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167
Chapter75. 혼란을 수습하다(2)
황천에서는 정식으로 진호를 고소했다.
배임과 횡령.
여러 가지 이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왕호룽이 빼돌려 놓은 자산을 범법 행위로 보고 걸고 넘어 지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회사 자산이 빠져나간 것이니 열불이 날 일. 하지만 왕호룽이 해 놓은 안배는 그런 행보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열 올리며 찾아왔던 황천의 임원들도 정리된 계약서와 공증 내용을 보고는 포기했다.
“이걸로 황천과 J.H는 완전히 결별하는 겁니다. 더 이상 공조는 없습니다.”
대신 확실하게 선을 긋고 돌아갔다.
황천의 내분은 결국 친 중국파가 승리.
왕호룽이 깨어나기 전 까지는 전문 경영 체제로 돌아가며 노선을 달리해 버린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해고당한 사람들은 우리 쪽에서 흡수하도록 해요.”
진호는 이삭줍기를 했다.
J.H라는 간판에 황천의 인력이 흡수되면서 붕 떠 있던 중간 관리자 역이 채워졌다.
현장일은 현장 일을 하던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
노하우를 들고 들어온 이삭들은 좋은 연결 고리가 되어 주었다.
“중국에서는 아주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참나. 누가 보면 범법행위라도 저지른 줄 알겠어요. 자기들이 해고해 놓고서는 우리한테 왜 난리인지.”
“전문 인력의 국외반출을 금지한다나. 기업 간의 일을 정부가 비난하는 건 참 이 시대에 맞는 행보인지 모르겠다.”
“가끔 보면 중국은 옛 왕조를 그리워하는 거 같아요. 왕정 시대. 시대를 역행해서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반발은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중국도 대놓고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기업 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면 중국 내 타국 기업들의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리 막나가는 중국이라고 해도 행보에 제동을 거는 거대 공룡이라면 또 있었다.
“상황이 아이러니하네요. 서구권 미디어 공룡에 맞서서 회사를 만든다는 것이 첫 취지였는데.”
“되레 미국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라. 이러니까 좀 기업 간의 일 같네요.”
드림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손을 내밀었다.
속내야 왕호룽이 구축해 놓은 네트워크와 나름의 경쟁력을 흡수하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모양새로는 아군이다.
어차피 기업이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
쪼개진 황천보다야 J.H가 낫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근데 좀 의외긴 하네요. 저희랑 손잡으면 중국 시장에 악영향이 갈 거라는 걸 알 텐데.”
“장사치들이 손해 보는 거 봤냐? 다 수지타산이 맞으니까 하는 거야. 적당히 협력 관계를 유지한 다음에 시장 개척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겠지.”
“아군 같은 적군이라는 얘기네요.”
“이 바닥에 영원한 아군 따위는 없어. 저들이 우리를 이용해 먹으면 우리도 저들을 이용해 먹으면 되는 거야.”
최현석의 평가대로.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손을 내밀고 잡는 것이다.
후에 드림과 경쟁한다고 지금 손잡는 것을 망설인다면 식견의 부족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어디 조건이나 한 번 들어보죠.”
지금은 무엇도 가능한 시대였다.
#
오랜만에 빌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하하. 여전히 일을 크게 벌이는군. 나도 스케줄만 아니면 한 바탕 엮이고 싶어]호탕하게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사실 몇 가지 알려줄 내용이 있어서 전화했다. 일전에 말했던 조직 말이야. 약간 알아낸 점이 있어] [문화 우월주의자들 말이군]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들은 스스로를 오릭스라고 불러. 아프리카 지역 사냥에서 유례 됐다나, 뭐라나. 하여튼 생각보다 조직이 크고 가입 인사도 많은 거 같아. 전직 장관도 포함이 되어 있더라] [장관까지······]권력자나 자본가들이 포함되어 있는 건 기정사실.
하지만 장관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건 영화에서나 볼 법 한 비밀 결사단 같은 느낌이니까.
