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179
Chapter81. 영화제(2)
행사가 끝나고 정식으로 영화제 기간이 찾아왔다.
유명 인사들이 초대되어 영화를 관람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호와 영화 팀은 첫 날 부터 초대되어 자리를 했다.
“올해는 유독 사람이 많이 모인 것 같군.”
“그런가요? 오스카는 처음이라.”
서명한도 첫 날부터 자리해서 진호의 말벗이 되어 주었다. 영화계 마당발인 만큼 이래저래 소개해 주는 역할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영화와 연기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때, 수상 할 거 같아?”
“하하.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결과는 제가 내는 게 아니니까요.”
“예전에는 수상자들에게 귀띔을 슬쩍 해 줬다고 하던데. 요즘은 말들이 많다보니 끝까지 숨기는 모양이야.”
“결과는 마지막에 아는 것이 더 극적이긴 하죠.”
“하하. 역시 자네는 낭만을 아는군.”
분위기는 훈훈했다.
서명한만이 아니라 최현석과 은서.
같이 온 영화 팀들도 대부분 수상을 낙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제 내부의 분위기나 오고가는 이야기들 역시 진호 쪽으로 쏠리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진호만큼은 마음껏 낙관 할 수 없었다.
전날 만났던 빌로우의 얘기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로 오릭스 소속이고 심사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현장의 분위기는 의미 없다.
말 그대로 손바닥 뒤집듯 결과를 바꿀 수 있으니까.
“응? 왜 그러나? 뭔가 걱정되는 거라고 있어?”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저 사람이 오릭스라서 날 괴롭힙니다.’라고 말 할 노릇도 아니고.
지금은 그저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오, 영화 시작하는군.”
축제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니었다.
#
여흥 분위기의 며칠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수상의 날이 다가왔다.
이미 내부 평가로 어떤 작품이, 어떤 사람이 수상을 할 건지 이야기가 오고갔다.
많은 사람이 진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오빠 상 타면 수상소감 할 때 내 이름 빼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아직 발표도 안 했어. 뭘 그렇게 서두르고 그래.”
“확실하게 해야지. 내 이름 빠지면 완전 서운 할 거다.”
“알았어, 알았어. 만약 수상하게 되면 꼭 이름 불러줄게.”
미리부터 들뜨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특히 은서가 그랬다.
그녀는 이미 수상이라도 한 것처럼 많은 걸 준비했다.
“근데, 은서야. 수상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건 알지?”
“에이. 이미 분위기가 오빠 쪽이라고. 작품 쪽은 몇 개 놓칠 수 있어도 남우주연상은 백퍼센트지.”
“너무 그렇게 김칫국 마시지 말자. 사람 일 또 모르는 거라고.”
“어허, 이 양반이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다들 오빠 연기가 최고였다고 엄지손가락 내밀잖아. 자신감 가죠. 오빠야 말로 상을 타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고.”
그게 아니다.
진호가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 두었다.
신나하는 그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결과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은 전부 여덟.
한 명이 반대표를 던진다 해도 나머지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다.
“그래. 네 말대로 자신감 좀 가져야겠다.”
“후후, 그래야 우리 오빠지.”
진호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되고 안 되고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
그럼 그 일에 더 이상 매달릴 필요가 없다.
‘설사 수상에 실패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상이 전부인 건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떳떳한 영화였다.
자부심을 가지고 후대에 남겨도 좋을 명작이었다.
억지로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려 한다 해도 많은 이들이 알아봐 줄 것이다.
— 그래, 그게 옳다.
“?”
진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굳게 닫힌 문만이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왜, 오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이동하자.”
“응.”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만끽하며.
진호가 다시금 영화제로 걸음을 옮겼다.
#
차례대로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작품상이나 연출상 등 작품에 대한 수상이 먼저였다.
후보군은 쟁쟁했다.
그 해의 최고 중의 최고를 엄선한 것이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 있었다.
올해의 영화는 하나라는 사실.
[연출상에는 그레고리 피어슨!]그렇기에 첫 번째 연출상 발표에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레고르 피어슨은 분명 훌륭한 영화. 하지만 연출적인 면에서 독보적이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평단 평가에서도 밀렸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상을 주면 안 되니까.
무조건 공정해야 하는 영화제지만 어느 정도는 유연성을 발휘하곤 한다.
독점을 막고 다른 작품들에 용기를 주기 위해서.
