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7
7화. 요리천재, 방송천재 (2)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적을 깬 목소리였다.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 명의 젊은 여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은 당당함을 표현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그녀가 많은 긴장을 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민서윤.
1라운드에서 된장찌개를 선보이고, 심사위원들에게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들고 말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저도요.”
“시키신 대로만 하겠습니다.”
“어떤 요리든 자신 있습니다.”
민서윤을 시작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모두 내 팀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었다.
각 분야에서 명인, 달인이라는 이들도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손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나뿐만 아니라 나의 팀원인 김해숙과 최경복, 윤종혁이 주는 무게감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인 듯했다.
‘팀원이 되기보단 우리와 적이 되기 싫은 게 아닌가.’
어쨌든 경쟁이 기반인 이 프로그램에서 당연히 저들의 마음속 한 편에는 저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생각을 숨기는 것 보다 드러내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
그때 마침 민서윤이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우승하기엔 모자란 실력입니다. 그런데 이왕 본선까지 올라온 거 최고의 팀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 이미 뽑혀있는 내 팀원들을 바라봤다.
윤종혁은 팔짱 끼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고, 최경복은 내가 자신을 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김해숙에게로 향했고, 김해숙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선택을 자신에게 넘기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내가 다시 민서윤을 바라보자, 그녀는 기회가 왔다는 듯이 간절함을 짜내며 말했다.
팀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선에선, 사실 누가 들어와도 상관이 없었다.
요리에 있어서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이나 영감을 줄 만한 사람은 적어도 이 스튜디오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고, 간절한 이를 뽑는 게 팀 전체에 이득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또한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녀가 실력 면에서도 뒤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
총 8개의 팀이 완성되었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해숙과 최경복은 55세로 동갑.
윤종혁과 민서윤은 33세로 동갑이었다.
내가 뽑은 모든 팀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를 마냥 어린 사람으로 취급하지 못했다.
짧게나마 1, 2라운드를 거치며 보여줬던 내 실력들이 저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갱복 씨, 용띠면 친구네예. 잘 부탁드립니더.”
“하하. 예 해숙 씨,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리…… 팀에 피해가 가면 안 될 텐데.”
윤종혁도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잘 부탁드립니다.”
“예.”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내가 불편했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팀장이라고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넸다.
다만, 내 실력을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기에 이 시스템, 방송상으로만 팀장일 뿐, 아직까지는 나를 자신의 윗선으로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는 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나는 윤종혁 같은 사람을 주방에서 수없이 많이 만나봤다.
엄격한 서열 문화가 있고, 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도제식 교육문화가 만연한 주방에서 버티고 버텨 요리기술을 배웠다는 자부심이 저놈의 자존심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도제식 교육문화에 익숙하기에 자신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완전하게 허리를 굽힐 줄 안다.
‘언제까지 가려나.’
아직까진 나에게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지만, 장담하건대 다음 녹화 일을 넘지 않을 것이다.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조리장인 그는 정교하진 않더라도 실력의 차이를 가늠할 수준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수준도 아니라면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이곳은 매 순간마다 요리 실력을 뽐내야 하는 경연의 현장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본인과 나의 차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민서윤도 인사를 건넸다.
마음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이제는 제법 단단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에 떨림이 없고, 눈빛에서 그녀의 의지가 돋보였다.
“허허허. 앞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팀원들이 좋아 보이네요. 기운이 느껴집니다. 팀장님. 시켜만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최경복이 말했고, 그때 심사위원들이 다시 장내로 들어왔다.
“3라운드 팀 미션은, 모든 팀원들이 빠지지 않고 요리에 개입을 해야 됩니다.”
“총 세 가지의 요리를 만들고, 주어진 재료로 메인 요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 그럼 재료가 뭔지 보겠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대본을 한 줄씩 번갈아 가며 읽자, 하늘에서 하얀 가루들이 쏟아져 내렸다.
