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4
4화. 차원이 다른 맛 (1)
오리 요리의 달인으로 소개된 김해숙과 최감순 둘 다, 자신의 필살기를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의 눈은 그 두 명의 달인들을 향했다.
수십 년의 노하우가 담긴 그녀들의 몸짓을 보고, 뭐 하나라도 얻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반유현 씨는 어떤 요리를?”
그런데, 참가자들의 관심과는 반대로 심사위원들은 나의 요리에 모든 관심을 쏟아냈다.
“오리 가슴살을 이용한 스테이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이들은 기대가 된다는 눈빛들을 보내며, 이것저것 질문하며 나의 조리대에 가까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1라운드에서 선보인 셰퍼드 파이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심사위원도 있었다.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요? 여기 있는 참가자들 중에 가슴살 스테이크를 못 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확실한 실력 차이가 있어야만 됩니다. 그 정도로 자신 있어요?”
전(前) 청와대 조리실장인 김성호의 말이었다.
실제로, 많은 참가자들이 선택한 요리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였다.
‘오리 주물럭’과 ‘오리볶음’을 각각 요리하고 있는 김해숙과 최감순, 그녀들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도피처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였던 것이다.
김성호는 참가자들의 그런 정신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종일관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화풀이는 심사위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나에게로 이어졌다.
“같은 요리 일지라도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은, 가산점이 부여되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너무나 잘 알려진 요리지요. 편견을 깨는 요리가 쉽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미 당신들의 머리에도 정형화된 맛들이 그려져 있을 텐데.”
맞는 말이긴 한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김성호의 말대로,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조리법이 널리 알려져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였다.
그런데 그것을 이용하면, 오히려 더 충격적이고 신선한 맛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미 정형화된 요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충격은,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내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면, 아직 경험이 한참 모자란 자 같았다.
뭐, 사람들이 보기에 전 청와대 조리실장한테 경험을 논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100년을 넘게 요리한 내 앞에선 김성호의 경험을 경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저였다면, 고만고만한 참가자들끼리 비슷한 맛을 경쟁하느니, 차라리 달인들의 요리를 따라 하고 조금 더 새로운 맛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달인들의 요리라는 완벽한 비교 대상이 있으니, 신선함이 더 부각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새롭고 신선한 맛에는 선후배가 없으니까요. 달인이라고 꽁무니를 내빼기나 하고. 쯧. 요즘 사람들은 요리에 대한 태도가……. 쯧쯧, 이렇게 도전 정신이 없어서야.”
김성호는 혀를 여러 번 차더니, 뒷짐을 지곤 다른 참가자의 조리대로 이동했다.
그때, 잭 킴이 다가왔다.
“많은 참가자들이 오리 가슴살을 굽고 있는데, 경쟁력이 있길 바랍니다.”
“굽기의 정도, 그리고 소스와 가니쉬(곁들임)로 새로운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흠, 제발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셨으면 좋겠네요.”
잭 킴도 내가 선택한 요리를 보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1라운드에 기대감을 너무 높여둔 탓에, 더 재밌고, 더 신선하고, 더 맛있는 그런 요리를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비해, 이미 수많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먹어본 저들에겐 나의 선택 자체가 진부했을 것이다.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오직 요리. 상대를 설득시킬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몇 마디의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 나의 요리를 맛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물론, 요리를 10년, 20년 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저들에게 내 의도를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은 것도 없지는 않았다.
치이이익!
오리 가슴살을 팬에 올려둔 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오리 기름이 나오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
“충격적이네요. 맛이.”
총 여덟 명의 심사위원이 내 조리대를 둘러싸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는 전(前) 청와대 조리실장이었던 김성호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크흠!”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곤, 수저를 내려놨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또 한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까 전, 내 앞에서 요리하는 태도가 어떻다느니, 젊은 사람들의 도전 정신이 어떻다느니 떠들어 대던 사람. 맛에 굴복했다.
