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35
35화. 내가 더 별이 많아(3)
포시즌스 그룹 간부 총회의.
세계 각국의 포시즌스 호텔을 이끄는 간부들이 모여, 분기당 한 번씩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백 여 명 가까이 되는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엔 저희 도쿄에서도 미슐랭 3스타를 얻었습니다.”
포시즌스 도쿄의 사장이 말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해낸 것은 아니고,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셰프님께서 해내신 거죠. 저는 호텔 그룹 차원에서 셰프님을 조금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흠, 그나저나 이 기쁜 일이 호텔의 매출과 직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아니, 미슐랭 3스타라면, 당연히 매출로 직결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3스타의 정의가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될 집인데, 투숙객들이 줄을 지을 겁니다. 하하하! 사장님도 참……. 괜한 걱정은 하지 마시죠.”
분기별 매출을 보고하고, 문제점과 해결책, 또는 비전 있는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등 어느 기업의 회의와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였고 각 나라들마다 경제나, 문화 이슈가 달랐기에 이것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파리는 요즘 어떻습니까?”
포시즌스 서울의 사장이 말했다.
근래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반유현의 소식을 귀동냥으로 듣고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포시즌스 파리의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3스타가, 2스타로 강등되었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반유현 셰프를 그 레스토랑의 새로운 셰프로 섭외하셨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와!”
“세계 최연소, 역대 최초? 단번에 미슐랭 포스타를 받은 반유현을 섭외했습니까?”
저들끼리 얘기를 하던 간부들이, 그 말을 듣곤 모두 로만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직 오픈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반유현 셰프가 섭외되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간부님들께서도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만이 그에 대답했고, 그에 따라 포시즌스 파리에 반유현이 섭외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 되자 회의장은 술렁였다.
“하긴! 반유현 셰프라면, 엄청난 비밀 병기니까……. 기대됩니다.”
“와……. 그 셰프, 다음 행보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듣네요.”
“하하하하! 이 양반아, 궁금하긴. 나는 메일 보내고, 섭외 팀까지 꾸렸는데? 파리에서 선수 칠 줄이야.”
“뉴욕지점에는 셰프들도 많으면서 반유현 셰프까지 섭외하려는 건 욕심 아닙니까?”
그 술렁임이 계속될수록, 로만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니, 로만 사장님!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으십니까. 요즘 언론이든, SNS든 반유현 셰프의 말이 많아요! 조금 더 말해주십시오. 반유현 셰프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좀 가르쳐주십시오.”
“그러게, 너무 궁금하네. 여기 있던 분들 모두 반유현 셰프한테 관심 가졌던 사람들 아닙니까? 하하하하! 그 정도는 말씀해주실 수 있잖아요. 로만 사장님.”
로만의 굳어진 표정은 괜히 겸손을 떠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기분이 매우 좋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표정을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모두 호텔을 경영하는 사장으로서 유명 셰프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로만은 반유현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들 그런 줄 알고 로만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떠들어 댔다.
하지만, 실제론 그게 아니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간부들의 원성을 듣다 못한 로만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는 그 왕관이 너무 무겁나 봅니다. 반유현 셰프를 섭외한 뒤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약 백여 명의 사람이 있던 회의실은 정적이 되었다.
그 정적은 이들의 반유현을 향한 관심이었다.
“저희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두 곳을 경영하고 계신,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께서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예? 수년 전부터 포시즌스 파리의 명성을 키워주신 그분들이요?”
“이유가 뭐야? 로만!”
“자네가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고 그 두 분에게 섭섭하게 한 것 아니야?”
로만의 말에 이전보다 장내의 술렁임은 더해졌다.
“두 분 다,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보고, 자신들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원래 은퇴를 생각하고 계셨는데, 마침 그 생각들을 실천에 옮길 계기가 생기신 겁니다. 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그럼 그 자리는 누가 맡게 되는 거야?”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만……. 반유현 셰프가…… 남은 두 레스토랑도 운영하게 될 확률이…….”
“그게 가능해!? 아무리 미슐랭 포스타라지만……. 동시에 세 개를 운영한다고?”
이 대화가 계속될수록, 로만에게 관심은 쏟아졌고 로만은 그것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을 드렸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 그 시간 내에 구체적인 계획과 그에 따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면, 실제로 저희 포시즌스 파리의 세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시기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호텔 최초로 반유현 셰프 전담팀을 따로 꾸려 의전과 보좌를 해야겠죠.”
로만이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말에도, 장내의 술렁임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로만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저도 압니다. 비현실적인 거, 다른 분들이라면 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겁니다.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의 은퇴를 막는 방법을 생각하셨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보시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반유현 셰프의 실력과 그의 말에서 나오는 자신감, 그리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아우라. 여러분도 그것들을 봤다면 제가 반유현 셰프님께 시간을 드렸다는 것에 무조건 동의하셨을 겁니다.”
***
포시즌스 호텔은 전 세계 40개국에 약 111개의 지사가 있다.
각각 호텔의 사장이 그 호텔을 총괄하며 경영을 도맡아 하곤 하는데, 이들은 같은 사장의 직급을 가졌더라도 입지가 다르다.
