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반유현의 이름 (3)
자진사퇴. 그것보다 자극적인 단어들은 많다.
방출, 제명, 해고…….
아니, 자극적이기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의도적으로 제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행위 아닙니까?”
사실대로 말하고, 언론에 기사가 난 것뿐인데, 노부 마츠로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역정을 냈다.
[ 노부 마츠로, 반유현 팩토리 교수직서 제명. ] [ 반유현 팩토리, 제명 이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 [ 일식의 대가, 노부 마츠로 공식 성명 “반유현 팩토리 마케팅을 위한 의도적 행위.” ]“그 이유까지 낱낱이 밝혀 드립니까?”
그나마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제명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나 보다.
“그럼 그대로 해보시죠. 제 요리 인생 동안 반짝 떴다가 지는 셰프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하하하……. 조금 더 겸손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여섯 번의 인생 동안 그를 적으로 돌린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삶 동안 노부 마츠로가 나에게 잘 대우해준 것은 내가 온전히 그보다 높은 수준의 셰프라고 인정한 탓이었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경력도 훨씬 짧은 지금의 나를 노부 마츠로는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제 요리 인생에 똥물을 튀긴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가뜩이나 이 업계는 좁으니까요.”
“후회라……. 두고 봅시다.”
노부 마츠로와의 전화를 끊고 메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현재의 스승인 나와,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해준 노부 마츠로의 갈등에 심란해진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메이가 중요했다.
“네가 잘해야 돼. 맨날 그래왔듯이 태클 걸고 잡아당기고 귀찮게 하는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네.”
“왜, 처음 너한테 요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라, 마음이 안 좋아?”
“아, 아니요.”
“그럼 뭐야, 그 표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 굳게 먹어. 넌 ‘반유현’이라는 배에 탔잖아.”
그녀가 매고 있는 스카프를 무심하게 잡고는 단정하게 정리해줬다.
그제 서야, 의지를 다졌는지 메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메뉴는 준비됐냐. 저건 다 버려.”
노부 마츠로가 이 팝업 레스토랑에 두고 간, 생선과 밥, 식초 간장, 생와사비 등 모든 식재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그가 떠난 이상 그 재료들을 계속 쓸 수는 없었으니까.
“예! 셰프!”
셰프들이 곧장 그 재료들을 들고, 음식물을 처리하는 드럼통에 담으려 했다.
그때, 메이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 그 재료 다 가져와.”
메이가 무슨 행동을 할지 궁금해서, 나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옛 스승의 정성이 담긴 식재료를 버릴 순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오랜만에 정신무장 교육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셰프님,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 재료들 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무슨 아이디어인데.”
나는 메이의 아이디어를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해, 메이.”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메이는 곧장 매직과 종이를 가져와 자신이 생각한 문장들을 적기 시작한다.
[ 노부 마츠로님의 숙성회, 그리고 샤리(しゃり : 초밥에 들어가는 밥) ] [ 저희 ‘반유현 – 테스트’는 이보다 맛있는 초밥과 메뉴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 냉장고 안에는 재료가 있으니, 원하시는 분들은 직접 가져가서 초밥을 만들어 주세요. ]메이의 지시 아래에 셰프들이 자그마한 간이 냉장고와 밥솥을 문 앞으로 옮겼고, 그곳에 노부 마츠로가 놓고 간 생선과 샤리를 각각 넣었다.
노부 마츠로의 재료는, 이 주방에 들어올 자격이 안 된다는 문구.
그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것이란 그 문장은, 간판에 적힌 나의 이름과 더해져 한 줄의 문장에 엄청난 기대감이 모아졌다.
셰프계의 초신성이라 불리는 나, 그리고 나의 이름을 뒤에 업은 메이.
그녀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를 대중들이 더 원했던 것 같다.
***
‘반유현 챌린지.’
이전에 SNS를 통해 유행했었던 그 단어는 이제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내가 조금만 더 독특한 행보를 보이면, 그 단어가 붙게 된다.
[ 반유현 챌린지, 그의 제자 메이! 노부 마츠로에게 도전장! ] [ 노부 마츠로의 본진! 런던, 레스토랑 앞에서 대격돌 반유현 챌린지의 시작! ]메이가 적은 문구가 또,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구도가 대중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이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가 생겨났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
덕분에 노부 마츠로에겐 나보다 급이 낮은 셰프라는 인식도 생겨난 것이 사실이었다.
나와의 대결이 아닌, 나의 제자와 대결구도가 형성된 노부 마츠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죽기보다 싫었던 거야. 자신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까 봐.”
문제는, 대중들의 그러한 대결 구도 덕분에, 런던 노부 마츠로의 레스토랑 앞에 차려진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테스트’가 문을 닫게 생겼다.
“노인네. 치졸하구만. 대인배처럼 행동하더니.”
애초에 이 팝업 스토어 건물이 노부 마츠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부 마츠로는 ‘반유현 팩토리’의 반배치 고사 격 테스트인 팝업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맡은 팀의 셰프들이 높은 순이익을 낼 수 있게, 자신의 건물에 그것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메이와의 대결구도 자체를 없애려 들기 위해 이 팝업 레스토랑의 장사를 허용하지 않았고, 메이가 이끄는 팀은 새로운 자리를 물색해야 했다.
“네 생각은 어때. 런던에 자리를 구해서 노부 마츠로 셰프와 끝을 볼래? 아니면, 상권을 분석하고, 네가 생각한 메뉴가 가장 잘 팔리는 곳에 팝업 레스토랑을 차릴래? 장사를 며칠 못한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어드밴티지를 줄 테니까.”