그런 의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각본상에······토마호크 2]하지만 두 번이나?
연출상에 이어서 각본상까지 넘어가자 술렁임이 생겼다. 이번 영화 각본이 진호의 손에 의해서 쓰였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는 분위기와는 상반된 결과였다.
[작품상에 로드맨] [감독상에 당신의 빗소리가 아름다울 때] [음향상에······]그리고 이 결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수상이 모두 끝날 때 까지 진호의 영화는 단 하나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술렁거림은 커지고 발표를 위해 나온 배우들마저 표정이 어색해졌다.
누구 하나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남우주연상 발표를 하겠습니다]점입가경이 이런 걸까.
이어진 발표에 사람들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만약 여기서도 수상에 실패한다면 이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다른 영화들이 훌륭하다고 한들, 모두가 공감하는 결과와는 달랐으니까.
[발표는 빌 고튼 씨가 하도록 하겠습니다]수상 발표를 위해서 나온 건 진호의 절친인 빌 고튼이었다. 그는 특유의 유들유들한 표정마저 잊은 채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수상 결과들을 전해 들었다.
납득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일단 수상 후보부터 보시죠]화면이 넘어가고 후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빼어난 배우들이었다.
연기 역시 굉장해서 찬사를 받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눈에 띄는 건 진호였다.
역대급의 연기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다.
특히 친구가 사망한 이후의 그의 표정 연기는 수 만 번이나 회자됐을 정도로 획을 그은 연기였다.
백이면 백 그의 수상을 확신했다.
빌 고튼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수상자 이름이 적힌 종이가 나오고 글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정확하게 훑었다.
“······!”
눈동자가 흔들리고 종이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진행자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종이에 적힌 이름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수상작은······로드맨의 이얀 노튼]표정관리조차 못한 채 씹어 뱉듯 수상작을 발표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박수와 환호 대신 죽은 듯 한 정적이 깔렸다.
이건 너무 기묘한 반응이었다.
사회자도 어쩌지를 못해 멈춰있고 발표를 들은 수상자 역시 올라가지 못했다.
짝짝짝.
하지만 딱 한 사람만은 박수를 쳐 줬다.
[충분히 받을 만 합니다]그건 진호였다.
침묵으로 물든 좌중 사이에서 그만이 홀로 일어서 박수를 친 것이다.
그러자 굳어있던 다른 이들도 그의 박수에 동참했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 수상자의 어색함을 씻어 주었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이라. 일단은 절위해 박수를 쳐 준 진호 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이얀 노튼은 조심스럽게 수상소감을 전달했다.
그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한 수상이었다.
어색한 얼굴을 한 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후다닥 자리에서 내려왔다.
역대 남우주연상 수상 중 가장 빠르고 볼품없는 장면이었다.
[······이건 옳지 않아]그리고 스쳐가듯 마이크에 잡힌 빌의 목소리까지.
영화제는 그렇게 엉망인 상태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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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영화제] [놀림감이 된 오스카. 대체 공정함은 어디로?] [의문남이 남은 영화제. 어째서 최고의 화제작은 수상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는가]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 아시아의 영화가 최고 수준에 부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영화제가 끝나는 순간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매일같이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비평 일색의 말들이 홍수처럼 쓸려 나왔다.
누구도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누구도 이 결과를 수긍하지 않았다.
[최근 오스카 결과를 두고 말이 많더군요. 개인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로드맨의 이얀 코튼? 물론 좋은 배우죠. 하지만 진호의 이번 연기와 비교하면······글쎄요. 오스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과를 냈는지 의문이군요] [이건 엄연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흥행 결과를 떠나서 평단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확보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수상도 없다? 이건 오스카 측에서 아예 영화를 묻기로 작정한 겁니다. 자신들 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가 1등이 되는 걸 반기지 않는 거죠]평단이나 각종 매체의 인터뷰 등에서도 영화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오스카 영화제 심벌에 X자를 표시한 뒤 SNS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진호는 배우의 품격을 보여 주었어.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그의 박수는 그의 품격을 보여주는 거라고] [인정해. 그는 대단한 사람이야. 자신의 수상이 물거품이 됐음에도 힘들어 하는 동료를 위해서 박수를 쳐 줬다고.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억울해. 그는 훌륭한 배우이자 훌륭한 인격자라고. 그의 영화가 중국에 불어온 바람을 생각해 봐. 이건 엄청난 업적이라고. 그런 사람이 공정하지 못한 대접을 받다니. 이건 미국의 수치야. 민주주의의 오점이라고]반대로 진호의 행동은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유명 스타들이나 정치인들마저 SNS에 감탄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과연 누가 그런 상황에서 박수를 칠 수 있을까.
