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5
5화. 차원이 다른 맛 (2)
방송과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반유현이요.”
“반유현 님이요.”
“반유현 씨?”
참가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제각기 달랐지만, 나의 이름이 계속 회자되었다.
환생하자마자 ‘골목가게’에 출연했을 때부터, ACK 본선에 섭외되기까지 각종 매체와 SNS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줄곧 나를 요리 천재라고 말해왔기에,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잘생겼으니까요. 헤헤.”
“그냥, 방송사에서 너무 밀어주는 게 티 나잖아요.”
“뭐랄까……. 진짜 천재니까? 이겨보고 싶다?”
“그 사람을 이기면 제가 엄청나게 부각될 테니까?”
내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단 한 명.
잭 킴의 제자인 윤종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다른 참가자들과 그 질감이 달랐다.
“저희 총주방장님께, 실력이 궁금하다는 말을 했답니다. 그 친구가.”
나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 또는 내가 가진 화제성 때문에 나를 꺾어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내 이름을 거론한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그의 비릿한 미소에는 건방진 놈을 짓밟아서 혼쭐을 내주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미슐랭 투스타 셰프, 잭 킴한테? 천재답게 건방진 면이 있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찡그려졌고, 나와 함께 그들의 대화를 모니터로 보고 있던 이성찬이 말을 건넸다.
“엥? 진짜로 저런 말을 했어?”
“제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잭 킴한테 요리 실력이 궁금하다 했다고?”
서울시 요리 대회, 그 경연장에서 있던 일이었다.
어떤 요리를 하는지, 그 요리에 담긴 스토리와 맛들은 어떤지, 그 실력이 궁금하다고 잭 킴에게 말했었다.
“무턱대고, 자신에게 요리를 배우라니까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당연히 그런 생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길래, 내 궁극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있어, 그에게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최대한 자세를 낮춰 말했었다.
100년을 넘게 산 내 처세술이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할 리는 없었고, 아무래도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당시의 상황이 입으로 전해질 때, 자극적인 소스들이 첨가되어 얘기가 와전된 것 같았다.
“대중들한테 알려진 네 이미지를 보면, 사람들이 딱 소스치기 좋은 이야기네. 너는 나쁜 의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질문 한 건데 말이야. 그치?”
“예.”
“그래도 이 자식아, 그런 유명 셰프가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 하면 냅다 줘야지. 너도 참, 특이한 놈이야. 거기서 실력을 왜 물어봐? 당연히 최고겠지. 미슐랭 스타 셰프인데.”
이성찬이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어떤 요리를 하셨나요?”
ACK의 첫 번째 라운드의 룰은 단순했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한 시간 동안 조리한 뒤, 심사위원 앞에서 5분 동안 플레이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컬리플라워 퓌레를 곁들인 관자 버터구이입니다.”
윤종혁이 특유의 두꺼운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은 요리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제출할 요리를 알아낸 것인지, 윤종혁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내가 선보일 요리와 같은, 관자 요리를 꺼냈다.
내가 관자를 고른 이유는 관자라는 식재료의 특성상, 실력에 따라 맛에서 명확한 차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윤종혁은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나를 혼내려고?’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재능까지 갖춰 미슐랭 레스토랑의 수석 조리장이 된 윤종혁.
저놈이 나를 보기엔 웬 조무래기가 방송의 힘을 빌려 나타나서 요리 천재라느니, 인생 2회차라느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눈꼴 사납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다 가져가기도 했고.
게다가 자신의 스승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니, 나를 혼내줄 명분도 생긴 것이다.
“야? 왜 웃어? 윤종혁 셰프가 너랑 같은 요리를 꺼냈는데? 너 미쳤어? 웃음이 나와?”
당연하게도 난 그의 귀여운 투정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
ACK에는 세 명의 심사위원이 있다.
-미슐랭 스타 11개를 가진 폴 피에르의 유일한 동양인 제자이자, 두바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출신 강요한.
-프랑스에서 오직 한식으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최훈.
-한식의 어머니라 불리는 김애란.
요리 평가에 있어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그들에게, 엄청난 극찬을 받고 윤종혁의 심사는 끝났다.
“엄청난 맛집을 이 스튜디오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합격입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합격이에요. 앞치마를 받아 가십시오.”
그리고 나의 차례가 왔다.
“반유현 도전자, 내외부적으로 말이 참 많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나에게 겁을 주고, 긴장감을 심어주려는 건지 차갑게 나를 노려봤다.
“당신의 요리가, 그런 논란들을 일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요리를 가져오셨나요?”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아주 평온하게 내 요리의 덮개를 열었다.
“관자 버터구이입니다.”
“호호, 흥미롭게 됐군요. 윤종혁 셰프의 요리와 같은 요리라…….”
“관자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로 쓰이기도 하고, 저렴한 술집의 술안주로 쓰이기도 합니다. 실력과 조리법에 따라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습니다. 본인의 요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훈의 교포 특유의 발음으로 혀를 굴리며 말했고, 강요한이 건방진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가장 높은 맛의 관자 구이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당황했다.
심사위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춘 뒤에 차례로 한 명씩 맛을 보고, 저마다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서로 대화를 나눴다.
“흠. 와, 이거 뭐야?”
“에……? 이 무야? 이게 무슨 맛이야?”
