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끝판왕 (4)
“제 요청을 거부하시는 것 맞습니까?”
“아니, 거부할 것도 없이. 이 요리는 제가 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고민욱은 되려 화를 내며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왜 증거를 대야 합니까? 정 의심스러우면 나가세요. 저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싫으니까.”
그 이유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스토랑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만나기 싫었을 것인데, 그에 대한 불편함이 첫 번째였을 것이고.
나의 끝없는 질문이 두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그 이상의 질문들은 레스토랑 전체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레시피의 비법을 말하는…….”
물론, 두 번째 이유는 구시대적이다.
셰프들이 레시피를 감추고, 자신의 보물로 여기는 행위는 구시대적인 행동이 되었음을 뉴욕에서 보여준 바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뉴욕 내 거의 대부분의 레스토랑 레시피를 받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감명받은, 전 세계의 수많은 셰프들이 레시피를 서로 공유하면서 발전시키는 문화를 향유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 이곳은 그게 아닌 듯했다.
‘아버지는 도전을 원하고, 아들은 도전하길 원치 않고, 또 그 아들은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네.’
분명, 전생에는 고민욱이 했던 요리가 맛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어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금의 상황이 자신이 이곳의 ‘오너 셰프’가 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조용히 먹고 평가하겠습니다.”
자존심이나, 그 명예를 생각해, 나를 쏘아붙이면 내가 평가를 멈출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조용히 먹고 평가를 하겠다니, 그의 눈동자가 또 한 번 흔들렸다.
“요리를 직접 하셨다니,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레스토랑이 대한민국의 반유현 레벨을 심는 것에 좋은 영향을 꽤나 미칠 것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한식 하면 이 레스토랑을 떠올리고, 그 정통성과 창의성에 대해서도 이 레스토랑의 실력을 매우 높게 쳐주고 있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곳의 수준을 대외적으로 알려 ‘반유현 레벨’의 기준점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그에 따라 나의 레스토랑들이 갖는 수준의 차이를 한 번 더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일갈에도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놈은 내 계획에 순순히 따라 줄 이유가 없는 듯했다.
“죄송합니다만. 반유현 셰프님. 나가주시죠.”
“…….”
“셰프님께 대접할 요리가 없습니다. 요리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레스토랑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생긴다니.
셰프의 의도가 온전히 요리에 담긴 것인지, 그 셰프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개의 질문을 던졌던 것뿐이다.
질문은 고민욱이 기분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이놈은 지금의 이 상황을 노리고 기분 나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 레스토랑에서 ‘반유현 레벨’ 평가를 멈추고 가장 좋아할 테니까.
“예, 나가겠습니다. 지금의 선택은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 대한민국 최초 ‘반유현 레벨’ 평가받은 ‘주몽’. 충격적인 결과! ] [ 반유현 레벨, 대한민국 자타공인 1타 레스토랑에 Lv 0 부여! ] [ 레벨 0의 의미는 무엇인가! ] [ 평가할 가치가 없는 레스토랑 주몽? ]큰 사고가 벌어졌다.
레스토랑 주몽을 24년째 운영하면서도 없던 아주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X발…….”
반유현 레벨은, 레스토랑의 사전 동의를 구하고 평가된다.
어떤 평가에도 법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인증된 절차에 따라 서명을 해야만 ‘반유현 레벨’의 평가가 시작된다.
즉, 반유현이 레스토랑에 왔다는 것은 이미 동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반유현이 전채요리만을 먹었고, 그것만으로 레스토랑 ‘주몽’의 평가를 했다는 것이었다.
-뭐임? 우리나라 최고 레스토랑이 0 레벨?
-왘ㅋㅋㅋ 개망했네 한국 레스토랑.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반유현 – 옐로’랑 ‘주몽’ 둘 다 먹어봤는데, 레벨 0의 수준은 아니에요 주몽이.
-와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이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보다 레벨 낮게 나온 것은 처음이네.
-미쳤다 진짜. 반유현의 정통성 무시하기!
평가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온라인은 들끓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미슐랭 쓰리스타 ‘주몽’의 레벨을 ‘0’을 받았음에도 반유현 레벨의 시스템에 문제를 삼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대개는 어떤 이유로, 어떤 맛이기에 주몽이 ‘0’을 받았냐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벌써, 반유현 레벨은 그 공신력을 인정받은 건가…….”
-ㅋㅋㅋㅋ 진짜 가면 안 되겠네. 가격은 더럽게 비싸고 맛은 레벨 0이면?
-뭐지 진짜. 어떻게 미슐랭 쓰리 스타가 레벨 0이야 대체?
-어쨌든 세계 최고 셰프가 저곳에 방문하면 안 된다는 걸 공식화했으니까.
-하기야 한 끼에 10만 원 넘는 돈으로 맛있게 먹을 것들이 너무 많지.
“예약률이 증가했으니, 실제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우리의 레벨이 ‘0’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했었다.
요리를 직접 먹은 사람들은 레스토랑 ‘주몽’의 레벨이 ‘0’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하게도 흘러갔다.
-음. 예전에 맛있었는데, 반유현이 말해서 그런가 맛이 없어진 것 같기도…….
-그러게, 반유현이 레벨을 ‘0’으로 측정한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 이유를 못 찾는 건가.
-ㅋㅋㅋㅋ미슐랭 쓰리스타 깜냥은 아닌 것 같음.
반유현의 말에 동조되어 ‘주몽’을 어떻게든 깎아내려는 식이었다.
-엥? 사람들 왜 그러지, 레벨 0의 수준은 아닌 것 같던데.
