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왜 나를 보고 떨어? (3)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데? 여…… 여보? 여보세요?”
포시즌스 파리의 최고 경영자인 로만,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반유현의 계획과 행보가 궁금했던 나머지, 포시즌스 싱가포르 측의 직원들에게 지시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 있던 중에 잠시 전화가 끊겼던 탓이었다.
“후. 너무 무모했었나.”
그 잠시 동안에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쌓였다. 그중에서 불안한 마음이 점점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고, 그 마음은 자신의 선택이 무모했다는 결과를 내게 만들었다.
“흠.”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포시즌스 그룹 내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로만은 반유현을 믿고 그에게 시간을 주었었다.
다른 간부들의 만류와 다른 지점의 사장단들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었으나, 자신이 그 당시 반유현에게 느꼈던 확신은 그들의 걱정을 모두 떠안아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선택인 줄 알았지.”
반유현은 포시즌스 파리 내에 레스토랑을 차지할 셰프를 뽑는, 요리 테스트에서 다른 스타 셰프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고, 2차 요리 테스트는 단독으로 진행할 만큼, 전례가 없던 실력을 보여주었던 탓에 그를 전적으로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가 어떤 셰프들을 데려오건, 포시즌스 파리가 가진 세 개의 레스토랑을 모두 맡기겠다는 생각도 그 마음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그의 싱가포르에서의 행보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셰프들과 1:1 면담을 통해 계약서를 찍어도 모자랄 판에, 유유히 경연장을 돌아다니면서 종이를 나눠주는 것이라니.
“아직 돌이킬 시간은 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긴 것과 동시에 자신이 무모한 선택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당시 반유현이 가진 매력과 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경영자, 기업가로서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호텔 외식업계에 장장 20년을 근무했던 그 세월 때문이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본적 없는 셰프를 만났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어떤 만화 주인공 같이 패기 넘치는 캐릭터를 가진 반유현은 로만이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반유현의 축복이건, 대회 현장의 모든 셰프들이 그를 찬양하던, 50명, 60명이 되는 셰프를 단번에 구할 리가. 구한다고 해도, 그 셰프들의 질이 좋을 리가 없지…….’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렇게 로만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독백을 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 뭐 더 들어온 소식 있나?”
-예, 반유현 셰프가 모든 출전 계획을 취소하고, 파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뭐? 요리 대회에 출전해서 강력한 셰프들을 구한다고 하더니, 중도 포기하신 거야?”
-음……. 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받은 셰프들을 한 자리에 집결시키셨으니까요.
“그건 또 뭐야?”
-저도 제대로 확인하러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툭.
반유현이 파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더 커져갔다.
대회가 끝나기까지는 아직 5일이나 남은 상황, 벌써 레스토랑의 주방을 채울 셰프들을 다 구했다고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후. 금방 돌아온다니까, 얼굴은 보고 이야기해야겠지.”
레스토랑의 오픈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호텔의 매출은 떨어진다.
당장 포시즌스 파리 레스토랑을 맡게 될 셰프를 뽑는 공고를 올리고 싶었으나, 반유현에게 시간을 준다고 했었던 로만이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반유현에게 했던 말을 저버리는 것은, 상도가 아니라 생각한 나머지,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더군다나 요즘 가장 핫한 셰프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훗날 어떤 악재로 작용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
포시즌스, 파리.
아무것도 없는 공간, 원래는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였고 현재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어, 어떻게 되신 겁니까 대체?”
“뭐, 기대하신 대로입니다.”
“기, 기대한 대로라면…….”
나와 마주하고 있는 로만은 대체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떤 것부터 답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당연히, 목표로 하신 만큼의 셰프들을 구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구했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대, 대체 어떻게 구했습니까? 아니 어떻게는 그다음이고, 그 셰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루시앙과 올리버가 평소에 나에게 하던 질문과는 결이 달랐다.
그들은 나의 성공을 당연히 믿고, 그 성공을 어떻게 해냈는지가 궁금한 느낌이었는데, 로만은 나의 성공 자체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조금 지나면 이곳에 다 모일 겁니다.”
“아, 아니! 근로계약서라던가, 구체적인 조건이 담긴 서류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셰프들의 세계에는 그런 종이 쪼가리 말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시종일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는 나의 태도에 답답함을 못 참는 로만이었다.
물론, 이 호텔의 간부들과 다른 사장단들의 우려를 모두 떠안고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 말장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여쭙는 것은 엄연히 우리의 비즈니스의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도 말이나, 종이를 보여드리기보다 더 확실한 것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후……. 대체 계약서나, 그와 관련된 서류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음?”
자신이 답답함을 표했음에도 아무런 태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내 모습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로만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나와 로만, 단둘이 앉아 있던 레스토랑의 회전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회전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돌아가고 나머지 하나가 또 돌아가기 시작했다.
