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내 이름 석 자 걸고(1)
“명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레스토랑의 메뉴로 가져다 쓰고 싶을 정도네요.”
세계적인 셰프들은 하나같이 칭찬을 쏟아냈다.
한입에 들어가는 작은 한 점에 다양한 맛이 있었고, 그 다양한 맛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순서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계적인 셰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시간상 효율을 따져 보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 환생 19년 5개월 3일 4시간 24분 4초 전. ]19년이 넘는 삶이 남아있었고, 여태까지의 삶과 비교하면 가장 빠른 진도였다.
이 몸으로 환생한 지 1년도 채 안 돼서, 저들의 머릿속에 내 이름을 각인시킨 것 아니겠나.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로 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시간을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바로 이전 생, 다섯 번째 삶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만 스물한 개였다.
각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나의 요리 의도를 구현하고, 주방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 즉, 나를 충실히 따르고 주방을 지휘했던, 각 레스토랑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만 골라놔도 21명이다.
앞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확장시키는 것에는 내가 믿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이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을 소모했었다.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예측할 수 없고, 반전의 연속 아니던가. 그에 따라 시행착오도 많은 것이고.
‘100년을 살아도 헤아릴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지.’
그동안 축적된 빅 데이터와 눈치로 사람을 보는 안목은 남다르겠지만, 나는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검증된 사람들을 다음 생에, 다음 생에, 두고두고 사용했었다.
마침 세계적인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에 따라 그들의 밑에서 요리를 시작했던 나의 ‘옛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유현이라는 이 몸으로 환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 3명을 벌써 만났다는 것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나의 요리를 맛보이고 인정받았다는 것에 비할 만큼 효과적이고 파워풀한 일이었다.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마츠로 셰프님의 주방에 남아 있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으신가요?”
다만, 접점을 만들었을 뿐이지, 옛 동료들이 아직은 나와 함께한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다음은 계획되어 있었다.
***
펠리지오 호텔 그룹의 회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총지배인까지 모든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 한 명, 반유현이었다.
“톰슨, 어떻게 반유현이라는 사람을 초대한 건가?”
모든 간부들의 의문점은 일단,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런 경력과 업적이 없는 한국인 셰프를 호텔의 주방에 초대해 요리를 시켜놨더니, 다음날 그 셰프가 몸담고 있는 레스토랑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발된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적인 규모의 미식 축제, 그 행사 현장을 뒤집어놓고 갔다.
덕분에 톰슨의 입지는 자동으로 올라갔다.
“톰슨, 진짜 대단하긴 하네. 자네의 안목이, 최고 연봉을 주면서 자네를 선임한 우리도 대단하고.”
펠리지오 그룹의 회장 리처드가 말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그의 농담 섞인 어조에 직원들이 환하게 웃었다.
“말 좀 해보게 톰슨,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대단한 원석을 발견한 거야? 아무런 경력도 없는 동양인을 호텔 주방에 초대해 강의를 시켰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건가.”
리처드는 톰슨의 안목이 대단하다며, 연신 그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톰슨은 오히려 그런 말에 부끄러워졌다.
실제로 자신은 유현의 파스타의 세밀하고 정교한 맛에 깊은 영감을 받아, 자신의 직원들에게도 그런 영감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고, 그런 영감을 만들어 준 유현에게 요리 업계의 선배로서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와의 커넥션을 만들었다기보다, 그냥 단순한 이유였다.
“저도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천재였습니다.”
“너무 겸손해도 탈이야. 그런 대단한 천재와 커넥션을 만들었다는 건, 그리고 그 천재를 이용해 우리 호텔의 인지도를 확 올려놓지 않았나.”
“실제로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라면, 느꼈을 겁니다. 그냥 천재의 느낌이 아닙니다. 마치……. 비유하자면, 수십 년, 수백 년간 요리를 연구한 베테랑 중에서도 최고 베테랑 같았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가진 그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련함과 능숙함으로 요리를 해내던 그.
톰슨은 그 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예정에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원래 하던 메뉴인 갈비찜과 성질이 전혀 다른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어.’
그 당시엔 오히려 톰슨 본인이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다.
“그래서, 톰슨,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건가.”
“어떤 사태를…….”
“어떤 사태긴, 우리 호텔에 최강의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셰프를 그냥 놓칠 텐가?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세계적인 미식가들만 몇 명이야. 셰프들은 몇 명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를 노리고 있을 텐데, 자네가 선수 쳐야지. 자네가 반유현을 이쪽으로 먼저 불렀으니까, 다른 진영보다는 승산이 있을 것 같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감히 제가 담을 정도의 천재가…….”
“자네는 아직도 교수의 버릇을 못 고쳤어. 자네는 이곳에서 연봉을 받는 직원이야. 좋은 말로 하면 전문 경영인 정도는 되겠지. 매출에 목을 매야 돼. 매출에 목을 맨다고 생각하면 반유현이를 데려와야 되나? 데려오지 말아야 되나?”
