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3)
“어이, 홍보담당,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한 일이야. 쯧쯧.”
“죄송합니다.”
“VIP께서 특히나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 반유현 셰프라고. 아니, 프랑스에 갔다 왔다면 섭외를 당연히 했어야지. 오늘 아침 회의에도 반유현 셰프의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청와대 사회문화정책 비서관의 말이었다.
반유현의 섭외가 불발되었다는 소식에, 연신 혀를 차며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만날 시간도 없었다니, 자네들 비행기값 다 세금이야, 세금.”
이번 ‘국위선양자 초청 만찬’에 반유현 셰프를 초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담당과 정책실 행정관을 프랑스로 파견했었다.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고위급 공무원 두 명을 파견 보낸 것은 반유현을 섭외하는 것에 큰 목적이 있었다.
“VIP께서 이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네. 국정운영에 일들이 많아 당시에 못 했던, 2020도쿄에서 활약한 선수들에게 만찬을 열어줄 것도 그렇고, 이번에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TTS와 봉 감독, 그리고 그 스텝들까지 한 번에 초청해서 만찬을 준비하시겠다는 생각이신데, 그 자리를 빛낼 감초로 반유현 셰프를 초대하신다는 계획이란 말이야…….”
2020년, 한 해 동안 국격을 높이고, 국위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
그 자리의 요리가, 근래에 가장 주목을 받는 셰프인 반유현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에는 논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홍보담당관은 반유현을 섭외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VIP와 비서관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나,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본 바로는, 반유현 셰프가 청와대 국위선양자 만찬에 요리를 하는 것에 큰 영광을 얻고, 영예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의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이 전 세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자, 자네 생각은 우리 측에서 고개를 숙이면서 그를 초청해야 된다는 말이야?”
“뭐……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직접 프랑스를 갔다 온 홍보담당관이 느낀 바는 그랬다.
아무리,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또, 청와대의 이름으로 그를 초대한다고 해도 그가 움직임을 보일지가 의문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인근, 유럽 각국의 총리급 인사들이 직접 방문 예약을 하고 웨이팅을 하는 시점,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SNS에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극찬하는 시점에, 청와대 만찬이 그에게 중요한 자리가 될 것 같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폭발적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그를 움직이려면 확실한 미끼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반유현 셰프를 원하시면 다른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카드.”
“뭐, 이번 만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문화훈장(文化勳章)을 수여한다는 것을 밝힌다든가…….”
문화훈장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내리는 상훈이다.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상.
1등급부터 5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이 상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 국위선양자 만찬에 참석하는 이들이 이 후보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말을 해서라도 그를 만찬에 초대하고 싶으신지부터 VIP께 여쭤봐야겠는데. 일단 보고를 드리지……. 근데, 자네 생각은 그가 그 정도의 인물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
효율을 위해 계획에 없던 일들을 수행해야 될 때가 생긴다.
나는 여러 가지 판단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빕구르망을 목표로 하고 다른 가능성을 더 찾아보는 걸로.’
빕구르망.
이 또한 미슐랭 가이드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맛이 좋은, 즉 가성비가 좋은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것을 부르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분식집은 빕구르망을 목표로 도와주면서, 우선,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볼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 꽤나 괜찮은 요리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괜찮은 요리 실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곧장 계획을 바꿀 생각이었다. 한국에 곧장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것으로 말이다.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에 소속된 내 옛 전생의 동료들은 아직, 프랑스 파리가 아닌 다른 나라에 파견시키기에는 실력에 부족함이 있었다.
아직까지 내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상황, 한국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맡아 줄 사람이 분명하게 있다면 이곳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노려보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인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온 제안이 나를 이끌었다.
문화산업 훈장.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만 수여된다는 그 상.
뭐든지, 국가에서 수여되는 상에는 엄청난 권위가 생긴다.
만찬에 참석해 제대로 눈도장을 찍으라는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담당의 말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왕 한국에 들르는 겸해서 그곳에도 가볼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김에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씨앗을 뿌려놓고 갈 예정이다.
“왔어? 유현아. 이거 스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렵네.”
“하시던 것처럼 편하게 하세요, 감독님.”
이성찬이 공항에 직접 마중 나왔다.
전 세계 방송국에서 유일하게, 그에게만 촬영권을 부여해줬더니 나의 입지를 깨닫고는 나를 어려워했다.
레스토랑 내에 카메라가 많으면 어수선할 수 있고, 나와 그나마 친분이 있는 그를 선택했던 것뿐이었는데.
“일단, 집으로 갈까?”
“예.”
내가 이 몸으로의 환생을 시작한 분식집에 도착하니, 꽤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일단 같은 층에 있던 가게를 밀어내고 분식집을 확장시켰고, 건너편 건물은 ‘대기실’의 명목으로 꾸며 놨다.
그리고, 그 앞에 일렬로 줄을 지어선 손님들.
“와! 반유현 셰프다!”
“뭐? 파리에 있는 거 아녔어?”
우와아아아!
나의 등장에 환호를 내지르는 손님들이었다.
나의 깜짝 등장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어머, 어머! 이 집 아들을 이렇게 실물로 볼 줄이야!”
