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44
Chapter19. 뿌리 깊은 나무(2)
“그런 일이 있었는가.”
서훈은 하루 일찍 진호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을 만나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 드렸다.
통화 상으로 진호에게 짧게 설명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일이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성공을 하다보면 꼭 방해하려는 인간들이 있거든요. 이번에 진호가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입니다.”
“그래. 남자가 한 번 결심했으면 돌아보지 않는 법이지. 진호에게 우리 둘은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전해 주게.”
“네. 진호도 최대한 빠르게 내려 올 거예요.”
그나마 한 바탕 홍역을 겪고 난 뒤라서일까.
진호의 부모님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되레 서훈을 다독이기까지 했다.
“그럼. 두 분과 인터뷰를 진행해도 될까요?”
“그려. 우리가 뭘 말해야 하는가?”
“진실이요. 진호의 어린 시절부터.”
거짓 포장은 필요 없다.
서훈은 진실이 가장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이 그렇게 느꼈고,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
도서관을 나와 동아리실로 가던 아영은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한 둘이 아니었다.
이름 꽤나 있는 방송국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한숨을 폭 쉬고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어? 어? 잠깐만요. 그쪽 여성 분. 잠깐 인터뷰 될까요?”
“연극 동아리 창궁 분인가요? 잠깐만 시간 내 주세요.”
“혹시 진호 씨하고 아는 사이인가요? 이봐요! 부르잖아요!”
달라붙는 손들을 뿌리치고 동아리 방까지 도망쳤다.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크게 붙여 놓은 덕분인지 안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언니이!”
“아영, 누나. 이거 뭔 일이래요?”
“밖에 기자들 몰려와서 무서워 죽겠어요. 막 잡고 물어보는데, 뭘 알아야 답을 하지.”
후배들이 병아리마냥 삐약거리며 달라붙었다.
연극 무대 건으로 진호와 합을 맞춰 본 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먼발치에서 본 사람들이다.
인터뷰라고 해 봐야 할 말이 뭐 있겠는가.
엄한 피해자일 따름이었다.
“에휴. 다들 고생이 많네. 며칠만 참자.”
“아니, 우리가 왜 이런 꼴을 겪어야 하는데요? 진호 형은 뭐하고 있는데요?”
“그쪽도 소속사에서 대응을 준비하고 있데. 나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네.”
“체. 말이면 단가. 자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야, 야. 새끼야.”
볼멘소리 하는 후배의 머리통을 아영이 후려쳤다.
“아, 왜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그렇게 막 억울하고 그러냐?”
“아니, 그냥······내 일도 아닌데 짜증나니까 그렇죠.”
“에효. 왜 그러냐. 그래, 네 말대로 우리 일은 아니지. 진호 오빠 일이야. 근데, 생각해 봐. 살다보면 너도 억울할 일 생길 거잖아. 그때 누가 너처럼 굴면 좋을까? 조금 짜증난다고 해도 참고 도와주면 얼마나 고맙겠어. 안 그래?”
그다지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은영이 짧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너네 이렇게 의리 없이 나올래? 진호 오빠가 우리 소속은 아니지만 연극 무대도 함께 하고 회식 때면 와서 계산도 해 줬잖아. 그때는 좋다고 받아먹고 이제 와서 좀 짜증난다고 외면하기냐?”
“······죄송해요, 누나.”
그제야 한 풀 꺾였다.
회식 때 공짜 술이라도 한 잔 얻어 마셨던 모양이다.
“우리가 뭐 범죄자 숨겨주는 것도 아니잖아. 저기 몰려온 기자들. 무슨 속셈으로 왔겠냐? 그냥 뭐 자극적인 내용 하나 주워갈까 싶어서 몰려든 거지.”
“그럼 인터뷰는 그냥 다 무시해요?”
“아니, 해. 하고 싶으면 해. 근데 꼭 보고 들은 것만 말하는 거야. 추측이나 상상 같은 거 하지 말고.”
서훈이나 진호가 당부했던 말도 그것이다.
보고 들은 것만 말 해 달라.
