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딴 맘 먹지 말고 잘해 (1)
“다 모였어?”
“예! 셰프!”
레스토랑이 끝난 뒤, 퇴근 시간 셰프들은 나의 부름에 남아있었다.
아니, 원래 퇴근 시간에 곧장 집에 가는 셰프는 없었다.
매일 레스토랑 영업이 끝나는 시간 메뉴 개발과 실력 향상을 위한 경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강압적인 분위기는 절대 없었다.
“집에 갈 사람은 가도 돼. 억지로 하는 거 싫어하니까. 진짜로.”
셰프들의 표정이 밝았다. 내가 없는 동안 의지나 열정이 많이 죽었던 모양이다.
퇴근 후 요리 연습을 할 때에 다들 나의 피드백을 받길 원하는 셰프들이었다.
그들도 내 피드백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터.
내가 한국에 잠시 가 있었을 땐,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쓴다는 느낌이 덜 했을 것이다.
“다들 오랜만이네. 한 달 반 동안 별일 없었냐?”
내가 그 말을 하자, 레스토랑의 각각 총괄을 맡고 있는, 게리, 에쉬, 아론이 걸어 나왔다.
내가 손을 살짝 들어 흔들자, 보고를 하라는 소리가 아닌, 인사치레였음을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름 아니라, 오늘 좀 불쾌한 일이 있었어. 아시다시피 비행기에서 내린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바로 주방으로 온 것도 그 이유야.”
셰프들의 밝았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나를 보좌하던 반유현 팀 있잖아? 너희들이 주방에서 나의 팔과 다리가 되었듯이, 그들도 행정적인 모든 업무를 봐줬었지…….”
셰프들과 반유현 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라이벌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이 없으면 레스토랑 ‘반유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만 하다면 건전한 생각인데, 서로를 비교한 게 문제였다.
“그놈들이 무슨 사고를 쳤습니까?”
한 셰프가 말하자, 내 옆에 있던 오스틴이 발끈했다.
“우리가 사고를 치긴. 너흰 배우는 놈들이고, 우린 대학졸업하고 경력 쌓고 완성 돼서 ‘일’하는 거고. 반유현 셰프님 안 계시면 어디서 접시나 닦고 있을 놈이.”
“야야. 말조심해라 새끼야.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놈이랑 하루 종일 불 앞에 서 있는 셰프랑, 비교부터가 잘못됐지.”
레드의 총 주방장인 에쉬가 오스틴에게 삿대질하곤,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자 사태는 일단락 종료됐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됐고, 내가 말하려 했던 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이야.”
포시즌스 측에서 나를 보좌하는 ‘반유현 팀’의 인력을 다시 총무 팀으로 이동시켜 축소했고, 그에 따라 내가 행정업무를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덧붙여서 했다.
“그래서, 앞으로 영업 끝난 시간 그 이후에 너희들의 요리에 대한 피드백을 예전만큼 못할 것 같아. 주방의 일도 중요하지만 오너 셰프로서 행정적인 것들도 중요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한들, 이 레스토랑의 가치를 높이려면 경제적인 문제들도 살펴야 하는 것이니까. 밸런스를 맞추려 한다. 밸런스를 맞추려면 주방에 있는 시간만큼 사무실에 있는 시간도 늘려야겠지?”
물론, 내 사비를 들여 직원들을 추가 고용하면 나는 주방에 더 많은 시간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문제는 포시즌스, 이 호텔 놈들이 나를 통제하려 든다는 것에 있었다.
일단 저들을 불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셰프님께서 새롭게 레스토랑을 창업하셨어도, 저희 레스토랑의 매출은 오히려 올랐고, 손님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왜 호텔 측에서 그런 제재를 가하는 건가요?”
나의 말에 셰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들은 나의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 것만큼, 나에게서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내세워 이곳에 온 것이었다.
“셰프님께서 실제로 저희 레스토랑에 관심이 소홀하셨던 겁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요리, 셰프를 그저 돈벌이로만 이용한다는 겁니까? 이 포시즌스는?”
호텔 측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셰프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주간 업무보고 회의가 언제냐?”
***
-셰프들의 근무 만족도가 떨어짐. 그에 따라 맛의 질이 점점 하.락.되.어.가.는.중
…생략…
반유현팀의 인원이 축소된 뒤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간부 회의가 열렸다.
포시즌스 간부들과 사장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책상 위에 올라온 종이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이, 이게 보고서입니까?”
“차암나……. 반항하는 것 같습니다.”
“뭐, 어쩌자는 겁니까 이게?”
반유현이 작성한 보고서.
매번 긍정적인 내용으로만 가득하던 보고서에는, 이전과 달리 완전히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반유현 팀의 인원 감축에 대한 항의를 하는 겁니까?”
“반유현 셰프가 주방 말고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셰프들이 정시에 퇴근을 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셰프들의 근무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반유현 셰프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객관성이 제일 중요한 이런 주간업무보고서에……참.”
“사장님, 반유현 셰프를 당장 부르시죠.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로만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궜다.
레스토랑을 세우고, 그 속을 채워 넣은 장본인이 반유현이다.
이 주간업무보고서에 올라온 내용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를 판단할 사람이 오직 반유현뿐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처음부터 잘들 하지. 이제 와서 뭘 어쩌게.”
