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너 정도면 쓸 만하지 (2)
내 생각대로라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나는 게 맞지만.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의 파급력을 일주일간 몸소 체험하고 생각을 바꿨다.
분식집의 손님들은 계속해서 많아졌고, 내 이름과 나를 발굴한 백원종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서 내려 올 줄을 몰랐으며, 내가 방영된 장면은 짧게 편집되어 각종 온라인 매체 이 곳 저 곳에 뿌려졌다.
이 정도 방송의 파급력이라면 시간을 조금 더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마음을 너무 급하게 먹은 것일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지켜봐야겠어.’
그리고 ACK의 세 번째 녹화 날.
실제로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쓸 만한 후배’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팀 미션, 파스타 거장들에게 맛을 평가받아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타 거장들을 섭외했습니다!”
심사위원 강요한이 외치자, 계단에서 요리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와! 루시앙 말릭?”
“허, 허얼!”
루시앙 말릭.
내가 환생하기 직전엔 미슐랭 스타 14개를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요리 행사나, 방송에서 몇 번 봤기에 나와 얕은 친분이 있기도 했던 사람.
‘악마의 파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요리는, 그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등장하고, 강요한은 참가자들을 술렁이게 할 말을 던졌다.
“지금! 미슐랭 스타 6개를 소지하고 계십니다. 미슐랭 스타가 2개, 2개, 1개, 1개로 총 네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십니다. 3개의 별을 받지는 못하셨는데, 그게 이번에 한국에 오신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통역가가 강요한의 말을 루시앙 말릭에게 전했고, 루시앙 말릭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미슐랭 3스타를 못 받았다라…… 제 아픈 부분을 건드리시는군요.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저를 잘 보좌해주던 강요한 심사위원의 간절한 부탁에 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이곳엔, 제가 미슐랭 스타 3개를 도전할 때에 필요한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죠?”
루시앙 말릭의 말에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이미 미슐랭을 가진 스타 셰프가 ‘다음 미슐랭에 함께 도전할…’ 이라는 말만 해도 젊은 요리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엔 충분했다.
‘루시앙, 방송쟁이 다 됐네.’
물론, 진정으로 이곳에 그런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방송용 멘트겠지만, 그 말이 방송용 멘트이건 아니건 나에게 상관이 없다.
실제로 내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내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파스타에 일가견이 있는 셰프 45명.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루시앙 말릭.
나는 저 녀석의 입을 놀라게 할 맛만을 생각했다.
‘이번 생은 진도가 더 빠를 것 같군.’
***
“미션은 실제의 주방이 돌아가는 것처럼 진행됩니다.”
5라운드의 남은 합격자는 12명.
3명씩 네 팀이 구성되었다.
세 명이서 홀 서빙과 메인 요리인 파스타, 그리고 전채요리나 디저트 중 한 종류를 택해서, 총 세 개의 업무를 분담한다.
“아이고, 이거 팀장님한테 신세만 져서야…….”
팀은 새롭게 랜덤으로 구성되었지만, 우연치 않게 나는 손을 맞춰본 팀원들과 다시 팀이 되었다.
김해숙과 민서윤. 두 명의 여성과 5라운드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각 팀별로 메뉴를 정해주십시오. 윤종혁 씨, 가장 먼저 메뉴를 고를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4라운드에서는 열외자로 자동 합격했기에, 4라운드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냈던 윤종혁이 가장 먼저 선택 권한을 얻었다.
“해물 크림 파스타로 하겠습니다.”
윤종혁의 팀원들은 윤종혁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저절로 기세가 올라갔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치며 여간 난리가 아니었다.
그에 따라 나의 팀에 소속된 두 명의 여성들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유현 팀장님. 우린 뭐를…….”
민서윤은 겁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 시키는 일은 다 잘한다.
김해숙은 그냥 다 잘하고.
이런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은 쉽다.
오히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이것저것 선택지를 묻다 보면 효율이 떨어진다.
“알리오 올리오.”
“에?”
내말에 팀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믿어야겠다는 표정도 함께 공존했다.
