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출발선에서는 부스터를 (3)
셰프들의 무대 인사가 끝나고 뒤이어 행사를 위해 섭외했었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웅장하지만 편안하고 평온한 소리, 그렇지만 주방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삑! 삑! 삑!
주방에서는 수많은 주문서들이 찍혀 나오고 있었다.
“맑은 감자 버섯 스프! 양파 수프! 베두레 알라! 모든 전채요리는 그냥 다 들어가! 다 시작해! 빨리!”
“예! 셰프!”
오너 셰프인 루시앙은 홀과 주방을 종횡무진 하며 전체적인 것을 총괄하는 역할, 올리버는 주문서들을 읽으며 셰프들에게 지시하고 주방을 총괄하는 역할, 나는 셰프들이 그 지시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원래는 그랬다.
원래는 그렇게 짜여 있었는데, 나에겐 새로운 임무가 추가되었다.
“흠.”
전채요리, 즉 애피타이저의 지시를 끝낸 올리버는 주문서를 보다가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반 셰프! 이거 정말 할 수 있겠어?”
“제가 못한다고 하면, 방법 있습니까?”
모든 주문서에는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가 퍼센트(%)로 적혀져 있었다.
우리가 몇 날 며칠을 밤새 연습했던 것과 달리, 모든 손님들에게 각각의 입맛에 맞는 커스텀 형식으로 파스타 요리를 제공해야 했다.
“알덴테(Al dente)가 몇 퍼센트야! 오십 퍼센트?”
파스타의 가장 보편적인 면의 익힘 정도인 ‘알덴테’.
그 기준을 오십 퍼센트라고 손님들에게 말했었다.
“생각하면 쉽습니다. 십 퍼센트나, 백퍼센트처럼 극단적인 주문은 애초에 받지 않습니다. 맛이 없으니까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익힌 정도인 삼십 퍼센트부터, 사십 퍼센트, 오십 퍼센트…… 팔십 퍼센트까지 총 여섯 개의 화구를 이용해서 각각의 면을 삶을 겁니다.”
10% 차이로 각각 면을 다르게 삶아, 소스와 함께 팬에 볶을 때, 그 세밀한 익힘 정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예를 들어, 43%의 익힘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면 40%로 삶은 면을 사용해 볶고, 55%의 익힘 정도는 50%로 삶은 면을 볶으며, 그 익힘 정도를 더하는 것이었다.
“좋아!”
나의 설명을 들은 올리버는 엄청난 영감을 얻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삶은 면을 소스와 볶으면서 면의 익힘 정도를 추가로 조정하는 것은 파스타의 기본이었기에, 113명이 각각 주문한 익힘 정도를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면을 팬에 볶으면서 세밀하게 그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셰프가 있다면 말이다.
“루시앙 셰프님, 나, 그리고 반 셰프가 직접 해야 되겠는데.”
문제는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춘 이들은 모두, 나를 포함해 주방을 관리 감독하는 셰프들이었다.
우리가 직접 팬을 잡으면 113명의 파스타를 커스텀으로 선보이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주방의 질서가 무너질 염려가 있었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 최민성, 샐러드 내려놓고 잠깐 나한테 붙어.”
“예, 셰프!”
나는 보조로 한 명을 지목했고, 내 몸을 대충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꽉 묶었다.
“다들 반 셰프 말 들었지?! 식자재 창고에 있는, 연습용 화구에까지 물 올려!”
“예!! 셰프!”
화구에 올려둔 물에 면이 각각의 정도로 삶아졌을 때, 나는 주방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
면의 익힘 정도를 50%, 60%로 평범하게 주문한 손님들이 대다수였지만, 51%, 47%와 같이 짓궂은 주문을 한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나는 그런 짓궂은 주문을 한 손님들의 파스타에 정성을 쏟았다.
51%와 47%라는 숫자로 주문을 받아놓고, 맛에서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손님들이 말해주었다.
“내 파스타는 51%, 자네 것은 47%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이거 진짜 장난하는 거야 뭐야? 4%의 차이?”
