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쓸어 담기 시작(1)
프랑스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대부분이 나의 말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했다는 것은, 유럽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셰프들이 내 말에 지지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프랑스라는 나라는 유럽 내 요리의 성지였고, 셰프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까.
“존경하는 선배 셰프님들…….”
미슐랭 스타 셰프들, 총 214개의 별들 앞에서 한 내 연설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셰프들의 특징이라 함은, 요리를 요리로 보지 않는 것이다.
“여기 계신 셰프님들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숭고한 예술, 또는 그 이상의 행위를 요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정의를 해두셨고, 그에 따라 요리는 갇힌 틀 없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을 알고, 그에 따른 감정선을 살짝 건드려줬다. 뿐만 아니라, 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방송이라는 ‘틀’은 실력이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셰프들을 주목받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기능을 이용해서 젊은 셰프들의 능력을 착취하고…….”
방송의 힘에 의해 핍박받고 있는 젊은 셰프, 즉 후배들의 힘든 현실을 말하고 있는데 모른 체한다면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후……. 여기 계신 선배님들, 그리고 저희가 힘을 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감정에 호소하는 떨리는 목소리까지 연출해줬더니, 하나둘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려 나의 연설에 지지의사를 보내왔다.
자신이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내 말에 딱히 관심이 없던 셰프들도 얼떨결에 잔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잔을 들어 올린 뒤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던 셰프들도 나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방송이라는 외부의 강력한 힘이, 진정 실력이 있는 셰프를 그저 방송을 위한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실력이 없는 셰프들을 끌어올린다면 선배님들께서 만들어 온 이 업계의 찬란한 역사를 지키고자 하는 셰프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발언들이 살짝 오바스럽기도 했지만, 분위기상 자연스러웠다.
세계 최연소로,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그것도 네 개나.
이 행사장에서 가장 많이 호명된 이름은 ‘반유현’이었고, 이 현장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이 나였다. 그런 나의 말이 단지 어리광이나 투정으로 보이지는 않을 터였다.
단언컨대, 내 말은 저들의 머릿속을 확실하게 울리고 있다.
“방송사, FOX의 라스트 테이블 PD와 제작진은 저, 그리고 우리 셰프들의 숭고한 자존심과 가치를 짓밟으려 했습니다.”
나의 레스토랑에 찾아와 협박을 했던 것, 방송 편집을 위해 나에게 노골적인 언사를 퍼부었던 것. 그리고 저들이 셰프들의 레시피를 착취하려 했던 정황들. 나는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말했다.
내가 모든 말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했을 때, 무대 아래에 있던 한 중년의 남성이 외쳤다.
“자! 반유현 셰프의 말대로!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가 지킵시다! 방송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요리의 가치를 그저 방송의 소재로 사용하려 했던, 저! 제작진들! 그리고 저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일조한 회사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힘을 모읍시다. 위하여!”
현재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피에르 하프만이었다.
셰프들 중에선 가장 선배이자, 셰프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아온 그가 외치자, 잔을 들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한 번 더 들어 올려 건배를 했다.
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건배가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불러올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끝.’
그러나, 수많은 조명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심기를 건드린 ‘라스트 테이블’의 PD와 제작진들이 몰락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환생한 이후로, 가장 임팩트 있던 밤이었다.
***
[ 최연소 미슐랭 4스타, 반유현 “요리는 숭고한 예술,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 ]어느 포털, 어느 신문사에서도, 내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합치면 214개. ‘별’을 가진 셰프들, 방송사 FOX의 ‘라스트 테이블’ 제작진 규탄. ] [ 파리를 기점으로, 미슐랭 스타 셰프들 갑질 방송 퇴출 운동 시작. ] [ 요리 업계를 위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움직이다. ]나의 말과, 나의 말에 따른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행동이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과학으로 치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여 한 명의 젊은 천재 과학자의 말에 힘을 모아줬다고 하면 되려나. 정확한 비유는 아닐지라도, 이번의 일은 그 정도 파급력쯤은 되는 것 같았다.
그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언론사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 방송사 FOX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사로 거듭나겠다.” ]제작진과 방송사는 급하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일이 너무 커진 뒤였다.
논란은 원래 더 큰 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 라스트 테이블 출연 셰프들의 레시피 식료품 업체와 거래한 정황들 포착! 단독공개! ] [ 출연 셰프들 “레시피를 편법으로 팔아먹으려 한 제작진 고소. 방송출연 계약서도 불공정.” ]그 결과, 나를 인위적으로 편집한 그 제작진들은 해산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나를 협박했던 총 책임자, 브랜든 PD와 국장은 사표를 냈다.
그리고 ‘라스트 테이블’의 촬영분은 방송사의 뜻에 따라 전부 폐기 되었고, 그 방송이 나와야 될 시간엔 내가 이전에 출연했던 ‘더 셰프’가 한 번 더 방영되었다.
-오직 맛, 너희들이 생각한 맛을 네 요리를 먹는 사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어야 돼. 대화의 언어가 다르면 안 된다고.
-예! 셰프!
다큐멘터리 ‘더 셰프’에서는 주방을 호령하는 나의 모습이 다시 한번 비비쳤다.
이미 몇 개월 전에 방영된 방송분이었지만, 이번의 파급력은 그와 달랐다.
약 91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된 저번 방송과는 달리, 재방송임에도 약 193만 명의 시청자를 달성했다.