“팔을 안으로 굽히라는 말은 안 해. 하지만 밖으로 꺾지는 말자. 우리 동아리 철칙이 뭐야. 연기는?”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래. 그거면 돼.”
병아리들이 입을 모았다.
#
송학수는 낄낄 거리며 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기사들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사실은 어느새 뒤편으로 밀리고 있었다.
“흐흐흐. 좀 쉬면 잠잠해 질 줄 알았나?”
시간에 따라 잠잠해지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이번은 확실하게 후자의 것이었다.
이슈가 큰 것도 있지만 암암리에 흘린 소문들이 일을 더 키운 탓이다.
정신병력, 일진 설, 폭행 설, 마약 설 등.
이젠 어느 것이 시작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이 꼴이면 재기하기는 어렵겠지?”
“네. 이 정도까지 이미지에 타격을 받아 버리면 같이 작품 할 감독도 없을 겁니다.”
“좋아, 좋아. 눈에 가시 같던 놈도 발라 버렸고, 우리 선호만 잘 되면 되는데. 아직 순위 변동은 없고?”
“이번 앨범 반응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컴백 전 예능에서의 활약이 타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쯧. 생각 할수록 열 받는다니까. 건방진 배우 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본래라면 국내 활동 마치고 일본 등 투어를 갈 시간이다.
하지만 반응이 미진하다보니 일본 쪽 투어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돈으로 따져도 엄청난 손해였다.
“저 어린 놈 파버린 걸로 만족을 해야······응?”
툭툭.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넘기던 송학수가 채널을 멈췄다.
종편의 가십 방송이었다.
“뭐야? 벨로스? 벨로스가 누군데?”
두문불출하던 진호가 웬 늙은이와 나와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 ‘거장 벨로스와의 호흡!’이라는 자막을 커다랗게 박아 놓은 채.
“벨로스 감독이라니. 저런 거장하고 어떻게?”
“뭐야. 박 팀장. 저 벨로스라는 양반이 누구인지 아는 거냐?”
“아, 네. 프랑스 출신 감독으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영화계에서의 영향력을 따지자면 한 손에 들어 갈 정도로.”
“뭐? 그런 양반이 왜 저런 뜨내기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그야······”
뜨내기가 아니니까.
가장 단순한 답이 있지만 그걸 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시팔! 이러면 말짱 꽝이잖아! 이미지에 타격 줘서 앞으로 일 못하게 해야 하는 건데!”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벨로스라니. 이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네요.”
“그래, 그래. 저 소속사 놈들이 화제 전환하려고 저 늙은이 섭외 한 걸지도 모르잖아.”
“······”
거장 벨로스를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진호 쪽 소속사의 크기나 힘을 몇 배로 뻥튀기 한다 해도.
“잠깐만. 저건 또 뭐야? 다큐멘터리?”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향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한 진호의 답이었다.
“편성된 프로그램이 있긴 했습니다. 아마 며칠 내로 방송이 되긴 할 텐데······”
“그쪽에는 언질 안 한 거냐? 왜 방송이 편성되게 그냥 두는 건데?”
“이미 사전에 잡혀있던 계획인데다가, 그쪽 국장이 저희와 관계가 썩 좋지 않습니다.”
“니미. 그래서 뭔데? 저거 방송 나가면 우리한테 안 좋은 거냐?”
“글쎄요. 저도 당장은 판단하기가······”
“글쎄요라니! 무슨 일을 그따위로 처리하는 건데!”
팍, 튀는 소리에 박 팀장이 움찔했다.
송학수 앞에 놓여있던 재떨이가 벽에 부딪쳐서 깨진 것이다.
맞았으면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 너. 일 똑바로 해. 저 새끼 멀쩡하게 벗어나는 꼴 보이면 너도 그냥 안 둔다.”
“······네.”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걸까.
박 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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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야 왜 그래?”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응원 차 방문해 있던 은서가 조용히 물었다.
말없이 앉아있는 진호의 기세가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길흉화복. 팔괘나 점괘. 이런 거 믿어?”
“엥? 갑자기 무슨 소린데?”
“그냥. 어떤 예감 같은 게 들어서.”
