우연히 던진 한 마디 말에서.
진호의 다음 작품 방향이 결정되었다.
#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연기하는가.
진호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채색하기로 결정했다.
박종찬을 비롯해 그 동안 작업했던 감독들의 도움도 받았다.
연출과 카메라에 대한 감각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시나리오 영역은 달랐다.
“좀 더 무겁게 깊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강렬한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주제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캐릭터 영화. 날 반영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하지만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자?”
“완벽하게는 아니고. 날 모티브로 해서 캐릭터 영화를 만드는 거야. 드림의 히어로 무비처럼, 독특한 캐릭터 발상이 좋은 상업 영화로 발전 할 수 있잖아.”
“흐음.”
진호의 제안은 황천으로 전달되어 여러 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가 널렸는데 굳이 첫 시도를 여기서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영화 제작이 한 두 푼 하는 일도 아니고 그들의 반대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자본도 두둑하니 쓸 수 있는 방법은 많아.”
하지만 이런 반대는 왕호룽의 선택으로 불식되었다.
그는 전적으로 진호를 신뢰하였고 독단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자금도 엄청나게 할당했다.
“방향성은 알겠어. 하지만 그게 과연 먹힐까?”
“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감이라 생각해. 과연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 할 것인가. 일종의 설득력이지.”
“하지만 네가 고른 건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대중이 공감할까?”
“하게 해야지. 누구나 겪을 법 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면서.”
영화에서는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감독의 철학과 목소리.
진호는 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라는 말.”
“차별에 대한 이야기야?”
“응. 평생을 차별다고 살아왔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거든. 근데 나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차별을 받아.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마른 사람 뚱뚱한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머리 나쁜 사람.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무의식중에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지.”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그러니까. 그걸 말하고 싶어. 세상이 얼마나 차별에 무감각한지. 말 한 마디 작은 손짓 하나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주제의식이었다.
“근데, 그런 차별에 대한 영화는 많이 나왔던 거 알지? 자칫하면 지루해 질 수 있어.”
“알아. 아니까 필요 한 거야.”
“필요하다고? 뭐가?”
“사람. 나와 대척점이 되는 캐릭터가 필요해. 어쩌면 나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존재로.”
영화는 주인공보다 악역이 중요 할 때가 있다.
가치의 대척점이 되어 누구보다 강렬하고 뜨겁게 부딪쳐 오는 적.
캐릭터가 살기 위해서는 이런 대척점이 뚜렷하고 멋있어야 한다.
“배우라면 많잖아.”
“그냥 그런 배우로는 안 돼. 내 생각에 공조하면서 이를 삐뚤어진 방식으로 풀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빌은 어때?”
“그는 너무 좋은 캐릭터야. 배역에 방해가 될 거야.”
“생각해 둔 사람은 있어?”
“······알 베르노.”
“뭐!?”
송학이 드물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알 베르노라면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엄청난 배우였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에도 그의 아성에 도전 할 배우가 나타나지 않을 정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너, 그 사람이 굉장한 백인 우월주의자인 건 알고 있지?”
백인우월주의자.
심각한 차별 언행으로 언론의 도마에 오른 적도 있다. 여론의 질타에도 ‘난 인종의 우월함을 믿는다.’라며 쏘아붙이기도 했다.
진호가 고를 수 있는 배우 중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더욱 좋은 메신저가 될 거야.”
“허. 난 모르겠다. 캐스팅은 고사하고 제대로 연기가 될는지.”
송학의 걱정 어린 시선에 진호가 웃었다.
어차피 고난은 예정되어 있던 일.
작은 돌 뿌리 정도에 주춤거리진 않는다.
“일단 해 보자고.”
돌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