“역시, 반유현, 가장 기본으로 승부한다는 겁니까? 나는 진짜 믿을 수가 없어예. 자네가 요리를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됐다는 게.”
심사위원 김애란이 말했다.
“팀원들 표정 봐요. 알리오 올리오는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기라. 반유현 씨의 실력이 좋다고는 해도. 파스타로는 진짜 유명한 셰프들한테 맛을 보여줄 낀데. 괜찮겠어요? 그러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꼴 되면 난 몰라요이.”
김애란이 우리 팀원들의 속을 벅벅 긁어줬다.
내 팀원들도 실제로 저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 기대는 해볼게요. 팬이니까예.”
그리곤 김애란은 뒷말을 덧붙였다.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장 역할을 나눴다.
“어머니는 샐러드로 에피타이저를 준비해주시고, 민서윤 씨는 홀을 담당하시는 걸로, 메인 요리인 파스타는 제가 맡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땐, 내 팀원들만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과, 심사위원들도 나의 오더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놈이 또 어떤 식으로 하려나, 그것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메뉴 제대로 구성하시는 것까지 시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저 유명한 셰프들의 배를 계속 굶길 수는 없으니까. 조금의 시간만 드리겠습니다.”
강요한의 말을 하자, 각 팀별로 구비된 주방으로 들어갔다.
“면을 삶는 정도는, 가장 기본인 알단테(Al dente)로 맞추고, 특별한 오더가 있으면 그때그때, 바꿀 겁니다.”
나는 내가 파스타를 어떻게 만들 건지, 나의 팀원들에게 설명해줬다.
이들이 파스타를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 과정과 조리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좁은 주방에서 본인이 아닌 다른 상대의 다음 행동을 알게 되면서, 더 좋은 주방 동선의 효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면을 삶은 물, 면수는 절대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면을 삶을 겁니다. 면을 계속 삶을수록 그 면수엔 전분이 진해지니까요.”
“유화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맞습니다. 면수에 들어있는 전분이 파스타에 있는 기름을 면과 더 합쳐지게 해주죠.”
내가 그 과정과 조리법을 설명해주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 교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간단합니다. 올리브 두르고, 마늘 올리고 페페론치노랑 파슬리 같이 볶을 겁니다. 그쪽에 팬 하나만 주시겠어요?”
김해숙이 자신의 뒤에 있는 볶음용 팬을 꺼내줬다.
“이거 말고요.”
“이거요?”
“팬의 종류도 파스타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늘을 기름에 볶을 때, 마늘의 면이 팬에 직접……. 아니, 시간 없으니까 궁금하시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에, 그것들을 볶는 시연을 했다.
“마늘은 무조건 통마늘을 손질해서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마늘을 준비해 달라고 하면 당장 주방으로 들어오셔서 통마늘을 손질해주세요.”
마늘의 종류와 그것을 다진 것을 사용했나, 슬라이스 한 것을 사용했나.
불의 세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또는 파슬리를 어떤 타이밍에 투하했느냐, 어떤 치즈를 올렸냐에 따라 그 미묘한 맛의 차이는 천차만별로 날 수 있는 것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였다.
그만큼 셰프가 가진 노하우와 기본기에서 엄청난 실력 차이가 나는 음식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효율을 위해 설명한 것이었으니, 나는 이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한 뒤에 넘어갔다.
“레몬, 올리브유에 소금 후추 간을 해서 드레싱을 만들어주세요. 아주 약한 맛으로, 야채의 산뜻함만 살려서 식욕을 돋울 정도. 메인 요리를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만 할 수 있게요.”
팀원들에게 조리법을 숙지시킨 뒤에는 샐러드의 드레싱 간을 조절했다.
그에 들어갈 채소도 골랐는데, 이 또한 손님의 오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홀을 맡은 민서윤에게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눈빛에서 빛이 난다. 매번 느끼지만 그 의지 하나만큼은 칭찬해줄 만하다.
“실수만 안 하면 될 겁니다.”
주방에서 홀을 너머다 보니, 실제로 유명한 셰프들이 수없이 많이 앉아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루시앙 말릭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셰프들이 앉아있었다.
