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Past Life Actors RAW novel - Chapter 71
Chapter32. 이상한 접근(1)
나팔꽃 촬영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역 분량은 모두 끝났다.
세미와 하윤이 모두 호평으로 마무리 지었다.
세미의 재능에 반하여 칭찬하던 이들도 마지막에는 하윤을 인정했다.
재능 옆에서 꿋꿋하게 연기하는 것도 능력이었다.
“수고했다. 둘 다.”
“으아아! 아쉬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좀 더 할 수 있는데, 벌써 끝나 버렸어.”
세미와 하윤이는 아쉬움에 바동거렸다.
분량이 적은 건 아역의 숙명이었다.
‘그래도 눈도장은 찍었으니.’
하지만 진호는 이 둘이 더 많은 연기의 기회를 잡게 되리란 걸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촬영장 스텝들 입을 타고 소문이 퍼지고 있다.
괜찮은 연기자가 나타났다고.
“자자,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제 은서나 응원하자고. 그 동안 우리 돕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냐.”
“네! 은서 언니 응원할게요!”
“맞아요. 은서 누나가 진짜 고생했죠. 나중에 누나 촬영장에 뭐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보냈지. 너희 이름까지 달아서 커피차로 배달 갔어.”
잘 받았다는 톡까지 확인했다.
세미와 하윤이가 아역으로 나가준 덕분에 남들 눈치 안 보고 은서를 응원 할 수 있었다.
“어? 커피차도 보냈는데 촬영장 안 가 봐요?”
“가보고야 싶은데, 이 형도 일은 해야지 않겠냐?”
“아, 맞다. 형이 연예인이라는 걸 가끔 깜빡해요.”
“자식이. 연기 좀 하더니 아주 머리가 컸어?”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하윤이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세미는 장난인 줄 알고 ‘나도! 나도!’라며 뛰어들었다.
복작거리는 것이 전형적인 오누이였다.
“그럼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대표님 피곤하다고 탕비실에서 쪼그려 자면 끌어서 옮겨주고.”
“네! 믿고 맡겨 주세요!”
“나도, 나도! 열심히 할게요!”
나란히 경례하는 두 사람에게 손 흔들며 진호가 다시금 일터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 애들이 생긴 기분인데······’
부정 할 수 없었다.
#
중국에서 영화가 개봉하고 난 뒤 잠잠해졌던 인기가 다시 타올랐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종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특히 광고 섭외가 많았다.
의류, 음식, 여행, 향수 등.
잘 나간다 싶은 연예인들이 찍는 광고라면 거의 하나씩은 전부 들어왔다.
“좋습니다. 좋아요.”
지금 찍는 이 광고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최근 성장 중인 병맥주 브랜드.
국산 맥주 치고는 톡 쏘는 맛이 괜찮은 터라 진호도 평소에 종종 마시는 편이다.
“역시 모델이 좋다보니 진도가 쭉쭉 나가네요.”
CF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찍는 족족 흥행노선을 타는 광고계의 라이징 스타.
브랜드도 좋고 감독도 좋고 계약 조건까지 훌륭하니 진호와 회사에서도 거부 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잘 좀 나왔나요?”
“하하. 잘 나왔다 뿐입니까. 보고 있으니까 맥주가 팍 당기는 게 아주 그냥 좋습니다.”
“잘 찍어주신 덕분이죠.”
1차 촬영이 끝났다.
4계절을 따로 담아서 시리즈 형태로 내보내는 광고라 아직 몇 번의 추가 촬영이 남아 있었다.
진호는 촬영 분을 모니터하며 결과물을 점검했다.
“아, 그리고 진호 씨. 촬영 끝나고 회식 있는 거 아시죠? 회사에도 이미 연락을 해 두었는데.”
“회식이요? 광고 찍고 회식하는 건 좀 생소한데.”
“여기 브랜드 대표님이 진호 씨 만나고 싶다고 해서요. 아주 광팬이래요. 뒤에 스케줄 없는 걸로 아는데, 가볍게 한 잔 하고 가시죠?”
“이거 스케줄 체크까지 한 겁니까?”
“하하. 스타를 만나려면 그 정도는 해야죠.”
서글서글 웃으며 말하는 모양새가 거절하기 어렵다.