저들끼리 대화를 나눠도 그에 대한 답이 나오질 않은 모양이다.
김애란의 질문에 맞춰 강요한과 최훈이 다시 다가와 내 요리를 집어 먹었다.
“크레송……?”
최훈이 맛을 한참 음미하더니, 소스의 핵심적인 재료를 내게 말했다.
역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라서 그런지, 머리가 빠르다.
“아, 물냉이?”
크레송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애란도 말했다.
“관자가 가지고 있는 단맛에 크레송, 한국말로는 물냉이, 그 녀석이 가진 약간의 쓴맛을 첨가해 풍부한 풍미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냉이 버터 소스를 올렸습니다.”
크레송, 물냉이, 워터크래스 등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닌, 꽃의 생김새가 냉이와 닮은 식물.
약간의 매운맛과 쌉쌀하고 상쾌한 맛이 특징이다.
“다진 양파와 물냉이를 함께 넣고 볶다가, 닭 육수를 넣고 끓인 뒤 갈아서, 버터로 농도를 맞췄습니다.”
저들이 궁금해하는 맛의 비법은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약간의 시간 차를 주고,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접시 바닥에 있는 퓌레(과립즙)는 브로콜리가 아닙니다.”
“아…….”
“와, 어쩐지. 그, 그럼 뭡니까 이게?”
그리고 이렇게 연출되는 장면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자 구이를 먹었을 때보다 말이다.
“컬리플라워 퓌레에, 완두콩 퓌레를 섞었습니다. 흰색 컬리플라워와 초록색 완두콩이 섞여 연두색에 가까운 빛을 띠는데요. 아마도 색깔만 보셨을 때는 브로콜리에 버터와 생크림을 넣은 퓌레로 생각하셨을 겁니다.”
심사위원 세 명 모두가 내 말에 경청한다.
아마도, 자신들이 몰랐던 맛들이 나의 간략한 설명에 의해 합쳐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브로콜리 퓌레에 올려진 관자 구이가 시중에 너무 많기에, 초록색 퓌레를 브로콜리라고 완전히 확정하셨을 겁니다. 그리곤, 왜 관자의 끝 맛에 브로콜리 특유의 향이 올라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셨을 테죠.”
나는 그들이 내 음식을 먹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모조리 알고 있다.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전혀 상상치 못한 완두콩 특유의 단맛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저들의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캐치했기 때문이다.
“와…….”
자신들이 그려놨던 맛의 그림이,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우친 표정.
그렇게 모든 맛들의 의문이 풀리고,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다시 내 음식의 맛을 본다.
그제서야 입안에서 넘실대는 재료들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격적이네요.”
“저희가 감히 이런 요리를…….”
김애란이 합격의 상징인 앞치마를 내 목에 걸어줬다.
그리고, 미슐랭 3스타인 최훈 셰프가 심사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건 뭐……. 윤종혁 셰프가 제 후배라서 말하는 것도 있지만, 음……. 윤종혁 셰프의 관자 구이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도달…… 해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음……. 맛을 그리는 법부터, 재료의 조화까지 저에게 관자 구이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주셨…….”
프랑스에서 20년을 넘게 산 최훈의 어눌한 발음이 답답했는지, 김애란 셰프가 한마디를 던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냥 최고였어요. 뭘 평가를 해. 더 평가하지 마이소. 그냥, 최고. 최고!”
***
“아이고, 우리 아들 진짜……천재야. 고생했어.”
내가 앞치마를 받아왔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다 나보다 잘 나가는 거 아니여?
백원종 대표에게는 축하 메시지까지 날아왔고.
이성찬에게도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다.
-유현아, 제작팀이 편집하고 있는 것 보니까, 느낌이 좋아. 방송도 대박 날 것 같은 느낌이야. 아무튼 진짜 축하한다. 넌 될 줄 알았어!
그 외에 별다른 연락이 안 온 것을 보면, 환생하기 전부터 딱히 친구가 없는 몸이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불필요한 인연 때문에 손해를 봤던 적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첫 녹화를 하고 난 뒤 삼 일 뒤에, 다시 스튜디오를 찾았다.
두 번째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대기실 문을 열기 전, 분명 이 안은 시끌벅적했는데, 내가 등장하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니, 아마도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 공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때, 내가 아는 얼굴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오랜만이라예!”
오리 장인 김해숙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도 여기 출전하셨네요?”
“뭐, 나는 오라카면 오고, 가라카면 가는기지! 아아, 진짜 참말로 잘 먹고 있슴니데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달래랑 부추를 곁들인 스테이크예!”
유명한 오리 장인이 내게 와서 레시피에 대한 감사 인사까지 전하고 있으니, 대기실의 분위기가 더욱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 사람들이 그러던데! 거, 유현 씨 때문에 관자 요리한 사람들이 다 떨어졌다고예. 기준만 올려놨다고. 좀 살살, 봐주면서 하지!”
김해숙에겐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지만, 대기실에 있는 모든 참가자들이 김해숙의 입을 막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하하. 그래요? 괜히 미안하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들어왔다.
여덟 대의 카메라도 같이 들이닥친 것을 보니, 이때부터가 촬영의 시작이었다.
“반유현 씨. 1라운드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하셨습니다. 2라운드 미션을 선택하실 권한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