“왔나 보네요 다들.”
내 말이 끝났을 때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서류보다 중요한 믿음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전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게…… 무슨.”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은 하나, 둘, 계속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 4열종대로 그들이 집결했다. 정확히 44명.
“약속시간에 정확히 오셨네요. 여기 제 옆에 계신 분이 이 호텔의 사장이십니다.”
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온 내가 셰프들에게 로만을 소개하자, 셰프들이 박수를 쳤고 로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이분들은……?”
“저와 함께 포시즌스를 이끌어갈 셰프님들이십니다.”
“예에?”
후우우.
조리복을 입은 마흔네 명의 셰프들이 레스토랑에 들이닥친 뒤에 또다시 회전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세 명이 걸어 나왔는데, 로만은 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저분들은.”
“저 세 명에게 각각의 레스토랑을 총괄하게 할 것입니다. 이 마흔네 명을 지휘할, 지휘급 셰프들이죠.”
***
“이렇게 총 마흔일곱 명입니다. 조직도를 설명해드릴까요?”
“어떻게…….”
마흔일곱 명의 셰프를 불과 2주도 안 된 기간에 모았다는 것과, 내 머릿속에 그에 대한 모든 계획들이 있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이 세 분은 세 개의 레스토랑을 각각 총괄하실 분들입니다.”
나는 싱가포르 국제 대회의 현장에서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나눠줬었다.
첫 번째 우선순위는 나의 옛 동료였던, 내가 수십 년간 검증을 해왔던 셰프들이었고, 두 번째 순위는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실력이나 잠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였다.
그렇게 종이를 나눠 줬던 셰프들 중에는 본인들이 속해있는 레스토랑에서 총 주방은 아니지만, 총 주방장을 보좌하는, 주방을 지휘할 수 있는 직급을 가진 젊은 셰프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속한 셰프들도 많았었다.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주방의 조직을 구성할 수 있고, 실력도 웬만큼 갖춘 지휘급 주방장들입니다.”
“아니, 이분들…….”
그 세 명의 스펙을 간단히 나열하면 이랬다.
-미슐랭 1스타 오리엔 하우스의 수셰프, 영국 유명 잡지사 ‘THE COOK’ 선정 영향력 있는 젊은 셰프 3위.
“재료 손질부터, 잠을 안 자면서 주방에서의 제 입지를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파도를 맞아가며 거침없는 도전을 해보고 싶어 반유현 셰프님의 부름에 이끌려왔습니다.”
-미슐랭 2스타 멘츠 키친의 부주방장, CIA 수석 졸업, 요리 방송 ‘Garnish’의 공식 패널.
“저도, 이상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창립자께서는 14개의 미슐랭 스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이렇게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는지…….”
-미슐랭 1스타 미나의 수석 조리장, 팔로우 13만 명의 요리 전문 인플루언서.
“저를 알아보셨잖아요? 반유현 셰프가. 3년째 같은 직급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마침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고. 팔로우를 늘릴 컨텐츠가 없기도 했고. 제가 반유현 셰프님의 주방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 것 같은데요?”
요리업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던 젊은 셰프들, 더 많은 발전을 하기 위해 국제 요리 대회에 출전했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 밑으로 들어온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셰프들이었다.
이들을 각 레스토랑의 총 지휘자로 세운 이유는 경력도 경력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요리를 수단으로 자신의 색깔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국제 요리 대회 경연장에서 확인했었다.
“자신의 색이 검정색이라는 것을 인지하려면, 흰색도 알아야 되고, 빨간색도 알아야 되잖아요?”
그 한마디에 내가 이들을 지휘급 셰프로 세운 이유가 다 들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외적인 영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셰프들은 실력은 기본이고, 이 세 분은 잡지사, 방송, SNS 등 대외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밑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다.
세 명의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얼굴에, 눈빛에 열정 또한 가득했다.
우선, 로만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만한 인사들이었다.
로만뿐만 아니라, 나머지 44인의 셰프들도, 자신들과 나를 연결 지어줄 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가진 눈빛을 쏘고 있었다.
“지금부터 각 레스토랑의 메뉴를 구성하고, 코스를 짤 겁니다. 포시즌스, 파리.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각각이 완전히 다르고, 환상적인 맛을 내보겠습니다. 목표는…….”
목표는 내년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이 세 개의 레스토랑의 이름이 동시에 호명되는 것.
우와아아아아!
셰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나는 그 찰나에, 그것을 지켜보던 로만의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로만 사장님, 떨지 마세요. 뭐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내 100년 요리 인생의 내공이 본격적으로 몸 밖으로 표출되나 보다.
젊은 셰프들부터, 호텔 외식업계에 수십 년 몸담은 베테랑까지 내 앞에서 경직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