1%의 차이는 심혈을 기울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에 많은 파스타를 볶아야 되는 지금엔 사실 나조차도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2%나 3%의 차이 정도는 구현할 수 있었는데, 그 정도 차이만으로도 내 파스타를 맛본 사람들은 충격의 헛웃음을 뱉었다.
물론 그 정도의 미묘한 차이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내 배는 파스타 면이 가득 차 있었다. 면 하나씩 맛을 보다 보니 배가 부른 것이다.
“이거 뭐야! 기계가 만든 거야?”
특히나, 손님들 중에선 동종업계에 속한 셰프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서로 자신들의 파스타 익힘 정도를 말하면서, 다른 익힘 정도를 주문한 사람들과 파스타를 바꿔먹어 가며 비교하기 시작했다.
“면의 익힘 정도가…… 이렇게 나눠질 수 있다니. 미친…….”
요리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충격에 빠진 것이다.
“나는 51퍼센트로 주문했는데, 자네는 54퍼센트, 자네는 60퍼센트…… 이게 말이 되나……. 이 작은 차이를 어떻게 명확하게 만들어냈지?”
“아니, 왜 다들 면의 익힘 정도에만 치중 하는 거야? 이거, 에멀젼(Emulsion:유화)도 장난 아닌데? 면에서 소스가 찐득하게 베어져 나오는 게……. 면뿐만 아니라 이정도 수준의 맛을……!”
요리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그 외의 사람들에겐 그런 깊은 지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다만 주변에 있는 유명 셰프들이나, 평론가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는 이 요리가 대단한 요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와! 너무 맛있네요.”
“호호! 이렇게 파스타 명가가 또 태어나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시앙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예전 ACK에 출연했을 당시, 그가 요구한 익힘 정도를 정확히 맞췄던 적이 있었다.
동시에, 두께나 길이가 다른 면으로 만든 파스타를 모두 동일한 맛으로 선보이기도 했었고.
그것으로 나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루시앙이었지만,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이 정도는 나도 불가능해.”
113명의 각기 다른 주문을 한꺼번에 소화했다.
그것도, 먹는 사람들이 2%, 3%의 차이를 느낄 만큼의 세밀함을 갖춘 상태로 말이다.
루시앙은 자신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을 내가 했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절대 재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네, 이제는 바른대로 말하게나. 내 눈은 절대 못 피해.”
내가 요리를 갓 시작한, 짧은 경력의 셰프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정 지은 듯했다.
그가 계속 집요하게 질문했지만, 나는 머리와 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나와 루시앙이 말싸움을 하고 있을 때, 한곳에 자리하고 있는 루이드 뤼샤르가 보였다.
루이드 뤼샤르는 자신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는 네 명의 파스타를 각각 44, 47, 50, 53으로 주문했었는데, 오차 없는 그 명확한 차이에 놀랐는지, 테이블에 올려진 파스타를 전부 맛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카메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루이드 뤼샤르는 민망했는지, 미소를 짓곤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고개를 한번 까닥거리는 것으로 대꾸해줬다.
그랜드 오프닝이 시작할 때, 내가 거침없이 말대답을 한 것만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날렸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를 무시하듯이 고개를 까닥거렸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도발한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놈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저놈의 평론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해 먹을 수도 있다.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측면에서 좋다고 판단했다.
모든 사람들의 식사가 끝났을 무렵, 나와 루시앙,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제가 예전에, SNS에 글 하나를 올렸었습니다. 제가 부주방장으로 섭외한 반유현 셰프의 파스타는 같은 파스타일지라도 그 맛이 10단계 정도로 나뉜다고요. 하지만, 오늘 보니까 그 맛이 100단계로 나눠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실제로 오늘 그 맛을 보셨지 않습니까?”
루시앙이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앞으로 젊은 천재 셰프, 반유현 셰프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시앙이 마무리 멘트를 던졌을 때, 주방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오늘 요리를 맛본 손님들은 아주 멋진 뮤지컬 공연을 봤다는 듯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만큼 오늘의 요리는,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는 것이었다.
***
정통적이지 못하며, 건방진, 천재 셰프의 이미를 달고 있던 나는, 매우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천재 셰프의 이미지를 새로 달았다.