그 포용력은 범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어리석을 뿐이야.”
“오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그냥. 조금 지난 일.”
진호가 에둘러 답하며 영화제 막바지를 떠올렸다.
모든 수상에 실패하고 귀국길에 오르기 전.
그는 다시 한 번 빌로우와 만날 수 있었다.
[이게 힘이라는 거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친다 하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이지] [자랑하러 온 겁니까?] [네 한계를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앞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지내라. 또 다시 튀어 오르려 한다면 우리가 나설 테니까]의기양양한 얼굴과 오만 가득한 표정.
그것이 그가 생각한, 오릭스라 불리는 집단이 생각한 행동과 결과였다.
진호는 이것에 두려움이나 답답함 대신 다른 걸 느꼈다.
[당신들. 내게 겁먹고 있군요] [······무슨 헛소리냐?] [배울 만큼 배우고 살 만큼 살 사람들이 고작 이런 행동이라니. 오릭스라는 유치한 이름도 그렇고 소꿉 장난 같은 힘자랑까지. 생각해 보면 당신들은 선을 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그린 헬은 그들의 독단이 불러온 사고였을 뿐이다.
그 외의 몇 몇 행적들을 둘러봐도 영화에서 보던 ‘뒷세력’의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지지 못해 바동거리는 아이의 모습만 있었을 뿐.
[나는 이제 당신들을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또 한 번 창피를 당해보고 싶은 거냐?] [과연 누가 창피를 당한 걸까요]진호는 더 이상의 문답을 포기했다.
거대하고 불길한 악이 작고 작은 아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별과 우월로 가득 차 있던 오릭스라는 세력은 고작 그것에 불과했다.
[손을 힘껏 뻗어봐야 바람은 잡을 수 없습니다]이미 바람은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Final Chapter. 계속 이대로
빌로우는 오릭스 멤버들을 호출했다.
시간이 지나고 속속들이 사람들이 도착했다.
면면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이곳에 다 모인 것이다.
‘흥. 이런 우리를 보고 뭐라고?’
빌로우는 그 모습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역시 사회적으로 상당히 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과는 비교 할 바가 아니다.
이런 강력한 조직에 몸담았다는 것이 뿌듯할 뿐.
진호의 말 따위에 잠시 흔들렸던 것이 되레 무안할 지경이었다.
[빌로우. 호출한 이유가 뭐지?] [상황보고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골머리를 썩게 하던 그 인물에 대한 조치기 취해졌으니 앞으로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조치가 취해졌다?] [네. 수상에 실패하고 물러났으니 이 또한 조직의 승리라 보아도 무방하겠죠]세간에서 말이 많긴 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권력자.
벌레들이 떠들어 봐야 포식자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자네는 상황 돌아가는 꼴이 안 보이나?] [언론에 대한 거라면 조만간 통제가 될 겁니다. 그리 심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통제를 한다고? 무슨 수로 말이냐?] [그야 어르신들의 힘으로 적당히······] [적당히 쥐락펴락하자? 그게 말처럼 쉬운 것 같나? 돌아가는 여론은 신경도 안 쓰고 마음대로 할 만큼?]그래서 이런 반응이 살짝 의아했다.
오릭스의 멤버들이라면 언론 정도는 쉽사리 주무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이가 없군. 우리가 언론사 쪽에 큰 영향력을 가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전부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건 아니네. 특히, 요즘같이 한 쪽으로 여론이 쏠리는 경우는 자칫하면 집중포화를 맞기 십상이지] [그, 그렇습니까? 그럼 잠시 언론이 가라앉기를 기도하는 편이 낫겠군요] [가라앉을 것 같나? 정말로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군. 당장 오스카 심사위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아. 이번 기회에 영화제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자는 거지] [······설마요] [다들 영화제니까. 그냥 공정 할 거라 대충 생각만 하고 있었지. 하지만 이번 일로 생각이 확 바뀐 거야. 아예 뒤집어 까서 제대로 굴러가는지 보자는 거네]빌로우가 마른 침을 삼켰다.