로만은 알고 있었다.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이미 역사 깊은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실권자는 반유현이며, 그를 내칠 수도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후…….”
로만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까지 반유현은 계획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여유로운 미소가 떠오르는 게, 왠지 그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반유현이 어떤 인간인지를 모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부하 직원들.
지배인부터, 전무, 상무, 본부장…… 저들의 얼굴을 보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저놈들 말을 듣고, 내가 순간 혹해서 반유현팀을 건드린 게 죄야.’
저들의 말에, 로만도 순간 넘어갔었다.
반유현이 포시즌스는 이미 오픈했으니 그에 관한 일은 뒤로 미뤄놓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것에만 몰두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던 탓이었다.
실제로 그가 휴가를 내서 간 한국에서의 행보가 그랬으니까.
반유현의 관심이 포시즌스를 떠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반유현팀을 이용해 압박을 넣겠다는 생각에 동의했었는데, 지금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보고서 단 한 장, 한 줄의 문장을 보고 깨달았다.
이미 반유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반유현 셰프, 이거! 당장 회의장으로 불러서 추궁해야 됩니다. 보고서를 이따위로……! 어딜 감히 간부회의가 우스운 줄 알아!”
“사장님께서도 결단을 내리시죠. 반 셰프는 저희 호텔 자체를 우습게 보고 있는 겁니다.”
쾅!
로만이 책상을 내려쳤다.
“그래, 우리 호텔, 우리 포시즌스 호텔은 일개 한 명의 셰프가 절대 우습게 보지 못할…… 역사 깊은 호텔이지. 그런데, 아니, 그래서…… 반유현 셰프를 내쫓을 거야? 지금 1층에 있는 레스토랑 세 개, 다 없앨 거야? 예약이 3개월 뒤까지 꽉 차 있고, 그 요리를 먹기 위해 객실 예약까지 한 손님들은?”
“…….”
총 간부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쾅!
회의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이 회의가 진짜로 의미가 있는 회의인지 궁금해져서 왔습니다.”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었다.
그것도 각각의 레스토랑을 총괄하고 있는 에쉬, 게리, 아론이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반유현 셰프님께서 주방에 계신 시간이 줄어, 셰프들의 전체 만족가 하락으로…….”
“어허! 여기가 지금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서 발언해!”
“버릇없게 누가 회의장 문을 박차고 들어옵니까!”
“그럼 일들 잘하시던가.”
쾅!
로만이 책상을 다시 한번 내려쳤다.
온화한 성격을 가진 그가 책상을 두 번이나 내려치니 간부들과 셰프들 모두 조용해졌다.
“다들, 가만히 계세요. 내가 직접 얘기 나누고 올 테니까.”
“저희도 같이 가시죠. 저도 얼굴 좀 보고 얘기해야겠습니다.”
“크흠! 저도 같이 가시죠 사장님.”
회의장을 걸어 나가는 로만을, 포스즌스 파리의 전무와 지배인이 따라나섰다.
***
모든 건 계획대로 된다.
100년을 살아보니,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지금도 그랬다.
더군다나 지금은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는 느낌이었다.
반유현 – 블루, 중식 기반의 요리를 선보이는 내 레스토랑의 홀에, 대단한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5명의 남성들, 요식업과 호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저들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아, 너무 높은 사람들이라 이 업계에서도 아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저분들은 언제 예약한 거야?”
“예약된 날짜와 어플 가입날짜를 확인해보니, 이곳을 예약하려고 애초에 준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현재 포시즌스 반유현은 예약이 3개월가량 밀려있는 상황.
저렇게 중년, 그리고 노신사들이 이곳에 오기 위해 아득바득 어플로 예약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직원들을 시켜서 예약을 한 것 같았다.
“홀에서 부르십니다.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일단 반유현 셰프님께서 시간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너 저 사람들 모르냐?”
홀에 있는 직원이 나를 향해 말했는데, 그 직원은 저들의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예, 그냥 미식가……. 또는 돈 많은 분들……로 보이는데요?”
“힐튼, 그레이튼, 웨스턴, 임페리얼 등. 세계 최대의 호텔 그룹의 주주들.”
“커헉!”
홀 직원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이 커졌다.
“잘했어.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드리고 와.”
“예에? 저분들……한테요?”
“어, ‘쇼’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홀 직원이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저들에게 말을 전하고 금방 돌아왔다.
“나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저 지체 높은 대형 호텔 그룹의 주주님들이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놀란 눈빛이다.
그리고 내가 왜 시간을 뜸 들이고 있는지 상당히 궁금한 표정이었는데, 마침 그 답을 알려줄 때가 왔다.
주방에, 로만을 비롯해 포시즌스의 간부들이 내려온 것이다.
오늘이 주간 업무 회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럴 줄 알았다.
“반유……!”
나는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홀로 나갔다.
“반유현 셰프님! 식사 너무 맛있게 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요리들이었습니다.”
“제가 호텔을 경영한 지가 어언 30년인데…… 이런 맛은.”
“와……. 베리 굿.”
테이블을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때, 저 멀리 로만이 보인다. 간부들과 더불어 표정이 아주 울상이다.
저들도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버린 것 같았다.
더군다나 주주들이 공손하게 나에게 명함을 줄 땐, 저들의 심장이 철렁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를 어떻게 통제할지를 궁리하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잘 해줘야 할지를 궁리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