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4)
“반찬 세 개로…… 국위선양자 만찬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엔 요리를 한식으로, 다섯 개 정도 구상했는데 그것마저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장소와 행사는,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곳이 아닙니다만. 본인의 레스토랑에서나 그런 짓을 하시죠.”
“그런, ‘짓’이요?”
청와대 내에는 총 다섯 명의 조리팀장이 있었다.
한식 두 명, 일식, 중식, 양식 각 한 명.
그중 내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사람은 한식 팀장 중 한 명인 박건우였다.
백발의 짧은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의 남성이었다.
“대통령께서 프랑스 파리, 한불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하실 때, 동행했었습니다. 그 당시,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의 반유현 셰프님의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물론, 상당히 안 좋은 쪽으로요.”
그는, 한불문화교류행사에 대통령과 동행한 조리팀장 중 한 명이었다.
말투는 나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표정은 거만하고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셰프로서의 반유현은 인정하지만, 청와대 조리실의 권위를 나에게 인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내 귀빈들을 모신 이런 자리에서 밥, 반찬, 국 세 가지의 요리를 하다니요.”
“셰프가 준비한 요리를 평가 절하하는 게 더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대기실 내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세계적인 운동선수들, 그리고 감독과 스타들,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이 방금 전 했던 대화들이 이렇게 번진 것에 대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셰프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무지한 탓에, 그런 예의를 몰랐습니다. 셰프님의 코스 요리를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터라, 저희도 모르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TTS의 멤버인 김호가 내게 와서 말했다.
자신들의 멤버들이 내가 구성한 요리에 대해 실망감을 비쳤고, 그것들이 지금의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나에게 대신 사과했다.
그런데, 지금 조리팀장 박건우와의 대화는 그것과 별개의 문제였다.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나도 국위선양자의 자격으로 초대된 것인데, 박건우는 내가 만찬을 준비하는 셰프로 초대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VIP와 귀빈분들께 요리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그런 거만함과 겸손함으론……. 제 요리경력이 훨씬 많으니까 새겨 들으십쇼.”
그가 권위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나는 웃으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는지, 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점점 더 드러났다.
“망할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
“나라를 빛내 주신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면 어떨까 해서, 반유현 셰프를 모셨습니다. 아, 물론,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우리나라를 빛낸, 문화 예술계의 한 분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하하하하! 초대된 손님, 그리고 셰프, 두 일을 동시에 수행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찬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청와대 조리 팀장인 박건우가 내게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리 조리실 직원들에게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대해서 너무 많이 얘기를 해서요. 물론, 우리 조리실의 직원들 요리도 너무나 훌륭합니다. 하하하! 그니까, 비교를 하려는 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가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입이 닳도록 말한 건데, 오늘 그 요리를 직원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어서 좋네요. 더불어 초대된 모든 분들에게도 최고의 요리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고요. 반유현 셰프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위기감.
질투와 시기를 넘어선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이었다.
대통령님께서 저 정도로 나의 얘기를 했다면, 밥그릇을 빼앗길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난 청와대 조리실 따위에 관심이 없기에 박건우를 비롯한 청와대 조리실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구탕은 해줘야겠네.’
밥하고 고추장 황태구이로도 저들에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대통령이 내가 좋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으니, 대구탕을 다시 추가해서 요리를 내어놓았다.
밥, 국, 메인요리 그리고 청와대 조리실에서 내어 준 김치나 장아찌와 같은 것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크아!”
맑은 국물의 대구탕,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도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건, 한국인이 유일하다.
“우와……. 시원해.”
무와 다시마, 그리고 멸치육수가 낸 진한 맛이 온몸을 개운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어떤 탄력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탱글탱글한 대구의 살이 입을 즐겁게 해줬다.
적당한 힘을 주어 부순 대구의 살에서 내리는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이 황태구이면, 밥 100공기는 먹겠다.”
어머니의 요리에 영감을 받아 그것을 발전시킨 고추장 황태구이 또한 엄청난 반응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
젓가락으로 부숴 입으로 넣은 황태는, 앞선 대구탕의 대구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식감이었다.
대구와 황태의 식감을 ‘쫀득함’이라는 그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질감이 달랐다.
살이 부서지는 결이 다르다. 대구는 뭉슬뭉슬 무너져 내리는 반면 황태는 쩍쩍 찢어지며 안에 배어있는 양념과 기름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씹을 때마다, 황태 특유의 고소함이 올라왔다.
“와……. 한식의 장인이라고도 불릴 만한…….”
자연스럽게도, 청와대 조리실에서 내온 작은 반찬들에는 손이 가지 않는 상차림이었다.
내가 그들의 요리를 먹어봐도, 딱 평범한, 그 정도 수준의 반찬이었으니 내 요리와 같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저 반찬들의 신세가 처량했다.