스쳐가듯 비슷한 말은 들어 본 것 같지만 이게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어르신들께서 막아주실 수는 없습니까?] [우리가 왜?] [그야 영화제 내막이 까발려지면 다들 곤란하신 거 아닙니까?] [자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이 무슨 결정을 했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게 그자를 막아야 한다며 특별한 임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기억이 안 나는군]빌로우가 주변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마다 딴청 피우고 있을 뿐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했다.
분명 오릭스 멤버들은 하나의 목표로 모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이렇게 꼬리 자르기나 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고작 영화 하나입니다. 절 보호해 주셔야죠. 그만큼 힘이 있는 분들 아닙니까] [쯧쯧. 그러다가 우리까지 피해보면 어쩌란 말인가. 솔직히 자네가 지나쳤어. 적당히 했어야지] [적당히? 적당히라니요? 그자가 수상을 싹쓸이하면 위상이 달라진다고 막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리나? 어르신들도 일이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아니 고작 이런 일에 말입니까?] [쯧쯧. 떨어지는 불똥은 피해야 하지 않는가]순간적으로 진호가 했던 말이 스쳐갔다.
두려움.
혀 차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내면에 깔린 건 두려움이었다.
혹시나 이번 일로 자신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우리. 우리 오릭스가 겨우 이 정도였습니까?] [크흠.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일 처리를 우아하게 하는 걸 선호하네. 과하게 일 벌려서 좋을 건 없지] [어르신들도 그런 겁니까?] [쯧쯧. 그분들이 움직일 필요까지 없게 해야지. 그런 걸 헤아리지 못하니까 자네가 이런 실책을 벌이는 거네]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걸 두려워하는 거겠죠] [뭐?] [그자의 말이 옳았군요. 온갖 권력으로 치장했지만 결국 자기 안위가 가장 중요한 겁쟁이들의 모임이었어]빌로우가 그제야 현실을 자각했다.
대의니 정의니 그런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 안위가 가장 중요한 뒷방 늙은이들의 모임이었을 뿐이다.
자신들이 세계를 조종한다고 허황된 망상에 찌들어 있는 겁쟁이들의 모임.
[······뭘 위해 그런 짓까지 했단 말인가]이제 와서 후회를 해 봤자.
빌로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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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면 잠잠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되레 더 뜨겁게 타올랐다.
마치 이런 일을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이번 기회에 영화제를 한 번 엎어야 한다는 목소리.
게다가.
[로드맨의 이얀 노튼. 양심발언을 하다]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이얀 노튼이 충격 발언을 했다.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준 진호에게 상을 건네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영화제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발언.
인터뷰 자체도 굉장한 반향을 낳으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오스카. 자체 조사를 시작] [내부 규정의 변화 필요 인지] [조사 시작. 심사위원의 계좌 동결]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빠르게 굴러갔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영화제는 수사를 받아들였고 결국 심사위원들까지 손이 닿았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요즘 돌아가는 모습이 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이 묘하게 굴러갔다.
이건 비단 영화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중국 총 궐기대회. 정부와 강력한 마찰이 우려되어] [집회 발언. 우리에게도 자유가 필요하다] [중국 무력 진압을 시사. 주변국의 비난에 발언을 취소]중국에서 거대한 민주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꿈도 못 꾸던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유명인들도 이에 지지선언을 하고 홍콩과 더불어 주변국들도 이번 일에 손을 거들었다.
굉장히 기묘한 기류였다.
오랫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중국의 정치 흐름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누구 하나 콕 집어서 설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이라며 거론하는 건 공통적으로 하나 있었다.
그건 영화 하나의 힘이었다.
고작 2시간 분량의 영화에 불과했지만 그 호소력은 묵혀있던 감정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물론, 전문가들은 그저 시기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미 자유에 대한 갈망이 높던 중국인들이 영화를 시작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그 작은 불씨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었다.
[오스카를 진호에게] [정당한 수상을] [영화는 오직 영화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더불어 SNS를 통한 재수상 운동도 활발하게 시작됐다. 한 번도 실행 된 적 없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세계를 움직인 인물]정의와 올바름의 상징을 위한 일.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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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떠들썩하게 돌아감에도 진호는 차분했다.
뉴스에 연일 이름이 오르고 세계의 명사들이 그를 거론하며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조용했다.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고목처럼.
언제 나와 같은 모습으로 항상 하던 일을 묵묵히 했을 뿐이다.
“세미야. 너무 억눌렀잖아. 다시 한 번 가자.”
“네, 샘!”