‘맛있어도, 맛있다고 못 하겠지. 자존심 상하니까.’
내 생각대로 김성호는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세워보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금류에는 과일 소스가 잘 어울리지 않나? 오렌지를 이용한 비가라드 소스나…….”
“과일 소스는 새롭고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 요리에 비가라드 같은 과일 소스를 부었다면 이 오리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을 겁니다. 진부하게 죽여줘서 미안하다고.”
심사위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나의 발언에 무례함을 질책하는 심사위원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선보인 요리의 맛이 내 말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김성호의 연배가 심사위원들 중에선 높았던 탓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그의 시선을 피하곤 나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헛기침을 해댈 뿐이었다.
그에게 독설을 몇 마디 들었던 참가자들은 내 말에 통쾌했는지, 곳곳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나의 대답과 장내 분위기에 김성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본전도 못 건진 김성호는 내 조리대를 둘러싸고 있는 심사위원들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크를 내려놓은 심사위원이 내게 질문했다.
“과일 소스 없이, 어떻게 이런 달콤함, 상큼함, 알싸함까지 다 잡을 수 있나요?”
“오리 기름이 팬에 녹아 나오고, 베이스팅을 시작할 때, 꿀과 각종 채소를 담가두었던 간장을 넣었습니다.”
베이스팅은 팬에 녹아 나온 기름을 스푼으로 고기에 끼얹으며 고기를 익히는 방식인데, 나는 오리에서 녹아 나온 기름에 꿀과 간장을 첨가하여 베이스팅했다.
“나머지 상큼함과 알싸함은 곁들여진 부추와 달래로 잡아냈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나온 봄나물은 은은하면서도 강력한 맛을 냅니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당근 퓌레를 약간 곁들였습니다.”
“이야…….”
간단한 설명뿐이었지만, 모든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나의 설명은 귀뿐만 아니라, 저들의 혀와 코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식이 끝났을 땐, 모든 심사위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정이나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굽기 정도에 레스팅 시간까지 완벽하게 맞췄군요. 모든 재료의 맛까지, 오리 끝판왕이네. 이건 뭐……. 우리가 평가할 음식이 아닌 것 같아요. 참나. 허허허.”
“그러게요, 달래, 부추, 당근 퓌레까지 모든 재료가 입에서 살아있네요.”
“와, 이건 뭐……. 김 셰프, 우리 요리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요리만 잘한 게 아니잖아. 재료의 배합부터, 천재야 천재.”
심사위원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때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여성이 한 명 있었다.
중년의 여성, 오리 주물럭의 장인 김해숙이었다.
“선생님들요. 저도 한 번 먹어봐도 될까예?”
심사위원들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해숙은 손으로 달래와 부추를 올린 가슴살 한 점을 집어먹고는 손에 묻은 소스까지 빨아먹었다.
“어……. 으응?”
입을 오물거리더니, 눈을 끔뻑이곤 말했다.
“이 요리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예?”
한 분야에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했지만,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고개를 숙이는 그녀.
100여 년이 넘는 내 경험 앞에서는 주름 잡지 못하지만,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아니, 정확히는 잭 킴에게 그랬듯이 후배를 보는 마음의 기특한 감정일 것이다.
“반유현 씨, 제대로 요리 배워볼 생각 없어요?”
내가 김해숙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을 때, 그 옆에 있던 잭 킴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참가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반유현 씨가 가진 그 여유와 자신감은 실력에 기반한 것이군요. 연락처 좀 가르쳐 주세요. 1라운드의 셰퍼드 파이도 그렇고 이 오리 스테이크의 맛이 평생 생각날 것 같아서, 그냥은 못 보낼 것 같습니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 잭 킴.
대한민국 내에서는 엄청난 인지도, 프랑스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셰프라던데.
전생에도, 전전생에도 이름은 못 들어봤다.
아니, 어쩌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별 한 두 개를 가지고 놀던 내가 아니었고, 상대적으로 미슐랭 스타의 개수가 적은 한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할 대답은 한 가지였다.
