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0
20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2)
“안토니! 어디 갔어! 반유현 셰프님? 이게 대체 무슨 일…….”
잠시 부스에서 떨어져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던 톰슨이 헐레벌떡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사람이 한꺼번에 부스로 몰리니 무슨 사고가 일어난 듯싶었던 것이다.
불안해하는 그의 눈동자가, 내가 서 있는 부스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셰프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나의 말에 톰슨의 눈동자는 더 빠르게 흔들렸다.
수많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 셰프인 그였지만, 세계적인 행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부스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 초조함과 불안감을 감출 수 없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렸음에도 나의 평온한 표정이 그를 더 혼란케 한 모양이다.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역대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에서 이런 적은…….”
“스물다섯 명, 그 이후의 사람들한테는, 지금 당장 요리를 대접할 수가 없습니다. 셰프님께서 직접 라인 정리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줄이……. 단지, 우리 부스의 요리를 먹기 위한 줄이라고요?”
벌써 이 행사에 참가한 지 5년째, 다섯 번째인 톰슨.
세계적인 셰프들의 요리를 한 공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그랜드 테이스팅’을 기획한 기획자의 의도일 터인데, 단 하나의 부스가 ‘독점’하다시피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처음 겪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하……. 대체 이게 무슨…….”
깊은 생각에 빠진 듯이 톰슨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때, 안토니가 부스의 테이블을 쿵! 찍으며 박스를 내려놨다.
“하하하! 반 셰프님! 고기 가져왔습니다!”
그제서야,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인 톰슨은 부스를 향해 길게 이어진 행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준비한 요리가 모자라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양해의 말이었다.
나는 곧장 박스를 열어 고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찜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블링이 찬란한 이런 고기는 찜 요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안토니가 주방에서 가져온 고기는 최고급 레스토랑이 쓰는 소고기답게, 마블링, 지방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적당히 끼어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고기는 스테이크를 만드는 것에는 최상급의 재료겠지만 찜요리에는 적절하지 않은 재료였다.
“저희 주방은 고기를 들일 때에, 고기의 질과 신선도를 확인하는 전문 직원이 있을 정도로 재료를 섭외하는데 정성을 다합니다. 이 고기가 최고라는 건…….”
“이 고기가 최고의 고기라는 건, 스테이크 요리를 할 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나의 단호한 대답에 안토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저희 레스토랑은 주로 그릴을 이용해서 소고기를 요리하는 터라, 대부분의 소고기들이 이 정도의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갈비찜을 추가로 요리해 선보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스테이크와 같은 구이용 고기를 찜으로 요리했다가는 찜요리 특유의 고급스러운 식감을 표현할 수 없으며, 그릴 위에서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표현해주던 마블링이 찜통 안에서는 녹아내려 소스를 느끼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더군다나, 지금 가져온 고기는 식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각종 향신료나 허브로 미리 재워둔 고기도 아닌, 생고기 그 자체였다.
여러모로 내가 만든 갈비찜을 먹기 위해 줄 지어선 사람들에게 완벽한 요리를 선보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하! 이거, 10년 동안 이 행사를 봐왔는데, 이런 관심은 처음입니다. 저 셰프 친구들이 조리복만 안 입고 있었어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제가 괜히 오바를 했나 봅니다. 제 친구들에게도 반 셰프님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허허…….”
안토니의 말대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우리의 부스 앞에 일렬로 줄을 지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미식의 축제인 그 현장에서 수많은 셰프들의 관심을 받는 부스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미식가들과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장의 요리는 모두 소진되었지만 줄지어있는 저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갈비찜은 포기, 더 빠른 요리가 필요하다.’
“메뉴를 바꿔야겠습니다.”
미식의 성지로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 이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몸담고 있는 셰프들과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미식가들에게 나의 요리를 확실하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저렇게 길게 이어진 행렬 안에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내 동료들이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내 이름을 세계적인 미식가와 셰프들에게 확실하게 알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이번 생에서도 그들과의 접점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레스토랑과 특급호텔에서만 10여 년이 넘는 요리 경력을 가진 안토니가, 방송이나 대회가 아니고 손님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에 즉흥적으로 요리를 해봤을 리가 없었다.
안토니는 습관처럼 회의적인 말을 뱉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그릴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허허.”
안토니의 몸에 배어버린 습관에 의해 나온 말은 그새,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해있었다.
나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이 순간 쑥스러웠는지, 말끝에는 웃음을 흘렸다.
“이 고기가 그릴용 고기라고 해도, 이 행사를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에게 스테이크를 선보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고기를 굽는 것도 실력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지만, 스테이크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진부함을 지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저 건너편에 있는 부스에선 스테이크를 굽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 어떤 요리를?”
안토니의 호기심은 또다시, 나에 대한 기대로 변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맛본 나의 파스타와 갈비찜, 그리고 백김치는 그의 마음에 사무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책상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쇠고기가스……?”
“예, 맞습니다. 소고기를 한번 튀겨보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안토니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짓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
“최연소! 월드 베스토랑 셰프, 반유현 셰프님께서, 2부 요리로 규카츠를 선보이실 예정입니다.”
규카츠(牛カツ).
쇠고기가스, 비프가스라고도 불리는 음식이며, 말 그대로 소고기를 튀긴 음식이다.
최상급의 소고기를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요리 할 수 있으면서도 스테이크는 아닌, 여러모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요리였다.