리처드 회장은 보다 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천재이고 말고, 그를 키울 수 있든 말든, 상관없어.”
회의 시작할 때, 농담이 섞인 목소리와는 정반대였다.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의 두 배 제시해. 최대 세배까지 승인하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호텔들 사이에서 맨몸으로 레스토랑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때아닌 복이 굴러들어왔어. 당연히 무조건 잡아야 되지 않겠어?”
리처드는 톰슨에게 확실하게 지령을 내렸다.
“우리 펠리지오 호텔에게 엄청난 기회야.”
***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끝났고, 그다음 날.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약 7시간가량 남았을 때였다.
“이번 반유현 셰프의 파워풀함에, 행사장에 있던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파스타, 갈비찜, 백김치, 규카츠……. 모두 군더더기 없는 요리였습니다. 덕분에 저희 펠리지오 호텔의 레스토랑도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의 행사에서 저희 펠리지오 호텔이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 반유현 셰프 덕분입니다.”
톰슨은 며칠을 함께 했음에도, 나에게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이 닳도록 나를 칭찬했다.
그리곤,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했다.
“음. 공식적으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와 어떤 계약으로 일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더 펠리지오’에서는 기본 연봉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사측과 얘기가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펠리지오 호텔 1층에 위치한 ‘더 펠리지오’는 톰슨이 총주방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호텔 자체는 역사가 깊지만, 정통성이 있는 레스토랑은 아니었고, 1층의 쇼핑몰 한 공간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만든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최근 트렌드가 미식이었고, 그에 따라 펠리지오 호텔도 투숙객들에게만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린 것이었다.
관광객들을 자신의 호텔로 유치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그 투자 중 하나로, 펠리지오 호텔은 톰슨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해 ‘더 펠리지오’의 첫 헤드 셰프로 선임했다.
톰슨은 뉴욕 명문 요리학교 CIA의 교수 출신이었고, 수많은 스타 셰프를 배출해낸 사람이었다.
펠리지오 호텔 그룹은 그의 인맥을 통해 셰프 군단을 만들라는 미션을 내줬던 것이다.
“최대한 자유롭게, 반 셰프의 요리 커리어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이 제안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루시앙이 어떤 제안을 할지 궁금하군.’
사실상,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내가 선보였던 요리의 맛과 그 화제성을 생각하면 이 제안이 끝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나의 명함을 가져간 셰프들과 외식업계 관계자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그에 따라 나를 ‘현재’ 붙잡고 있는 루시앙의 제안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가 할 제안의 질을 높이기 위해 톰슨에게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려 했다.
“저는 이제 요리를 갓 시작한, 초보 요리사입니다. 물론, 그대로 믿는 분이 없겠지만요.”
“초보보다는 천재 요리사가 어감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뭐 아무튼,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아직 제가 돈을 쫓으며 요리를 하기엔,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요리가 가진 숭고한 예술의 가치에 사무친, 초보 요리사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거대 자본이 투자된 메이저 레스토랑의 셰프보다, 작은 주방이더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게 훗날 제 요리 실력을 쌓는 것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의 목적은 미슐랭 스타이기도 하지만, 펠리지오 호텔의 반유현이 아닌 반유현 그 자체가 되고 싶습니다. 저만의 표현방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런 요리사…….”
톰슨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내가 원하는 답변을 뱉어냈다.
“어떤 셰프든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셰프가 되고 싶죠. 흠……. 그렇다면 타협점으로,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내건 메뉴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요. 스폐셜 메뉴이자 특별메뉴로요.”
루시앙이 맨 처음 나를 섭외하려 했을 때 내게 그랬듯이, 톰슨도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었다.
연간 4천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 그 중심에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에 나의 이름을 내건 메뉴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회사 측과 협의는 해봐야 할 사항이지만, 제가 책임지고 추진해보겠습니다. 반 셰프께서 가진 화제성과 실력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승인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족할만한 표정을 보이자, 톰슨이 고개를 숙였다.
“후……. 사실, 반유현 셰프……. 제 직업은 사실상, 당신을 섭외하는 것이지만. 양심의 가책이 너무나 느껴집니다. 넓은 바다를 헤엄쳐야 할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는 느낌…….”
“됐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곧장 끊었다.
끝까지 들어보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말을 그가 뱉게 된다면, 톰슨이 회사에 가질 죄책감을 생각했다.
“마지막에 하실 말씀, 전 못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갈 생각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 그게 무슨 말씀…….”
펠리지오 호텔 그룹의 레스토랑, 총주방장 톰슨에게 이 정도의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다음 스텝은 수월해졌다.
내 새로운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부터, 내 옛 동료들을 다시 섭외하는 것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