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출발선에서는 부스터를 (2)
“이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요리사 아니야?”
“그냥 요리사냐? 특급 요리사지.”
“이 사람이 그랜드 오프닝에 온다고?”
주방에 있는 직원들은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메일로 초대장을 보내놓고, 그에 응한 사람들의 이름표를 만들어 자리를 지정하는 작업이었다.
“와……. 이 분은 되게 유명한 영화배우잖아.”
그랜드 오프닝 행사에 초대된 인원은 자그마치 113명.
특급 호텔의 셰프부터, 기자, 요리 평론가, 배우나 가수들까지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초대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 루시앙 셰프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어.”
올리버의 말대로, 그랜드 오프닝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슐랭 6스타를 가진 루시앙 말릭의 명성과 그에 따른 인맥이 없었더라면, 이런 유명인들을 대거 초대하는 것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배우나 가수 분들은 주방하고 멀리 떨어진 입구 쪽에 배치해줘. 기자나 평론가들은 주방과 가까운 자리로.”
나와 올리버도 홀로 나와서,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을 읽으며 자리 배치를 감독하고 있었다.
직업과 그 인지도에 따라, 각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름표를 올려놨다.
그때, 명단을 쭉 내려 읽던 올리버의 표정이 굳어졌다.
“루이드 뤼샤르. 제일 거슬리는 이름이야. 이 자식의 자리는 도마 위에 놔야 할 것 같지 않나? 그 이름표 도마 위에 올려놔. 허튼 소리하면 확 썰어버리게.”
올리버의 과격한 농담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 루이드 뤼샤르가 누군지 알고 웃는 거야?”
루이드 뤼샤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비평가.
미슐랭 스타 셰프의 입지와 재치 있는 입담을 이용해, 블로그와 SNS상에서 수많은 팔로워들을 보유했고, 방송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며 요리 평론가로서도 확고하게 입지를 다진 사람이었다.
“앉아서 고귀한 척 음식이나 먹고, 말이나 몇 마디 내뱉는 놈들 때문에 몇 명이 고생하는 거야 대체.”
당연하게도 요리를 평가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셰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없었다.
“고마운 일 아닙니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그랜드 오프닝에 와준다는데.”
“속도 좋구만. 반 셰프.”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으레, 그런 권위적인 평론가들은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할 일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거침없는 악랄한 비평으로 유명세에 오른 그였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던진 말에 의해 그 레스토랑에 많은 영향이 끼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사전 조사를 좀 했습니다.”
당연히 나는 루이드 뤼샤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레스토랑 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그의 비평을 100년간 얼마나 많이 봐왔겠는가.
100년간 쌓인 나의 데이터로 추정컨대, 루이드 뤼샤르 또한 개인적인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요리를 객관적으로 비평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저놈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충격적일 정도의 신선한 맛이 아니라면, 정통적인 맛을 좋아하는 놈. 어중간하게 창의적인 걸 아주 싫어하는 놈이지.’
문제는, 내가 그에게 일대일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주방에 있는 모든 셰프들의 손을 거쳐서 코스 요리가 탄생하게 된다.
“자, 다들 유명인들 이름 보고 낄낄거렸으면, 이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자.”
한 명의 실수가 맛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주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 그 당일을 완전히 떠올려봐. 100명이 넘는 손님이 왔고, 그 모든 손님들, 한 명 한 명이 이 레스토랑의 존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며칠간의 쉴 틈 없는 연습으로 체력이 많이 소모된 이들에게 나는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기회의 날이기도 해. 완벽해질 때까지, 다시 칼 잡아, 불 올리고 팬에 기름 둘러.”
“예! 셰프!”
주방이 순식간에 후끈해졌다.
***
미슐랭 스타 셰프인 루시앙 말릭의 이름 아래에 새롭게 오픈된 레스토랑.
기존에 그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의 이름 뒤에 ‘파스타’를 붙였다.
‘레드테이블-더 파스타.’
그랜드 오프닝 당일 날, 그 앞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자, 초대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헐리웃 배우들부터, 특급 셰프 등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은 포토 존이 설치된 곳에서 기념사진을 한 컷씩 찍고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 안 된다. 연습했던 것처럼만. 연습했던 것처럼만 하자.”
각자 배정된 자리에, 백 명이 넘는 유명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
나는 홀에 사람이 꽉 찬 것들을 확인하고, 주방의 직원들을 격려했다.
때마침, 레스토랑에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에 이곳의 오너 셰프인 루시앙이 자리했다.
“오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자리를 채워주신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조명이 루시앙을 비췄고, 루시앙이 말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오일, 크림, 그리고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파스타, 각 코스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코스는 여러분들이 수많은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파스타의 거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던 루시앙이었다.
그의 입에서 ‘수많은 자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사람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고생을 한 두 명의 셰프를 소개합니다. 총 주방장을 맡고 있는 올리버와 부주방장인 반유현 셰프입니다!”
루시앙 말릭이 무대 위에서 나와 올리버의 이름을 호명했고, 나는 무대 위로 나아갔다.
수많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야! 진짜 젊어! 셰프 ‘반’이라고?”
“소문이 진짜였어. 어떻게 저 나이에 수셰프를?”
“천재래, 천재. 루시앙이 알아보고 섭외했대.”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에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심사위원이라 생각하면 떨릴 법도 하지만 마음속에 여유가 차고 넘쳤다.