새롭게 뽑힌 직원들도 나의 등장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
주방에 있던 아줌마들이 환호했다.
“왔어? 우리 아들!”
주방에서 곧장 어머니가 달려와 나를 안았다.
나는 지체없이 말했다.
“어머니, 백원종 대표님 대신, 제가 직접 메뉴 개발을 도와 드릴 거예요. 그 전에, 일단 어머니 요리 실력을 제가 시험해보고 싶은데…….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이 주는 느낌 자체가 비즈니스를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 안으로 들어가 있어 유현아.”
그런데, 웬걸, 어머니도 나에게 요리 테스트를 받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순간 나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아니라, 셰프였다는 것은 어머니의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요리 자체에 욕심이 있으셨던 건가.’
주방 뒤편에 마련된 공간, 직원들이 휴식하는 공간에 내가 들어가 있자 어머니가 금방 요리를 해 가져오셨다.
“고추장 황태구이야. 양념장도 엄마가 특별 만든 거고.”
고추장 황태구이.
결론부터 말하면, 꽤 맛있었다.
고추장을 만드는 것부터 손수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맛이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아들. 유현이가 온다고 했을 때부터 엄마가 준비한 야심작이야.”
100년을 넘게 살면서 먹어 본 적이 있었나.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는 것 보면, 비슷한 요리들은 수없이 먹어봤어도, 고추장 황태구이라는 명칭을 가진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나의 어머니인 이영미 여사께서 손수 고추장을 담가 만든 요리였으니, 이 요리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요리였다.
“매실…… 생강…… 조청인가?”
양념장의 맛을 보니,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불어, 내가 어떻게 단 한입을 찍어 먹고 그 맛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셨는지, 본인도 고추장을 찍어 먹었다.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매콤함과 달콤함이 반반 섞인 고추장 양념에, 새콤함이 아주 조금 드러나 있었다.
이 새콤함이 이 요리의 기본 베이스를 망치지 않고 나오는 것에서 어머니의 실력을 얼추 실감했다.
황태의 살을 씹을 때도 어머니의 요리 실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초벌구이를 한 번 하신 뒤에, 양념장을 발라, 한 번 더 구우셨네요.”
“어…….”
“초벌구이하실 때, 발랐던 들기름이 양념장과 황태 본연의 맛을 연결시켜 주기도 하고요. 이런 걸 어디서 배우셨어요?”
“예전에, 우리 엄마. 유현이 너 외할머니가 하시던 걸 보고 했는데, 확실히 살의 질감과 양념장과 살이 어우러지는 풍미가 다르더라고.”
“맛있네요.”
“유현아 엄마라고 봐주지 말고 솔직하게 평가해줘.”
언론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많이 보셨던 것일까.
내 입에서 ‘맛있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셨다.
“맛있어요.”
10점 만점 중, 5.1 점 정도.
포시즌스의 맛이 6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일단 어머니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
지난 100년간, 백악관, 엘리제궁, 윈저 성, 모든 곳을 밥 먹듯이 들락거렸지만 청와대는 또 처음이었다.
태권도, 육상, 체조, 영국 축구리그 선수 등 지난 한 해 국격을 높였다고 칭송받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그중 나와 안면이 있는 TTS의 멤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셨어요 반 셰프님?”
연령대가 비슷한지라, 내게 다가오는 게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나도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예술, 예술이었어요, 진짜.”
TTS의 멤버인 정영돈이 나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에 따라 이 공간의 모든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올림픽 스타, 스포츠 스타들도, TTS와 이렇다 할 연을 만들고자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찰나에 내가 등장한 것이었다.
그 부러움 한 가득인, 노골적인 시선들이 나에게로 쏠리자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오늘도 요리를 보여 주신다고 해서, 저는 스케줄도 미루고 왔어요. 파리의 기억이 아직도…….”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게, 다른 이들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대통령을 영접하기 전, 대기 공간인 이곳의 정적이 더욱더 깊어만 갔다.
“오늘은 어떤 코스예요? 너무 기대돼요, 반유현 셰프님. 흐어.”
코스? 나는 이들의 기대와 반대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추장 황태구이를 할 생각입니다.”
“예?”
“예에?”
고추장 황태구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들은 더욱더 나를 조였다.
청와대 관계자들까지 나를 바라보는데, 오늘 코스에 대해서 꽤나 많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저희 어머니께서 개발하신 요리인데요. 모자란 부분을 조금 채웠습니다. 보리밥하고, 맑은 대구탕, 돼지고기 호박 볶음, 한식의 대표인 잡채, 그리고 고추장 황태구이로 오늘 만찬을 구성했습니다.”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프랑스 코스, 정찬이라고 불리는 화려함만이 요리의 전부가 아닌데.
‘해주면 먹을 것이지.’
그리고 불쾌하기도 했다. 어딜 가던 최고의 대우만 받던 이들이라, 나의 요리를 먹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태도를 고쳐주려고 말했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돼지고기 호박 볶음과 잡채를 빼겠습니다. 대구탕, 고추장 황태구이 볶음, 그리고 밥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아, 대구탕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