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요리업계 슈퍼맨(2)
“각 나라의 유명 인사들을 모시고, 그 나라의 요리를 평가받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유명 배우 누가 있죠? 이병현 씨, 최민석 씨 같은 분들 모시고 한식을 선보여 평가받거나, 다른 예를 들면 독일 국적의 톱 레이서인 슈마엘을 모시고 독일의 전통 요리를 평가받는 거죠. 경연 형식으로요.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대중성이 있는 그들이 요리를 평가하면 좋은 점이…….”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지던 젊은 셰프들을 섭외한 뒤, 그 셰프들의 레시피를 방송에서 공개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했다. 물론, 여기까지였다면 문제가 없었다.
셰프들의 레시피를 응용해 대량으로 냉동식품 또는 인스턴트식품을 만들어, 프로그램의 이름을 붙인 뒤에 팔았고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뒤, 레시피를 개발한 셰프들에게는 고작 차비 정도의 돈을 쥐여주는 파렴치한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톡스 시술, 성형 등을 강요하며 셰프 자체를 아이템으로 사용하려 했던 놈들.
리얼리티 경연 프로그램이라 하지만, 모든 것이 짜여 있었다.
쿡방으로 돈의 맛을 제대로 본 제작진들은 더욱더 공격적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방송의 힘을 빌려 셰프의 꿈을 가진 이들을 유혹해, 단물 빨고 버리기를 공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시간이 지나 이 만행들이 밝혀지면서 셰프들이 방송에 진입하는 장벽이 높아졌다.
셰프들이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 아니라, 대중들이 쿡방을 보는 시선이 확 달라졌다.
그에 따라 스타 셰프 또는 셰프테이너라 불리는 재능 많은 셰프들의 탄생은 이전과는 다르게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양아치 같은 새끼.’
이 프로그램 때문에, 전생에 많은 셰프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내가 지금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 아니다.
매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갈아 넣는 나에게, 다른 셰프들을 대변하는, 불타는 정의감 따위는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지금 불쾌했던 이유는, 브랜든, 이 PD 놈이 나에게 개수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쇠가 달구어졌을 때 두들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를 잡으라는 말이지요. 한국말로는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 정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셰프님,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곳에 찾아올 손님들의 발길을 끊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펼쳐 홀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오는 것에, 저희 방송사가 많은 노력을 했잖아요? 방송가에서는 배신을 가장 싫어하거든요. 그 말도 아시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내 표정에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가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는지, 아예 대놓고 협박을 시작했다.
“제가 방송 일을 하지만, 참…… 방송이란 게 양날의 검입니다. 어떻게 다듬고 가꾸냐에 따라 맛집이 쪽박집이 되기도 하고, 쪽박집이 맛집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따위가 뭐, ‘레드테이블 – 반유현’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을 망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게 속을 살살 긁더니, 내가 출연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 나열했다.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될 것이라는 둥, 스타들과의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둥.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고 실력 좋은 셰프들은 혹할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저희 국장님께서도, 반유현 셰프를 꼭 섭외하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그 속내를 알고 있는 나한테 통할 리가 있겠나.
마음 같아선, 손에 쥔 무쇠 팬으로 얼굴을 깨고 싶었지만 이놈은 그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방송의 제물로 사용하려는 놈 아닌가.
방송의 힘을 빌려 협박을 섞어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이번에 출연을 거절하더라도 다음에 또다시 나를 귀찮게 할 놈들이었다.
전생에 이들이 했던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고.
“출연하겠습니다.”
아예 싹을 뽑아 버리고 싶어서, 대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뽑아 버린 싹을 내 성장의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다.
주방에서 일을 하던 네 명의 셰프들이 나의 대답에 놀란 듯이 내 쪽을 쳐다봤다.
내가 무심하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들은 다시 주방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의 선택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게 무엇이든 믿겠다는 의지가 보여졌다.
“그럼, 출연하시는 겁니다? 셰프님! 저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예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할 게 아니라구요! 다른 셰프들은 고개를 재깍 숙이던데……! 하하하하!”
브랜든이 나에게 손을 건네며 웃었다.
‘전생의 죄까지 얹어서, 벌 받아야겠다. 넌.’
그 건방짐에 없던 정의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첫 방송은 1월이 목표고, 첫 촬영 날은 정해지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PD 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타이밍은 ‘그때’와 딱 맞아떨어질 것이다.
***
‘더 셰프’ 가 방영되고 나서 약 5개월.
즉,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 오픈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약 5개월 동안, 테이블은 비어있는 날이 없었고 레스토랑은 자리를 완벽하게 잡았다.
셰프로서의 내 이름 석 자를 파리 전역에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슐랭 평가단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방문을 했으며, 그 결과 발표 날까지는 약 3개월이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분명, 3개월 뒤에는 더 많은 힘을 얻고, 지금과는 또 다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며 차근차근 그때 이후의 계획들을 수립하고 있었다.
“미슐랭 가이드 발간 일까지 시간을 맞춰 주실 수 있을까요? 아, 표지 작업은 어떻게 됐습니까?”
-표지는 셰프님이 저번에 괜찮다고 하셨던 걸로 했습니다. 색감만 더 추가해서. 그때까지 약 3개월 남았으니까,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의 우승 보상으로 걸려있던, 나의 이름으로 된 요리책도 발간을 준비했다.
출간 전, 꽤나 큰 규모의 광고들도 시행했고, 7%의 인세로 계약이 되어있었으니, 이곳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올 것이 기대됐다.
원래 책 제목은 무게를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방, 쿡방 열풍이 불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서에 맞게 제목을 지었다.
120페이지 분량의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은 책이었다.