[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대일 커스텀 파스타! 성공! ] [ 1퍼센트의 차이를 구현할 수 있는 천재. ] [ 감당할 수 없는 천재 셰프와 베테랑 셰프 둘의 합작. ] [ 루이드 뤼샤르 입을 닫다. ]그랜드 오프닝에 다녀간 수많은 요리 평론가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루이드 뤼샤르의 도발부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손님 한 명 한 명씩을 위한 파스타를 만들어냈던 것까지, 그들은 그 날 있었던 일과 맛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했다.
그 때문인가, 레스토랑을 대개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평가하던 평론가들이 남긴 평들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비평을 하는 평론가는 없고, 모두가 칭찬일색이다. 이유는 뻔하지.’
칭찬들이 너무 많아, 비판적인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권위를 떨어트릴 수 있는 행동이 되는 것일 테니까.
“한 달 동안 예약이 꽉 찼습니다, 이 정도 기세라면, 두 달 세 달, 여섯 달까지 예약이 꽉 찰 텐데 굳이 한 달씩 예약을 묶어 놓는 이유가 있나요?”
예약 담당 매니저이자, 홀 서비스 매니저인 엘이 말했다.
금발의 백인 여성인 그녀는, 이번 그랜드 오프닝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서비스를 수행해 꽤나 많은 공로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요리에 관심도 제법 있어, 홀 직원들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여섯 달 치 예약을 미리 받아버리면, 신경 쓸 일이 적어지는 것 아닌가요?”
“미슐랭.”
“미슐랭이요?”
“어. 미슐랭 평가원들이 여섯 달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미슐랭 평가원들은 일반 손님들과 똑같이 예약을 한다.
그들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레스토랑에 절대 외압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미슐랭 스타 평가원이라고 한들 예약에 따른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따라서 6개월 치 예약을 미리 받는 것은, 미슐랭 스타 평가원의 방문을 늦출 수도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약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님들의 노쇼(NO-Show)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 셰프님들한테는 당장 확정된 매출보다,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게 중요하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엘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 손에 들려있는 종이 뭉치를 보고는 다시 내게 질문했다.
“그건 뭐예요? 명함?”
그랜드 오프닝 직후에, 사람들이 내게 직접 주고 간 명함들이었다.
“벌써 다른 곳으로 떠나실 준비를 하는 거예요?”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대중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슐랭 평가원들이 왔을 때를 대비해 코스를 구성하는 메뉴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맛을 더 끌어 올리는 게 내가 남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기왕에 이곳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면, 더 많은 개수를 얻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냥 보는 거야.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졌는지.”
물론, 그렇게 이곳에 남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도, 다음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고르는 중이었다.
20년이라는 제한 된 시간에서 목적을 이루어 내려면 조금도 지체 돼선 안 된다.
나는 나에게 받은 명함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명함들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가장 강력한 명함을 보고 있었다.
-펠리지오, 헤드 셰프 A.톰슨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5성급 호텔, 그 주방의 총괄인 톰슨의 명함이었다.
“헤, 헥! 펠리지오 헤드 셰프?”
“이 사람을 알아?”
“그 사람을 알기보단, 그 직급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잖아요. 제 전공이 호텔경영이거든요. 라스베이거스는 어쩌면 이곳 파리보다, 요리 경쟁이 심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헤드 셰프를 맡았다는 건 진짜…….”
실제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카지노를 보유한 호텔들은 일명 ‘큰손’이라 불리는 손님들을 자신의 호텔에 투숙시키기 위해 호텔마다 여러 전략을 구상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에 투자한 돈을 카지노로 충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텔과 리조트 그룹의 맛에 대한 투자는 엄청났다.
그들의 레스토랑 사랑 덕분에, 셰프들에 대한 대우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던 것도 사실이다.
“와, 롤스로이스에 경호원에 스위트룸까지 제공하면서 스카웃했다는데요? 라스베이거스, 그 동네는 셰프들한테 이런 대우를 해주는구나…….”
톰슨을 인터넷에 검색해본 엘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그 셰프가 무슨 말을 하면서 명함을 준거에요?”
“그 롤스로이스 나 태워주겠다고,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겠다나.”
“에? 색다른 경험이요?”
“아마도 한 달 뒤에 있을 ‘미식 축제’에 날 초대하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