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요리업계 슈퍼맨(1)
-반 셰프를 만나게 해준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제작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엄청난 영감을 받았죠.
-베이거스에서 모든 셰프들이 놀랐습니다. 저는 그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제 요리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인터뷰는 다 땄고, 흠. 편집만 남았지? 제일 큰 문제가 남았네.”
방송사 FOX의 편집실.
파리에서 반유현 셰프와 며칠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제작진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그냥 탑 셰프야.”
“그쵸. 요리 실력, 노하우, 레스토랑을 꾸리는 거, 주방에서의 카리스마…… 역대 출연 셰프들과 비교해도 뭐 하나 뒤처지는 게 없네요. 저희뿐만 아니라 그들도 인정을 하는 것 보면…….”
방송 프로그램 ‘더 셰프’의 메인 감독인 스티븐 리와 스텝들의 대화였다.
다큐멘터리 방송의 특성상, 셰프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낱낱이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 기간 내에는 셰프와 오랜 시간을 붙어 있게 된다.
그에 따라 스티븐과 그의 휘하에 있는 스텝들은 반유현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신했다.
“여러모로, 지금까지 촬영된 분량을 보면 확실하게 콘티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편집 방향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거침없이 성장하는 천재’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방송에 내보내면, 오히려 시청자들한테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기획이랑 실제 반유현 셰프의 모습은 너무 달랐어.”
세계적인 셰프들과 여러 번 촬영을 진행했던 터라, 이들도 셰프의 실력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주방 안에서, 반유현의 행동과 말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의 몸에 밴 노하우나 재료에 대한 이해도는 그가 이미 세계적인 탑 셰프라고 한들 이상할 점이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주방을 휘어잡는 그의 통찰력과 카리스마는 어쩌면 그들보다 한 수 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미료는 무조건 직접 만들어 사용할 거야. 특히나 스모크 파프리카 가루, 표고버섯 가루, 새우 가루, 다시마 가루 같은 향이 뚜렷한 조미료들. 그리고 요리에 사용되는 허브는 직접 재배해서 사용한다. 손이 많이 가겠지만 그 정성은 결국 맛으로 간다는 거. 이제 그만 말해도 되지 않나?
-예! 셰프!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반유현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셰프라면 누구나 자신의 요리에 있어서 맛을 양보하지 않는다지만, 반유현의 맛에 대한 ‘집념’은 그 어떤 셰프보다 강해 보였다.
“음. 정말로 미숙한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천재라고 한다면, 뛰어난 실력을 뽐내지만 어느 정도 덜 익은, 날 것의 느낌도 조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반 셰프님은 너무 완벽하니까요. 처음의 기획에 맞춰서 최대한 편집해 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그러게, ‘천재’라는 것보다 이미 완성된 셰프, 숨어있던 고수, 그런 느낌으로 콘티를 다시 짜야 할 것 같아. 이거……. 우리 기획 뒤집은 적이 여태 한 번도 없었지? 최초네.”
다큐멘터리 형식의 방송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하더라도 그 셰프를 어떤 스토리 라인으로, 어떤 촬영기법으로 영상에 담을 것인지는 기본적인 기획과 그에 따른 콘티가 있는 법.
그 기획을 뒤집는다는 것은 이미 수십 명의 셰프를 촬영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도 최초였다.
처음 기획의 의도와 셰프의 성질이 맞지 않더라도, 그 틀에 셰프를 집어넣는 게 이 제작진들의 특기였는데, 반유현은 자신들이 짜놓은 틀에 넣을 수 없는 존재였다.
‘천재’라는 단어로 형용될 수 없을 만큼,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이미 국장님께 보고한 기획안도 다시 수정해서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제일 문제구만. 예능국 새끼들 귀에 들어가면 피곤해질 텐데. 국장님께서 촬영분을 보셨을라나?”
“예능국이요……?”
이미 모든 촬영은 끝마쳤던 상태이기에, 편집의 방향만을 수정하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예능국 놈들이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 제작 준비 단계에 있거든. 셰프 열다섯 명을 섭외해서 각 나라의 뭐 어쩌고저쩌고……. 요리 경연하는 프로.”