이는 미국 내 가장 인기 높은 드라마인 ‘우주이론’의 시청자 230만 명과 비교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각종 매체들은 방송사의 갑질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낸 젊은 셰프인 ‘나’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나 뭐라나. 뭐 나를 포장해주니 좋긴 하지만.
나의 메일함은 어떤 메일이 중요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메일이 쌓여있었고, 핸드폰은 번호를 아예 바꿔야 될 판이었다.
“자네가 뜬금없이 연설을 할 때는 진짜 심장마비 걸릴 뻔했네. 반 셰프.”
루시앙은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지난 미슐랭 시상식에서 있던 나의 발언들을 되짚어 보며 말했다.
“그런 카리스마…… 내가 자네를 프랑스 파리의 셰프로 데뷔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 덕분에 내가 자네의 스승인줄로만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탄로 났어. 허허. 나에겐 그런 카리스마가 없거든. 허허.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구만.”
“루시앙 셰프님께서 우려했던 상황이라 함은…… 제겐 좋은 상황 아닙니까.”
우린 서로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격식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사이.
“당연히, 자네가 그 연설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는 것은 좋지. 이제 나의 브랜드인 ‘레드 테이블’이 자네의 이름에 묻히게 생겼네. 하하하! 별수 있나 뭐. 이제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만.”
루시앙은 나와의 이별을 이미 예측한 듯이 말했다.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다음 목표는 어딘가? 미슐랭 스타를 얻었고, 자네는 지금, 한국에서 파리로 날아왔을 때랑은 그 이름값과 명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나는 미슐랭 스타 네 개를 동시에 받아낸 자네를 잡아 놓을 수 있는 재산도 없고 여력도 없네.”
“아직 파리에 남아있을 계획입니다.”
“파리?”
루시앙은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이제 이 도시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에 위치한, 그리고 가장 고급 호텔인, 포시즌스 호텔에 제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요.”
루시앙이 놀란 눈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는…….”
“예, 지금까지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던 그 레스토랑이 올해 2스타로 강등되었죠.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을 구하고 있습니다.”
“참……. 자네 계획은 언제나 놀라워.”
***
팔라스 등급(Distinction Palace).프랑스는 5성급 이상의 호텔을 팔라스(palace)라고 한다.
파리에 위치한 팔라스급 호텔은 12개가 있는데, 그중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Paris Golden Trangle)’지대에는 ‘포시즌스’라는 호텔이 있다.
포시즌스라는 이름은 전 세계 5성급 호텔의 리스트에 33개가 될 정도로 세계적인 호텔 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내게 중요한 건 그 호텔이 얼마나 고급지고, 얼마나 서비스가 좋으냐는 것이 아니었다.
‘타이밍이 딱 좋다.’
포시즌스 호텔 파리에는 총 세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세 개의 레스토랑이 가진 미슐랭 스타는 1개, 1개, 3개. 합치면, 5개로 모든 레스토랑이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작년까지 3개를 가지고 있던 레스토랑이 올해 2개로 강등되었고, 그 레스토랑을 총 책임 하던 헤드셰프가 강박과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내어놓은 것이다.
덕분에 포시즌스 호텔 측은 발 벗고 나서 그 레스토랑을 새로 맡을 셰프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 그 새로운 셰프가 될 후보 중 한 명으로서 초대장을 받고 포시즌스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돈 냄새 가득하군.’
그 호텔로 향하는 길.
프라다, 돌체,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이 거리에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덕분에 이 거리는 유명인들과 패셔니스타들이 좋아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여전하네.’
포시즌스 호텔의 앞에서 그 건물을 올려다봤다.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은 아니지만, 건물 외관 구석구석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호텔의 대문에는 화려한 유리 세공과 조명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던 한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체크인 하시겠습니까? 짐이 따로 있으시면 제가 로비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오늘 14시에 요리사들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요리사들의 모임이란, 이 호텔 레스토랑을 새롭게 이끌어나갈 후보, 그 셰프들의 모임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안내해서 걸어간 곳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동시에 일어나서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미국에서 온 올린입니다.”
미슐랭 스타 11개를 가진 셰프.
“오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슈퍼스타를 여기서 뵙는군요. 하하.”
미슐랭 3스타인 포시즌스 도쿄의 헤드 셰프.
굵직한 이력을 가진 셰프들이 내게 인사했다.
나는 이들의 얼굴을 잘 모르지만, 이들은 나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로비를 돌아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얼굴을 보더니 밝은 미소를 띤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혹시 초대장을 볼 수 있습니까? 저희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거든요.”
“예?”
미슐랭 스타 11개를 가진, 미국 국적의 셰프 올린이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초대장을 보자는 이들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나는, 흔쾌히 초대장을 내밀었다.
[ 포시즌스, 셰프들의 모임. ]일시와 장소가 적혀있었고, 그 초대장 사이에 검은색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그 검은색 카드를 본 올린이 말했다.
“역시……. 누군 초대장에 이 카드가 있고, 누구는 이 카드가 없는 것을 보니 초대된 셰프들에게 차별점을 둔 것 같습니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을 차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들에게는 호텔의 객실을 제공해주는 것 같군요.”
올린이 자신의 초대장을 꺼내어 자신에게도 검은색 카드가 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곤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그 유력한 후보에 드신 모양입니다. 후. 이거, 요즘 가장 잘나가는 셰프를 라이벌로 삼아야 된다니 조금 부담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