“밀가루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심사위원의 말에 참가자들이 술렁였고, 내 머리는 곧장 계산을 시작했다.
한 가지의 요리가 아니라, 총 세 가지의 요리를 심사한다는 것은 그 요리들의 조화까지 심사항목에 들어간다는 것.
나는 밀가루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 요리들의 전체적인 맛을 그려봤다.
그때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뜨뜻한 수제비도 좋을 것 같은데예.”
“저는 파스타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와 관련된 서브 요리들도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고요.”
“저는 칼국수? 허허허, 그런데 뭐. 팀장님이 하시는 대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민서윤이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게 말했다.
“팀장님. 밀가루 반죽은 경복 삼촌이 자신 있다고 말하시고, 수제비는 저랑 어머니가 자신 있어요. 종혁 씨는 파스타가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때마침 내 생각이 정리되었고,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떡볶이, 계란 김밥, 튀김.”
“예?”
“에?”
“부, 분식이요?”
“하, 반유현 팀장님!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저희는 지금 이 대회에 인생을 걸고…….”
강철이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의지를 불태우던, 민서윤은 나의 시시콜콜한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이유가 있어요? 떡볶이?”
반면에, 윤종혁은 침착한 편이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제 머릿속에 떠오른 메뉴입니다.”
실제로,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분식집 아들이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환생 직전에 먹었던 떡볶이가 더럽게 맛이 없어서 그게 생각났던 것일지도.
맛과 조화로만 평가되는 이번 미션에서는 그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요리 선정에 시간을 쏟기보다, 빠르게 요리를 정하고 어떻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다만, 팀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실제로 우리 팀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어떤 음식을 할 것이냐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시간의 효율은 맞는 말씀이긴 한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너무 무심하게 떡볶이를 툭! 말씀하시니까…….”
이 대회가 끝나기까지 나에게 어려운 상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 것인데, 나의 모습이 저들에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해를 푸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제일 자신 있는 밀가루 음식이 떡볶이입니다.”
내가 단호하게 끊어 말하자 그제서야 팀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뭐, 팀장님이 그렇다는데 저희가 따라야지예.”
“허허허. 해숙 씨 말이 맞습니다. 믿고 가야죠. 우리 팀장님이 어떤 팀장님인데. 충성!”
최경복이 박수를 치며 힘을 붓 돋았고, 윤종혁이 본격적으로 내게 질문했다.
“분담을 어떤 식으로 하실 겁니까?”
자존심상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나를 팀장으로서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똑똑한 놈. 효율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일단은 한 수 굽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란 15개, 미림, 식용유, 새우, 오징어, 전분 …….”
나는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재료들을 말했고, 팀원들은 재료들을 찾으러 출발했다.
이 스튜디오 안에서 가장 빠른 움직임이었다.
식재료가 있는 곳으로 우리 팀원들이 이동하자 다른 팀들은 소란스러워졌다.
“거봐! 저, 반유현 씨 팀은 벌써 출발하잖아! 다른 팀들은 그러다 요리도 못 만들겠어. 밤새울 거야?”
심사위원 강요한이 다른 팀들을 더 재촉했다.
***
음악에 지휘자가 있듯이, 주방에도 전체적인 맛을 조율하는 지휘자가 있다.
그리고 주방의 지휘자로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한 나의 주문에, 내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복 님, 밀가루 냄새를 제거하는 게 관건입니다. 시간상 반죽을 숙성시킬 수도, 다시마 물 같은 것을 쓸 수도 없으니까요. 콩가루를 넣고 반죽을 만들면 밀가루 냄새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시력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최경복이 땀을 흘리며 반죽을 치댔다.
“타마고야키.”
“일본식 계란말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계란이 말려있는 형상 말고, 푸딩처럼 부드럽고. 카스테라 형식으로 만드는 게 있습니다. 교쿠라고도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계란에 새우를 갈아 넣어 맛을 내고, 마를 갈아 넣어 식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계란을 팬에 올린 뒤에는 곧장 명란 크림소스를 만들어주세요.”