“그게 왜 문젭니까?”
“그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쓸 만한 셰프들을 찾고 있다고 했거든. 더군다나 국장님께서 예능국 출신이시잖아. 내 생각엔 국장님이 그쪽에 언질을 줬을 것 같은데.”
스티븐의 말에 조감독은 그제 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죠?”
“걔네가 섭외할 열다섯 명 중에 네 명이 제작 투자사에서 밀어 넣은 셰프들인가 봐. 나머지 셰프들은 그 네 명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야. 그 네 명을 대놓고 밀어줄 텐데, 실력으로 될 문제가 아니잖아. 뭐, 우리도 그렇지만 연출과 편집으로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예능국 놈들이니까…….”
미슐랭 스타 셰프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요리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젊은 셰프들, 즉. 셰프로서 미래가 짱짱한 열다섯 명을 섭외해 경연을 펼치는데, 그중 네 명은 제작 투자사가 직접 꽂아 넣은 셰프들이었으니 나머지는 들러리나 다름없다는 것.
반유현은 그 정도 단계의 셰프들 중에서 누구보다 파워풀하게 요리업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 그만한 불쏘시개가 없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반유현 셰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예능국, 그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국장님을 통해 우리가 반유현 셰프를 촬영한 영상을 봤다면……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고 애타게 달려들 거야. 불쏘시개로 사용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에는…… 반유현 셰프만 한 사람이 없으니까…….”
“반유현 셰프의 커리어에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저희 프로그램에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겠네요.”
반유현이 촬영 기간 동안 보여줬던 행동들은, ‘진짜 셰프’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모습들이 많았다.
맛에 대한 집념이며, 열정이며, 주방에서 셰프의 태도나 자세 등 어느 하나 빈틈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반유현이 실제로 보여준 모습이 그랬고, 그것을 그대로 편집해 방송에 방영한다고 한들.
차후에 방영될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반유현을 그저 다른 셰프를 띄우기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한다면, ‘더 셰프’ 팀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희가 라스베이거스 갔다가, 파리 갔다가, 발품 팔아서 노력한 게 얼만데 그 새끼들은 공짜로 그걸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아무튼. 우리 프로그램의 신뢰도 문제도 그렇고, 반유현 셰프님의 미래도 그렇고 그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할 순 없지.”
“이런 건 진짜. 국장님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발굴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중재는 무슨,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국장님께서도 반유현 셰프가 ‘라스트 테이블’에 출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실 거야. 반유현 셰프한테 직접 전화를 해야겠어.”
“같은 방송사끼리 출연자의 섭외를 막는 게……. 크흠! 뭐, 그쪽이 먼저 더럽게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대화가 끝마무리 되어갈 때쯤에, 편집실의 문이 열렸다.
“수고들 많네.”
“구, 국장님?”
***
프랑스 파리 먹자골목이라고도 불리는 몽토르게이 거리.
그곳에 빨강, 주황, 노란색이 보기 좋은 비율로 섞여 있는 간판이 걸려있다.
거리에 온통 불어와 영어로 되어있는 간판만이 있었는데, 한글로 적혀있는 간판이 눈에 딱 들어온다.
파리 한복판에 걸린 나의 이름, 그리고 그 밑에 셀 수 없이 몰려있는 인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레스토랑은 다시금 이슈가 되었다.
“여기가 그! 분식집 아들 반유현이 차린 레스토랑이야?”
“와……. 이미 파리에서 유명한가 봐!”
“오매! 주모! 파리 한복판에 한글이!”
이 몸에 있던 기억들과 여태까지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엔 특유의 정서가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다른 나라에서 누군가 자랑스러운 일을 해내면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는 것.
그걸 ‘국뽕’이라고 한다고 했나. 파리 한복판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한글 간판이 그 정서에 한몫을 한 모양이었다.
물론, 한글뿐만이 아니라 그 간판 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뭐, 내가 잘되는 것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엥? 분식집 아들! FOX의 ‘더 셰프’에도 출연했대!”
