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쓸어 담기 시작(4)
“음식을 맛보진 않았지만. 일단 독보적이긴 합니다. 농어, 대구, 닭, 소, 돼지, 여러 재료들 중에 장어를 직접 손질해서 요리한 셰프는, 반유현 셰프밖에 없으니까요.”
그 말을 시작으로 내 요리에 대한 심사가 이어졌다.
“장어는 조림 요리를 하면, 부드러워지는 생선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나의 요리를 입에 머금고 음미했다.
“간장에 장어를 졸일 때에 대파를 넣었습니다. 대파도 함께 드셔보시죠.”
강력한 맛은 사람을 홀린다. 내 요리의 맛을 본 사람들은 나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호텔 간부와 셰프들은 시종일관 놀란 표정으로 나의 지시에 따라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니쉬도 함께 얹어서 드시면 맛이 배가 될 겁니다.”
“가니쉬, 이거 부추인가요?”
“맞습니다. 복분자주의 알코올을 날려 설탕은 아주 조금 넣고 함께 졸인 드레싱을 얹은 부추입니다.”
“와……. 이거, 뭐!”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명의 셰프, 마리옹과 장루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저들이 왜 저런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부추는 생강으로 한번 잡았던 장어 특유의 비린 맛을 완벽하게 정리해주며, 알코올을 날린 복분자주를 이용해 만든 드레싱은 부추가 줄 수 있는 알싸함에 단맛과 상큼한 맛을 더해줍니다. 그리고 이 가니쉬는 구이, 튀김, 조림 어디에도 잘 어울립니다.”
부추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봐도, 장어와 잘 어울리는 식품이지만 그 맛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식품이다.
마늘과 파와 같은 성질을 가진 부추는 그 특유의 알싸함을 줄이고 다른 맛을 얹어주면 장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강력한 가니쉬가 될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부추와 복분자주라…….”
“부추의 알싸함을 잡기 위해 꿀을 넣자니, 꿀은 부추와 영양학적으로 상극이고, 설탕을 넣자니 설탕이 주는 강한 단맛이 장어의 고소함을 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알코올을 날린 복분자를 이용했다는 건가요?”
장루이가 나의 의도를 그나마 캐치해냈고, 나에게 질문했다.
“맞습니다. 처음엔 레드 와인을 이용할 것인가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복분자 특유의 단맛과 약간의 산도를 표현하기엔 모자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오늘 레드 와인을 이용한 소스를 만든 셰프님들은 긴장하셔야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조림, 튀김, 구이 순으로 나의 모든 요리를 먹고 자신들의 소감을 말했다.
“이 부추라는 하나의 가니쉬가 세 가지 요리에 모두 어울립니다. 그리고 각 요리마다 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듯한……. 구이와 먹을 때는 고소한 감칠맛을 올려주고, 조림과 먹을 때는 겹겹이 여러 맛이 더해지는 느낌…….”
“이 장어구이는 어떻게 이런 식감을 낼 수가 있는 겁니까? 기름기는 빼고, 담백함은 더하면서 겉은 바삭한 이 느낌까지. 이건 역대급입니다!”
“간장 조림 장어와 함께 플레이팅 된 대파도 존재감이 엄청났습니다. 대파를 모두 씹은 뒤에 튀김을 곧장 먹으니 저절로 눈이 감기더군요.”
서로가 나의 맛의 의도를 더 잘 알았다는 듯이, 경쟁하듯 소감을 뱉어냈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나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느낌이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칭찬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각 조리법에 최적화된 크기의 장어를 쓰는 것에도 신경 썼습니다. 32cm에서 36cm의 장어는 튀김용, 41cm에서 45cm의 장어는 구이용으로. 그 중간의 장어는 조림용으로.”
“막 잡아 손질해서 요리한 것처럼 보였더니, 그게 아니라……. 그 정도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셨다는 겁니까?”
“와…….”
“생선은 크기에 따라 식감과 살의 맛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장어도 똑같습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몇몇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가 흠칫 놀라 딴청을 피웠다.
그럴수록, 그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내 경쟁 셰프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제일 까다로운 장어를 직접 손질해 이런 평가를 받고 있으니, 자신들의 요리가 저절로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심사에 많은 영향을 끼칠 셰프, 마리옹이 쐐기를 박았다.
“면접 때 말씀하셨던 그대로네요. 반유현 셰프가 의도한 맛이 가장 맛있을 거라던. 너무 맛있었습니다. 이 요리가 가장 맛있었는데, 제가 반유현 셰프의 요리 의도를 다 파악한 것 맞습니까?”
***
요리 테스트는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차, 2차, 그리고 어쩌면 3차까지. 호텔 측의 확신이 설 때까지 셰프를 시험한다.
그럼에도 셰프들은 불만이 없었다.
이 호텔 안에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의, 셰프로서 입지를 갖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다음 테스트를 기다리며, 보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민서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 1차 요리 테스트에서 나에게 극찬을 했던 마리옹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왔다.
이 호텔에 소속된 레스토랑들은 모두 호텔의 투숙객들에게는 예약을 따로 받는다.
덕분에, 관광객이나 외부의 손님들로 예약이 꽉 차 있더라도 투숙객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에겐 제공 받은 객실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팀장님! 대단하세요. 1년 만에 슈퍼스타가 되신 게…….”
민서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셨습니까? 이번에 고마워서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고맙죠. 셰프님……. 그런데, 저랑 스캔들 터지면 어떡하시게요?”
“무슨? 스캔들?”
“아니, 완전 연예인이신데 저 같은 여자랑 같이 밥 먹었다간…….”
매사에 진지한 민서윤이었기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왜 여기에 계셨던 겁니까?”
