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3
23화. 긴장할 필요 없어 (1)
“한국에 로또라는 게 있거든?”
“로또?” “라이따?” “로토.” “롯도.”
국적이 다른 여섯 명이 모여서 그런지, 저마다 발음이 제각각이다.
“1부터 45의 숫자 중에 여섯 개를 찍어 맞추면 당첨되는 복권이야.”
“요리 그만두고 복권이나 사라는 말씀……?”
주방에서 독설을 너무 많이 했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이들의 기가 잔뜩 죽는다.
“너희들의 유대감이나 나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여섯 명을 한 번에 부를 만한 명칭이 필요한 것 같아서.”
“그 명칭을 ‘로또’로 하신다는 말씀……?”
“너희가 여섯 명이잖아. 나쁜 뜻은 아니야. 뭐, 복권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 이라는 뜻도 될 수 있고.”
총 여섯 명. 일명 로또 육인방의 실력은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영업일에는 퇴근 시간도 정해놓지 않고 요리를 연구했으며, 매주 월요일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면, 이들을 불러놓고 경연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그 경연이 끝난 뒤에는 우리 레스토랑 근처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이것도 다 공부야.”
이들의 빠른 성장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효과적으로 쓰일 것이기에 이들에게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지금 이들과 함께 있는 이곳은 미슐랭 1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 ‘샤탈르’였다.
“이번 주도 수고했고, 맛보는 음식들은 싹 다 머릿속에 새겨 넣어.”
격려 차원에서 이들을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있지만, 셰프로서의 실력 향상은 얼마나 많은 맛을 경험했느냐에 달려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깊이의 영감을 받는 것은 맛의 경험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레스토랑 ‘샤탈르’의 헤드 셰프 피르앙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땐, 이곳의 셰프가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반유현 셰프께서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직접 나왔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끼리 서로 안면을 터놓으면 좋은 일이 많을 테니까요. 하하! 실제로 뵈니 더 잘생기신 것 같습니다.”
미슐랭 원 스타를 4년째 유지해오고 있는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피르앙이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건넸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저는 올리버 셰프님하고 런던에서 같이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리버 셰프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 셰프님에 대해 너무 궁`금한 탓에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너무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하하! 어? 이분들도 반 셰프님하고 같이 주방에 계신 분들 아닙니까? 여섯 분 모두 정말 성실한 친구들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올리버와의 친분이 있었고, 나에 대한 이야기와 나와 함께 온 로또 육인방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버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피르앙이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제가 식사 시간을 방해한 것 같습니다. 식사 먼저 하시죠. 하하하! 고기는 채끝살이며 그 옆에 곁들여진 버섯은 포타벨라 버섯, 느타리버섯, 송이버섯입니다. 저희 가게에는 총 11가지의 버섯을 취급합니다. 예약하실 때, 셰프의 추천을 받겠다고 하셔서 제가 직접 골라봤습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예, 맛있네요.”
로또 육인방이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나와 함께 일하고 배우면서 내가 맛있다고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로또 육인방의 요리를 목구멍 아래로 넘긴 적이 없었으니까.
이들은 나에게서 맛있다는 말을 듣겠다는 오기로 똘똘 뭉쳐져 있는 상태였다.
“버섯이 엄청 신선하네요.”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레스토랑답게, 내 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다만, 그 맛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모두 머릿속에 그려져 재미는 없었다.
“최민성.”
“에, 예!”
내가 최민성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자 그가 대답했고 자동으로 자신이 느낀 것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버섯은 물에 닿으면 영양분과 맛, 그리고 향이 떨어집니다. 기름과 소스가 묻어있어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맛으로만 본다면, 이 접시에 올려진 버섯에는 물에 데친 버섯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버섯을 물에 데쳐 맛과 향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식감을 살리기 위함인 것…….”
“메이.”
