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아주 차갑게 (5)
“섭외에 수락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어!”
“와…… 진짜 대박이네요. 칼린 셰프가 무조건 방송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게.”
“당연하지, 반유현 셰프의 제안에 거부했다가는 기껏 남아있는 팬층과, 인지도가 싹 날아가 버릴 테니까.”
SNS 상에서 오고 간 두 셰프 간의 설전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유현의 계획에 있던 것이었다.
‘탑셰프’의 PD인 프랭크는 그 계획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음에 감탄했다.
“감독님, 반유현 셰프님은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고 계셨던가요?”
“어. 저 칼린 셰프를 방송으로 불러서, 공개 처형하자는 게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이었어. 당연히 우리는 시청률 두둑이 챙길 수 있으니까 그에 대한 편성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내가 칼린 셰프를 어떻게 섭외해야겠냐고 물으니, 방송을 어떻게 연출해야 될지 조언해주시고, 그 뒤로는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시던데.”
칼린의 놀란 표정과 함께 내레이션 되는 방명록은 반유현이 조언을 해준 것이었다.
그가 방송을 전공했나 싶을 정도로 그는 극적인 연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반유현의 말대로 실제로 그 영상이 나가고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 대중들의 비판적인 관심은 칼린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고, 칼린은 결국 SNS를 이용해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그걸 독사같이, 아니 코브라같이 웅크려 기다리고 지켜보던 반유현 셰프가 물어 버린 거야.”
반유현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SNS를 통해 코멘트를 던졌다.
칼린의 말을 존중하는 듯하면서도 대결 구도를 만드는 치밀하게 짜여진 멘트들이었다.
“처음엔 대체 어떻게, 어디서 그런 대결을 하냐고 칼린 셰프가 의문을 품자, 반유현 셰프가 우리를 거론한 거야. 이미 대결에 관해선 ‘방송’으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와…… 처음부터 계획에 있었다는 게. 요즘 후배 경영학과 출신 애들이 ‘반유현’ 경영 사례를 학교에서 연구한다는데. 참…… 그럴 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칼린과 반유현의 대결이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 프로그램 ‘탑셰프’ 안에서 편성되었고 준비되고 있었다.
“맞아. 내가 이전에 말했었잖아. 그분은 인간이 아니라고. 과장 조금 보태서 말하면…… 진짜 신일지도 몰라. 요리뿐만 아니라, 사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무르는 것 같잖아?”
***
‘반유현 올 데이’라는 행사로, 내가 한 해에 미슐랭 19스타를 딴 것에 대한 의문은 완벽히 사라졌다.
작년에 얻은 것까지 합해, 총 23개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명실상부 탑셰프의 반열에 오른 순간이었다.
당장 내년, 2022 미슐랭 스타 평가 때, 이 길고 길었던 환생 굴레의 삶을 끝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성공해 본 적이 있어야지.’
물론, 마냥 기쁜 것은 아니었다.
미션에 성공한 뒤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환생을 끝내고 이 성공한 삶을 계속 누리는 건가, 어떤 보상이 있는 건가.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지는 건……. 흠.’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미묘한 감정이었다.
막상 성공을 1년 정도 앞에 두고 느끼는 감정은 새로웠다.
내가 그런 감정에서 깨어난 건, 로만 때문이었다.
“반유현 셰프니이이임!”
“아, 사장님 오셨습니까.”
매번 나의 행위에 대해 의심을 품던 로만이,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로만으로 바뀌었고, 내가 포시즌스의 레스토랑 모두에서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으니, 이제는 나를 섬기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중년의 아저씨가 저런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어째 부담스럽긴 했다.
“덕분에 저도 승진하게 생겼습니다.”
포시즌스 파리를 완벽하게 파리의 관광지로 바꿔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의 전략 기획 실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포시즌스 그룹 통째를 경영하고 움직이는 팀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게 된 것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이게 다…… 반유현 셰프님 덕이고,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
“됐습니다. 사장님답지 않게 과하십니다.”
“여기를 끝으로 은퇴하려 했는데, 더 좋은 자리로 가다니요. 제가, 제가…… 이 모든 게 다 반유현 셰프님 덕입니다. 진짜로…… 말만 하십시오 셰프님. 충성을 다할 테니까.”
대형 그룹의 경영 실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다한다니, 이 또한 100년 역사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도와주시렵니까?”
낮게 깔린 내 목소리에 흠칫 놀란 로만이 대답했다.
“……예. 뭐, 필요하신 거라도?”
“어려운 건 아닙니다.”
칼린과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그 시점까지 1주일이 남은 기간이었다.
그 대결은 나와 칼린이 각각 뽑은 50명의 판정단의 블라인드 테스트로, 누가 만든 요리인지 모른 상태에서 맛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맛에 대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 대결은 방송에 나가는 것이기에, 그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는 것 자체에서 임팩트를 얻고자 하려면 그 평가원들이 요리 또는 맛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어차피 과반 이상이 제 요리를 선택할 것이니까. 그 선택에 신빙성을 더하려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여, 역시 그렇겠죠. 당연히 100명이든, 200명이든 평가원들은 셰프님의 요리를 선택할 테니…….”
