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출발선을 깨끗하게 (2)
요리사의 자존심. 알량한 자존심이든, 숭고한 자존심이든.
매번의 삶에서 나의 효율을 망치는 주범이었다.
‘한심한 놈들.’
앞에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엄격한 서열을 기반으로 한 도제식 교육방법이 주방에서는 만연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숭고한 예술의 끝이라고 하면서도 밥그릇을 챙기는, 애매한 생각을 가진 놈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어느 분야든 그렇겠지만, 애매한 놈들이 물을 흐린다.
‘밥그릇 말고도 숟가락, 젓가락 다 뺏어야 정신을 차리지.’
문제는, 내가 저놈들의 태도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오너셰프이자, 총주방장으로서 내가 대신 사과하네. 직원들 간의 텃세에 의해 벌어진 사태지만, 이건 엄연히 ‘레드 테이블’의 역사에 누를 끼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이기도 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셰프, 아니. 셰프라는 단어가 아까운 그 사람들은 주방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던 루시앙은 생각보다 강력한 나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해고를, 해야 된다는 말인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진심을 담지 않는다면 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의사에게 의사의 자격이 있습니까? 요리사가 요리에 진심을 담지 않았는데, 같은 문제를 같게 보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나의 말에, 루시앙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자신의 밑에서 일한 셰프들을 한순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情) 따위에 사무친다는 말인가.’
나는 그의 추억과 정을 이번 사건에 연관시킬 만큼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시험하기 위해 재료를 바꿔 넣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불손하다.
요리를 요리로 대하지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
“가벼운 마음을 가진 요리사들이 주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레스토랑엔 손님들이 식사하러 올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그가 할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
라크는 이번 사건을 직접 실행하진 않았지만, 방관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직급은 그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해주었다.
“흠. 유감스럽지만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혼자 할 수 있겠나?”
“문제없습니다.”
그에 따라 나는 새롭게 오픈 될 레스토랑의 유일한 수셰프가 되었다.
이 소식은 ‘레드 테이블’의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원래 소문이 그렇듯이, 실제 벌어진 일에 각종 조미료가 더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레드 테이블에서 9년 동안 일한 라크를 해고시켰데. 재료 관리를 못한 것을 죄목으로 완전히 보내버렸다던데?”
“완전 독사래 독사. 이번에 새롭게 오픈되는 루시앙 말릭의 레스토랑, 거기 수셰프 자리를 혼자 차지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
“와, 근데 그래도 실력은 있는 것 아니야? 맛만 보고 트러플과 캐비어의 등급을 맞출 정도면……. 그냥 독사가 아니네, 코브라야 코브라.”
“실력이 있든 말든, 그런 놈 밑에 있으면 커리어만 버리는 거야. 재능만 믿고 설치는 부류들.”
이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나의 바로 위 직급을 맡게 될 총주방장(Chef De Cuisine)을 만나서였다.
“인사는 간단히 하지. 루시앙 셰프님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셰프들이 모인 도시, 이 파리에서 자네의 소문이 이미 널리 퍼졌으니,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
올리버 러셀.
미국 출신의 요리사로써, 내가 환생하기 직전에 14개의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던 요리사다.
환생 직전 시점만을 놓고 보면 루시앙 말릭과 같은 별의 개수를 가지고 있는 요리사.
그 뒤의 미래는 보지 못했지만 올리버의 나이는 루시앙보다는 훨씬 어렸으니, 스승을 뛰어넘은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다.
“파리로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자네에 대한 소문이 도는 것을 보면, 우리가 맡을 새로운 레스토랑이 엄청난 주목을 받겠지만, 큰 문제가 있어.”
악수를 건네자마자, 일 얘기부터 하는 것을 보아하니, 올리버는 열정 또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지원했던 셰프들이, 대부분 지원을 취소했다네.”
오픈하기 전에 엄청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주방을 우리 둘이 운영할 수는 없지 않겠나?”