당연하게도 레벨 0 이 이상함을 감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주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때 반유현이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다.
-전채요리만 맛보고 가치가 없다 판단한 건가?ㅋㅋㅋㅋ
-전채요리부터 0레벨 수준이라는 거 아닌가?
반유현의 말에 의해 근거 없는 추측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고.
레스토랑 ‘주몽’은 역사에 유례없던 위기를 맞이했다.
***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각각 레스토랑 ‘반유현’에 있는 지휘급 셰프들의 말을 따르면 미슐랭 평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두 다녀갔습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끝……나다니요?”
“아니야.”
“은퇴라도 하신다는…….”
“됐고, 레스토랑 주몽에서는 뭐래.”
내가 말을 끊자, 오스틴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보고를 시작했다.
“창업자이자, 오너 셰프 고민욱의 아버지인 고광수가 직접 설욕할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맛을 평가하는 데 적극 협조를 하겠다고…….”
대중들의 무차별한 물어뜯기에, 더 이상 방안이 없던 그들은 대놓고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특히나, 나를 내쫓았던 그의 아들, 고민욱은 A4 용지 네 장 분량의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 존경하는 반유현 셰프님, 죄송합니다. ……중략……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중략…… 저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셰프의 자세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신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다……. 똑같지.”
레벨 0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들이 일궈온 레스토랑이 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던 탓에 그들은 태도를 달리했다.
“사실, 다 먹어보지 않아도 그 수준을 알 수 있기는 한데.”
이미 마음속에 그 레스토랑의 수준은 정해졌다.
전채요리만 먹어봐도 그 셰프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이 선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그 재료의 맛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은 그 셰프의 요리 몇 가지만 짧게 먹어봐도 알 수 있다.
“예?”
현실적으로는 그런 능력이 이해가 될 리가 없으니 오스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대다수의 셰프들, 대중들도 그런 능력을 이해할 수 없으니 나는 고민해야 했다.
“가서 평가를 해줘야 돼 말아야 돼.”
두 가지 고민이었다.
싸가지없는 태도로 일관한 녀석에게 혼쭐을 내준다는 것과, 반유현 레벨의 안정화를 위해 다시 그 레스토랑에 방문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
물론, 고민은 아주 짧게 끝났다.
“반유현, 레벨이 수정되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반유현 레벨의 평가 기간은 미슐랭처럼 1년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으니, 1년 뒤의 평가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
얄짤 없는 나의 태도에, 방문이 예정된 다른 레스토랑들은 긴장할 것이다.
***
나는 한국에 약 한 달간 더 머물러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주요 레스토랑에 ‘반유현 레벨’을 평가하기 위함이었으며, 레스토랑 ‘반유현’의 맛의 수준을 한 층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 계획대로 그렇게 되었군요 셰프님.”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스틴을 바라봤다.
이전에 내가 했던 말처럼,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내가 제시한 맛의 기준을 따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셰프, 또는 요리 전공이 아닌 그가 느낄 정도라면, 이는 일반인들에게도 명확히 보이는 것이었다.
“라인이라고 불러 나는.”
“라인이요?”
서울에 위치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인 ‘고하드’가 반유현 레벨 6을 달성하자 셰프들은 그 맛의 ‘라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라인을 따라 했다는 것은, 그 레시피를 따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각각의 요리마다 재료와 그에 곁들여지는 소스가 다르지만, 그 간의 세기나, 재료 본연의 맛이 올라오는 정도가 라인인 것이다.
맛은 각각이 다르지만, 그 맛들을 관통하는 정도는 비슷한 것.
반유현 레벨이 평가 예정된 레스토랑의, 맛의 라인들이 모두 레벨을 높게 받은 레스토랑의 것을 따라간다는 소문이 세간에 돌기 시작했다.
“대체로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것이…….”
그에 따라 미슐랭 투스타임에도 레벨 6을 달성한 ‘고하드’라는 레스토랑은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이 레벨 5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이는 미슐랭의 시스템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둘째로 요리나 맛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반유현 – 프리미엄’을 제외한 현재 최고 레벨의 레스토랑의 요리를 먹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자체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슐랭 스타 시상식은 1년에 한 번 정해져 있어, 그것을 기다리는 셰프들이 애태우는데, 셰프님께서 고안한 반유현 레벨은 곧장 그 결과가 나오니, 레스토랑들도 수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발명한 ‘반유현 레벨’은 곧장, 그 결과를 발표한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자 방법이었다.
다른 셰프나 미식가들이 하루도 채 안 되어서 맛을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공신력이나 신뢰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나는 100년을 넘게 요리를 해온 사람이다.
맛을 보면 머릿속에 그 수준이 정확히 그려진다.
애초에 ‘반유현 레벨’은 현시대에 나와 있는 그 어떤 미식 지침서가 따라 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갖추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들은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맛을 향유하는 대중들에게도, 그들이 즐길 거리가 하루가 지날수록 많아지는 것이었다.
이제 레스토랑 ‘반유현’의 예약을 기다리거나, ‘반유현’의 런칭을 기다리는 것보다 ‘반유현’이 인정한 맛집을 찾게 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바로 다다음주에 예정되어 있는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 대한 관심이 고스란히 ‘반유현 레벨’로 이동했다.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파리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런던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뉴욕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라스베이거스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서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켜온 이런, 구시대적인 종이 초대장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스틴이 나에게 미슐랭 스타 시상식 초대권을 내밀며 말했다.
“수치로 따지면 94퍼센트. 미슐랭 초대권을 받은 레스토랑의 94퍼센트가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거절하는 셰프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