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69
69화. 공장가동 (5)
포시즌스 도쿄나, LA에서 섭외를 실패한 셰프들, 즉, 특급 호텔의 제안을 걷어차 버리는 그 고고한 셰프들도 반유현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레시피를 수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명도 없지? 셰프라는 직업 자체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할 텐데…….”
물론, 로만의 생각처럼 반유현의 요구에 반박하는 셰프도 있었다.
“예, 반유현 셰프님, 그 의도는 알겠지만. 지금 이 조리법과 레시피만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맛입니다. 이 요리에는 수년간의 제 노하우가 담겨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 요리를 수정하신다면, 이 요리는 더 이상 저의 정성과 노하우가 담기지 않은 요리가 되어버리니, 저는 그런 요리를 그 누구에게도 선보일 수가 없습니다.”
반유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반유현에게 반박한 셰프가 조리 기구를 내려놓고 입구로 걸어 나갔다.
베테랑 셰프인지라, 더 이상 반유현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자존심을 챙기는 모습이다.
반유현 또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반유현은 계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셰프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저런 모습을 거의 맨날 보는데,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있나…….’
로만은 저 인간 자체의 행동을 보는 것을 끊을 수가 없어졌다.
‘요리 실력으로만 성공한 게 아니야.’
조리법과 레시피의 수정을 지시하는 저 손짓과 말투는 그가 이 현장에서 가장 어린 나이를 가졌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만의 눈에 보이는 그의 행동과 말투는 그가 100년의 셰프 생활을 했다 한들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약 60여 명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반유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에는 그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띵!
그때, 타이머가 울렸고 반유현이 셰프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시간 끝났습니다. 테스트하겠습니다.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대기해주세요.”
***
심사를 보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이들의 표정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매번 주방에서 셰프들을 지휘하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요리가 심사 된다는 것 자체가 셰프로서의 오랜 경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어떤 치즈를 넣으셨나요?”
“그뤼에르치즈를 빼고, 마스카포네 치즈를 넣어봤습니다.”
특히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알베르가 그랬다.
약 25년의 요리 경험, 그리고 15년의 국제 요리 대회 심사위원 자격을 가진 그였다.
매번 누군가를 심사하던 위치에서 심사를 받는 것 자체만으로 심장이 뛰나 보다.
‘괜찮네.’
내가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갈라디너에서 했던 요리인 삼겹살 퐁듀를 그대로 선보이려 했던 알베르.
그 퐁듀에 들어가는 치즈 종류를 바꿔 최상의 맛을 찾아보라고 했었다.
내 표정에 약간의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는지, 알베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내가 선보였던 퐁듀와 다르게 알베르의 퐁듀에는 마스카포네라는 치즈가 들어갔는데, 이 치즈는 마치 버터를 만들 듯이 우유에서 분리한 크림을 원료로 사용했다.
덕분에 지방 함유율이 높아 아주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고, 치즈 특유의 짠맛이나 그 냄새가 나지 않는 치즈였다.
퐁듀 안에 있는 에멘탈 치즈의 강한 향과 맛을 중화시켜주며 식감을 살렸고, 중화된 에멘탈 치즈의 맛 덕분에 찍어 먹은 삼겹살의 육질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식감과 맛을 동시에 고려한 건가?’
과연 이 맛과 식감이 모두 의도된 것인지가 궁금했다.
우연한 맛은 없다지만, 이 맛의 깊이에 대한 의도 말이다.
내가 느끼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베르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알베르를 쳐다보자, 알베르가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치즈 퐁듀의 맛을 조금 중화시켰기에, 고기의 맛을 더…….”
나는 그 말을 모두 듣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느낀 맛이 그가 온전히 의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신호였는데, 알베르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25년 경력의 셰프 맞아?’
미묘하게 변하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 있는지, 그에 따른 심정변화가 심한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가 알베르의 음식을 모두 먹고 입을 닦을 때, 옆에 있던 로만이 알베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알베르 셰프님.”
“어, 로만. 오랜만이네요.”
둘은 친분이 있는지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제가 지배인으로 있었을 때, 뵀었는데, 이게 몇 년 만인지…….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뵙네요.”
“하하하. 그러게요 이게 얼마만입니까!”
나는 이미 알베르의 조리대를 지나쳤고, 둘의 대화가 내 뒤에서 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셰프로도 그렇고, 국제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엄청난 경력과 입지를 가지셨는데 왜…….”
“제 미래를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하필 대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만나서…….”
둘은 어떤 동질감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홀란데이즈 소스 맞습니까?”
그리고, 나는 노부 마츠로의 앞에 섰다.
사실, 그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100년을 살아 워낙 감정이 닳았기에 웬만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지금 노부 마츠로 셰프가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내 성공 가도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엔 등장을 빨리하셨군, 게다가 주조연이 될 수 있는 타이밍에.’
내 인생의 1회 차부터 현재까지 각각 드라마의 1화라고 가정해본다면, 노부 마츠로는 매 화마다 스토리의 중후반부에 매번 등장하는 조연이었다.
나와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꼭 한 번쯤 만나서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든가 사업적인 구상을 해보는, 또는 그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그에게 많은 물음을 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나의 전생의 동료인 메이가 그로부터 요리를 시작했기에, 그는 내 삶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등장의 시기가 사뭇 빠르다.
그것도 노부 마츠로가 직접 나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온 것이 그랬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의 내 삶이 얼마나 파워풀한지 알 수 있어 그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그 어떤 누구로 태어나던지, 일식의 최강자 자리를 놓치지 않는 셰프…….’
