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쓸어 담기 시작(3)
“저는 요리를 언어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의 첫 마디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내게 집중했다.
“요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모든 의도가 상대의 머릿속에서도 그려져야 하죠. 제가 상상하는 맛을, 상대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 셰프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에는 당연히 개인적인 취향이 있다.
저마다가 살면서 느낀 경험들이 다르고, 느꼈던 맛들도 다르다.
그런데, 내가 요리에 쏟아부은 100년의 시간은 그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같은 재료를 이용한 요리라면, 나의 요리가 맛있다. 자만이나, 허영심이 아니라 실제로.
때문에, 나에겐 내가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린 맛이 가장 맛있는 요리였으며, 그 맛을 상대가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그 어떤 셰프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맛이 가장 강력한 것이라면, 응당 그 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셰프의 역할 아닌가.
“반유현 셰프님이 상상하고, 의도하신 맛이 상대에겐 맛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의도한 맛이 가장 맛있을 겁니다.”
이 공간에 있던 셰프들과 호텔 그룹의 간부들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대체 어떻게, 내가 이토록 자신만만한지 궁금한 눈치였다.
아무리 세계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라고 한들, 거만해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잘난 맛에 취한, 젊은이로도 비췄을 수도 있고.
내가 한 말이 저들에게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를 저들에게 선보일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는 이만하도록 하죠. 맛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실지 기대됩니다.”
결국 셰프는 맛으로 모든 말을 증명하면 된다.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도, ACK에서도, 미슐랭 평가원 앞에서도 매번 그랬지 않았나.
말로 기대감을 올려놨다면 저들이 기대하는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면 될 뿐이다.
“객실에서 잠시 쉬시고, 저녁 시간에 뵙겠습니다. 셰프의 말과 얼굴만 보고 그 요리가 기대되기는 처음입니다. 하하하.”
이 호텔 레스토랑의 터줏대감인 마리옹이 말했다.
***
면접이 끝난 뒤에는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면접에서는 자신만의 요리 철학이 뚜렷한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을 실제 요리에 반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리 테스트는 방송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경연 형식을 빌렸다.
1시간 이내에 지정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주방 한 테이블과 오픈형 냉장고에 식재료와 주방 도구들이 잘 가지런히 정돈되어있었다.
저것들만 봐도, 이 호텔 그룹이 요리 테스트에 얼마나 중점을 두고 있느냐를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하나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장의 말에, 조리복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모두 열여덟 명. 요리 테스트를 보는 셰프의 인원과 같은 숫자였다.
“셰프 한 분당, 보조 한 분을 붙여드리겠습니다.”
보조들이 주방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나는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한 명의 여성이 깜짝 놀란 듯이 입을 가렸다.
“흡!”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보조들에게 셰프를 선택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셰프님들께서 선택권을 가지면, 여러 가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셰프님들은 뒤를 돌아주시고, 오늘 보조로 참여하신 분들은 원하는 셰프 뒤에 서 주십시오.”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의 말은 방송 MC의 말처럼 무게감이 없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 테스트가 포시즌스 파리에 입점할 수 있는 다리라고 생각하니,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현장처럼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주십시오.”
나는 뒤를 돌아 있었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내 바로 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 줄 너무 많아. 가장 먼저 온 두 명 말고는 다른 셰프님 쪽으로 붙어.”
나와 함께 요리를 하길 희망하는 보조들이 너무 많아 사장이 직접 나서 정리한 것이었다.
뒤를 돌아 있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뒤에서만 이런 얘기를 한 것을 보면 보조들의 마음이 나에게로 쏠린 듯했다.
“자, 뒤를 돌아주세요.”
내 뒤에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한 명의 남성은 중국계 미국인이었고, 한 명의 여성은…… 아까 나와 눈이 마주치고 크게 놀랐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서윤 씨. 여기서 볼 줄이야…….”
“아니, 팀, 팀장님 진짜로! 어떻게 여기서 만난대요?”
민서윤.
한국에서 ACK(어메이징 셰프 코리아)에 출전했던 당시, 나의 선택을 받아 내 팀원으로서 같이 미션을 깨나가던 여자였다. 실력도 모자라지 않아 심사위원들에게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녀였다.
무엇보다 나의 말을 이해하고 충실히 따르는 것에 있어서는, 로또 육인방과 견줄 만할 정도로 배움의 자세에 익숙하고 겸손한 그녀였다.
나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요리 보조.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민서윤의 팔을 잡아챘다.
그 옆에서 선택을 기다리던 중국계 미국인, 보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셰프들 쪽으로 걸어갔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니니, 가볍게 인사만 나누시고 곧장 요리 시작하겠습니다.”
사장이 말했고, 민서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요리 테스트에 무엇이 걸려있는지 알기에, 죽기 살기로 도와주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흡사, ACK에서 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던 눈빛과 같았다.
“안부는 있다가 여쭤볼게요. 팀장님. 여기는 어쩌면 ACK 그 현장보다 중요한 자리니까요.”
“지금 물어봐도 되는데.”
“팀장님! 후. 그 말도 안 되는 여유와 성격이 진짜였다는 게 밝혀지긴 했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서까지……!”
나보다 나이는 일고여덟 살 많지만, ACK 촬영 당시 사용했던 팀장이라는 칭호를 여전히 사용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요리 시작하세요.”
포시즌스 파리의 다른 하나의 레스토랑을 맡고 있는 장루이의 말에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
“팀장님, 저는 어떤 것을 준비하면……?”
