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아주 차갑게 (3)
“내년이면 제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보유자인 안토니 베르만은 그렇게, 여유로운 미소를 짓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나와 최민성을 향해 음흉한 웃음을 짓던 셰프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하하하! 반유현 셰프님! 이런 행사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가 말씀드렸던 것을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실 줄이야. 이거, 탑셰프 치고는 너무 소심한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사람 민망하게, 저희한테는 신청서도 받지 않고 초대를 하셨다는 게…… 너희들은 와서 맛이나 봐라, 내 요리가 진짜인지 아닌지, 뭐 이런…… 자신감. 멋집니다.”
“허허허! 그래. 젊은 셰프답게 패기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정말로 멋집니다.”
미슐랭 스타 런던 시상식에서 공정성을 의심하며 나를 깔봤던 무리는, 이 세 명의 셰프가 주축이었다.
각각 지중해식 레스토랑, 일식 정찬, 프랑스 정찬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
“우리 레스토랑과 겹치는 메뉴도 있더만.”
“아, 칼린 셰프님의 이베리코 돼지 구이, 저희가 오늘 여기서 먹을 메뉴와 겹치는군요.”
“지중해 요리의 대가 칼린 셰프님과 겹치는 메뉴가 있다니…… 그 요리로 평가를 하면 되겠네요. 칼린 셰프님의 레스토랑도 미슐랭 쓰리 스타니까요. 어떤 쓰리 스타가 진짜인지.”
중년의 남성들, 많게는 60살까지 먹은 사내들이 추잡스럽게 입을 놀리는데 내 표정이 밝을 리가 없었다.
이놈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이용해 미슐랭 스타 공정성 논란에 불을 붙인 장본인들이기도 하고.
이놈들을 따르는 셰프들도 함께 자리했는데, 이들도 많게는 투 스타 적게는 원 스타를 가진 셰프들이었다.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이슈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자신감과 패기는 인정합니다.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지중해식 레스토랑으로 미슐랭 쓰리 스타를 소유한 칼린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다 같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마치, 내가 이 행사가 끝난 뒤에는 셰프로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비릿한 미소였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고 저들이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저쪽에 앉아 계십쇼. 그쪽의 레스토랑과 같은 메뉴가 있다니 요리를 맛보고 입을 놀리시든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아, 입을 놀려? 이 양반이 돈 먹이고 홍보용 대가로 미슐랭 스타 받은 것 다 알아. 지금이라도 인정해. 관광청에서도 조사 들어갔으니까, 밝혀질 터……. 거, 아직 첫날이니까 조용히 어디 파리 구석에서 요리 계속하고 싶으면…… 이쯤에서 행사 다 취소하…….”
그때, 저들의 언행을 듣다 못 한 최민성이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어이, 아저씨들. 앉아있으라고, 무쇠 팬에 볶아지기 싫으면.”
“허, 참……! 아, 아저씨? 당신도 오, 오늘 끝나고 보자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이들도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싫었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
‘반유현 올 데이’의 중계권을 입찰받은 방송사, ABC.
그중에서도 이번 촬영의 총책을 맡은 ‘탑셰프’의 메인 프로듀서 프랭크.
프랭크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흥미로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도, 어떤 축제에 참여해 반유현을 응원하듯이 레스토랑 앞을 꽉 채운 장면.
수많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슈퍼카 또는 고급세단에서 내려 레스토랑 ‘반유현-브라운’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입장하는 장면.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 베르만이 반유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영광에 감사인사를 하는 장면.
행사가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어떤 장면으로 이 분량을 구성해야 될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건, 런던 소재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들과 반유현의 미묘한 신경전이었다.
‘뭐야. 저들에게 초대권을 돌렸던 게 그런 이유였나?’
행사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셰프들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반유현’에게 선발되어 초대권을 받았는데, 올해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들 모두에게는 반유현이 직접 신청서를 받지 않고 초대권을 돌렸던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의아해하고 호기심을 가졌지만, 반유현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었다.
“저쪽,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 받은 셰프들 있잖아. 저쪽을 전담 카메라 붙여라.”
“예?”
“잔말 말고 붙여, 재밌는 그림 나올 것 같으니까.”
반유현이 저들에게 직접 초대권을 돌린 것이, 기분 좋은 이유가 아님을 얼추 알았을 때, 프랭크는 저들을 전담으로 촬영할 카메라를 배정했다.
리얼 다큐 방송경력 2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어쩐지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채 요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영국 내 각 도시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모든 셰프들이 한 곳에 모인 자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셰프들이 자리했다.
그들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대단한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보내니 행사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샘파이어(Samphire)를 곁들인 굴이군요…….”
메인 카메라는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베르만을 촬영하고 있었고, 베르만은 서빙된 요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는 프랭크의 부탁이었다. 리얼 다큐라곤 하지만 PD와 출연자 간의 ‘합’이 조금은 있어야 더 다채로운 장면들을 담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함초라고도 불리는 샘파이어를 곁들여 굴에 식감과 바다향을 추가한…….”
유럽에서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굴이었다.
살아있는 생선을 회 치고,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입에 넣는 것을 보면 기겁하는 유렵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굴을 고급 요리로 대우했다.
굴은 일부 서양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20세기 초부터 굴의 공급량이 줄어들었다.
또, 유럽의 날씨와 지형 탓에 양식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잘 잡히지도 않는 탓에 굴의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와…… 이 맛은 최고급입니다. 해초의 바다향이 굴의 특유의 진득한 향과 합쳐져 생동감이 있군요. 더군다나 녹아 없어지는 굴에 해초의 식감이 더해져 맛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전복내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이용해 해산물의 풍미를 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반유현은 전복 내장의 효과를 해초로 대신해 극대화시켰다.