“로만 사장님의 힘이라면, 그 정도 기회는 제게 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특히나, 내가 있는 이곳 파리의 사장인 로만은 남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었고, 그곳에 위치한 포시즌스는 약 80년의 긴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같은 사장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모이더라도 로만은 자신의 목소리를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반유현 사단을 꾸릴 예정입니다.”
“바, 바, 반유현 사단이요?”
원래는 스무 명, 많게는 서른 명의 셰프들을 섭외해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을 채울 생각이었다.
일단, 미슐랭 스타를 가진 레스토랑이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등 나름 영향력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를 여섯 명에서 열 명 정도 직접 섭외한 뒤에, 뼈대를 세우고 내가 알고 있는 기억들을 이용해 주방 구석 어딘가에서 재료를 손질하며 셰프를 꿈꾸고 있을 옛 동료들을 찾으려 했었다.
그런데, 계획이 조금 달라졌다.
마리옹과 장루이의 은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나는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호텔 측에서 그 빈자리를 다른 셰프로 채우지 못하게 하려면 나의 계획이 실제로 실현되리란 믿음을 심어주어야 했다.
“전 세계 요리 유망주들이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직접 나서서, 주방을 채울 인력들을 섭외해 오겠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맛을 가져야만 하는 포시즌스 호텔입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욕심을 알겠지만, 검증되지 않은 셰프들을 대거 뽑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시즌스 호텔을 그저 젊고 어린 셰프들의 등용문으로 삼지 않으시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간을 주시면, 모든 것을 확신으로 바꿔 드릴 테니,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내년에, 기대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얻게 해 드릴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얻어낸 시간이었다.
약 세달. 나는 로만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내가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세 곳의 인력을 채워 넣고, 그 인력들은 미슐랭을 얻을 만한 맛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없다.’
100여년이 넘는 삶 동안 해본 적 없는, 참으로 ‘신선한’ 계획이었다.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세 곳에 나의 이름을 새겨 넣고, 그 세 곳 모두에서 동시에 미슐랭 스타를 얻어내는 것.
‘레드 테이블’의 루시앙과 올리버였다면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했겠지만, 아직 로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도 은연중에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과연……. 사, 삼 개월이면 되는 겁니까?”
그런 점에서 나의 이 계획이 이들에게도 비현실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약 20년 전인 지금엔 어디에 가장 많을까.
우선 첫 번째로 고려해 본 것은 각국의 명문 요리학교였다.
뉴욕의 요리학교 CIA,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 일본의 츠지 요리학교 등 각 나라의 꼽히는 요리학교들.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셰프들 중에 그곳을 지금 다니고 있는 셰프들이 많지만, 일단 명문 학교 출신 셰프들은 보류였다.
‘왈가왈부 설득할 시간도 없다.’
나의 한 마디로 저들이 학교를 휴학하거나 그만두고, 내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과연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무리 내가 영향력을 가진 셰프라 한들, 자신들의 학업을 포기하는 것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터였다. 나는 그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지켜봐 줄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고.
‘주방 보조 출신들.’
메이와 헨리-제리 형제처럼 주방의 보조부터 시작해 나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셰프의 길을 걷게 된 동료들도 떠올렸다.
이들은 나의 한마디에 당장 내 주방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요리학교를 다니는 이들보다는 높다.
이미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지금보다 더 큰 역할과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말을 건네면 나의 주방으로 넘어올 사람은 그렇지 않을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내 동료들이 어느 주방에서 처음 요리를 시작했느냐를 모두 떠올린다 치더라도,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이들을 섭외하기란, 현재는 역부족이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기에, 지금의 시간은 금이었다.
그래서 떠오른 마지막 선택지였다.
‘요리 대회 출신들.’
정확히 나에게 지금 필요한 성질들을 모두 갖춘, 셰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당장 내 주방으로 들어와 일할 확률이 높으며, 배움과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높으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어 있는 수준의 셰프들.
물론, 요리 대회라 함은 내가 환생하자마자 출전했던, 서울시 요리 대회 같은 작은 규모의 대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싱가폴 국제요리대회, 2020 FHA Culinary Challenge.
세계 4대 요리 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요리 대회는,
세계 22개국에서 약 800여 명의 정상급 요리사들이 출전하며, 1000여 명이 넘는 젊은 유망주 셰프들이 출전한다.
‘하나, 둘…….’
2020년, 그 대회의 현장에 있을, 내가 아는 얼굴들을 헤아려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세 명의 옛 동료들을 찾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숫자이기도 했다.
일단, 이 대회에 출전해 그들을 만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수십 년간 검증했던 인물들, 내 옛 동료들로 중심을 잡아 놓고.’
두 번째는 이전 생에 나와 접점이 크지 않았지만, 유능한 셰프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나를 따르고 믿었던 셰프들만을 섭외하기엔, 나에게 필요한 인력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면, 나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셰프들을 찾을 수가 있다.
더군다나 세계 각국의 수많은 셰프가 몰리는 곳에 가면, 내 기억 언저리에 있던 셰프들이 떠오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세계 최초로 단번에 미슐랭 포스타가 되었으며, 그 나이가 세계 최연소라는 나의 지금의 정체성이었다.
‘조용히 출전하기는 글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