[그리고 지난 왕호룽 피습 사건 말이야. 아무래도 이쪽이 개입되어 있는 거 같아] [왕 형님을 그들이 공격했다는 거야?] [직접적으로는 아니겠지. 중국 내부. 황천의 일부 인사들하고 긴밀하게 내통한 정황이 드러났어] [그럼 그렇지. 형님 주변에 배신자가 있었던 거야. 아니라면 비밀리에 움직이는 동선을 파악 할 리 없으니까]친 중국 쪽 황천 파벌은 왕호룽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닉스의 인물들은 J.H의 연합 형태를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두 조직이 일을 진행한 것이다.
[이걸 표면화 시킬 증거 같은 건 있어?] [설마. 있다 해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거야. 너무 엮인 사람들이 많거든. 어느 쪽이든 쉬쉬하고 말 일이야] [더럽군. 더러워] [정치랑 엮이면 뭐든지 더러워지는 법이야.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왕호룽이 쓰러졌다면 다음은 너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터라 직접적으로는 노리지 않겠지만······]진호는 거의 대부분을 카메라 앞에서 보내고 있다.
수작질을 벌이기에는 부담이 큰 것이다.
[주의하도록 할게. 그보다, 빌. 이런 정보는 어디서 물어오는 거야?] [말했잖아. 친구 중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고. 그도 네 팬이야. 드러낼 수는 없지만 응원한다고 전해달래] [그래. 내 대신에 고마움을 전해 줘]가볍게 안부를 주고받고 통화를 끊었다.
정치, 모략, 피습, 간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진호 씨? 아직 준비 안 끝났나요? 촬영 준비 마무리 됐습니다.”
“곧 나갈게요.”
지금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
배우니까 연기로.
다시금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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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군이 이어졌다.
이미 한 번 영화가 엎어진 터라 일정이 빠듯했다.
시간을 쪼개서 최대한 빠르게 씬을 소화해 나갔다.
힘든 건 스텝이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눈이 퀭하고 몸에 활력이 없었다.
“······괜찮냐?”
송학이 축 늘어진 진호를 보며 물었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 없어서 얼핏 보면 시체 같기도 했다.
“안 괜찮아.”
“좀 쉬면서 하자. 브레이크타임 가지자고 할까?”
“흐름 끊겨. 지금 왔을 때 끝가지 밀어붙여야 장면이 괜찮게 나올 거야.”
“그러다가 죽겠다.”
“연기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지.”
흐릿하게 웃는 모습도 피폐하다.
“에휴.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냐.”
“흐흐. 그걸 이제 아셨어?”
“웃지 마라, 인마. 웃을 힘 아껴서 후딱 연기하고 와.”
“근데, 형. 나 몸은 이렇게 힘든데 머리는 개운해. 회사니 정치니 머리 아픈 일들을 얘기 할 때랑은 정 반대야.”
“그러냐. 하긴 뭐 주변 정세 생각하면 나도 토 나올 거 같은데, 넌 오죽하겠어.”
“역시 난 배우가 체질인가 봐.”
사업도 하고 음악도 해 보고 정치도 하고 있다.
하지만 돌고 돌아서 결국 연기다.
연기를 할 때면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다.
그냥 이 순간에 모든 걸 태워버리는 충실함만이 있을 뿐이다.
천직이라는 것이 있다면 연기가 아닐까.
“걱정 없이 연기만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소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
진호가 아픈 만큼 멋있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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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게 식은 밤.
진호는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바닥이 뜯긴 신발은 걸을 때 마다 불편한 소리를 냈다.
표정은 없고 몸은 마른 가지마냥 앙상했다.
“이대로 가요?”
퀭한 얼굴의 남자가 지나가는 그를 보며 물었다.
비슷한 복장에 비슷한 얼굴이었다.
“······갑니다. 저는.”
“혼자서 어디까지 가려하오?”
“갈 수 있는 데까지.”
짧은 문답을 남기고 진호는 다시 걸었다.
슥 슥, 바닥에 끌리는 신발의 마찰음이 바람 소리처럼 들려왔다.
마른 언덕 너머, 안개가 자욱한 길 위에서 그는 계속 걷기만 했다.
“가지 마오.”
예의 그 남자다.
길을 따라와 다시 말을 붙이고 있었다.