내가 일식을 전문적으로 한다거나, 나의 제자를 전문적으로 일식 셰프로 키우지 않았기에 벌어진 미래일 수도 있지만, 내가 100년의 삶을 살면서 요리업계를 아무리 뒤집어 놓아도 그는 언제나 일식의 대가로 우뚝 솟아나곤 했다.
“홀란데이즈 소스를 만드셨군요. 생각을 고치신 건가요?”
미슐랭 9스타를 가진 셰프, 나보다 무려 다섯 개가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원대한 계획, 일식의 세계화. 그 목표를 위해 그는 그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반유현 – 블루’라는 일식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일식 세계화에 조금이라도 나의 이름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그였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자신의 요리를 심사받는 것일 테고.
“생각은 변함없습니다만. 일단 따르고 보겠습니다.”
아저씨가 눈빛이 꽤나 빛난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츠로가 만든 규카츠를, 그가 만든 소스에 찍어 먹었다.
바스락.
적당한 크기로 튀겨진 겉옷이 부서지며 향긋한 기름의 향을 뿜었다.
‘아주 조금의 향신료.’
원래 마츠로의 계획이었던 유자를 곁들인 폰즈 소스를, 홀란데이즈 소스로 바꾼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프랑스 최고급 코스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 그곳에 자주 쓰이는 5대 소스 중 가장 응용을 할 수 있는 가지 수가 많은 소스였다.
계란 노른자와 버터를 기반으로, 레몬과 각종 허브, 향신료로 맛을 낼 수 있는 범위가 많은데 나는 마츠로가 어떤 맛을 찾아낼지 궁금했었다.
“케이언 페퍼(Cayenne pepper) 가루를 사용하셨네요. 독특하네.”
서양의 고춧가루로도 불리는 이 가루는 매콤한 맛을 내는데, 아주 미세하게 그 맛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노부 마츠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술이 경직되어 올라갔고, 광대에는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닌가요?”
“흠. 맞습니다. 제가 조리하는 것을 보시고…….”
맛만 보고 그것을 가려냈는데, 자신이 그것을 소스에 넣는 것을 봤다는 식으로 말하는 마츠로였다.
“일반 버터가 아닌, 정제버터를 사용하셨군요. 유지방을 높여서 소스의 농도를 보다 더 걸쭉하게 만들려고 하신 겁니까? 바삭한 튀김옷의 식감과 반대인 식감을 소스로 만들려고 하신 거죠.”
이번엔 얼굴의 미세한 변화가 아니라, 표정과 소리로 드러났다.
“아…….”
“맞습니까?”
홀란데이즈 소스에 미묘하게나마 매운맛을 추가해, 튀긴 소고기의 풍미를 더 다양하게 만들려는 의도, 신선한 맛의 공격으로 나를 흔들려고 했던 의도가 보이기까지 했다.
나에게 이 맛들이 신선하게 느껴질 리는…….
“고기에는 아주 조금의 강황 가루까지 묻혀놓으신 걸 보니, 홀란데이즈 소스의 케이엔 페퍼와의 조합을 생각해 놓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곤, 더 이상 없었다. 이 요리의 의도가.
“아…….”
요리로서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했던 마츠로, 그의 모든 의도가 나에게 간파당했으니 그가 느낄 감정은 이 상황에서 하나였다.
“부끄러워 마세요. 제가 워낙 맛에 민감하니까요.”
이 몸보다 30년은 많은 아저씨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심사가 아직 남아 있는 셰프들의 얼굴을 둘러보니,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나를 바라봤다.
***
“규모는 말씀드렸다시피, 300명. 교수와 학생의 비율 10:1. 그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300명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자신은 있습니다.”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속도는, 내가 레스토랑을 차릴 때 그랬듯이 전력질주다.
‘반유현 팩토리’를 구성할 교수진은 30명을 뽑았고, 그들을 뽑은 바로 2주 뒤부터, 일주일에 걸쳐 학생들의 요리 테스트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반유현팀의 막내인, 오스틴이 내 옆으로 다가와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세계 각국의 3462명이 지원을 했고요. 음 생각보다 금방 끝났습니다. 이게…….”
3400여 명. 르 꼬르동 블루의 전교생이 몇 명이었더라…….
그를 목표로 삼았는데, 이 지원 열기는 이미 이긴 것 같았다.
교수진이 된 이들도 그 수치에 놀라서 입을 벌렸다.
“말이 안 되는…….”
“지원비를 얼마로 설정했었지?”
“45유로요.”
지원서를 내는 것에 한화로 하면 대략 6만 원, 3462명이 지원했으니 약 2억 원의 수익을 냈다.
오스틴이 말한 것처럼 그저 팬심으로 지원을 하는 사람들의 지원서를 선별하는 것에 인력을 쓰는 것 자체가 낭비였고, 6만 원이라는 작지 않은 돈으로 진정 의지가 있고, 없는 사람들을 한 번 거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요리 테스트에 쓸 재료비도 벌어들인 꼴이 되었네.”
3400여 명의 수치도 역사적인 것이겠지만, 내 삶 전체에서도 이렇게 많은 셰프를 단번에 심사하고 선별하는 것도 최초였다.
“어쩌면, 내가 평생 만날 유망주 셰프들을 다 볼 수도.”
심사를 하기 위해 나온 교수진들의 얼굴을 보니, 마치 자신들이 심사를 받는 것처럼 긴장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긴장을 한 거지? 라고 속으로 생각이 들었을 땐, 단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