“제가 ACK에서 튀김 요리할 때 가르쳐 드렸던 것. 튀김 가루랑 기름 좀 준비해주세요.”
“예!”
민서윤은 나의 말에 곧장 행동했다.
‘장어로 끝을 낸다.’
주방에는 작은 수조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곳에는 살아 있는 민물장어가 있었다.
내가 주방 한 편에 걸려있는 뜰채를 들고 수조로 다가가 장어들을 힘껏 건져냈다.
뜰채 안에서 힘차게 요동치는 게 신선도가 높은 장어였다.
파다닥! 파다닥!
그밖에 다른 수조에는 많은 종류의 어패류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질 좋은 고기들이 가득했지만 내가 장어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어려운…… 재료를 또……!”
‘장어는 손질하는데 5년, 꿰는데 8년, 굽는 것에 평생’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굉장한 숙련도를 가져야 하는 식재료이다.
앞서도 증명해 왔지만, 판이 깔리면 내 최대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내 인생에 가장 효율적이지 않았던가.
이 자리에서도 그 효율을 따지다 보니 아무도 손대지 않는 식재료를 즉석으로 골랐다.
“참나……!”
“잘나셨고만.”
“장어? 너무 무모하잖아. 우리한테는 기회야.”
“푸하하하! 우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젊은 친구. 그러지 말라고.”
내가 많고 많은 식재료들 중에 장어를 골랐다는 것 자체가 이 주방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
이 요리 테스트의 심사위원으로 있는, 셰프들 그리고 호텔의 간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창칼.”
칼날이 짧고 끝이 날카로운 칼로, 장어를 손질할 때 주로 사용하는 칼이었다.
내가 말하자, 튀김용 기름을 만들고 있던 민서윤이 나의 손에 창칼을 쥐여줬다.
칼을 잡자마자 건져 올린 장어의 아가미에 칼을 찔러 넣었다.
빨간색 피가 흘러나왔고, 나는 칼을 찔러 넣은 장어들은 물을 채워둔 개수대에 던져 놨다.
장어의 몸에 피를 빼는 작업을 위해서였다.
“피 빠질 동안 간장조림 소스 준비할 겁니다.”
냄비에 물과 청주를 넣고 끓인 뒤 생강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생강은 장어 특유의 비린내를 잡을 수 있으며, 특히나 조림 요리를 할 때는 장어의 지방이 녹아 소스에 느끼한 맛이 날 수도 있는데, 생강은 그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다.
물이 끓어오르자 간장과 설탕, 맛술을 넣고 충분히 끓여 내기 시작했다.
간장 조림 소스가 우러나고 있을 때, 나는 곧장 장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도마 위에 장어의 머리를 고정시키는 집게에 장어의 머리를 끼운 뒤, 장어의 지느러미 밑으로 칼을 후벼 넣었다.
솨악!
드드득!
칼과 장어의 뼈가 맞닿는 소리가 났고, 나는 능숙하게 장어의 내장을 걸러낸 뒤, 머리를 쳐냈다.
한 마리의 장어를 손질하는 것에, 6초 정도 걸렸다.
원래 4초를 넘기지 않았었는데, 이번 생에 장어를 처음 만지다 보니 무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셰프들은 혀를 내둘렀다.
“장어를 무슨……. 새우껍질 까듯이…….”
저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지만 나는 관심을 주지 않고 요리에 집중했다.
손질된 장어를 적당히 썰어 낸 뒤 펼쳐, 간장 조림 소스에 투하했다.
그 뒤엔 끓고 있는 간장을 장어의 살에 끼얹으며 조렸다.
“민서윤 씨. 대파 좀 썰어주세요.”
민서윤은 나의 의도가 뭔지 알았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건네줬다.
받은 대파를 곧장 간장 조림 소스에 넣었다.
“일로 오세요. 간장을 계속 장어 위에 끼얹어 주세요. 스테이크 구울 때 베이스팅 하는 것처럼요. 허브도 넣을 건데, 그 타이밍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브요? 아, 아! 아닙니다!”
내 조리법에 궁금증이 생겼다가, 이 요리 테스트가 어떤 테스트였는지 다시금 깨달은 민서윤이었다.
“네, 끝나면 다 가르쳐 드릴게요.”
민서윤이 간장 조림을 하고 있는 옆의 화구에 냄비를 하나 더 올려놓고, 복분자 술을 부었다. 그리고 설탕을 넣었다.
“이것도 잘 저어 주세요. 알코올을 날리고 단맛만 살릴 겁니다.”
민서윤에게 그것들을 맡겨 놓고 나는 미리 손질해둔 장어를 꼬챙이에 꿰었다.
숙!
숙!
수욱!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다른 셰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생각해 놓은 구상대로 요리를 이어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리 생각해 온 것처럼, 그리고 누구보다 숙련된 장인처럼.
“장어 간장 조림, 장어 깐풍기, 장어 소금구이. 세 가지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요리가 모두 완성되었고, 나는 성인 팔 길이만 한 긴 접시에 그것들을 올려두었다.
“조림, 튀김, 구이 순으로 요리를 맛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메인요리인 것 같았지만. 먹는 순서가 있었다.
“흠. 조리법의 차이로 코스를 구성하신 겁니까? 같은 장어 요리에도 순서가 있군요.”
물론, 내가 구상해 놓은 순서는 먹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
“……!”
“구운 장어의 식감이…….”
맛에 놀라 표정 관리를 할 심사위원들, 그리고 그 광경을 내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까지.
이게 내가 생각한 오늘의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