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2)
포시즌스 파리의 스위트 룸.
레스토랑 반유현의 그랜드 오프닝으로 인해, 대부분의 객실이 꽉 차 있던 지금, 내 이름으로 예약된 방이었다.
2박에 300만 원이 넘는 곳이었지만,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백원종과 그를 따르는 스텝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있었다.
이성찬은 편집 때문에 바빠졌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중식의 색깔을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입힐 수 있는 거야? 잉?”
“오랜만에 뵙는데, 대표님께서는 언제나 요리 얘기만…….”
“허허. 이 사람아! 같이 요리하는 사람끼리 레시피가 인사고, 조리법이 안부지!”
백원종은 그랜드 오프닝에서 먹었던 내 요리에 대해서 계속 캐물었다.
그 옆에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어머니랑 대화 좀 하라고 빠져 줄라 했는디, 어머니가 어째 딱히 할 말이 없으신가 봐. 바라만 봐도 좋으신가.”
“진짜 자랑스럽다 유현아……. 네가 파리로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니?”
“하고 싶은 일만 하라고 하셨었죠. 하기 싫으면 억지로 안 해도 된다고 하셨고.”
평소에 간간이 메신저로 연락을 남기긴 했었는데, 전화나 영상 통화 같은 것은 잘하지 못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머니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 이해는 한다. 1년 만에 본 아들이 완전 딴사람이 되어 있으니 놀라기도 놀랐거니와 자랑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가슴속을 꽉 채웠을 것이다.
“앞으로 자주 연락드릴게요, 어머니.”
20년 뒤. 아니, 남은 19년 뒤 미션에 실패하면 이 몸 말고 또 다른 몸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 짓을 6번이나 당했으니, 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미션에 성공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이고! 어머니,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구만유. 이런 아들을 냅두고. 나한테 전화해서 참나! 하하하하하!”
백원종과 어머니의 사이는 부쩍 친해진 듯했다.
백원종의 말투가 다소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 많은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예? 뭘요?”
“아, 아니야. 아들.”
내가 어머니와 백원종을 번갈아 보며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백원종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긴 뭘 아니여. 하하하하!”
“뭔데요?”
“아니, 이제 분식집, 메뉴 뽑아내는 것도 그렇고 매출도 안정적이어서 새로운 메뉴 좀 나한테 가르쳐 달라 그러셨거든. 어머니 요리 잘하는 거 알지? 이미 분식집 메뉴에 두 개가 더 추가됐는데, 그것도 금방 하시더라고. 응용도 하시고.”
“아 그래요?”
내가 환생하자마자 눈을 떴던, 분식집의 메뉴가 백원종의 솔루션을 받아 계란 볶음밥과 불 맛 라면으로 줄었다가, 그 메뉴들이 나오는 속도가 안정화되고, 손님이 계속해서 많아지자 메뉴를 추가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메뉴들까지 모두 섭렵해서 또 가르쳐달라고 했던 모양인데, 백원종은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가 잘되면 잘 될수록 보람차고 기뻐했는데, 지금의 반응은 내가 자신보다 요리를 잘하니, 나에게 메뉴를 받으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대표님께서 프렌차이즈나…….”
메뉴라면 만들어줄 수야 있지만, 나는 큰길을 가야 되는 사람 아니겠나.
어머니의 성공도 그만하면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프렌차이즈는 내가 전문가인디, 자네가 요리 전문가잖아. 어머니가 요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가게를 슬슬 확장할 땐데, 그 분식점에 ‘반유현 특선 메뉴’라고 써 붙여서 하나 팔면 잘 팔리겠더만.”
“아니, 아니에요! 우리 유현이 바쁜데, 내가 일을 만들면 안 되지! 그냥 메뉴 그대로 할게요!”
“어머니도 참. 아들 눈치를 왜 봐. 그동안 먹여주고 키워 줬는데. 안 그래 아들?”
백원종이 그 말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엄마, 요리를 얼마나 잘했었죠?”
한국에 완벽한 ‘내 사람’이 있으니, 확률은 낮겠지만 어머니를 이용해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김에, 2021, 내년 서울 미슐랭 스타를…….’
내 행동은 단 하나의 헛됨도 있어선 안 될 효율이어야 하니까.
***
어머니와 백원종은 며칠간 파리와 주변국의 여행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 레스토랑 오픈의 초창기이니, 일정을 잡아보고 한국에 잠시 들어간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파리 내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모든 예약이 꽉 찬 어플을 보며, 내 레스토랑들을 순회했다.
먼저,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였다.
“반 셰프!”
“반 셰프! 서운하던데?”
루시앙과 올리버, 이젠 날 보면 함박웃음을 짓는다.
“진짜, 대단해 이 어플리케이션! 인건비도 줄이고, 손님들도 한눈에 예약 일정을 볼 수 있어서 편하고.”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는 루시앙의 지분이 더 많이 들어있는 레스토랑이었지만, 내가 만든 예약 어플에 추가해줬다.
어쨌든 이곳에서도 나의 파스타 요리를 맛보기 위해 올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어플에서 예약할 수 있는 레스토랑 중 어디가 제일 손님이 많은가.”
“당연히,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 그 다음 ‘레드 테이블 – 반유현’ 순이네요.”
“허허허. 귀신같이 내 지분이 적게 들어간 순이구만?”
루시앙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자, 올리버가 말했다.
“큰일이네요. 셰프님, 이제는 반 셰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도 먹히지가 않으니까요.”
“허허허. 올리버, 자네 반 셰프를 뭐로 보나? 반 셰프는 은혜를 그렇게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반 셰프가 나를 스승이라고 언질만 해주면, 문제없잖아?”