전복이 먹고 자란 것이 해초고, 그 내장에 있는 것이 소화된 해초라면, 바다의 향을 한껏 머금고 자란 신선한 해초 그 자체의 향은 어떤 해산물도 입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만들 수 있었다.
“전채 요리부터……. 의심의 여지 없습니다.”
PD의 부탁에 의해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그 요리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베르만의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는 함초를 베이스로 한 굴의 산도까지 맞췄습니다. 그 굴의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각각 소스를…… 허. 진짜 이건, 이건, 대단합니다.”
프랭크는 당연하게도, 반유현의 요리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한 적은 없었다.
베르만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것이 모두 연출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자니, 이 코스 요리의 디저트가 나왔을 때쯤엔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그 반응들이 카메라에 담겼을 때를 생각하며 즐거웠다.
현존 세계 최강의 셰프 중 한명이 또 다른 세계 최강의 셰프를 인정해 맞이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을 테니까.
“이어서, 새우 머리를 우려낸 스톡으로 맛을 낸 소스를 곁들인 이베리코 돼지구이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의 요리가 지나갔을 때는, 메인 요리인 이베리코 돼지구이가 나왔다.
이베리코는 세계 4대 진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돼지로, 일반 돼지에 비해 풍미가 뛰어나 값이 비싸고 고급 요리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하.”
베르만은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던 연출진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앞서 먹었던 굴과 해초…… 농어…… 이베리코 돼지까지 연결되는 맛.”
그뿐만 아니라, 이 장소에 있던 대부분의 셰프들이 놀라움의 탄성을 지었다.
와……!
“바다 향으로 하나의 선을 만들고, 그 선 위에 최고급 요리들을 얹음으로써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줬습니다. 이게, 이게 미슐랭 쓰리 스타가 아니면 대체 어디가 미슐랭 쓰리 스타입니까?”
‘반유현-브라운’의 주된 테마인, 최고급 재료를 이용한 요리.
그가 선보인 요리는 단순 최고급 식자재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갖고 있는 매우 창의적인 요리였다.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맛도 아주 강력한 요리.
코스의 끝으로 디저트가 나오고, 반유현이 다시 홀로 등장했을 때는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박수를 치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미슐랭 스타인 것을 생각하면, 미슐랭 가이드의 공정성 논란은 거품 터지듯 사라질 것이었다.
프랭크는 이 열띤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올해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그 명장면의 감초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던 런던 소재의 셰프들을 쳐다봤다.
“요리가 그렇듯, 방송에 쓴맛도 있어야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 모습, 왠지 인정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맛은 최고임을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뜻을 굽히진 않겠다는 불편한 표정.
프랭크는 그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담았다.
***
나에 대한 공정성 의심을 모두 풀어내기 위해 기획했던 행사, ‘반유현 올 데이.’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에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대거 초대한 이 행사는 실질적인 그들의 증언을 담기 위해 방명록을 만들었다.
“포시즌스, 레드, 블루, 옐로, 모두 이상 없습니다.”
“한국은.”
“한국의 두 곳에도 이상 없습니다.”
방명록에는 셰프들의 이름과, 그들이 직접 요리를 평가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두바이 미슐랭 투 스타, ‘르뵈네’ 총주방장 알린 셰프 : 신선한 요리 그 자체였습니다. 배우고 갑니다.
-일본 미슐랭 원 스타, ‘겐지 스시’ 총주방장 켄지 오토코 셰프 : 반유현 셰프님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요리들이었습니다. 미슐랭 23스타를 보유할 만합니다. 그는 최고의 셰프입니다.
-프랑스 미슐랭 쓰리 스타, ‘메르 뷔 옹’ 루카스 셰프 : 프랑스의 요리문화를 이끄는 셰프임을 증명해 보인 코스였습니다. 누군가 그의 요리 실력에 의문을 품었다면 이 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셰프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실제로 내 요리가 미슐랭 스타를 동시에 19개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는 성공.
셰프들이 직접 기록한 이 방명록들은 하나 같이 나의 요리들을 극찬했으며 나의 요리 실력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행사 끝나면, 이걸 SNS든, 방송이든 공개해서 모든 의심을 털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조금…… 부정적인 방명록이 있다고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런던의 그놈들이 또 개소리를 지껄여 놨나 보다. 오스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곧장 방명록을 확인하기 위해 런던, ‘반유현-브라운’의 방명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2021,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 안토니 베르만 : 제가 아직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만함에 취한 저를 다시 셰프의 자리로 돌려놓은 엄청난 요리. 반유현 셰프님에게 오늘 받은 인상은…….
베르만의 방명록에서 몇 장 더 넘기자, 놈들의 방명록이 나왔다.
첫 번째로 그놈들의 리더 격인, 칼린의 방명록이었다.
-런던 미슐랭 쓰리 스타, ‘그란데’ 오너 셰프 칼린 : 당연히,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열광할 만한 맛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메인이었던 이베리코에 새우 머리의 향을 베이스로 한 소스가 저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창의력을 앞세워 요리 본연의 맛을……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베리코 요리는 제가 운영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한 사내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오…… 셰프님, 엄청난 소스가 될 것 같은데 제게 이 소스를 빌려주시겠어요?”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의 ‘탑셰프’ 메인 PD, 프랭크였다.
“그러니까 이 셰프가……. 모든 셰프들이 인정하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죠? 저희가 담은 장면들과 이 글귀가 합쳐지면…… 흠. 벌써부터 너무 재밌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