내가 최민성의 말을 끊고 메이의 이름을 부르자, 메이도 길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송이버섯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나면 진액이 나와요. 셰프가 칼질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 진액이 품은 특유의 강한 향은 저희 같은 동양인들에겐 매력적이어도,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향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요리에서는 송이버섯을 통째로 물에 데친 것 같아요. 최민성이 말했듯이 구운 버섯과 물에 데친 버섯이 섞여 있지만, 송이는 오로지 데친 버섯으로만 구성되어 있네요. 비싼 송이를 물에 데쳤다는 게 화가 치밀어 오를 노릇이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시한 요리인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채끝살에 곁들여진 레드와인 소스가 조금 독특해요. 꿀이랑 포도? 라임? 어떤 과일을 으깨서 같이 졸인 것 같은데,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고기와 버섯의 향에 산뜻함을 더해서 좋네요.”
그때 내가 피르앙을 바라봤고, 피르앙은 순간 멈칫했다가 탄성을 내뱉었다.
“응? 그…….”
피르앙은 매우 놀란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리버에게 듣기로 나와 함께 있는 여섯 명 모두, 나를 따르는 주방 보조이자 제자라고 들었을 텐데 저들이 말하는 수준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재료 손질이나 하던 견습 셰프들이라고 들었을 것인데, 저들이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들은 이미 그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어쩌면, 요리의 맛을 보고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자신의 주방에 있는 ‘셰프’라 불리는 이들보다 높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설명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메이가 하나를 놓친 것 같습니다. 레드와인 소스의 어딘가에 분명히, 양파의 흔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파의 단맛이 아니야. 당근의 단맛도 느껴졌어.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인 것 같습니다 셰프님. 한입에 풍부한 맛들이 있는 게 즐겁습니다.”
뒤이어서는 헨리와 제리가 각각 말했다.
“이 정도 소스의 점도라면, 얼마나 끓였을 것 같아?”
나의 말에 여섯 명이 동시에 포크로 소스를 찍어 먹고는 맛을 음미했다.
피르앙도 뒤이어 나올 답변들이 궁금했는지 숨을 죽이고 가만히 기다렸다.
“수분을 증발시켜 소스의 점도를 조절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감자전분이나, 밀가루 또는 천연 점증제인 잔탄검(Xanthan Gum)을 소량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정답.”
주방 보조라 생각했던 이들이, 식재료와 그 조리법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며, 요리를 한 장본인도 아닌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는지 피르앙은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 웃음의 의미의 절반 이상이 놀라움이었고, 나머지는 경외심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요리 경력이 1년도 되지 않은 나의 천재성은 워낙 널리 알려진 터라, 놀랄 것이 없지만 나를 따르는 로또 육인방의 실력을 키운 스승이 ‘나’일 것이라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저기……. 반 셰프님과 그 밑의 셰프들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피르앙이 우리들의 대화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내게 질문을 던지려 했을 때, 홀의 직원이 피르앙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주방에 뭔 일이 있나.’
셰프가 손님 테이블에 나와 있을 때, 다른 직원이 그 중간에 끼어들어 귓속말을 한다는 것은 이 레스토랑에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주방의 재료가 떨어져 메뉴를 빼야 한다거나, 주방에 작은 불이 났다거나, 예측 못 한 상황이 갑작스럽게 벌어졌을 땐,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주방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반 셰프님. 나중에 커피 한 잔이라도 하면 좋겠네요. 뭐, 이 동네의 요리 동향이라든지…… 할 얘기가 많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뒤에 나올 요리에 대해선 이 친구가 친절히 답해드릴 겁니다. 저는 주방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귓속말은 들은 피르앙은 굳은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인 뒤에 주방으로 걸어갔다.
내가 생각한 대로 급한 일이 생겼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향했지만, 로또 육인방의 실력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이 찜찜한 표정이었다.
내가 로또 육인방과 대화하는 것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홀 매니저, 리안입니다. 이제 디저트 준비해드릴 텐데, 메인 요리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로또 육인방에 동시에 나를 쳐다봤고,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이들이 홀 매니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학습하고자 하는 열정은 그 누가 봐도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그때, 우연하게도 홀 매니저의 손에 들려있는 주문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홀 매니저가 피르앙에게 귓속말을 했던 이유와, 피르앙이 급하게 주방으로 걸어간 이유가 적혀있었다.
