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1)
저 멀리 ‘고든 레지-라스베이거스’의 부스에 헨리-제리 형제가 경직된 상태로 서 있었고, 나와 고든 레지, 그리고 톰슨은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20대의 나이에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셰프로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기란 쉽지 않죠. 저도 당신의 나이 때엔, 주방 구석에서 양파를 썰고 있었으니까요.”
현재 미슐랭 스타 11개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탑 셰프, 고든 레지의 말이었다.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운 뒤에 말을 덧붙였다.
“하하하. 톰슨의 손님이기도 하고, 최연소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스폐셜 유망주 셰프가 저희 부스를 둘러보고 싶다는데, 저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
고든은 내 두 번째 삶에서 나를 가르친 셰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요리사의 인생을 살아가는 매번의 삶마다 등장하는 고정출연자이기도 했다.
‘실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
환생‧회귀를 한 내가 매번 미래를 바꾸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전생에 이름을 떨쳤던 셰프들이 이번 생에는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데, 고든 레지는 항상 세계 정상급 셰프의 자리를 차지하는 셰프였다.
‘출연을 너무 빨리하셨군.’
지금까지의 삶을 살면서 그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많지만, 일단은 뒤로 미루었다.
남다른 사업수완과 실력을 갖춘 그와는, 분명 이번 생에서도 언젠가 또 함께할 일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지금 최우선인 것은 내 앞에 경직된 채로 서 있는 헨리-제리 형제였다.
고든 레지와 지금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는, 헨리-제리 형제가 나의 밑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귀(monkfish)라는 생선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가 부스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서 아귀를 손질하고 있던 헨리-제리 형제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경직된 자세였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던 견습생들은 오너 셰프 앞에서 엄청난 긴장을 하곤 하는데, 그들도 정확히 그런 자세였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엔 톰슨도 있었고, 고든 레지가 나와 편하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저들의 머릿속에선 나 또한 상급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아귀를 팬에 구워서 각종 채소와 허브로 맛을 낸 소스를 살짝 올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할 겁니다. 원래 행사의 부스에서는 가볍고 간단하지만 대접받는 것 같은, 음식이 먹히는 법이거든요. 거기에 망고 푸딩으로 디저트를 더할 겁니다.”
고든 레지는 나에게 요리를 설명한 뒤에, 헨리-제리 형제에게 물었다.
“자네들, 제대로 손질하고 있나?”
“예! 잘하고 있습니다!”
“아, 자네들이 주방에 새로 들어왔다는 그 형제들인가? 둘 다 잘생겼네. 이름이 뭔가?”
고든 레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만 해도 전 세계에 10개였다.
더군다나 세계적 셰프인 그가 견습생이라는 직급을 가진 직원의 이름을 알 리가 없을 터.
“헨리와 제리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했다.
고든 레지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는 표정이었고, 헨리-제리 형제는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저도 아까 부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데, 되게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허허. 그래? 이야! 자네들 특급 유망주 셰프의 눈에 들었네. 헨리, 제리 기억해야겠어 나도.”
이 말 한마디로 헨리와 제리 형제에겐 나의 존재가 각인되었을 것이다.
칭찬보다는 구박을 더 받는 견습생의 신분인 저들에게 나처럼 말해준 이는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귀가 손질이 다 끝나질 않아서 요리는 미리 보여드리지 못하겠네요. 어이, 조리장! 여기 반유현 셰프라고,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셰프야. 물어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대답해 드려.”
고든 레지는 친절하게 나의 손을 잡고 흔든 뒤에 말했다.
다른 할 일이 있다는 듯이, 시간이 나면 또 보자는 식으로 나를 자신의 부스에 남겨두고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고든 레지 레스토랑의 그릴 파트를 맡고 있는, 그렌입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가시죠. 아직 저희 부스가 완성되진 않았지만. 헤헤.”
“견습, 헨리입니다!”
“제리입니다.”
고든이 나를 소개해준 덕분인지 아까 전, 헨리와 제리를 구박하던 조리장, 그렌은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런데, 나를 앞에 두고도 헨리와 제리를 구박하는 모습이 내 표정을 찡그리게 했다.
