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5)
조리복의 오른쪽 팔, 파란 글씨로 ‘청와대’라고 적혀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박건우의 표정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했다.
불안감, 초조함이 드러났으며, 열등감, 질투로 불리는 내적인 감정까지 드러났다.
“와, 바삭해! 그리고 달아!”
“바삭하다가도 씹었을 때, 호박의 식감이 없는 건 아니잖아.”
“이건……. 와.”
수분이 가득한 채소를 씹는 느낌의 호박.
내가 방금 만든 호박전은 그것과는 다른 식감을 보여주었다.
가늘게 국수처럼 채 썰린 호박들이 엉켜 있는 그 빈틈이 전혀 다른 식감을 선사했다.
“호박 특유의 냄새가 아예 없는데?”
박건우는 호박을 반달썰기로 큼직하게 베어내 기름에 부쳤기 때문에, 호박을 씹으면 호박 안에 있던 수분이 한 아름 쏟아져 나온다.
그 수분에는 호박이 갖는 단맛이 많이 함유되었지만, 호박 특유의 냄새를 동반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냄새가 호박을 못 먹을 정도로 역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 냄새가 없다면 맛의 수준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
“이거는 채썰기를 해서 그런지, 물이 팍팍 안 튀어나오네, 고소한 기름의 향이 더 강해. 그리고, 호박의 단맛은 살아있고…… 오묘해.”
TTS의 멤버 김호였다.
나를 바라보며 감상평을 뱉어댔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다더니, 입에서 전해지는 자극들에 집중하는 방법을 아는 듯했다. 더군다나 박건우의 호박전이라는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으니, 감평도 구체적이다.
“어우.”
오스카 시상식을 휩쓴 봉 감독은 내 요리를 먹고 어떤 영감이라도 받은 듯이 감탄을 내뱉었다.
“제가 요리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음. 그 단순한 호박전이 어떻게 이런 맛을…….”
사람들의 감탄이 모두 끝났을 때는 내가 설명을 이어갔다.
“박건우 조리장님께서도, 분명 수분을 빼는 작업을 하셨을 텐데, 반달썰기의 호박은 한계가 있습니다. 표면적이 채썰기를 한 호박보다 작으니까요. 아주 단순한 원리인데, 왜 요리에는 적용을 못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분명, 조리장님이시라면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 궁금합니다.”
당연히, 아주 정중하고 겸손한 저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내 말에 사람들도 그 점이 궁금했는지 박건우를 바라봤다.
이미 맛에서 차이를 봤기 때문에, 이 맛의 차이가 확실한 실력에서 온 차이인지 박건우의 의도적인 조리법에서 나온 맛인지 궁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박건우의 경직되었던 표정은 풀릴 줄은 모른다.
실력의 차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는 알고 있던 탓이었다.
“저, 전통적인 호박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전통을 위해 맛의 한계를 규정짓는 게 한식이라면…… 제가 알고 있던 한식은, 이 현지의 한식과는 달랐군요.”
“뭐, 달랐나봅니다. 맛이 없지는 않잖아요?!”
“조리장님 말씀대로라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는걸, 그냥 먹는 게 한식입니까?”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박건우가 한식을 평가절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리장님! 왜 한식의 맛이 규정되어 있어요? 허허허허. 청와대 조리장이 우리나라 전통요리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마도 박건우가 한식의 한계를 규정지은 것에 대한 항의였으리라.
확실한 건 그의 웃음에 어느 정도의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흠……. 죄,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빠른 인정 덕분에 나는 그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켜주지 않아도 이미 테이블 위의 호박전이 우리 둘의 실력 차이를 입증하고 있으니까.
“수분을 빼는 작업에 신중을 가했습니다. 호박의 단맛은 유지하고, 호박 특유의 냄새는 없애고, 또한 식감까지 유지하는 적정선에서 수분을 뺏습니다. 그 핵심은 채썰기였죠. 또, 콩기름, 옥수수유로 기름을 제조해 전을 부칠 때 기름의 향이 극대화되도록 했습니다. 단맛 뒤에 올라오는 기름의 고소함을 느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 테이블 위에, 내가 만든 호박전은 ‘완판’되었다.
박건우의 호박전이 더욱더 처량했던 건, 내 호박전과의 모양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모든 호박전이 박건우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 요리를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와아아아아!
정찬요리, 코스를 바랐던 사람들도 이미 나의 퍼포먼스와 요리에 매료되었는지.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자 기립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호박 요리…….’
그 환호와 박수를 즐길 새도 없이, 내 머릿속에는 아이디어들이 솟구쳐 떠올랐다.
***
[ 반유현의 호박쇼! 극찬.] [ 한식 무형문화재로 등극해야 되나. ] [ 대통령 “역대 먹었던 밥 중 가장 맛있었다.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나는 맛.” ] [ 유명인사들 연이어 극찬, 반유현 한국 진출의 발판이 될까. ] [ 청와대 조리장들과의 신경전이 있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 당시 청와대에 함께 있던 기자들이 찍어내는 기사는 역시 자극적인 맛이 강하다.
일단 조회수가 목적일 테니, 이해는 된다만 이것을 필터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 반유현. “고추장 황태구이는 어머니의 요리에 영감받은 것.” ]“유현아 굳이…….”
“맞잖아요. 어머니의 레시피가.”
내가 짧게 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어머니는 또 글썽이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어머니가 요리에 욕심도 있으시고, 이름을 알릴 때도 되셨죠. 분식집을 계속하기엔 아까운 실력이세요. 더군다나 아들인 제가 있고요.”