표정은 다급한 듯 그렇지 않은 듯 불분명했다.
“가야 하오.”
“가지 마오. 홀로 가면 죽기밖에 더하겠소. 그냥 이리 남아 말벗이나 하면 되어 주시오.”
“가야 하오.”
“어찌 그리 고집을 부리오. 이제와 다를 것도 없지 않소. 우리네 인생 어차피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것이오. 간들 바뀌는 것도 없소만 어찌 그리 꽉 막혔단 말이오.”
“그러니 가야 하오. 걷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소. 제자리에 서서 하늘을 보고 하늘보고 움직이라 하면 어찌 코웃음 치지 않겠소.”
진호는 계속해서 걸었다.
지독하게 느렸지만 그래도 쉬지 않았다.
“우매하구려. 고작 한 명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가엽구려. 자기 몸 하나 마음껏 할 수 없다니.”
“아니오! 아니오. 나는 그저 죽고 싶지 않을 뿐이오.”
“죽음은 두려우나, 자유 없는 삶에 어찌 비할까. 이대로 앉아 숨이 막혀 죽느니 차라리 걷다가 쓰러져 죽겠소.”
남자는 더 이상 진호를 잡지 못했다.
손을 내리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발자국을 물끄러미 응시했을 뿐이다.
“······어찌 그리 용감하오?”
“용감하지 않소. 그저 참지 못할 뿐이오. 숨이 막히면 숨을 쉬듯. 목이 막히면 물을 마시듯. 자유가 없기에 몸부림 칠 뿐이오.”
“그저 그렇게 말이오?”
“그러 그렇게 말이오.”
남자가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진호를 봤다.
그리고 손을 움켜쥐고 그 발자취 뒤로 걸음을 옮겼다.
뿌연 안개 속에서 발자국이 겹쳐졌다.
“그래. 걸읍시다. 걸어 봅시다.”
그리고 안개 속 수많은 발자국들이 새로이 나타났다.
겹치고 겹쳐져 커다란 길을 만들었다.
안개의 저 너머, 억압받지 않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듯.
“오케이! 컷!!”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진호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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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는 병원에서 눈을 떴다.
과로가 누적되어 촬영이 종료되면서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빠르게 구급차로 후송한 뒤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피로 누적으로 인한 체력저하만 있을 뿐 다른 이상은 없었다.
“진짜!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미안, 미안. 오케이 싸인 떨어지자마자 맥이 탁 풀려서. 중요한 씬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나 봐.”
“옆에 미리 구급차랑 대기시켜 놔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 했어?”
걱정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특히, 은서가 스케줄까지 빼고 달려와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보다 촬영본 확인해 봤어?”
“이 양반아, 쓰러져서 뭐라는 거야. 오빠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쉬어.”
“그래도 그거 중요한 씬인데. 잘 나왔는지만 확인해 보면 안 될까?”
“씁. 가만히 있어. 병실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 봐. 아주 그냥 가만 안 둬.”
시퍼렇게 눈 뜨고 엄포를 놓았다.
진호가 엉덩이만 들썩이다 포기하고 말았다.
얼핏 봤는데 눈가에 눈물 자국이 있었다.
“알았어. 오늘은 얌전히 있을게. 하라는 대로 하고.”
“진짜지? 또 몰래 빠져나가서 박 감독님하고 쿵짝 맞으면 가만히 안 둘 거다.”
“아니 뭐 내가 언제부터 그랬다고.”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안 그럽니다, 마님.”
“흥. 그래야지.”
그제야 조금 풀린 얼굴을 했다.
“많이 걱정했어?”
“당연하지, 이 바보 오빠야. 하루같이 말라가는데 쓰러졌다는 소식 들어봐. 내가 가슴이 철렁했다고.”
“미안. 내가 너무 영화에만 몰입했나봐.”
“오빠한테 중요한 영화인거 아니까 이해는 해. 그래도 조금은 몸도 돌보면서 하라고. 오빠를 아끼는 사람이 주변에 많잖아.”
“응. 그 중 제일은 역시 은서, 너고?”
“당연하지.”
은서가 샐쭉이 웃으며 진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은은한 샴푸 냄새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