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실제로 보니 훨씬 빠르네 (2)
애초에 이 방송에 출연 할 수 있었던 건, 백원종 덕분이었다.
약속된 찰영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에 백원종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계획부터,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계획까지. 기간이 너무 짧아 비현실적으로 생각했건만, 그건 내가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한계였어. 대단해. 반유현.”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힘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해 보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매번 최고의 효율을 생각하며 움직이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고마워. 괜히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 셰프가 아니구만. 그나저나, 반유현 – 펌킨. 여기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계획이지?”
“당연하죠.”
내 계획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았던 터라 흠칫 놀라는 백원종이었다.
“기대하겠어. 나도 자네의 빠른 속도에 발맞춰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자네를 데려가는 거야.”
‘연예인 중계’의 길거리 데이트라는 코너는 수년째 진행된 코너로, 탑스타와 리포터가 길을 걸으며 데이트하는 형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원래는 신사동 가로수 길 인근을 촬영장소로 정했지만, 나를 위해 이태원으로 촬영장소를 바꿨단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는 백원종이었다.
“괜히 데려온 것 같기도 하고…….”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커질수록 백원종의 허탈한 웃음소리도 계속되었다.
“차암. 하하하하! 하여간, 제대로 홍보하는 구만유!”
“네,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이 내기에서 지게 된다면, 이태원에 오픈 될 ‘반유현 – 펌킨’이 일주일간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쳤고, 그에 따라 이미 홍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제가 질까요? 이길까요?”
그래서 백원종을 이길 필요까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요리 연구가였으니까. 그 지위를 지켜주고자 작은 목소리로 백원종에게 물었다.
그런데, 백원종이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도발까지? 오늘 진검승부야. 내가 미슐랭 포스타를 이겨버리면, 창피할 텐데 난 몰라유! 알아서 해.”
우와아아아!
“자아아! 대결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철판이 두 개 준비되어 있는데요. 사장님께서 방식을 설명해주세요!”
우리 둘이 올라와 있는 푸드트럭은 철판에 각종 해산물과 고기, 그리고 야채들을 같이 볶아 작은 종이박스에 도시락의 형태로 파는 곳이었다.
철판이 두 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각 데리야끼와 칠리 구이를 조리하는 곳이었다.
“여기 재료는 다 있구요. 두 분 다 데리야끼 소스를 이용한, 찹스테이크를 만들어 보시죠.”
“이야! 사장님께서 두 분에게 데리야끼 메뉴를 골라주신 이유는요?”
‘털보네 찹스테이크’ 그 푸드트럭의 이름과 걸맞게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저희 가게의 데리야끼가 칠리보다 덜 팔리거든요? 혹시 이 두 분이 만든다면 제가 만든 데리야끼랑 뭐가 다를지……. 알고 싶어서요. 하하하!”
“아하! 한 분은 대한민국 최강 요식업 사업가, 한 분은 세계 최초 미슐랭 포스타 셰프. 두 분의…… 뭐랄까 솔루션이 필요하신 거군요?”
“네. 진짜 잘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좋습니다! 그럼 사장님과 이 길거리에 계신 분들 두 분을 뽑아서 심사를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꺄아아!
나와 백원종이 기존에 있던 데리야끼 소스 통에서 소스를 찍어 먹고는 불 위에 고기와 야채를 올렸다.
치이이익!
“아 시작됐습니다!”
***
촤아아악!
취이이이익!
우리 둘이 푸드트럭 위에 올라, 철판 위의 재료를 볶는 모습이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철판 위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양파, 파프리카, 버섯, 마늘…….
“고기 부위가 채끝인가요?”
“네, 채끝입니다! 우와! 어떻게 만져만 보고도 부위를.”
메인 재료인 채끝살까지. 2인분 내지는 3인분의 요리를 만드는 일에는 누구든지 나를 이길 수 없다.
앞서 말한 ‘파악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아아 드디어! 차이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데리야끼 소스를 만드는 방식이 두 분이 서로 다르네요!”
우와아아!
진행자, 김승민은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달궜다.
그는 요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차이점을 집어내 분위기를 과열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푸드트럭 주변엔 사람들이 더욱더 모여들었다.
“누구야?”