[ 11번 테이블. ]-양송이 크림 소스 & 안심 스테이크
-셰프 특선 버섯 코스.
한 개의 코스요리와 하나의 단품 요리.
-피노 누아르 와인(Pinot Noir Wine).
-시바리스 소비뇽 블랑(Sibaris Sauvignon Blanc).
그리고 두 가지 와인.
“11번 자리가 저쪽인가요?”
“흐! 에……. 무슨 문제라도……?”
나의 물음에 홀 매니저는 손에 들려있던 주문서를 황급히 몸쪽으로 가져가더니, 나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내가 가리킨 11번 테이블에는 두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코스요리와 단품을 동시에 시켰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코스요리에는 소믈리에가 각 단계의 요리에 맞는 와인을 페어링해주는데, 저 테이블은 와인을 병째로 두 병을 시켰다.
와인이 페어링 되지 않는 단품 요리에 곁들여 먹을 와인을 두 종류 주문한 것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사람이 먹고도 남을 요리와 술을 시켰다.’
레스토랑의 창의성과 구성을 볼 수 있는 코스요리와, 셰프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단품 요리,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술. 확실하진 않지만, 익숙한 패턴이었다.
레스토랑의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닌, 평가하러 온 사람들.
그런데, 음식을 평가하러 온 미식가나 비평가라면, 대부분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밝히기 마련인데 저들은 맛과 레스토랑을 평가할 것처럼 주문해놓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가능성이 높다.’
홀 서버이든, 주방의 셰프든, 요리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정황상 저들의 정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미슐랭 스타, 평가원들이 오셨나 보군요.”
“아…….”
나의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직원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실제로 피르앙이 주방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이유는,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손님이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주방 안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저 안에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로또 육인방의 눈동자도 미친 듯이 흔들렸다.
“너네도 알고 있지? 여기서 평가원들을 만났다는 건, 우리 레스토랑의 차례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거.”
나는 11번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계속 쳐다봤다.
요리를 음미하는 게, 범상치 않다.
***
미슐랭 스타를 평가하는 평가원들은 정해진 예산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당연하게도 지역별로 인원을 구성해 레스토랑들을 평가한다.
따라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있는 이곳에도 평가원들이 곧 나타날 것이라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왜 떨어. 자신 없어?”
그 예고편대로, 내가 메뉴 개발부터 오픈까지 참여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도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남자 둘이 들어왔다.
로또 육인방을 비롯한 주방의 셰프들도 우리 홀에 미슐랭 평가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방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이들의 경력이 짧은 터라, 그 무거운 분위기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총주방장이나 부주방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긴장하지 마. 우리가 연습하고 노력했던 방법은 세계 최고야. 그 어떤 주방도 우리 시스템을 따라오지 못한다. 다들 알고 있잖아.”
내가 나지막이 말하자,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예!! 셰프!”
삐비비빅!
홀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리고, 주문서가 프린팅되어 나왔다.
“내 말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는 새낀 당장 주방에서 꺼지면 되는 거고, 나머지는 요리 시작한다. 오일 A 코스 성게 알 링귀니(Linguine) 파스타, 단품 바질 페스토 파스타 주문 들어왔다. 메인 요리는 내가 직접 맡고, 나머지 요리는 서빙되기 전 나한테 다 가져와.”
“예! 셰프!”
내 오더에 주방의 셰프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섯 번의 삶을 사는 동안 역대 최연소 미슐랭 스타를 거머쥔 사람의 나이가 31살이었다.
그건 바로 이전 생의 ‘나’였고, 이번 생엔 그 기록을 깨부술 모든 준비, 그리고 타이밍이 갖춰졌다.
띵!
“서버!”
내가 종을 치며 홀 매니저를 부르자, 그가 요리가 담긴 접시를 가져갔다.
매번 느끼지만 이번 생은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