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그때 그 사람 (7)
요리에서 내공이 느껴진다는 것이 이런 걸까.
고든 레지는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라며 매번 비프 웰링턴을 말했으면서도 이 정도 수준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정이 감춰지지 않았다.
그 당혹함에 얼굴마저 빨개지기 시작했다.
“뭐야! 고든 레지 왜 저래?”
“감동했나 봐!”
“엥?”
방송에 나와 매번 붉어진 얼굴로 셰프들에게 독설을 내뱉던 그의 지금 모습은 사람들도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건, 그 옆에 서 있던 케인도 마찬가지였다.
“크흠!”
괜스레 헛기침을 하던 케인도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수년째 행사 기획을 담당했다.
숱한 셰프들의 요리를 먹어봤으며, 미식가로 곧장 전향해도 될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지금 막 입에 넣은 요리와 같은 수준은 처음이었다.
‘뭐지.’
비프 웰링턴이 놓인 접시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한 점을 더 달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들의 모습이 모두 방송에 나오고 있었으니까.
어쩐지 초점이 없는 고든 레지의 모습도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 소속의 직원이라는 사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한 점 더 드셔보시죠.”
반유현이 이 말을 하라고 시킨 것처럼, 귀신같은 타이밍이었다.
“으응…… 예?”
저도 모르게 손부터 꺼내는 케인과 고든 레지.
그 둘은 새롭게 먹은 비프 웰링턴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의 고소한 풍미, 그리고 양송이와 새우의 향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쇠고기 안심만이 낼 수 있는 고기의 풍미가 퍼져 나왔다.
그 풍미는 페이스트리 반죽 안에 갇혀 더욱더 강해진 것이었고, 그 육즙 또한 입안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고기에 발라진 홀스래디쉬 소스는 매콤함이라는 단순한 맛을 뛰어넘어 모든 재료들을 아우르는 배경이 되는 느낌이었다.
“양송이를 갈아서 볶은 뒥셀(Duxelles)에는 어떻게 새우를 갈아 넣을…….”
“저는 쇠고기에 발라진 소스가 머스타드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강한 풍미를 내는 홀스래디쉬 소스라는 게…….”
둘이 눈을 마주치더니 자신이 경험한 바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정장을 입은 사내가 이 둘에게 또 말을 건넸다.
“더 많은 요리들이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보시겠습니까?”
***
편백나무 찜,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그 위에 최강의 맛을 올려두었다.
그 맛을 지속하기 위해서 각종 샴페인을 곁들였고, 알코올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각종 제과를 준비했다.
화룡점정으로 세계적인 DJ들까지.
“이 최강의 음식들과 노래, 술…… 라스베이거스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든 레지의 디너쇼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음악이 이곳에서 틀어지자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라스베이거스 최대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고든 레지의 또 하나의 패착이었다.
1부가 진행되고,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기 전, 그사이에 고든 레지의 디너쇼가 있는 것이었는데 이 축제 전체를 아우르지 않고 자신을 돋보이려 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나의 존재가 없었다면 충분히 자신의 요리를 뽐낼 수 있었겠지만.
“이 정도론 안 돼. 완전히 묶어둬.”
방금 말했다시피,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기 전 그 막간의 시간이었다.
따라서, 지금 이 펜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품일 가능성이 있다.
나라고 함부로 자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준비하셨던 겁니까?”
지휘급 셰프들과 반유현 팀의 꽤나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내가 축제를 여는 것에 왜 이렇게 많은 요리들을 준비하느냐고 물었었다.
“강력한 요리를 계속 투입해서 저 축제 자체를 망가트려야 파급력이 있지 않겠어?”
비프 웰링턴, 편백나무찜, 그리고 제빵과 제과가 모두 소진될 때쯤, 내 산하의 셰프들은 새로운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카르파치오(Carpaccio)야.”
감자칩만큼이나 얇게 슬라이스한 쇠고기에 레몬, 루꼴라를 비롯한 여러 향료들을 얹어 먹는 요리.
새콤한 맛이 저들의 식욕을 한 번 더 돋궈줄 것이다.
또 이 현장에 어울릴 정도로 한입에 먹기 쉬운 요리였다.
띵! 띵! 띵!
흘러나오는 EDM 음악 중간에 또다시 새로운 요리가 나올 것이라는 벨소리가 섞여 들어가자 사람들은 다시 환호를 질렀다.
우와아아아!
나는 조리대 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축제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는 2부에 공연을 맡은 DJ들, 락 밴드의 멤버들까지 내가 벌여 놓은 축제의 장에서 한껏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저래도 되는 건가?”
“알아서 하겠지. 한두 푼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닐 텐데.”
분위기를 살피려고 쭉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서 이 수많은 인파 중에 내 눈에 쉽게 띈 것이다.
“저 사람들도 요리 좀 가져다주지 그래.”