내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굳이 어머니를 언급한 이유는 지난번, 어머니의 요리에 잠재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정도 나이의 사람들은 원래, 잘 흡수를 하지 못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가르쳐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잠재력이에요. 세월에 의해 경험과 노련함을 갖췄고 거기에 배우는 자세까지 곁들여졌으니까요.”
“그, 그러니?”
파리, 포시즌스에서 열린 내 그랜드 오프닝을 보시고 나서는 나를 불편해 하셨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아들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내 입장에선 해드릴 게 없었다.
매 삶 같은 이유였지만, 딱히 설명할 거리가 없지 않나.
나의 계획을 차근히 설명할 뿐이었다.
“제가 이번에, 청와대에 가서 호박에 대한 잠재력을 봤습니다.”
“호박?”
“네, 한식에는 호박을 주된 식재료로 이용한 요리들이 많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받은 영감이었다.
서양의 식재료에서 호박이라 함은 주로 단호박.
스프나 라떼, 파이, 또는 쿠키에 들어가는 것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한국의 요리들은 단호박 말고도 무수히 많은 종류의 호박들이 주된 식재료로 쓰이곤 했다.
“강력한 맛을 내는 것은, 식재료를 탓할 게 아니라 실력이고요. 호박은 그 자체에 영양소도 많고 색채도 다양하고 요리의 종류가 많다는 것에서 잠재력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 없습니다.”
“뭐가 없어?”
“호박을 전문 식재료로 한 레스토랑이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상으론 없었다.
내 100년의 경험을 통틀어 봐도, 호박이라는 식재료를 이용해 코스요리를 구성하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하루하루 주제를 바꾸는 레스토랑에서 호박을 주제로 하는 날은 있어도, 호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왜 없을까? 호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이 없는 이유를 떠올리는 게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의 기본이라고 생각할 텐데, 이유는 상관없습니다. 결정한 이상 맛있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한식에 많이 쓰이는 재료인 호박을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없다는 것은, 괜스레 그것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했다.
수없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완벽한 차별성을 갖고 시작한다는 것은, 이 요식업계의 생태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맛의 전제를 당연시하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 저희 동네, 파리에 ‘버섯’을 전문으로 요리한 레스토랑이 미슐랭 투스타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호박이라고 안 될 건 없잖아요? 특히나 한식에서 자주 사용되는 재료이기도 하고. 호박을 이용해서 하실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가 되시죠? 지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멍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단호박 영양밥, 단호박 죽, 새우 호박 볶음, 호박선…….
단호박에는 각종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어, 누구나 웰빙을 외치는 요즘 시대를 공략하기 딱 좋은 식재료였다.
더군다나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영양밥은, 맛 또한 괜찮았다.
“어.”
탄성도 감탄도 아닌, 나의 짧은 말에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맛있네요.”
어머니라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게 아니라, 맛있었다.
찹쌀, 찹쌀현미, 대추, 은행 등의 재료들이 단호박의 맛에 갇혀있지 않고 어울리는 맛이 좋았다.
천일염으로 적당히 간이 되어 있었는데, 그 소금의 맛은 전체적인 맛의 풍미를 올려주는데 기여했다.
달달한 단호박과 고소한 잡곡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더군다나 이 맛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생각하니, 이 요리를 싫어할 사람은 적어도 없어 보였다.
다시금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죽 먼저 먹었어야 됐나요?”
가장 큼직하고 색이 이뻐, 영양밥에 먼저 손을 올렸었는데, 죽이 있었다.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식감과 목 넘김 뒤에 올라오는 단맛 또한 일품이었다.
물론 몇 가지 조정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추가하거나 덜어내면 맛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새우 호박 볶음?”
100년의 인생 동안 언제, 어디서 먹어봤을 수도 있지만.
한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 삶이 처음이라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새우젓으로 감칠맛을 살려서, 매운 고추하고 같이 볶아봤어, 새우 살도 지금은 냉동밖에 없어서…….”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의도한 맛의 조화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주목한 요리는 이 다음이었다.
“이건, 호박선이라고 한식의 범주에 확실하게 들어가는 거야. 유현이는 아마 처음 먹어볼 텐데, 먹어봐.”
호박선.
호박의 중간중간에 칼집을 내, 그곳에 고기와 각종 채소, 그리고 버섯을 넣어 육수를 얕게 깐 냄비에 끓여 익히는 요리.
호박의 단맛과 식감, 그리고 다른 재료들의 조화가 중요한 요리였다.
“엄마가,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볼 때 나온 요리야.”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문제로 나온다는 건, 이 요리가 확실한 한식이라는 것 아니겠나.
맛을 보완하면 충분히 메인 요리로 쓰일만한 요리였다.
나는 곧장 문제점을 집어냈다.
“냄비에 넣고 끓이는 것보다, 찜 솥에서 스팀으로 찌는 게 더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의 비율도 조절해야 될 것 같구요…….”
“그, 그래?”
일단 이 정도로 마쳤다. 지금 시간은 요리를 가르쳐드리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백 대표님에게 전화해야겠습니다. 한국에 식당을 차리는 것에는 그분이 최고니까요.”
“으응?”
“이 분식집은 프렌차이즈로 만들어서, 시스템화시킨 뒤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고 어머니도 이제 맛을 쫓는 셰프의 길로 가시죠.”
다소 황당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백원종 대표도 내 말에 동의를 한 듯했다.
-역시! 그렇쥬? 지금 기다려요. 당장 갈게유! 반유현의 한국 진출, 그리고 어머니의 꿈을 이루는 일에 내가 동참할 수 있다니! 아들 한번 잘 키웠구먼! 우리 분식집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