새롭게 오픈 될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지원했던 셰프들이 집단으로 지원을 취소했다는 것.
그 이유는 단순했다.
루시앙 말릭이 미슐랭 스타를 가졌더라도, 수셰프 자리엔 자신들이 납득하지 못할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였고.
그런 내가,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다른 수셰프를 찍어냈다는 소문은 지원동기를 꺾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고 굴러 온 돌을 빼내려는 시위를 단체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프랑스 파리의 고인물, 오래된 셰프들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텃세이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셰프들에게 압력을 받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자르라고요.”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은데…… 흠. 주요 셰프들, 각 파트 장의 구성을 이미 끝냈어야 하는 시기인데, 아주 큰문제야. 파리의 텃세가 이렇게 강할 줄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소문에도 올리버는 나에게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시앙 셰프님이 자네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지원 취소를 한 셰프들 것을 빼고, 남은 이력서라네.”
올리버의 왼손엔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는데, 실제로 루시앙 말릭의 명성에 비해 아주 적은 양의 이력서가 있었다.
‘오히려 잘됐군.’
어차피 내 앞에서 요리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다.
때문에 고집을 피우지 않고 내 말을 스펀지처럼 쑥쑥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꾸리는 주방에서는 가장 강력한 효율을 자랑한다.
내가 ACK 팀 선발에서 민서윤을 그녀의 의지만 보고 뽑았던 것처럼 말이다.
베테랑이고, 경력이 있다고 해서 허리 빳빳하게 세울 셰프들은 어차피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자신들이 이력서를 취소했다니, 루시앙과 올리버에겐 심각한 일이었겠지만 나에겐 고마울 일이었다.
“나는 문제가 분명하다고 느끼는데, 자네는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이 이력서에 있는 사람들, 면접 날이 언제입니까?”
***
100년의 경력 앞에선, 날고 긴다 하는 셰프들의 실력은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하나의 주방에서 각 파트를 맡게 될 조리장을 뽑는 수준에서는 기본만 갖춰져 있다면 내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동일했다.
잘만 가르쳐 주면, 빠른 시일 내에 그것을 숙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사람을 뽑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ACK 보고, 따라왔습니다. 타고난 능력이건 말건, 반유현 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한명은 최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원래는 테니스 선수였고, 어깨를 다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요리의 길을 선택한 사내.
한국에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들어가 재료 손질만 3년째, 이 악물고 버텼음에도,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내가 방송에 나타났고, 단숨에 스타 셰프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접시닦이라도 다시 하겠습니다.”
과도하게 충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남자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전직 운동선수라는 독기 강한 캐릭터에, 간절함까지 더해져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저의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이쿠 렌, 오노 지겐이라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수년간 견습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내였다.
이곳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곳에 있을 동안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 하겠다는 소리다.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뭐든 하겠습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여성, 에바 티에리.
레드 테이블에서 셰프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찬모’의 역할을 하던 젊은 여성이었다.
간절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차라리 이런 종류의 사람이 나을 때가 있다. 100년의 경험상 확실한 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
애초에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확실해?”
최민성, 렌, 에바. 내가 세 명의 이력서를 올리버에게 건네자 올리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동선수, 일식당에서 재료 손질하던 사람, 찬모. 이 세 명의 커리어……. 확실해?”
“어차피, 다 똑같습니다.”
내가 뽑은 세 명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고,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시켜만 달라는 것.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만 하면 된다.
“뭐, 비슷비슷한 실력에선 맞는 말이긴 한데. 걱정이야.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각 파트의 조리장으로 쓰겠다니. 자네가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은 주방장과 부주방장인 우리한테 오는 것이라네.”
올리버도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들이 내뿜는 독기와 열정은 다른 경쟁자의 실력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 말했다.
내가 뽑은 세 명의 사람은 주방에서 요리에 대한 책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파트의 장으로 뽑는 것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나의 자신감에 올리버는 긴가민가했다.