모든 테이블의 대구탕과 황태구이가 사라진 것에 반해, 반찬들은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때, 박건우와 조리복을 입은 그 부하 직원들이 접시를 들고 걸어 나왔다.
“각하, 반유현 셰프께서 원래 준비한 요리 중에 몇 가지를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재료를 버리기가 아까워 저희가 호박전을 한번 해봤습니다.”
돼지고기볶음에, 호박도 함께 볶아 곁들여 먹으려고 했었던 건데, 내가 그 요리를 하지 않자 박건우가 그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들을 보고 위기감을 더 확실하게 느꼈는지, 박건우가 대통령 옆으로 걸어와 말을 하곤, 직원들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원들은 접시를 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호박전?’
호박의 겉에 전분과 밀가루가 묻혀진 것과 그 형상만 봐도 맛을 알 수 있었지만, 호박 그 자체를 메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양식 대부분의 요리들이 호박을 그 자체인 메인 식재료로 쓰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흠.’
호박전을 한입 베어 물자, 호박 특유의 단맛이 올라왔다.
그리고 기름도 일반 올리브유나 식용유가 아닌 여러 종류의 기름들을 혼합해 만들어 그 고소함도 괜찮았다.
‘콩기름, 옥수수유, 올리브유는 거의 안 들어갔군.’
확실히 대한민국 최고라 자부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실력은 나쁘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호박의 수분기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씹을 때 물이 너무 많은 느낌이었고 호박 특유의 냄새, 호박 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역시, 우리 조리팀장이야. 하하하하!”
“어우! 이것도 맛있네요!”
그런데, 호박전을 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는 말과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의 호박전은 뭔가 다른 게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이곳이 청와대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주는 맛도 그랬을 것이고, 나는 원래 호박전이라는 음식이 이 정도의 맛으로 만족감을 주는 음식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박건우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제 요리가 뭐,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 행사장 내에 있는 사람들이 만족감을 표해줬다고, 금세 자신감이 올랐던 모양이다.
무시할까. 말까. 의미도 없으니 무시하자. 라고 생각했을 때, 박건우가 나를 건드렸다.
“저도 호박 말고, 대구, 황태와 같은 좋은 식재료를 썼다면, 이 정도 맛은 낼 수도 있었을까요? 하하하하.”
같은 식재료를 이용한다면, 나의 요리를 이길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내 웃음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다시 한번 주변인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똑같은 재료로. 제가 한번, 해 드릴까요? 호박전.”
“오오.”
대통령님의 기대감은 표정을 통해 드러났고, 국위선양자로 초대를 받은 이들도 그와 같았다.
다만, 박건우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 하하. 뭐 굳이. 그런……. 대결을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마음속에 여유가 없지만, 여유로움을 억지로 표현하고자 하는 웃음.
박건우의 지금 표정이 그랬다.
***
호박전, 그 음식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내겐 생소한 음식이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먹어봤겠지.’
박건우의 되도 않는 도발적인 말을 듣고, 그가 만든 호박전을 한 번 더 집어 먹었다.
그리고 그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레시피가 떠올랐다.
곧장 테이블에 도마와 칼, 그리고 가스버너가 준비되었다.
대통령의 제안 때문이었다.
“반유현 셰프님, 그 과정도 이곳에 오신 손님분들이 보신다면 좋으실 것 같은데,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완곡한 요청에 나는 음식을 먹었던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환호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우와아아아!
칼이 도마를 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다다다다다!
나는 호박을 가늘게 채 썰어, 그것을 준비된 용기에 넣고 소금을 뿌렸다.
삼투현상을 일으켜 수분을 빼내는 작업이었다. 또한 호박 특유의 냄새를 줄일 수도 있으며, 수분이 적절하게 빠진 호박은 식감도 좋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옥수수 전분과 감자 전분을 용량에 맞게 넣어 버무렸다.
그리고 그것을 곧장 팬에 올렸다.
반달 모양으로 큼직하게 썰린 박건우의 호박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채 썰린 호박들이 엉켜있고, 그것을 가지런히 편 상태에서 뒤집어가며 구웠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저 조리장들의 긴장한 표정이 보인다.
치이이이익!
노릇하게 구워진 전을 접시에 담고 박건우를 먼저 불렀다.
“조리장님, 먼저 맛보시겠습니까? 대통령께 드려야 할 요리니, 먼저 좀 드셔보시죠.”
박건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고, 방금 막 꺼낸 호박전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초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크흠!”
정신을 차린 박건우가 헛기침을 한 뒤에 나를 보곤, 다시 한 점을 빠르게 집어 먹었다.
“다른 분들께도 이대로 서빙하면 될까요? 맛이 괜찮으십니까?”
나의 물음에 박건우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