“마츠로 셰프님이 저와의 대결 구도 자체를 꺼리신다는 게……. 저를 아주 하수로 본다는 증거고…… 저는 기분이 나빠요. 어떻게든 대결을 걸어서 짓밟고 싶은…….”
짓밟다라. 내 옆에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있어서 그런가.
메이에게도 포식자의 성질이 발현된 것 같았다.
“그래, 원래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는 놈들은 밟아줘야지.”
메이가 맡게 된 ‘반유현-팩토리’의 신입 셰프 10명이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아. 내가 마츠로 셰프님을 ‘놈’이라고 했냐? 흘려들어. 실수했네.”
어쨌든, 메이가 마음을 그렇게 결심했으니 나는 메이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곧장 핸드폰을 열었다.
“어, 내가 받았던 명함 목록, 연락처들 쫙 살펴보면, 영국 관광청 있을 거야.”
내가 전화를 끊자, 메이와 셰프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www.visitbritain.co.kr
“여기 들어가 봤어?”
“여기는…….”
“그래, 영국 관광청 홈페이지인데, 대문짝만하게 배너가 걸려있더라고.”
[ 반유현 셰프의 제자! 메이, 그녀의 팝업 레스토랑이 런던에서 시작됩니다! ]“내 잡무랑 의전을 맡는 팀이 있잖아. 그쪽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일러뒀는데 허가를 해준 모양이야. 그래서 관광청 홈페이지 메인 배너에 나랑 너의 이름이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래, 노부 마츠로는 너랑 나뿐만 아니라 영국 관광청이 하는 일에도 브레이크를 건 거야.”
지이이잉!
-연락처 보내드리겠습니다. 셰프님.
전화를 해두었던 반유현 팀에서 곧장 메시지가 왔고, 나는 또 전화기를 들었다.
-영국 관광청 CEO 샐리 콤밸.
***
런던 아이.
런던 템즈 강변에 위치한 대형 관람차의 별명이다.
매년 3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런던을 넘어 영국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각종 노점상들의 단속이 매우 강력한 곳이었다.
“경쟁업체도 없고 깨끗하니 자리 좋네.”
영국 관광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메이와 셰프들은 이곳에 임시로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었다.
풍경과 어울리는 임시 천막과, 그 안에 들어갈 조리대와 집기류까지 관광청에서 지원을 해줬다.
이런 파격적인 지원은 그 어디에도 없던 것이라고, 관광청의 수장 샐리 콤밸이 생색을 내기도 했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노부 마츠로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곳보다 이곳의 장소는 수십 배, 수백 배는 더 나갈 것이다.
“어떻게…….”
“반유현 챌린지라는 말이…….”
셰프들은 내가 직접 나선 뒤로, 상황이 변하는 모습을 봤기에 나를 우상화하기 시작이라도 한 듯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자신들을 이끄는 메이가 고군분투해서 해결하려는 것을 나는 전화 세 통으로 끝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들에겐 메이가 더 가까운 지도자였으니, 그녀를 치켜세워주고 싶지만 어쩌겠나. 효율을 생각할 때는 그것까지 챙겨주기가 참 어렵다.
관광청 직원이 상주해있고, 경찰과 각종 공무원에게도 협조가 되어, 우리가 천막을 치고 있는 것을 나무라는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간판이 내걸린 뒤에는 이 임시 천막이 불법 노점일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 반유현 – 테스트 ]“반유현이래!”
“뭐야, 장소가 여기로 바뀐 거야?!”
“헐!”
영어, 한국어, 일어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메이에게 다가갔다.
“메뉴를 구성하는 건 도와줄 수 없겠는데.”
“네?”
메이가 순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것 봐.”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나에게 온 메일을 보여주었다.
‘반유현 – 팩토리’의 교수진들의 메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교수 카림입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적극적인 도움은…….
– …… 불공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셰프들 또한 반유현 셰프님을 뵙길 바랍니다.
– 애초에 런던 아이 밑에 장소를 차지하셨다는 것만으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 메이 셰프가 팝업 레스토랑 테스트에 늦게 시작한 것도 있지만, 이는 형평성뿐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 개인의 이미지에도…….
항의 메일이었다.
꼴찌 매출 3팀의 교수들을 제명한다고 했고, 실제로 노부 마츠로는 제명이 되기도 했으니까.
어느 팀에라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교수들이었다.
교수들은 내가 나의 제자인 메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품었다는 것에서 유감을 표해왔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는 갔지만, 메이는 애초에 장사를 가장 늦게 시작했으니 나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변하려면 여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메뉴 관련된 도움은 줄 수 없고. 맛만 봐줄게. 무슨 메뉴를 할 건데?”
“도시락 형태로 테이크아웃은 불가능하다는 게 관광청의 입장이었죠…….”
테이크아웃을 하면 일회용품을 쓰는 빈도가 많아지고 가뜩이나 이곳엔 관광객들이 많기에 쓰레기 처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관광청은 이곳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테이크아웃을 금지하는 것을 내걸었었다.
“매출을 올려야 되니, 식재료 단가도 그렇고, 회전율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가장 효율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뭔데 그니까.”
“계란 초밥.”
“하.”
요즘 나를 자주 웃게 하는 메이였다.
계란 초밥. 그 이름만 들었을 땐, 초라해 보일진 모르지만 강력한 음식이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라면.
“네가 뭘 좀 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