고든 레지와 관광청의 케인, 그리고 그 휘하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한다는 듯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곤 그의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DJ, 락 밴드에게 달려가 나무랐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지만, DJ와 락밴드가 춤추는 것을 멈추니,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여러분! 곧 저희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까 전 축제를 했던 ‘라이프 이즈 뷰티풀!’ 그 현장으로 와주세요!”
관광청의 사람들이 이곳의 인원을 다시 자신의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유명 그 무리에서 섞여 놀던 DJ와 락밴드의 멤버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들도 관광청과 계약이 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하물며, 자신들의 공연에 사람이 텅텅 비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분! 곧 시작됩니다! 무빗 무빗!”
손짓 몸짓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홍보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카르파치오의 다음 요리인, 한입에 먹기 좋은 떡갈비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치이이이익!
150명의 셰프들이 조리대 위에 그릴을 올려놓고, 미리 준비한 떡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굽기 시작했다.
지난번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이 축제의 장을 덮었다면, 지금은 달콤한 양념이 섞인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이 축제의 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산 소고기에 쏘맥 한 잔 하실 분! 제가 말아드립니다아!!”
내가 옆에 있던 오스틴의 옆구리를 치자 그가 조리대 위로 올라가 분위기를 달구었다.
***
사람들은 내가 만든 펜스 안을 꽉 채웠고, 내가 준비한 음식의 양보다 2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의 행사장에 왜 사람이 없지? 라는 호기심은 계속해서 내가 연 축제의 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끔 만들었다.
[ 내가 왔다! 반유현! ] [ 라스베이거스에 대단한 열풍 이끌어내다! ] [ 라이프 이즈 뷰티풀 역대 최소 인원 ] [ ‘반유현의 디너쇼!’ 완벽한 상륙해낸 반유현! ]각종 매체, SNS에서 그 날을 그렇게 묘사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도시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 날이었다.
내가 기획한 행사와, 내 브랜드 산하에 있는 셰프들이 만들어 낸 축제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라는 ‘라이프 이즈 뷰티풀’을 압도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셰프님.”
행사장을 정리하는데 며칠이 걸렸고, 그 마지막 날.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펠리지오 호텔의 톰슨이었다.
이 몸을 처음 라스베이거스로 초대해, 언코크드 행사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게 해줬던 사람.
그때의 활약으로 프랑스에서 루시앙을 설득해 레스토랑을 런칭할 수 있었다.
이유를 만들 자면 여러모로 이번 생에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는 얼추 알긴 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대단한 셰프가 되리라는 것을요. 하하하.”
펠리지오 호텔에 나의 이름을 딴 메뉴를 구성하겠다고 나를 설득하기도 했었다.
특급호텔인 펠리지오에 미슐랭, 올해의 레스토랑, 최고의 셰프…… 등 아무런 이력도 없는 나를 파격적으로 등용하려 했었던 그는 확실히 셰프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눈이 있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네. 저야 뭐, 반유현 셰프님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텔측 간부들에게 조금 혼나고? 하하하하. 그 후로는 잘 지냈습니다.”
내 손을 붙잡고 정말 반가워하는 그였지만, 그 표정 한편엔 불편한 기색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100년의 내공으로 보건대, 나한테 어떤 말을 하려고 찾아왔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때, 딱 떠올랐다.
그가 나에게 찾아온 이유가.
“톰슨 셰프님, 그러고 보니 고든 레지 셰프님과 같은 호텔소속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펠리지오 호텔은 톰슨이 맡은 레스토랑 외에 추가적으로 2개의 레스토랑을 더 오픈했는데, 그 중 한 곳에 고든 레지가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역시나 눈치채셨군요.”
“하실 말씀이라도?”
“그…… 관광청에서 저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더군요. 반유현 셰프님과 저와 관계가 있으니까, 자리를 한 번만 주선해 달라고.”
나와 톰슨 사이에 미약하게나마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안, 관광청, 그리고 고든 레지가 나와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한다.
이 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톰슨도 그들의 제안이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떤 이유로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아무래도 이번 축제 때, 반유현 셰프님께서 완전한 영향력을 펼쳐 보이셨으니……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행사에 협조 요청을 하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알다시피 여러 개의 축제가 열린다.
그 중 언코크드는 미식의 도시에 걸맞는 축제인데, 관광청은 이 축제에 나를 제명했던 것을 후회하고 톰슨을 그 화해 ‘사절단’처럼 나에게 보낸 것이다.
“행사 다 망쳐놓고, 이번에 또 망치면 위험하겠군요. 그쪽, 관광청 쪽은요.”
“아무래도…… 적은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요…… 언코크드 행사가 진행될 때에도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번처럼 본인만의 축제를 만드시면…… 이제 라스베이거스 축제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톰슨 셰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나의 되물음에 톰슨이 한 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저도 라스베이거스에 오래 생활하면서, 관광청 놈들이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톰슨은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될지 머뭇거리던 아까와는 달리 거침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참에 싹 다 뽑아버리시죠. 관광청은 그저, 치안유지와 정책 개선의 역할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뒤에 말을 덧붙였다.
“일단 지금은 제가 이렇듯 이해관계가 있으니, 만남은 한 번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