“큭큭.”
중년의 두 남성이 콩트를 하듯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니, 반 셰프, 글쎄, 그랜드 오프닝 그 현장에서 루시앙 셰프님이 너무 맛있거나 감동하는 표정을 지으면 본인이…….”
“허허! 올리버, 자네는 못 하는 말이 없네.”
그 뒤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유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루시앙은 맛있어도 맛있다고 표현을 못 한 것이다. 그저, 무협지의 스승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 정도를 보여줬다는 것.
루시앙이 그랬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올리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에는, 시금치 파스타, 버섯 파스타 등 봄철 재료를 이용한 파스타의 레시피를 보여주고 직접 시연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거린 뒤, 똑같이 시연해 보이며 나의 테스트를 기다렸다.
이제, 그와 나와의 직급은 자연스럽게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나에게 미슐랭 포스타라는 확실한 명함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입지는 그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올해는 투스타를 받았으니까, 내년엔 쓰리스타를 받아야죠, 이곳에서.”
투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쓰리스타를 받으면, 미션에 필요한 별 중에서 한 개가 추가되는 것이다.
내 한마디가 두 중년의 셰프에겐 강력하게 들렸는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었다.
“충! 성!”
“뭐냐 그건.”
메이, 헨리, 제리, 최민성이 나에게 경례로 인사를 했다.
“오버 좀 하지 마라 민성아.”
군대를 갔다 온건 대한민국 국적의 최민성뿐이었으니, 그가 생각한 인사법인 게 분명했다.
최민성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랜드 오프닝에서의 내 활약이 이곳까지 소문났는지 이들도 꽤나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오늘, 코스 테이스팅 있잖아.”
“준비하겠습니다!”
이곳은 내가 두 달 주기로 메뉴와 코스를 구성해놓고, 테스트 받는 레스토랑이었다.
식자재의 신선도와 홀의 청결 상태를 확인했을 때쯤, 이들이 메뉴를 들고 나왔다.
“농어찜, 크림 소스가 너무 묽어, 이 요리에 쉐어 되는 와인도 바꿔. 식물성 풍미가 주로 나는,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으로.”
“예! 셰프!”
메뉴의 맛은 꽤나 준수한 편이었다. 내가 주방을 비우는 날이 많은데도 수준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생의 동료들을 미리 섭외하길 잘한 것 같다.
특히나 최민성은 이번 생에 처음 만난 인연인데 부족함 없이 잘 융화되고 있었다.
“이대로 열심히 계속해. 레스토랑 반유현, 그 뒤에 너희의 이름이 붙을 날도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도 2021년에 쓰리스타를 받아야지. 그렇게 될 거고.”
아주 오랜만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아서 그런지, 네 명의 셰프 모두 감동한 표정이었다.
나는 곧바로 포시즌스로 이동했다.
포시즌스는 영업 날이었기 때문에, 이미 레스토랑 안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와, 반유현 셰프다!”
“진짜로 있네! 이름만 세워 놓은 게 아니라 직접 주방을 운영하는 거였어!”
손님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셰프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직 이곳은 미슐랭 스타를 얻지 못한, 올해에 미슐랭 스타를 받아야 할 주방이었으니까.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총괄 셰프들이 다가와 곧장 보고를 한다.
“셰프님 오셨습니까, 그랜드 오프닝에 선보였던 참치국수가 인기여서, 다음주까지 계속 코스에 유지해볼까 합니다.”
“저희 레드에서는 메뉴 중간에 나가는 맑은 대구탕이 반응이 좋습니다. 그런데, 대구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가끔 질 나쁜 대구를 줘서……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저희 옐로는 셰프님께서 알려주신 특제 기름으로 볶음요리와 튀김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웍을 돌리는 화구를 추가로 설치해야 할 것…….”
불과 몇 달 전, 로또 육인방과 레스토랑을 차리며 그들에게 호통쳤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 셰프들이 나에게 모든 상황을 보고했다.
5성급 그 이상의 팔라스 등급의 호텔, 그 호텔의 모든 레스토랑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셰프, 그게 나였다.
“맛의 수준은 계속 올릴 거야. 내 생각의 맛이 10점이라면, 이 세 개의 레스토랑 다 6점대야.”
내 말에 셰프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서빙 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내가 허락했던 요리들이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이 요리들이 최고의 맛인 줄 알고 있을 터였는데, 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 생각과 반대되는 말이었다.
“유, 육 점이요?”
이곳은 나 스스로도 맛의 기준을 높게 세워둔 곳이었다.
레드, 블루, 옐로, 총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각각 세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으리란 계획을 하고 있었으니까.
미슐랭 쓰리 스타라 함은, 나도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레스토랑이라면 나 혼자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년, 총 아홉 개. 아홉 개의 별을 얻을 거야. 그런 각오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요리의 맛은 6점도 많아. 알겠냐.”
“예! 셰프!!”
총괄 셰프들 뿐만 아니라, 내 말을 모두 들었는지 주방의 기세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 팀의 직원인 오스틴이 주방으로 내려왔다.
“너 자꾸 직원이랍시고 주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다름 아니라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급한 일인지 들어볼게.”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셰프님을 정식으로 초청하시겠다고…….”
쭈뼛쭈뼛 오스틴이 입을 열었다.
“청와대? 대통령님?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뭔 청와대야.”
“그……. 국위선양하신 분들이 초대된…….”
“거절해. 그리고 너는 주방에 함부로 들어 오지 마. 셰프들의 공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