진호가 잠깐 양해를 구하고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도 막 전화하려고 했다. 마침 스케줄도 없고 하니까 네가 괜찮다면 알아서 하라고 했지. 나름 업계에서 뜨고 있는 사람 같으니까 알아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딱히 별 말은 없었다.
대표가 직접 만나러 오는데 거절하는 건 꽤나 부담이었다.
진호도 잠시 생각하다 수락했다.
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뺄 이유도 없었다.
“하하. 가시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사람들도 좋아 보였다.
#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강남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밖은 일반 테이블과 바로 꾸며져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별도의 방이 나오는 형태였다.
진호는 일행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오. 홍 배우님.”
“와! 진짜 오셨어!”
방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몇 명은 진호도 낯이 익었다.
가수, 배우, 모델.
직군도 다양했다.
“이거 생각보다 회식 규모가 크네요?”
“하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홍 배우님을 만난다고 하니까 주변에 다들 오고 싶다고 해서 말이죠.”
“아. 그럼 그쪽 분이······?”
“네. 제가 브랜드 야닉의 대표 이강민입니다.”
손을 쑥 내미는 남자, 이강민.
큰 키에 구릿빛 피부를 가졌으며 웃는 얼굴이 꽤 호감상이었다.
직함을 빼고 보면 운동선수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진호입니다. 홍 진호.”
“하하. 알다 마다요. 자자, 일단 앉으시죠. 귀한 분을 모셨는데, 계속 서 있게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바쁜 손짓에 진호가 방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방도 컸지만 사람도 많은 터라 자리가 꽉 찼다.
“가서 최고급으로 쫙 뽑아와.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소홀하게 하지 말고.”
“네, 대표님.”
“대표?”
종업원의 답에 진호의 시선이 돌아갔다.
“하하. 시음 겸 해서 강남에 몇 곳 굴리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홍보하기에 실전보다 좋은 건 없죠.”
“그렇군요. 신생 브랜드로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기반이 탄탄한 거 같습니다.”
“에이. 업계 굵직한 브랜드들에 비하면 아직 애죠. 그나마 제 모계에서 지원이 넉넉한 덕에 입에 풀칠은 하고 있습니다.”
“모계?”
“그건 뭐 술 좀 마시면서 얘기를 드리죠.”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잔이 돌았다.
종업원의 능력이 좋은 건지 술과 안주는 진짜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나왔다.
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진호도 비싸다, 라고 눈치 챌 만큼 한 병 한 병이 고가의 물건이었다.
“진호, 오빠.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야. 너 혼자 그러기냐? 나도 얘기하고 싶다고. 진호 오빠. 나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이야. 벌써부터 인기가 터지는데요? 하하.”
양 옆에서 바짝 붙어오는 미인들.
둘 다 TV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진호는 당황과 어색함을 함께 느끼며 술잔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차라리 술을 마시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
술이 빠르게 돌았다.
조명을 밝게 하지 않아도 보일 만큼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하나 둘 커져갔다.
“하하. 술이 입에는 맞습니까?”
“뭐. 네. 처음 마셔보는 술이지만 좋네요.”
“특별히 공수해 온 물건입니다. 그 잔 하나에 수백은 충분히 호가 할 겁니다.”
“······수백이요?”
“네. 하하하.”
잔에서 찰랑거리는 술은 한 모금 정도밖에 안 됐다.
그리고 그런 술이 가득 담긴 술병이 눈으로만 세도 아홉 병.
테이블 위에 얼마가 올라와 있는지 추정이 어려웠다.
“우리, 홍 배우님이 평소에 검소하신 거 같네요. 이런 곳은 안 오는 편입니까?”
“입맛이 서민이라서요. 술은 소주가 좋고 안주는 김치찌개가 맛있더군요. 여기 이 고가의 술들도 좋긴 하지만 제 입이 그걸 다 가려내진 못할 거 같습니다.”
“하하. 돈을 뭐 갈퀴로 쓸어 담고 계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재미있네요. 역시 배우는 연기. 연기에 모든 것. 이런 느낌입니까?”
껄껄거리고 웃지만 그리 즐거운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 불편한 곳이라도 건드린 걸까.
진호는 어색함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예전에 연기를 조금 하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던 터라. 이거 괜히 분위기만 망쳤군요. 벌주를 마시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음. 술자리에서 술은 즐겁게 마셔야죠.”
말릴 틈도 없이 잔을 꽉 채워서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호쾌하다고 해야 할지.