반면에 내 옆에 서 있는 올리버는 온몸이 완전히 경직되어 로봇처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총주방장을 처음 맡은 올리버가 이토록 떨리는 게 이해되긴 했다. 그래서 그런가, 마흔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가 귀여워 보였다.
“셰프님, 로봇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좀 걸어가시죠?”
“자네는 어떻게 그리 편안해? 후.”
우리는 무대로 걸어 나가면서 속닥였고,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무대에 다다랐을 때, 루시앙은 올리버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크흠! 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하하. 특히나 부주방장인 이 친구가 이 레스토랑의 오픈에 많은…… 어, 자질구레한 설명 말고 맛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올리버는 급하게 마이크를 나에게 떠넘겼다.
올리버의 말을 끝으로 울려 퍼지던 박수는 내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가 반영된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레드 테이블-더 파스타의 부주방장을 맡은 반유현입니다. 제 위에 계신 두 셰프님들의…….”
내가 인사치레 멘트를 할 때, 무대의 가장 앞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루이드 뤼샤르였다.
홀의 직원이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그가 곧장 내게 질문을 던졌다.
“파스타라는 요리 자체가 이 파리라는 도시에만 수천 개, 수억 개가 있을 겁니다. 이 식당만의 특별한 점이 있습니까?”
“드셔보시면 압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문이 공격적이고 꽤나 날카로웠다.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면서 얘기하자, 루이드 뤼샤르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허허. 아주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혹시, 면의 익힘 정도도 정할 수 있습니까?”
루이드 뤼샤르는 나의 답변이 불쾌했다는 듯이, 나를 불리한 곳으로 몰았다.
113명이 먹을 코스 요리를 단번에 만들어야 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
놈의 경력으론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거기에 더해 코스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면 익힘 정도를 각각 다르게 주문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은 나의 허를 찌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주방의 동선을 무너트리려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를 주문받는 게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추가된 주문은 셀 수 없이 연습한 주방의 동선을 무너트릴 우려가 있었다.
소수의 인원이 그런 것이 아니라, 113명의 손님들이 모두 면의 익힘 정도를 정한다면 말이다.
저놈은 그것을 알면서도 내게 저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내가 그의 물음에 거절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이고, 거절을 하지 않는다면 주방을 곤란하게 할 아주 악랄한 질문을 내게 던진 것이다.
“허허허. 루이드, 물론, 파스타의 면 익힘 정도를 고를 수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코스를 제공해야 되는 특별한…….”
루시앙은 내가 대답하기 전 내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로채고, 루이드 뤼샤르의 질문에 대답했다.
매번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던 내가, 망설임도 없이 루이드 뤼샤르의 물음에 대답할 것을 미리 방지하는 모습이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 SNS에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자신의 레스토랑에 있는 수셰프, 반유현 셰프는 같은 파스타일지라도, 면의 익힘 정도와 맛을 각각 달리해 수없이 많은 파스타를 만들어 낸다고요. 이곳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다들 그 세밀함을 보고 싶어서 자리하셨을 텐데, 오늘은 그 세밀함의 맛을 보지 못하는 겁니까?”
그런데 오히려 루시앙의 말에 루이드 뤼샤르가 역공을 퍼부었다.
SNS는 인생낭비라고 누가 그랬었나, 루시앙이 나의 파스타 실력을 봤던 날, SNS에 내 이야기를 올렸던 모양이다.
루이드 뤼샤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님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말처럼, 손님들도 루시앙이 인정한 나의 실력을 보고 싶다는 듯한 격려의 박수였다.
“허허허. 루이드! 미안하지만, 오늘은…….”
루시앙은 루이드 뤼샤르의 말에 완곡하게 거절하려 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부리기 위해 면의 익힘 정도까지 모든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았다간, 전체 요리의 질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긴, 단번에 코스요리를 빼야 되니, 면의 익힘 정도까지 주문받기엔 무리겠죠. 요리의 시간도 다르고 그럼, 코스의 시간도 각각 테이블마다 달라야 하니까…….”
루이드 뤼샤르는 이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말투를 보아하니, 자신이 한 수 접어준다는 말투였다.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의 도발에 굳이 넘어갈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또 다른 기회를 포착했다.
원래, 기회라는 게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 아닌가.
“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순간 수많은 카메라와 조명들이 루이드 뤼샤르와 루시앙, 그리고 나와 올리버를 비추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환생을 거듭하며 매번 그래왔듯이, 판이 깔리면 내 최고의 실력을 보여 주는 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법.
“무, 뭐? 반 셰프. 그건 예정에 없던…….”
“자, 잠시만!”
루시앙과 올리버가 크게 당황했고, 나에게 속삭였지만 소용없었다.
손님으로 초대된 셰프들 마저 나의 한마디에 당황할 정도였으니, 나의 직속상관인 저 둘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을 한국말로 표현하면, 모양 빠진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주방, 준비해주세요.”
내가 마이크로 그렇게 말하자, 주방에 있는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직원들의 모습을 본 총주방장, 올리버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루시앙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이번에도 나를 믿어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한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이 정도면, 나를 포함한 주방의 모든 셰프의 커리어를 배팅한 거야. 파리에서 제대로 터를 잡던가, 짐 싸고 나가던가, 둘 중 하나라네. 자신 있지 반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