***
나의 우승은 확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우승자 한 명을 가르는 게임에서는 김해숙이 이겼다.
그리고 나는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내 우승은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나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운이 좋다. 이번 생은 뭔가 달라.’
물론, 우승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 속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환생하자마자 곧장 방송에 출연해 서울시 요리대회라는 기회를 얻고, 그 대회에서 성과를 내 셰프로서의 이름값을 쌓을 수 있는 ACK에 출연한 것은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전의 생에서는 없던 속도였다.
[ 분식집 아들 반유현! 요리대회 수상자 캐스팅으로 ‘ACK’ 본선진출! ]나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ACK 제작팀과 방송사는 언론을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 전(前) 청와대 조리 실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한 반유현! 맛으로 승부하다. ] [ 미슐랭 2스타 잭 킴을 반하게 한 그의 요리는? ]“이런 기사는 너무 자극적인 것 같은데요. 굳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러더만. 없던 얘기는 아니잖아.”
ACK의 녹화 첫날, 나를 응원하겠다고 따라온 ‘골목가게’의 PD 이성찬이 나의 불만을 달래주고 있었다.
[ 분식집 아들의 인생역전극! ACK를 통해 시작된다. 반유현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려…” ]“가슴이 벌렁?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어떡하냐, 너도 도움을 받았는데 그 정도는 받아줘라 좀.”
ACK 제작팀은 이미 100명을 골라낸 예선을 끝난 상황에서, 나머지 100명을 섭외하는 중이었다.
경력과 수상기록이 없는 내가 섭외될 확률은 ‘0’이었고, 이성찬이 ACK의 감독인 김수호에게 미리 언질을 안 했더라면 나는 수상했더라도 애초에 ACK의 본선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도움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이 정도로 언론 플레이를 할 줄은…….”
[ 서울시 요리 대회 심사 위원 김정옥 “요리 천재의 탄생. 앞으로 그의 행보에 주목하라.” ] [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감독 김수호 “‘진짜 천재’ 셰프의 합류로 많은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참가자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대기 공간에서, 내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했고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부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셰프가 아니라, 그냥 유명인으로만 날 알아보는군.’
피곤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셰프가 아니라, 그저 유명한 일반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음에도, 같이 레스토랑을 열어 보겠냐는 큰손의 투자자들이나 유명 셰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피곤함을 감수하면서도, 언론과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은 효율을 위함이었다.
이 방송프로그램은 나에게 셰프라는 타이틀이 걸리는 기반을 아주 빠르게 다져줄 것이니까.
“야야. 유현아, 저기 봐.”
이성찬이 나를 툭툭 치면서 대기실에 걸려있던 모니터를 가리켰다.
본격적으로 경연이 시작된 것인데, 참가자와 심사위원들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기실이 술렁이는 것을 보니 화면 속의 참가자는 꽤나 유명한 참가자인 듯했다.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 심사위원이었던 잭 킴, 알지? 그 레스토랑에 있는 사람이래.”
잭 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내 요리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던, 미슐랭 투스타를 소유한 그 셰프.
나에게 요리를 배울 것을 제안한 셰프였기에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화면에 비친 사내는 그 셰프의 제자이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젊은 나이에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조리장으로 계시는 윤종혁 씨. 우승 후보로 손꼽히시는데, 본인의 라이벌이 있으십니까?”
윤종혁. 뉴욕의 명문 요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졸업하자마자 잭 킴의 레스토랑에서 수석 조리장을 맡고 있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소유자였다.
대기실 화면에 비치고 있는 심사위원이 그에게 질문하자, 곧장 대답이 나왔다.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분식집 아들로 유명한 반유현 씨랑 겨뤄보고 싶네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력한 우승 후보인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대기실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그의 말은 대기실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
“제 사부, 아니. 저희 총주방장님께 아주 건방진 소리를 했더라고요. 그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