“우리 소꿉장난하는 게 아닌 거, 잘 알지?”
“오픈까지 세 달의 시간이 있으니, 숙련시키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확인하셨고요.”
“후. 나도…… 자네의 그 천재성을 믿어보겠네. 그럴 수밖에 없지…….”
천재라는 재능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경력은 없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진 놈이 선배들을 해고시키며 제대로 된 진상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을 ‘셰프’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상관없다. 조금은 미숙해 보이는 이 세 명의 사람과 그 잘나간다는 ‘셰프’님들의 실력차이가 나에겐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
“너희들 여기서 일주일을 살았다고?”
레스토랑 ‘레드 테이블’ 식재료 창고 한 편에 마련되어있는 주방.
주요 직급을 가진 셰프들이 메뉴를 개발하거나, 견습생들이 요리를 연습하는 곳.
이곳엔 반유현이 뽑았던, 최민성, 렌, 에바가 초췌한 몰골로 있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연습만 했다 이 말이냐?”
그 몰골을 보고 놀란 건, 올리버였다.
“반유현 셰프가,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무슨 숙제길래 집에도 안 가고…….”
“어차피 갈 곳도 없고요. 이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헤헤. 후.”
눈이 반쯤 풀린 렌이 생선구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에바는 맑은 야채수프, 최민성은 샐러드를 꺼냈다.
“반유현 셰프님이 만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코스를 저희 셋이 만들라고 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와서 파스타를 만들어주셨고, 저희는 그것을 조금씩 먹으면서 연구했어요.”
“이리로 줘보게나.”
올리버는 이들의 요리를 직접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한 입씩 입에 넣자마자 감탄을 흘렸다.
“뭐야. 너희들이 한 거 맞아? 이 정도면, 메뉴로 나가도 되겠는데?”
그런데 주방장인 올리버의 칭찬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도 모자를 판에, 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올리버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칭찬을 받고도 춤추지 않을 셰프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들은 초급요리사들이다.
앞으로 맡게 될 총주방장인 자신의 말보다 강력한 말은 없을 터.
“자네들 밥은 먹었나? 얼른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많이 써서, 세 명이 동시에, 무기력증에 걸린 것인가.
“내가 반유현 셰프한테 말해 줄 테니까, 오늘은 다들 들어가서 눈 좀 붙이게나.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다니, 하하하! 진짜 고생했어. 이 정도면 훌륭해.”
올리버의 말에, 기분 좋게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 없는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어디 아파?”
그때, 이들이 올리버의 칭찬에도 무기력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밝혀졌다.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올리버 셰프님, 오셨습니까.”
반유현은 올리버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앞에 놓인 음식을 거침없이 한 입씩 입에 넣었다.
반유현이 포크를 집자마자 세 사람의 몸이 경직되었다.
“에바, 채소를 팬에 살짝 구워서 끓이라고 했는데, 그래야 채소의 풍미가…… 흠. 아직도 풍미가 가득하다는 뜻이 정확히 뭔지 몰라 넌.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연구를 해.”
반유현은 에바가 만든 맑은 야채수프를 모두 싱크대에 버렸다.
“렌, 불에 올린다고 구이가 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대구 살이 다 무너져 내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렌이 만든 대구구이를 버렸다.
“최민성, 이런 건 배고픈 염소들도 안 먹는 풀이야.”
또, 최민성이 만든 샐러드까지 모두 버렸다.
“셋 다, 다시 해.”
“예! 셰프!”
잔잔한 반유현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대답이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내가 조리법을 가르쳐주고 너희들이 그걸 그대로 따라 하는 거라면, 맥도날드랑 다를 게 없잖아.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맛이 뭔지, 맞추려고만 생각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게 너희들의 실력을 가장 빨리 키워 줄 테니까.”
반유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올리버는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던, 불과 몇 분 전의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
“예! 셰프!!”
세 명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우렁찬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반유현은 몸을 돌려 올리버를 바라봤다.
“셰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