-본 내용은 편집팀에서 손 볼 게 거의 없었다는데요? 이 책의 모든 구성을 셰프님께서 하셨다면서요? 엄청 알차다고 하던데. 편집팀 모든 직원들이 한 번에 패스했다고 하네요. 깊이 있는 레시피들과 지식들을 이렇게 쉽게 설명한 책이 시중에 없다고 할 정도니까요.
전화 통화였지만, 출판사 직원의 존경스러운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전생엔 다섯 권의 요리책을 발간했고, 그중 세 권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으니, 내가 책을 구상하는 능력과 경험은 두말할 것 없었다.
내가 전생에 발행했던 책들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이고, 쉬운 요리들을 넣었더니 편집자의 반응이 좋다.
-요리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 딱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어쩜 못하는 게 없으십니까 셰프님? 조만간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제가 직접 파리로 날아가서 크게 대접하겠습니다! 호호호!
내가 휴대폰을 닫자,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셰프 중 한 명인 최민성이 다가왔다.
“셰프님, 내일부터 촬영 들어가시는데,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항상 충성심이 넘치며, 나에 대한 충성심만큼이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이 주방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놈이다.
“없어.”
“옙!”
나의 단호한 대답에 무안하다는 듯이 최민성이 주방 한편으로 사라지자, 메이가 또 내게 다가왔다.
“셰프님, 라스트 테이블, 내일 촬영하시는 그 방송프로그램 있잖아요? 그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대형 외식업체들이 꽂아 넣은 셰프들 밀어주기라던데요?”
“알아.”
“아니, 아니! 셰프님은 그냥 그놈들을 위해서 그냥 깔아주게 되는 거라고, 소문이 파다한데요?”
메이가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메이가 나를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순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원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가진 그녀였다.
“영국 최대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아시죠? ‘에브리데이’. 거기 회장이 방송사 FOX의 최대 광고주 중에 한 명인데, 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셰프들 네 명이 출연한대요!”
“알아.”
“아니이! 지금 셰프님 그렇게 평온하신 거 보면, 전혀 이 사태를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메이가 앙탈을 부리자, 그 옆에 있던 헨리가 다가왔다.
“메이, 셰프님께서 그런 일을 모를 리가 없잖아. 가만히 있어.”
모델 같은 얼굴과 훤칠한 키, 생각하는 것도 올바른 그였다.
잔잔한 목소리로 메이를 타이르자 메이가 풀이 죽은 상태로 주방집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셰프님, 방송에 출연하시는 이유가 당연히 있으시겠지만, 저희도 궁금합니다. 음, 셰프님의 방송 출연은 저희가 소속되어 있는 이 레스토랑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니…….”
“궁금하냐.”
“예.”
내 주방에 있는 최민성, 메이, 헨리, 제리 모두 내가 방송에 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촬영 날짜가 당장 내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내 눈치를 보면서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궁금증은 촬영 전날인 이제야 터진 것이고.
“쪽박집을 맛집으로 만든다느니, 맛집을 쪽박집으로 만든다느니 그 소릴 해대는 걸, 언젠가 또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밟아서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이야.”
“예?”
네 명의 셰프가 온전히 나의 말에 집중했다. 미슐랭 평가단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왔을 때도, 감정에 동요하지 않던 나였다.
매사에 무심한 성격을 가진 내가, 이 정도까지 한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 PD가 셰프님께 무례하게 말하는 건 봤는데, 셰프님께서 그놈들을 밟아서 없애버린다고 한다고 할 정도로 그놈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 겁니까……?”
“그냥, 귀찮은 것들이 내 눈에 계속 띌까 봐. 별것도 아닌 놈들이 뭐라도 되는 마냥 까부는 게 싫어. 성가신 건 질색이거든.”
“아…….”
내가 이유를 밝혔음에도 이들의 궁금증이 다 가시지 않은 듯했고, 제리가 내게 물었다.
“그 프로에 섭외된 셰프들 열다섯 명을 보아하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셰프들이기는 하나, 셰프님의 실력에는 한 참 못 미칠 것 같습니다. 괜히 그 정도의 셰프들과 같은 수준으로 방송에 비쳤다가 여태껏 쌓아온 명성에 영향이 미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수준으로 못 묶어.”
“카메라 안에서 하는 행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놈들 편집 실력이 아마추어도 아닌데요. 비슷한 실력으로 묶어서 아득바득! 경쟁하는 식으로 편집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셰프님을 깎아내리는 것이고요. 저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셰프님의 진짜 생각이 궁금합니다.”
형인 헨리 못지않게 모델 같은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진중함을 가진 그였다.
“그 어떤 편집 실력을 가졌더라도, 손을 못 대게 만드는 거야 외부적으로.”
“대체 어떤 말씀이신지…….”
“첫 방송이 1월이래. 미슐랭 스타가 발표되는 달도 1월이잖아.”
내가 말함과 동시에 네 명의 셰프가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래. 고만고만한 셰프라고, 나를 포함해서 열다섯 명을 섭외했어. 어찌저찌 편집으로 나를 깎아내리려 하겠지. 저들이 미리 선정해둔 셰프들을 띄우기 위해서. 그런데, 내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모든 촬영을 끝내놓고 방영이 얼마 남지 않은 1월에 말이야.”
왜, 제작진들의 머릿속엔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되리란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된다면 방송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중학교 리그에 섭외한 꼴, 프로 선수와 중학생 간의 의미 없는 경쟁은 애초에 시청자들이 납득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컥…….”
“PD 놈을 밟아 놓는 것도 그렇고. 사건 하나를 만들어서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될 때, 더 큰 주목을 받게 하려고.”
이제 이해돼? 라는 식으로 셰프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앞길을 방해하려는 상대를 잔혹하게 짓밟겠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내가 스스로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리란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