진호가 창틀 너머의 전경을 보며 나직이 답했다.
누군가의 능력인지 모호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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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가 카메라 앞에 섰다.
서훈을 비롯한 스텝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조명이 센지 얼굴이 조금은 뜨거웠다.
부끄러움일까.
아니,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서훈이 운을 떼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진호 씨의 선택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민망하네요. 그냥 제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죠. 용기라기보다는 이제 할 때가 되었다? 이런 느낌일 뿐입니다.”
서훈이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안의 한 장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호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영화제에서의 수상까지 모두 마치고 난 뒤, 조용히 꺼내는 진호의 진심이었다.
“저희 팀은 진호 씨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쭉 따라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 하였던 시절까지. 보면 느낀 것이 있다면······참 힘든 시간을 보내 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는 어렵네요. 네. 과거의 저는 꽤나 불행한 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직접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진호의 시선이 카메라를 타고 이동했다.
이미 다 밝혔고, 말하기로 각오한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입으로 이걸 토로하려고 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짧게 숨을 골랐다.
‘나아감을 아는 자가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진퇴에서의 용기야 말로 장군의 덕목이다.’
‘치부를 숨기는 자는 작고 치부를 드러내는 자는 크다. 자신조차 극복한 자가 무얼 두려워할까?’
생을 함께 한 수많은 전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렁거림이 가라앉았다.
“전······남들과는 다릅니다.”
묵혀 두었던 책의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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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편성 시간이나 프로그램 특성 상 시청률이 잘 나올 수 없는 종류였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진호에 대한 관심과 소문에 대한 흥미가 이중으로 작용했다는 의미였다.
“그 방송 봤어?”
“어. 어제 저녁에.”
“좀 그렇지 않냐? 어릴 때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거잖아. 지금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영······”
“야.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연기로 극복해서 성공 한 사람이면 박수를 쳐 줘야지.”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렇잖아. 저만큼 고생했으면 됐지, 지금도 욕먹을 이유가 있어? 사람이 아프고 싶어서 아팠냐?”
의견은 당연히 나뉘었다.
그래도 정신병이니까 마음에 안 든다는 부류,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는 부류.
“아, 새끼들 뭘 모르네. 너넨 그 정신병 이야기 듣고서 아무것도 와 닿는 게 없냐?”
그리고 제 3의 부류였다.
“뭐가?”
“봐봐. 정신 병력이 있던 사람이 그걸 연기로 승화시킨 거잖아. 그 미친 연기력이 그냥 연습으로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야.”
“어······그렇지?”
“그럼 딱 나오잖아. 네가 좋아하는 배우 중에 연기에 깊이 빠져서 우울증 앓고 그런 사람 있지? 진호는 그걸 아무런 장애 없이 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되냐?”
“되지.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 광기를 연기로 승화시키는 거잖아. 이게 시팔, 얼마나 미친 재능인지 감이 안 오냐?”
숭배자였다.
“우리나라에 연기 잘 하는 많지. 진짜 배우 풀로는 헐리우드 뺨칠 거다. 근데, 대부분 나이가 많아. 연기가 무르익으려면 연차가 필요하다는 거지. 근데 진호는? 그 사람 서른도 안 됐어.”
“어. 그렇지. 아직 젊지.”
“게다가 영화제에서 상도 탔고. 이번에는 벨로스라는 어마어마한 거장하고 작품 들어간다면서.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우리나라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배우가 나올 수도 있는 거야.”
“야, 야. 너무 나갔다.”
“진짜라고, 멍청이들아. 나이 젊지, 연기력 미쳤지, 인맥 좋지, 배경 스토리 쩔지. 이만큼 스타성 있는 사람이 또 나올 거 같냐?”
격정적인 말에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설득되기 시작했다.
그냥 개인, 3자로 볼 때는 ‘정신병’이력이 걸리는 것이 사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친 연기력의 배우’라고 포장을 하면 또 그것이 스토리의 일부가 된다.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헐리우드의 정상을 밟아 줄 우리만의 비밀병기.
“지금이라도 팬클럽 가입해라.”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로 팬의 숫자가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