“뭔데? 연예인이야?”
“엥? 백원종인데?”
“야! 그 옆에 반유현이잖아!”
나와 백원종 둘이 동시에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장면이었을 테지만 이것이 ‘대결’이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 더욱더 고조된 것이다.
“반유현 셰프는! 냄비에 미림과 사케를 끓이고 있습니다!”
진행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땐, 토치를 가져와 냄비에 불을 올렸다.
후우웅!
아직 알코올이 날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냄비에서 불이 솟구쳤다.
불쇼를 하는 것처럼 강력한 화력의 불이었다.
“허허. 그런 퍼포먼스 하기 있기에유?”
백원종도 그에 지기 싫었는지 한번 웃어 보이더니, 고기를 굽고 있는 철판에 와인을 뿌려 불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우와아아아!!
“인터뷰, 인터뷰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조되는 현장을 중계하기 위해 김승민이 푸드트럭 위로 올라왔다.
“백원종 대표님께서는 소스의 농도를 전분으로 맞추고 계시고, 반유현 셰프는 수분을 날려 맞추고 있습니다! 과연 이 차이가 어떤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아! 속도는 백원종 대표님이 더 빠르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무심하게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냄비에서 끓고 있는 데리야끼 소스를 철판에 올리며 재료들에 발랐다.
“아! 반유현 셰프는, 소스를 바르면서 굽고 있습니다.”
“데리야끼의 원래 뜻은, 양념을 계속해서 발라 굽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념을 바를 때에, 비로소 앞서 말한 ‘파악’이라는 것의 의미가 드러난다.
철판 위의 모든 재료의 성질과 굽기 정도, 수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재료가 양념을 머금을 수 있는 정도를 알고, 어느 정도의 양념이 배어야 최고의 맛을 낼지 알고 있다.
나는 선별적으로,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재료들을 철판 위에서 익히고 있었다.
그와 반면에, 백원종은 미리 준비한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어 요리를 마무리했다.
“어디서 다 배워왔데? 파리에서 아주 바쁘게 살았나벼?”
당연히 데리야끼의 유래 정도는 백원종도 알고 있었는지, 나를 보며 물었다.
“허허. 그래도 이 푸드트럭 위에서 같은 재료를 썼으니, 그렇게 큰 차이는 안 날 거야.”
그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기도 하지만, 그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같은 재료, 같은 환경이어도 맛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데.
재료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찹스테이크를 먹고 그가 지을 표정이 기대가 됐다.
“자아아! 다 됐습니다. 먹고 싶으신 분! 손 한번 들어주세요!”
김승민이 우리 둘이 만들어 낸 요리를 각각 접시에 옮겨 담고 섞었다.
그리곤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을 뽑으려 했다.
꺄아아악!
우와아아아!
모든 팔이 올라왔고,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팔을 흔들던 여성과 남성 한 명을 각각 뽑았다.
“꺄아아아악! 바, 반유현 오빠!”
올라오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나를 껴안으려는데 김승민이 이를 제지했다.
“자, 두 개 다 맛보고 평가를 하세요. 그리고, 어떤 게 더 맛있는지 골라요. 그게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면 포옹 한 번 하게 해드릴게.”
김승민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특성상, 이 흐름을 깰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남성분은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저, 저는 반유현 셰프님이 하신 요리를 집에 포장해가고 싶어요. 이거 다 드실 거 아니잖아요.”
우우우우우!
사람들 사이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누구 맘대로 그 요리를 다 포장해가냐는 식의 야유였다.
“뭐, 남성분도 제 요리가 뭔지 맞추면, 새로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백원종은 옆에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인기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상대가 나였으니 뭐, 당연하다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와……. 대, 대박.”
“둘 다 맛있는데, 이건……. 요상한 맛인데요?”
“요, 요상해요?”
두 남녀가 요리를 먹고 맛있는 찹스테이크의 접시에 고기를 집어 먹었던 이쑤시개를 올려놨다. 그 두 개의 이쑤시개가 있는 곳은 모두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 푸드트럭의 사장님도 이쑤시개를 들어 각각의 찹스테이크를 먹었다.