요리를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들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조수나, 직원들까지 40명의 심사위원들이 있었다.
“헤엑! 와, 우리 교수님도 계신데요?”
알고 보니 민서윤은 일본 소재의 명문 요리학교 출신이었다.
“그래? 홀에서 주문받으면서 잘 봐달카이 하믄 되겄네!”
김해숙이 그런 민서윤에게 말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마세요.”
레스토랑에서의 팀워크는 홀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손님들의 의사를 주방에 제대로 전달해야만 하고, 주방의 의도를 손님에게 전달하는 것.
그런 점에서 홀 서빙도 요리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었다.
민서윤이 결연한 표정을 짓고 나갔다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후. 복잡해요. 팀장님 잘 들으세요. 총 파스타 16개, 그중에서 8개는 부가티니(Bucatini)면, 5개는 링귀네(Linguine)면, 3개는 탈리아텔레(Tagliatelle)면을 사용해주시고요. 나머지는 일반 스파게티면이에요.”
미션의 변별력을 갖추기 위함인지, 심사위원으로 선발된 저들은 면의 종류까지 바꿔가며 주문했다.
면의 종류에 따라 조리 시간과 방법이 다른데, 그것을 세밀하게 조절하는지를 보는 게 저들의 의도인 듯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이목을 끄는 주문이 있었다.
“그런데, 좀 특별한 주문도 있어요. 스파게티면을 65% 익힌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를 퍼센트로 알려준 단 하나의 주문.
루시앙 말릭의 주문이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면의 익은 정도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저 65%라는 수치는 루시앙 말릭의 취향이기도 했다.
“65%가 어느 정도죠? 알단테보다 덜 익은 건가……. 더 익은 건가……. 스테이크로 치면 미디움 웰던?”
경험이 없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정확한 숫자를 맞추기 어렵다.
“걱정마세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면을 넣는다.
면이 삶아지면 미리 준비해둔 재료와 함께 팬에 볶는다.
“끓는 물에 55% 익히고, 나머지 10%는 팬에 볶으면서 익힐 겁니다.”
그에 따라, 면의 익힘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단계는 두 단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정확한 수치로 그 익힘 정도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계처럼 정교하게 수치를 맞추려면 최소 몇 년은 면만 붙잡고 있어야 될 것이다.
“이게, 65% 익힌 파스타입니다.”
민서윤이 루시앙 말릭 앞에 파스타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민서윤이 프랑스어를 살짝 구사했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접시를 내려놓는 것을 보곤, 다시 남은 주문들을 해결하려 화구 앞에 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리들을 하나씩 지정된 선반에 올렸다.
민서윤은 선반에 있는 요리들을 하나씩 홀로 옮겼다.
그때, 내가 민서윤의 팔을 낚아챘다.
“잠시만요. 시간차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민서윤이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고, 나는 홀 방향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민서윤이 홀을 봤을 땐, 모든 이유가 설명되었다.
내가 루시앙 말릭이 주문한 65% 익은 파스타를 가장 먼저 선보인 이유와, 이미 요리가 완성되었음에도 시간 차를 두어야 할 이유 말이다.
“엥? 뭐에요 저 사람? 왜 자기가 주문한 파스타가 아닌 것도…….”
루시앙 말릭은 내가 만든 파스타 요리를 맛본 뒤에, 대단한 의심을 품었는지, 나의 주방에서 나오는 파스타들을 모조리 자신의 테이블로 가져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곤 내가 있는 주방을 바라봤다.
나와 한 차례 눈이 마주치자, 동료 또는 부하들이 먹어야 할 파스타까지 조금씩 맛을 봤다.
독불장군처럼 모든 접시를 자신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계속해서 맛을 본다.
“루시앙 말릭의 테이블이 접시로 꽉 찼습니다. 이 파스타도 저 테이블로 가게 될 거예요.”
“이건, 저기서 주문한 파스타가 아닌데……?”
“쉿.”
그때, 밖에서 강요한 심사위원의 말이 들려왔다.
“반유현 씨! 잠깐 주방에서 나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