“계란 김밥이라는 게, 김 안에 밥 대신 계란을……?”
윤종혁은 유명 요리학교 출신의 레스토랑 수석 조리장답게, 이해가 빠른 편이었다.
“맞습니다. 만든 일본식 계란말이에 명란 크림소스를 얹혀, 김으로 말아서 김밥 형태로 만들 겁니다. 중요 포인트는 떡볶이의 강렬한 맛을 중화시키는 것입니다. 입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죠. 계란의 부드러운 식감과 달짝지근한 명란 크림소스, 그리고 계란과 함께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김과 그 김의 은은한 향을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윤종혁이 흠칫 놀란 눈빛으로 날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를 보고 제법 요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냐는 듯이 묻는 미소.
가볍게 무시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놈이 나에게 납작 엎드리는 것은 자연의 순리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해숙 님께서는, 전체적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손질해주세요. 식당에서 주문을 받듯이 팀원들이 말하는 재료를 손질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떡이 나오면, 떡볶이 소스를 만들어주세요. 고운 고춧가루 사용하시고, 올리고당은 열을 받으면 단맛이 날아가니 물엿 사용하시고요. 미원을 넣기보단, 케첩, 카레 가루, 새우 가루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내가 할 수 있을낀가?”
“중간중간 제가 맛을 봐드리겠습니다.”
“하이고! 하모 걱정 없습니더!”
치이이익!
그때, 기름에 반죽이 튀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나는 당장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민서윤 씨, 튀김에 수분이 너무 많습니다.”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재료에 수분기가 얼마나 있는지를.
나는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을 시연했다.
“이렇게요.”
키친타월을 이용해 오징어의 껍질을 문댄 뒤에, 살짝 뜬 껍질을 잡아채 쉽게 벗겨냈다.
그리고 빠르게 오징어를 썬 뒤 키친타월로 수분을 제거했다.
새우 또한 내 왼손에 올려놓은 뒤에,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껍질을 쉽게 벗겨냈다.
그 뒤로 새우의 내장을 제거하고 힘줄을 끊는 것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민서윤이 만들어 낸 튀김 반죽에 손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민서윤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튀김 반죽도 다시 하세요. 이런 반죽으로 튀김을 하면…….”
너무 눅눅해서 개밥을 먹는 느낌일 것 같으니까.
라는 말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인 평가가 그 사람의 발전을 더 빠르게 시킬 수 있기에, 독설가라는 별명은 매번의 삶에서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런 말을 내뱉었다간 미치광이나 또라이, 망나니로 평가받기 딱이다.
성격상 머릿속에 떠오른 말들을 뱉고 싶었지만, 아직 이 몸의 레벨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최대한 차가운 물로 튀김 반죽을 만드세요. 바삭한 식감이 포인트입니다. 떡볶이, 계란 김밥과 반대되는 식감이요.”
내가 그린 맛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팀원들에게 중요 포인트를 집어준 뒤에, 한 발 치 멀리 떨어져 그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동시에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들은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가장 빠른 요리 선정에, 레시피까지 술술 말하고. 가장 빨리 주방에 들어간 것부터, 팀원들 분담……. 쟤 뭐야 대체?”
“무조건 레스토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경험이 없는데 저래 할 수 있누?”
“어엄. 저 네 명의 움직임을 야악간, 약간 과장하자면. 음. 제 레스토랑의 주방보다 효, 효율적입니다. 반유현 씨는 헤드 셰프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네요. 음. 김애란 심사위원님 말씀대로, 저건 경험으로만 가능한 건데. 쓰읍.”
대다수의 팀들이 우왕좌왕하며 주방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나의 팀원들은 더욱더 맡은 바에 충실했다.
“맛이 제일 궁금해.”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우리 팀의 요리에 관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완벽하게 방송용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