“야야, 너희들의 이름은 안 궁금해. 빨리 아귀나 손질해. 이제 시간 없단 말이야!”
두 형제는 곧장 고개를 처박고 아귀의 몸에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귀의 몸에 묻어 있는 미끌미끌한 진액은 초보 요리사들이 손질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그에 따라 두 형제도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그럴수록 그렌의 구박은 거세져 갔다.
“후. 행사라고 데리고 나왔더니! 다시 주방에 내려가서 양배추 손질할래? 내가 직접 해야겠어? 내가 주방에서 칼 가져올 때까지, 손질 안 된 아귀가 남아 있어 봐. 내가 다 할 테니까.”
자신이 남은 아귀를 손질한다는 것은, 도와준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으니, 꺼져버리라는 소리. 남은 아귀는 아홉 마리였다.
“딱히 구경할 건 없네요. 헤헤. 이놈들이 아귀 손질하는 게 볼거리는 아니니까요. 뭐, 편하게 구경하다가 가십시오.”
웃긴 건, 그렌이 성질을 내다가도 나에겐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헨리와 제리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칼이 아귀의 몸을 뚫는 자취가 정확하지 않아졌다.
“도와드릴게요. 가위 좀 주세요.”
전생에, 이들과 함께 얻었던 미슐랭 스타만 해도 9개다.
지금으로 치면, 내 미션의 대략 3분의 1가량의 미슐랭 스타를 얻은 것이었다.
다시금 이렇게 검증된 ‘내 사람’을 구하려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에게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나의 모든 행동들은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귀한 나의 옛 동료들이 천대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여기…….”
얼떨떨한 표정의 제리가 나에게 가위를 건넸고 나는 아귀 손질을 시작했다.
“주둥이, 아가미, 내장 같은 구이 요리에 쓸모없는 건 날려버릴 거 아닙니까?”
아귀를 뒤집은 다음, 입의 한쪽 끝에 가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위로 순식간에 주둥이를 날려버린 다음, 아가미를 잘라냈다.
내장들도 가위로 털어낸 뒤에 잘라냈다.
모든 동작이 하나의 동작같이 연결되었고, 저들의 눈에는 숙련된 미용사가 가위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양식을 주로 했나 본데. 그렇다면 가위로 손질하세요. 생선을 잘 안 다뤄본 초짜들이 아귀를 손질하기에는 칼보다 가위가 나을 겁니다.”
두 형제가 어벙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너무 빨리 이들을 찾아온 것인가.
“후. 잘 보십시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다.
내가 시연할 때 나의 손짓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빛을 보니, 요리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그리고 약간의 놀라움도 보였다. 자신들과 나이대가 비슷한 셰프의 실력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가위로 다 손질된 건 이쪽으로 던지세요. 내가 칼로 마무리할 테니까.”
또, 그 눈에는 견습생인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도와주는 나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이 담겨 있었다.
“손에 진액까지 묻혀 가시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이 형제들의 머릿속에는 나의 이름을 확실히 박은 것에 의의를 뒀다.
세계 최고의 주방이라고도 불리는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에서, 이들을 확실하게 내 쪽으로 당기기에는 아직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작 아귀를 손질하는 것을 보여줬다고 마음이 움직일 이들이 아니었다.
‘우선, 이 행사에서 주목을 받는다.’
일단은 이 행사장에서 사고를 한 번 쳐야겠다.
***
내가 다시 부스로 돌아와 불에 가열되던 갈비찜을 꺼냈을 때, 대망의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시작되었다.
각자 동경했던 셰프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셰프들의 요리를 먹어 볼 수 있는 행사였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모인 것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와, 전에 주방에서 먹었던 갈비찜보다 맛이 더 깊습니다. 백김치까지…… 이건 뭐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나의 보조를 하겠다고 부스에 나와 함께 서 있던 안토니가 말했다.
“달달하면서 약간의 점성을 가진 갈비찜 소스에, 고기가 부드럽게 갈라져 찢겨지는……. 마무리로 상큼한 백김치가 입을 개운하게 씻겨주는……. 오늘 보조로 오길 잘했습니다. 하하하하!”