“아, 방송 끝나고 요리 유학 왔죠. 장루이 셰프님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진짜, 반유현 셰프님 처음 얼굴 봤을 때 너무 놀랐어요. 와……. 아니, 미, 미슐랭 포스타 셰프 맞죠?”
“네.”
민서윤은 아직 내가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셰프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민서윤과 헤어진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ACK라는 방송 경연 프로그램의 참가자, 우승자에서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로.
“그때 그냥 팀장님 따라갈 걸 그랬어요. 바짓가랑이 붙잡고.”
“하. 주방일이 힘드신가 봐요. 표현이 과격해지셨네.”
“치. 장어 요리했던 것들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나는 민서윤에게 요리 테스트 당시 선보였던 요리의 디테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민서윤은 곧장 노트를 꺼내 나의 말을 모조리 받아 적었다.
“와……. 이런 건 진짜 팀장님한테 밖에 못 들어요. 대체 어느 주방에 가도 이런 디테일은 가르쳐 주지 않던데.”
“무튼 보조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잘 지내십니까?”
“아, 김해숙 어머니는 또 냉동 오리 홈쇼핑으로 대박 나셨고, 최경복 아저씨는 중식당을 차리셨어요. 앞이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지셨는데, 정말 대단하시죠? 그리고 윤종혁은 이탈리아에 있는 주방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다 별일 없이 잘 지내시네요.”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을 때 요리가 서빙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호박 무스와 감자 크로켓입니다.”
첫 요리가 나왔고, 민서윤은 매우 맛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내 표정을 응시하는 민서윤이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보고 싶다는 건,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이었다.
민서윤도 그런 눈치로 내 표정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푸아그라 라비올리입니다.”
다음 코스에 무슨 요리가 나올지 알 정도로 정통적인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다만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곳이라 그런지, 재료의 손질법과 관리에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은 듯했다.
“구운 관자와, 그다음으로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흰살생선구이입니다.”
역시나, 내가 영감을 받거나 배울 점은 없었다.
그게 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민서윤이 내게 물었다.
“티, 팀장님 맛없으세요? 여기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거기에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님 중 한 명인 마리옹 셰프님이 운영하는…….”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맛있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우세요? 응당 셰프라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되는 거 아니에…… 헤엑!”
민서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다가 내 뒤쪽을 바라보더니 크게 놀랐다.
나는 곧장 뒤를 돌았다. 그리고 민서윤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
이 레스토랑의 주인인 마리옹과, 포시즌스 호텔 내 또 다른 레스토랑의 주인 장루이였다.
그리고 그 둘이 내게 다가온 직후에는 포시즌스 호텔 파리의 사장인 로만이 들어왔다.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떤 말씀……?”
“어……. 조심스럽지만, 반유현 셰프님 단독으로 2차 요리 테스트를 보고 싶다는 게 저희 호텔 측의 의견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무심코 민서윤의 얼굴을 봤더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눈으로 나와 이 호텔의 직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
“반유현 셰프님, 다른 셰프들의 요리를 보는 게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습니다. 이미 저희 포시즌스 호텔의 새로운 레스토랑의 주인이 거의 정해졌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2차 요리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저희의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셰프님들의 시간까지 뺏는다는 생각입니다.”
그 옆에 있던 장루이가 로만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그래도 반유현 셰프님의 다른 요리를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에,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 테스트를 단독으로 진행해 볼까 합니다.”
“의미 없는 요리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도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셰프님들과 저희,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습니다.”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 중 한 자리, 그 비어있는 자리의 새로운 주인은 ‘나’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것을 완벽하게 확정 짓기 위해 단독으로 요리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셰프들을 전부 불러 의미 없는 요리 테스트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흘러간다. 이 호텔 측의 의사결정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것도, 1차 테스트처럼 주방 안에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야 되는 겁니까?”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해주시면 저희가 판단하는 것에 좋을 것 같습니다.”
“판단…….”
분명, 나의 요리를 맛보고 나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그 판단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 호텔의 경영을 책임진 사장, 로만은 줄다리기를 했다.
경영자로서 나와의 계약을 맺을 때, 조금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기 위해서 고개를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계약을 맺을 때의 우위를 갖는 것은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먹은 요리들을 똑같이 내놓겠습니다. 재료만 준비해주십시오.”
포시즌스 호텔의 역사를 함께 했고,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마리옹의 레스토랑.
방금까지 민서윤과 함께 비워낸 이곳의 요리를 똑같이 내어놓겠다고 말했다.
‘확실하게 하려면.’
나에게 이 레스토랑의 자리가 중요한 것인가, 저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인가를 정확히 대보면 그 우위는 명확히 판명 난다.
이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인 마리옹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장 찡그렸다.
그러더니 웃음을 짓는다.
“하하하하! 제 요리를 그대로 하시겠다는……? 엄청 기대됩니다. 이번에도 그 하신 말씀을 요리로 증명해내실지요.”
저들에겐 그저 젊은 셰프의 도발적이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느껴졌겠지만, 나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말했다.
그저, 내 요리를 비교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점을 세워줬을 뿐이다.
함께 있던 간부들과 셰프들도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다소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마리옹 셰프님의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하시겠다니……. 무모한 도전을 하실 필요 없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하셔도 됩니다. 저희 호텔 측에서는 그 정도 배려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배려를 해준다라…… 이들의 태도를 보건대, 아직 자신들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론 내가 이 호텔에 필요하다고 애타게 울부짖으면서.
무작정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내가 먼저 저들에게 솔직하게 대해줘야, 저들도 속마음을 제대로 꺼낼 것이란 생각에 말했다.
“아직 디저트가 안 나왔습니다. 식사가 안 끝났거든요. 밖에서 기다려 주시죠.”
이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나의 태도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버렸는지,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로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