“한국어로 간판이 달린 식당에, 외국인이 그래서 많은 거야?”
총 여섯 개의 테이블, 나를 포함하면 다섯 명의 셰프가 전부인 가게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음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어제 방영된 ‘더 셰프’ 때문이었다.
어저께 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과정과 나의 주방에서의 생활을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하루 뒤인 오늘.
나는 나의 이름이 걸린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요리사 인기가 영화배우 뺨치네. 저 레스토랑 맛있어서 가는 거냐?
-ㅋㅋ죽기 전에 저 셰프의 요리는 먹어볼 필요가 있음. 방송거품인지 맛있는 건지.
-요리의 시작을 방송으로 했으니 거품이 있을 듯요.
-모르면서 지껄이네. 라스베이거스에서 셰프들 줄 서 있는 사진 봐라.
-이번에 방송된 거 보면 오바 연기하는 것 같던데. 나이대가 비슷한 셰프들이 반유현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게 완전 콩트였음.
나에 대한 논란은 방송이 방영된 이후에 더 커졌지만,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저들은 내 요리의 맛을 보지 못한 자들이며, 내가 원한 건 이슈화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레스토랑의 입구 앞은 인산인해였지만, 레스토랑의 내부는 그나마 조용했다.
매출이 아닌, 오로지 미슐랭 스타만을 위한 가게였기에 규모가 작았다.
서버는 없었고, 내 밑에서 요리를 배웠던 셰프들이 요리와 서빙을 동시에 했다.
“에피타이저, 아뮤즈 겔(Amuse geule)로 튜나 타타르(Tuna Tartare)입니다.”
체구는 작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당돌한 성격을 가진 메이가 서빙하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참치살은 단계별로 여러 온도를 거쳐 숙성시킨 회이며, 막 다져놓은 것 같지만, 정확한 크기로 잘게 잘라 낸 것입니다. 아보카도, 폰즈 소스와 와사비로 식감과 맛을 냈고 직접 스리라차 소스를 만들어 살짝 넣었습니다. 소스와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실 수…….”
설명을 듣고 요리를 맛본 손님들의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셰프들이 주방이나 홀에서 움직이는 것만 봐도 불편함 없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픈 첫 날의 어수선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요리부터 코스의 시간에 맞는 서빙까지 모든 게 정교하게 계산된 것처럼 흘러갔다.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맛은 미슐랭 평가단의 발길을 재촉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슈화시키는 것에도 성공했으니, ‘현지의 맛집’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이 동네에 재방문하게 될 미슐랭 평가단원이 이곳에 방문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내가 주방에서 플레이팅을 하며, 감독하고 있을 때 홀에서 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손님! 저희는 백퍼센트 예약제이고요…….”
당연하게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예약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나.
진상 손님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불청객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도 그런 듯 메이가 주방과 홀이 연결되어 있는 틈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말했다.
“셰프님, 셰프님 찾으시는데요? 방송국에서 왔다고.”
“방송은 필요 없어 이제, 돌려보내.”
“아니, FOX사의 PD님이래요!”
메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방을 울렸고, 나는 홀 한편으로 나갔다.
FOX사는 이 레스토랑이 성공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게 해준, ‘더 셰프’의 방송사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햐안 백발의 곱슬머리, 그리고 뿔테안경을 낀 남자.
그 남자가 명함을 건네며 나에게 인사했다.
-‘라스트 테이블’ 제작 총괄
“예능국에서 무슨 볼일이.”
명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바로 이전 생에, 쿡방 열풍의 ‘종말’을 불러왔던 프로그램의 PD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PD와 국장,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작진들이 전생에 셰프들에게 저질렀던 악마 같은 행동들은 너무 유명했기에,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표정이 찡그려진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매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 불타는 정의감 따위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은 바뀌지 않지.’
1회차, 2회차, 3회차… 그리고 6회 차의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사람은 바뀌지가 않는다. 전생에 했던 짓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런 점에서 이놈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이 PD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개수작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의 시작이 좋다했더니, 꼭 이런 식으로 똥파리가 끼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