“이 정도라면…….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메인으로 하자고.”
톰슨이 나에게 긴급 제안을 했고, 그에 따라 나의 갈비찜과 백김치가 펠리지오 호텔 톰슨의 부스에서 메인 요리를 맡게 되었다.
각 셰프에게 배정된 부스는 행사에 모인 세계적인 미식가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를 선보여 홍보 효과를 챙길 수 있는데, ‘천재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를 앞세워, 강력한 나의 갈비찜을 메인으로 선보인 뒤에, 레스토랑의 메뉴를 홍보하기보다 펠리지오 호텔 자체를 홍보하려는 톰슨의 의도였다.
쉽게 말해, 내가 펠리지오 호텔의 소속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이미지와 실력을 이용해 자신의 레스토랑을 홍보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세계적인 셰프들과 미식가들에게 내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허허허! 반 셰프님도 곱상하게 생긴 게, 팬들이 많을 것 같은데?”
입장하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안토니가 나에게 말했다.
“제가 무슨 할리웃 스타도 아니고, 미국에서 절 알아볼 사람이 있겠습…….”
“꺄아아! 오빠 한국에서 왔어요!”
내가 무심하게 대답하려던 찰나에, 세 명의 여성이 우리 부스를 덮쳤다.
특이점은 세 여성 모두, 동영상 촬영 전용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풉! 없기는. 주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안토니가 피식 웃더니, 여성들에게 카메라를 건네받는다.
“골목가게 때부터 팬이었어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진짜 축하드려요! 한국에 오빠 난리도 아니에요! 오빠 요리하는 거 유튜브에 올려도 되죠?”
“저도요! 오빠 근황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유튜브에 올려도 될까요?”
“유튜브, 좋은 취지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이건 제가 한 요리인데 드셔보시죠.”
내 손을 꼭 부여잡고는 호들갑을 떨어댄다.
톰슨 특유의 호들갑은 이 여성들에 비해선 아주 약과였던 것이다.
그러곤 작은 접시에 담겨 있는 갈비찜 한 점을 먹고는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크헉! 와아아! 진짜 대박!”
“와! 우리 엄마, 할머니가 한 것보다 맛있잖아.”
“반유현 오빠, 아니, 반유현 셰프님! 와! 진짜 대박!”
그런데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이 여성들이 아니었다.
‘뭐지.’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수십 명이 여성들의 뒤를 기웃거리더니 내가 있는 부스를 중심으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톰슨의 제자들인가.’
내가 프랑스에서 꽤나 잘나가는 파스타 집의 수셰프이고, 그 레스토랑이 월드 베스트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들, 방금처럼 한국인이 아니고서야, 라스베이거스에서 내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부스의 주인인 톰슨의 제자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명문 요리 학교의 교수 출신이었으니까, 이런 대형 행사에 그의 제자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러 얼굴을 비출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소문 좀 냈어요. 이 동네 셰프들한테.”
그런데, 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안토니가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만 10년을 일했거든. 친구가 좀 많아! 허허허! 내 친구들한테 자네 음식 좀 먹어보라고 연락을 돌렸습니다!”
족히 오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허허허허! 반유현 셰프님이 보여주신 파스타랑, 갈비찜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이렇게나 많은 셰프들이 모였네요! 갈비찜이 동날 것 같으니까 추가분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하하하!”
안토니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줄을 서자,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들 또는 기자, 미식가들이 우리의 부스에 주목했다.
미술품 전시회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하나의 그림 앞에 서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그림은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저긴 뭔데?”
“무슨 셰프들이 줄을 저렇게 섰데?”
“몰라, 다른 행사를 또 하나?”
“셰프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부스인가 봐! 엄청 맛있나 본데?”
‘요리신들의 정원.’이라고 이름이 붙어진 행사장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생에 나를 도왔던 다른 멤버들도 찾기가 쉬울 것 같다.
그들이 이 행사장에 있다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어쩐지 이 번 삶은 전 우주가 나를 돕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