뭔가 미묘한 느낌의 남자였다.
“진호, 오빠도 한 잔 해요.”
“원 샷! 원 샷!”
“오빠도 쭈욱. 질 수 없다, 우리 배우님!”
문제는 좌우에서 부추기는 여성들.
하나같이 미인에 빼어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진호가 이런 것에 홀랑 넘어갈 성격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잔을 받고 머뭇거리다 한 번에 넘겼다.
“크으······”
목 넘김은 부드러웠지만 속에서는 불길이 일었다.
병을 곁눈질로 살피니 도수가 상당했다.
이미 마셔 둔 술도 상당한터라 머리가 핑 돌았다.
“하하. 역시 남자답게 마시는군요. 자자 더 마십시다. 좋은 술은 역시 좋은 사람하고 마셔야죠.”
“어머. 진호 오빠 너무 멋있다.”
“진짜. 완전, 남자네. 몸도 은근 좋은 거 같고.”
“팔뚝 봐. 단단해.”
슬쩍슬쩍 만지는 손길도 상당했다.
진호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취기가 세게 올라와서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크으. 역시 이렇게 보니까 더 아쉽네요. 홍 배우님처럼 훌륭한 분이면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되는데.”
“그러게요. 배우님이 아까워요.”
“응. 응. 많이 아깝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호는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대화의 맥락을 잡아갔다.
“지금 홍 배우님 위치가 어떱니까? 리옹에서 상 받았죠. 그리고 영화 찍은 거 대박났죠. 월드 와이드 2억? 중국까지 합치면 훨씬 더 될 테니, 수익적으로도 비교 할 대상이 없을 겁니다.”
“와. 진짜 엄청나다.”
“월드 스타잖아. 월드 스타.”
진호가 머리를 푸르르 떨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을 한 잔 마셨다.
혀끝이 알알하고 속이 뜨거웠다.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근데, 활동을 보면 회사에서 제대로 된 서포트를 못 받는 거 같다 이겁니다. 아니, 이럴 때 일수록 활동을 더 왕성하게 해야죠. 광고 몇 개 찍고 끝입니까?”
“끄응. 무슨······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아쉬워서 그래요. 아쉬워서. 만약 제가 홍 배우님을 맡았다? 그럼 뭐, 아주 세상 끝까지 밀어 줬을 겁니다. 할리우드? 어렵지 않죠.”
“······대표님은 기획사 사장도 아니잖아요.”
“하하. 지금이야 그렇죠.”
이강민이 테이블 위로 검은 색 명함을 올렸다.
이름과 직함이 적힌 심플한 명함이었다.
“LGM?”
“네. 제 이름으로 된 엔터입니다. 투자금 확보했고, 소속 될 애들 계약까지 전부 끝냈죠. 조만간 업계 머리들과 경쟁에 들어 갈 겁니다.”
“끄응. 후발주자가 그러기는 어려울 텐데요?”
“하하. 그건 힘없고 돈 없는 이들이나 그런 거죠. 전 다릅니다. 제 모계 회사가 야마코니까요.”
“야마코······?”
진호는 야마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강민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느낄 수 있었다.
“네. 야마코라면 가능합니다. 홍 배우님을 세계로. 더 큰 무대로 훨훨 날게 할 수 있죠. 어떤가요? 저희와 손을 잡고 새로운 장을 열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눈이 따끔거리고 온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술이 단번에 깼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제안입니다. 합리적인 제안. 홍 배우님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작은 회사로는 불가능합니다. 저희와 손을 잡죠.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 드리겠습니다.”
“하. 그러려고 절 부른 겁니까?”
진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술기운에 휘청거리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이강민이 표정이 일그러지고 주변 분위기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술에 뭔가 있었나?’
짜고 치는 판.
진호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홍 배우님. 홍 배우님!”
“그놈의 배우 소리는 그만 두시죠. 당신이 날 배우로 봤으면 이딴 개수작은 벌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잠깐 이야기라도······”
“이야기는 이 술로 다 나눈 것 같군요. 내 연기는. 내 인생은 고작 이딴 걸로 살 만큼 싸구려가 아닙니다.”
진호는 가득 차 있던 술을 테이블에 쏟아냈다.
그리고 황망하게 바라보는 주변 이들을 눈으로 쏘아보고는 방을 벗어났다.
수천만 원 술보다 소주 한 잔이 그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