“루카, 너는 숨 좀 골라. 차분하게 하다가 거칠게 가야 멋있는 거야.”
“응. 응.”
중심에는 후진들이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옥을 찾아와 아이들을 단련시켰다.
이미 세미는 드라마 주연을 맡을 만큼 머리가 컸지만 진호는 여전했다.
같은 방식 같은 수준으로 계속해서 가르쳤다.
“와, 먼저 하기 있어?”
“그러니까 아침에 서두르라고 했잖아.”
“졸린 걸 어떻게 하라고.”
툴툴 거리며 나타난 은서도.
그녀는 회사의 허락을 받고 매일같이 사옥에 출근했다.
J.H와 합병 문의가 오가고 있으니 반쯤은 같은 식구라 봐도 무방했다.
“오빠, 아침에 뉴스는 봤어? 오스카에서 수상 취소를 하고 재심의에 들어간다고 하던데.”
“그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러면 전 수상자가 민망해지잖아.”
“이건 이얀 노튼도 찬성한 일이야. 그가 직접 나서서 재심의를 주장했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진호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이제 와서는 오스카 수상 경력 같은 건 크게 의미가 없다.
이미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그런 사소한 것에 구애 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참. 그리고 대표님이 전해달래. 조만간 왕호룽 회장님 초대로 북경에서 연설이 있다고.”
“아. 드디어 시작하는 건가?”
“오빠가 오면 힘이 될 거라고 하더라.”
“가야지. 그분에게는 신세 진 것도 많으니까.”
위험 할 수도 있지만 도의상 거절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왕호룽과 쥐옌이 권력의 중추로 부상하면서 어느 정도 안전은 확보 돼 있다.
본래 혼란의 한 가운데가 가장 안전하다고 하지 않는가.
작금의 중국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이번 일만 대충 마무리 되면 한 동안은 쉴 수 있겠지?”
“시나리오는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에헤이. 쉰다고 말 해.”
“알았어. 잠시 휴식기를 가지도록 할게. 대표님도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더라.”
“후후. 역시 대표님하고 마음이 잘 맞는다니까.”
황천부터 J.H.
그리고 오릭스와 영화제.
숨 쉴 틈 없이 계속해서 달려왔다.
작품과 연기를 위해서 재충전이 필요할 때.
“그럼 은서야. 이번에 쉬면 같이 외국으로 놀러가지 않을래? 전에 페루 갔을 때는 제대로 못 쉬었잖아.”
“진짜? 어디로?”
“하와이? 아니면 보라카이 같은 곳으로.”
“헤에. 오빠라면 또 무슨 이집트나 그런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은근히 평범한 곳으로 골랐네?”
“추천을 받았거든.”
“응? 추천이라고?”
“어······그런 게 있어.”
얼버무리는 진호를 보며 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나, 나, 나 이거 못 들은 거다! 못 들은 거야!”
귀를 손으로 탁탁 치며 냉큼 도망쳤다.
세미는 그 모습에 의아한 듯 고개를 흔들었고 루카는 ‘얼굴이 빨개!’라며 웃었다.
그리고 하윤이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진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형. 형. 드디어 각오가 생긴 거예요?”
“자식이, 다 산 늙은이처럼 뭐해.”
“헤헤. 저도 알 만 한 건 다 알죠. 하와이나 보라카이. 가서 하려고요?”
“그래, 인마. 여러 가지 일을 겪다보니 알게 되는 게 있더라.”
특히 영화제에서도 더 그러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나, 결과에 대해서 아무것도 손 댈 수 없었다.
결론은 좋게 풀렸으나 실제로 상황을 엎은 건 자신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너무 높은 곳을 바라 볼 필요도 없다.
지나친 이상을 꿈꿀 필요도 없다.
손을 뻗어 닿는 곳의 일을 하고 자신이 챙길 수 있는 것을 챙기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그리하여 일이 좋게 풀린다면 그것에 감사한다.
겸허하고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형. 형. 반지는 샀어요?”
“응. 왕방울 만 한 걸로 샀다.”
“와아! 샘, 프로포즈해요!?”
“프로포즈? 프로포즈가 뭐에요?”
그제야 눈치 챈 세미가 달려오고 루카는 뭔가 재미나다 싶었는지 방방 뛰었다.
진호가 능구렁이 같은 하윤이를 슬쩍 흘겨본 뒤 묶어 놨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웃고 박수치고 기뻐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그런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