“펠리지오 호텔의 특별 게스트! 특급 유망주 셰프, 반유현 셰프의 요리,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학교 강단에 오래 섰던 그의 경력 때문인지, 그의 언변과 발성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꽂힌 모양인 것 같았다.
톰슨의 말은 사람들이 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엥? 2부 요리?”
“갈비찜을 만든 셰프가 또 요리를 선보인다는 거지?”
“그런가 봐! 다시 줄 서자!”
앞전에 나의 갈비찜을 맛봤던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다시 행렬의 뒤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놀이공원에서, 어린아이들이 재밌는 놀이기구를 내리자마자 다시 줄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더해, 요리 연구가이자 셰프로 꽤나 높은 권위를 가진 톰슨의 상기된 목소리가 줄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대체 뭔데, 여기가.”
“펠리지오 호텔 톰슨이 또 인맥으로 한 건 했나 보네. 특급 게스트라니.”
그에 따라 ‘요리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그 행사장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서 있는 부스의 분위기가 그릴이 달궈지듯이 계속해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마르코! 자네도 거기 서 있는 거야?”
마르코 스톤, 고든 레지, 에리 리퍼트 등 ‘그랜드 테이스팅’에 정식으로 초대되어 각 부스를 맡고 있는 세계적인 셰프들조차 나의 부스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까 톰슨이 말한, 그 셰프 아니야? 프랑스에서 맛본 파스타가 말도 안 되게 정교해서 초대했더니,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을 수상했다는…….”
결국에, 이 행사장 전체에 있는 대부분의 스타 셰프들이 나의 부스에 줄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우리 부스에 줄을 서는 광경이 또 한 번 벌어졌다.
100년을 넘는 요리 인생 동안, 나도 이 행사에 많은 참여를 해봤었는데, 내가 미슐랭 스타를 10개 이상 소지하고 있던 적에도 못 누려본 인기이자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행사장에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미슐랭 스타를 10개 이상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나처럼, 특급 셰프들 사이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셰프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또 그릴파트장 아닙니까. 셰프님. 이곳에 저만한 보조가 없을 겁니다! 허허허!”
고기의 겉 부분을 살짝 구워, 고기 특유의 향과 맛을 살린 뒤에, 머스타드 소스를 발라 감자전분과 밀가루를 섞어 묻혔다.
“튀김을 하실 건데, 빵가루를 입히기 전에, 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섞어 사용하는 게, 식감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토니는 실제 나의 보조이자 제자가 된 마냥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품었다.
“안토니 셰프님 말씀대로, 감자전분이 추가되면서 튀겨졌을 때, 식감과 고소함을 살릴 수도 있지만, 감자전분의 분자 크기가 소고기 세포의 크기보다 커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아…….”
질문에 따른 나의 답변을 들었을 때는, 안토니 특유의 호쾌함은 사라져 있었다.
“대체 그 정도의 깊이는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 세포의 크기라니…….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저희 레스토랑에 있는 견습생들을 다 내보내고, 제가 견습 생활을 해야될 것만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정말. 정말 요리를 시작하신 지 1년이 안 되셨다고요?”
나는 안토니의 질문에 짧게 “예.”라고 대답한 뒤에, 요리를 계속했다.
감자 전분과 밀가루가 묻어 있는 고기에 계란물을 묻힌 뒤, 빵가루를 입혔다.
그리고 튀김기에 빠트렸다.
치이이이익!
낮은 온도로 먼저 익힌 뒤, 높은 온도로 튀겨낸 규카츠가 나왔고 나는 그것을 한입에 넣기 좋게 썰어 놨다.
겉은 바삭하게 잘 튀겨졌지만, 속은 선 분홍빛을 띠는 소고기의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연출되었고 나는 그것을 곧장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사람당 한 점씩. 미리 만들었던 백김치도 함께 곁들어 주었다.
“와우! 바삭함, 고기의 풍미, 튀김의 고소함……. 기계가 맛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맛이 정교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느낌이야.”
“대단해, 한국의 반유현 셰프라고?”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의 수셰프래. 이 요리는 그의 특기가 아니야. 그가 만든 파스타도 먹어보고 싶군.”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표현을 달랐지만, 대개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말하고 있는 한 명의 셰프에게 주목했다.
“대단하시군요.”
노부 마츠로.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선 일식의 대가이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3곳이나 가진 셰프였다.
이곳에 있는 다른 셰프들에 비하면, 그의 인지도와 그가 가진 미슐랭 스타의 수는 떨어지지만, 내가 그에게 주목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밑에서 요리를 배우고 시작한, 나의 옛 동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의 부스에 줄을 섰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 주변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찾던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저기요, 셰프님!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몸집이 작고 왜소한 동양인 여성이, 규카츠를 한입 베어 물더니 영어로 내게 물었다.
낯가림과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없는 당당한 물음이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는 욕구가 아주 강한 여성이다.
“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이 여성의 국적과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키무라 메이. 도쿄 출신의 여성으로 ‘일본 똑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었다.
아시아 지역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총괄역할을 맡은 그녀이기도 하고.
헨리-제리 형제에 버금가는 충성도와 실력을 겸비한 여성이다.
나의 유창한 일본어에 놀란 듯, 그녀가 일본어로 내게 말했다.
“일본 사람이세요? 이거……. 배우고 싶어요. 셰프님. 같은 튀김인데 왜 다르지…….”
지금은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도맡아 하는 인턴에 불과한 직급을 가졌지만, 나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고 있다.
‘헨리, 제리, 메이. 벌써 세 명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