“키야……. 분명 하나의 소스를 이용하는 걸 봤는데……. 이건 그 소스 안에서 재료들의 맛이 팍팍 터지는데요? 소스가 중요한 게 아니었나? 와!! 진짜!! 이거 뭐야!”
사장님도, 이쑤시개가 두 개 놓인 찹스테이크에 한 표를 던졌다.
채소를 적당량 구워, 알코올을 날린 미림과 사케, 그리고 간장과 설탕을 함께 끓인 소스 자체도 맛의 수준이 높았겠지만, 재료의 특성마다 다른 양념의 정도를 모두 통제했기에 완벽한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
100인분 200인분이었다면 거의 불가능했겠지만, 2인분, 3인분 정도의 재료를 모두 통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저 붓으로, 양념을 구워 바를 때, 재료마다 양념을 몇 번 덧칠 하냐, 부위마다 온도가 다른 철판의 어디서 굽냐…… 등등. 차이가 많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대충 확실한 맛의 차이를 벌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주자, 사장은 놀랐고 백원종은 끄덕거리며 웃어 보였다.
너무 압도적인 차이로 이겨서 그런지, 사회자인 김승민도 어쩔 줄 몰라 하고, 백원종은 씁쓸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심지어 관객들도 백원종을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나는 곧장 이쑤시개를 들었다.
그리고 백원종이 한 찹스테이크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와……. 저는 이게 더 맛있는데요. 대표님?”
내가 그런 행동을 보이자,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지는 백원종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김승민에게서 마이크를 받은 내가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아까 백원종 대표님이 하신 말씀 기억하시죠? 여기서 지켜봐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이 푸드트럭의 음식을 쏘겠다고 하셨잖아요. 대표님이.”
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소리가 쏟아져 내렸고, 원래 이 푸드트럭의 사장님, 나, 백원종 대표는 요리를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리를 제공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야야야. 이번에 너무 떠서 또, 우리 방송 잡아먹히는 거 아니야?”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수많은 SNS와 유튜브에 나와 백원종의 대결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영상과 사진들을 기자들이 퍼 날랐고.
“MC였던 김승민? 승민이 형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두 분 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결을 제시해서 엄청 이슈로 만들어주고.”
“뭐 방송가 사람이라고 아는 사이인가벼? 허허허. 그래야쥬. 고맙긴 하네요.”
“그나저나, 대표님도 거길 유현이 왜 데려가셔서……. 두 분이 대결하는 걸 저희 방송에서 해주셨어야지 참, 의리 없게. 예? 두 분의 관계도 저희가 맺어드린 건데!”
“하하하. 나도 몰랐어. 즉석에서 진행된 거야.”
“아무튼, 그거 때문에 인터뷰를 추가로 넣으려는 거예요. 당장 3일 뒤가 방송인데. 그렇게 두 분이서 이태원 바닥을 후끈하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지금 제가 편집해 놓은 영상은 파리에서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 영상이니까…….”
이성찬이 혀를 차며 말했다.
골목가게 PD인 그는, 중간점검편 이 모두 편집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나의 인터뷰를 한 컷 따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대단하네 대단해……. 진짜 그 말밖에 안 나온다. 유현이 너 게다가 한국에 들어올 당시에는 이런 레스토랑을 차릴 생각도 없었다며.”
“조금은 있었습니다. 할지 말지 고민하는데, 어머니께서 꽤나 높은 실력을 갖추셔서 하기로 결정했죠.”
“참……. 거짓말 같으면서도 진짜 같아 그 말들이?”
웃고 떠들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말씀해라.”
“매번 큰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그 성원에 보답 드리기 위해 이태원에 가게를 차리는데요. 들러서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야, 공중파에서 이런 소개 시간을 내주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갈 거야? 제대로 홍보해봐 알아서 편집해 줄 테니까.”
이제 더 이상의 홍보가 필요할까. 보여줄 건 이미 이태원에서 다 보여준 것 같은데.
이태원에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말,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내 말의 무게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포들 중에는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가 쓰리스타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을 끊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저는……. 뭐? 푸하하하! 거기까지만 말하겠다 이거야? 포스타의 여유……. 멋있네. 연출을 잘 알아 유현이가.”
방송이 방영되기 3일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셰프의 ‘반유현 – 펌킨’ 오픈이 4일이 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