내 주변, 또는 브랜드 ‘반유현’ 산하에 있는 셰프들을 쓰자니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평가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될지 고민하던 중에, 로만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호텔 업계에 오래 종사하셨으니 ‘반유현’ 또는 ‘포시즌스’에서 일하는 사람들 말고도, 셰프라든가, 미식가라든가, 음식 평론가…… 뭐, 비슷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 많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포시즌스 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의 파워라면…… 제가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하자, 로만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내, 최고의 미식가들, 음식 평론가들, 50명을 동원하면 되겠습니까?”
“네. 로만 사장…… 아니. 전략 기획 실장님. 기대하겠습니다.”
***
방송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방송국이었기에, 이 방송사 내의 스텝들이었다.
아마도 이 방송사의 스탭들도 우리의 대결에 관심이 있는…….
“당연히, 반유현 셰프님을 보러 온 거죠. 이 대결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이기실 텐데.”
내 생각에도 로만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는 두 개의 넓은 조리대, 그것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커튼 뒤에 100명이 계단식으로 앉아 있는 구조였다.
“셰프님 오늘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아, 요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베리코 돼지를 이용한 요리.”
요리의 재료는 정해져 있었다.
이베리코 돼지 요리인데, 이는 칼린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메인 요리로 쓰이고 있기도 했고, 가장 자신이 있었나 보다.
“오늘 평가원들은 초호화로 동원했습니다. 제 모든 인맥과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로만의 말을 들어보니, 내 부탁을 받고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고 한다.
그렇게 연락받은 사람들 중 가장 경력이 많고, 인지도가 높은 미식가, 평론가들을 불러 모았다고. 그들이 누구인지 기대해도 좋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얼추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니, 유명 레스토랑 잡지사의 본부장부터, 미식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레스토랑을 흥하게 만들고, 망하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입김을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유럽판 백원종’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차지했다.
이 대회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줄 이들의 라인업이 꽤나 빵빵하다고 생각했다.
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하니, 좀처럼 바쁘던 그들도 흔쾌히 자리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저쪽은 평가원을 어떻게 구성했나요?”
“저쪽도 꽤나, 괜찮은 평가원들을 구했더라구요. 르꼬르 동 블루의 졸업생들.”
프랑스 최고의 요리 학교로 불리던 그곳의 졸업반 학생들을 블라인드 평가원으로 초대했다.
칼린이 그곳 출신이었고, 그곳도 꽤나 신뢰를 받을만한 기관인지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르꼬르 동 블루, 반유현 팩토리가 출범하기 전에는 최고의 기관이었는데, 아마 그곳에 재학 중인 셰프들이 반유현 셰프님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런 것도 제 잘못입니까?”
“하하하하. 뭐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아닌가……?”
로만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 때, 칼린이 도착했다.
역시나 나를 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예전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미소였다.
“어이, 아저씨 며칠간 마음고생 좀 하셨나 봐요?”
칼린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던 최민성이 스튜디오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한마디를 던진 최민성이다.
“무슨 마음고생. 잘 봐. 요리라는 게 자유가 있고, 취향이 있는 거야.”
“아직 마음고생 좀 덜 했나 보네. 이따 보자고. 그 말이 맞나?”
그리고 얼마 뒤,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됐으며, 그 진행은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베르만이 맡았다.
“안녕하십니까. 베르만입니다. 이 대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는 대결 방식을 설명하고는,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개인적으로 칼린 셰프가 반유현 셰프를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돌발발언이었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였다.
사회자인 MC가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평가원들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미슐랭 3스타를 가진 칼린 셰프가 미슐랭 23스타를 가진 반유현 셰프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경력과 상관없이 미슐랭 스타 스무 개 이상을 가진 셰프의 그 내공은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만의 발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옆에 서 있는 칼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사회자가 이미 자신의 요리 실력을 나보다 낮다고 말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놈은 진짜, 내 요리보다 자신의 요리를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 대결은 그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취향과 자유가 있냐 없냐의 실험적 싸움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칼린 셰프는 개인적 취향에 의해 자신의 요리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보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고. 반유현 셰프님은 반대로 칼린 셰프님의 요리 ‘따위’는 자신의 요리 앞에 취향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고요.”
알고 보니 베르만은 이 대회의 본질을 실력에 의한 우위로 나누지 않고, 요리 자체에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용하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렇게 멍석을 깔아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칼린의 요리와 내 요리는, 개인적 취향도 무시할 만한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그에 따라 그가 이제까지 뱉었던 모든 말과 함께 그를 침몰시킬 생각이었다.
“두 셰프는, 요리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우와아아아!
평가단으로 온 100명의 사람들이 커튼 뒤에서 엄청난 환호를 보내왔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동파육은 처음 일 테지.”
나는 곧장 칼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