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76
76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 (2)
분명 봤다.
오노 이치로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린 것이.
그리고 오노 이치로는 여덟 개의 초밥을 모두 비워내 놓고는 주방에 있는 메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메이의 목에 스카프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메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고, 대중들에 의해 자신의 제자와 대결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곳의 총책임자인 줄 알았을 것이다.
메이 또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노신사가 누군지 알았는지, 그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보였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내 가게가 아니고선 이런 신선한 초밥을 먹을 수가 없었는데.”
신선하다. 어쩌면 ‘계란’ 초밥의 맛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높은 표현 중에 하나가 아닐까.
오노 이치로가 고개를 깍듯이 숙여, 자신을 즐겁게 해 준 이에 대한 예의를 다했고 메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요리에 전념했다.
마침 나도 모든 요리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네. 이 정도면……. 몇 가지 조정하면 더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지? 이 현상 유지만 잘해.”
“예! 셰프!”
메이가 큰 소리로 대답하자, 팝업 스토어를 나가던 오노 이치로가 나를 쳐다본다.
자신에게 즐거운 요리를 선사해준 그녀의 스승이 ‘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눈치였다.
“이제 모든 팝업 스토어 일정은 끝났고 파리로 가자. 한국의 반유현-펌킨 상황은 어때?”
“예약이 계속 밀려있네요. 이태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양입니다. 근데 이제 메뉴가 한정적이니까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미슐랭 평가 기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또 도움을 드리러 가야 되겠네. 흠, 새로운 레스토랑 런칭 준비도…….”
오스틴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팝업 스토어를 나섰을 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조금 먼저 나간 오노 이치로와 한 젊은 남성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제, 제발요! 대답 좀 해주세요 셰프님!”
“허허. 그 부분에 관해선 아직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 말이 없으십니까아아!”
정확히 말하면, 젊은 남성이 오노 이치로의 길을 막고 애원하며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메이 셰프가 노부 마츠로 셰프님보다 나은가요? 그거 한마디만 해주세요! 네? 아니면, 노부 마츠로 셰프님의 초밥이 더 맛있는 건가요?”
내가 고개를 그들의 방향으로 까딱이자, 팝업 레스토랑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두 명의 경호원이 그를 제지했다.
“허허. 뭐, 그렇게까지…….”
오노 이치로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가려던 길로 걸어갔다.
두 명의 경호원에게 양팔이 잡힌 사내의 얼굴을 보니, 아까 전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내였다.
기자 또는 평론가로 보였던 사내, 역시나 그가 하는 질문을 보니 그런 직업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 질문을 하시려면, 소속 먼저 밝혀야죠.”
“아아……. 저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보여준 블로그의 메인화면.
구독자는 2만 5천 명을 조금 넘어선 수준이었다.
‘꽤 괜찮네.’
내가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거리자, 경호원들이 그의 곁에서 떨어졌다.
“질문이 뭔데요?”
“메이 셰프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에서 그들의 두 스승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저기 가시는 오노 이치로 셰프님과 반유현 셰프님…….”
“저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30개의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테스트’를 시찰하러 온 것이었고요. 오노 이치로 셰프님께서는 이곳에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노부 마츠로님의 초밥도 먹어봤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메이 셰프의 초밥에 더 많은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녀가 저의 제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판단입니다.”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땐, 내 앞의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면서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포착했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구독자 2만 5천명, 그 정도면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
“계란으로 이런 다채로운 구성과 맛을 냈다는 것은 생선과 육류로도 더 많은 기대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더군다나 메이 셰프의 경력은 노부 마츠로 셰프님보다 훨씬 짧습니다. 여러모로 메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노 이치로 셰프님!”
저 멀리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오노 이치로를 부르자, 그가 말했다.
“……흠, 내 제자의 것도 먹어봐야 그 우위를 가릴 수 있겠죠. 메이 셰프의 것도 좋았습니다. 일단은.”
***
2.5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블로그에서 시작된 포스팅은, 여러 매체와 SNS에 의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거침없는 표현의 대가라 그런지, 반유현의 멘트들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 반유현 “맛, 구성, 경력을 모두 따져서 메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 [ 반유현 “제자로서가 아닌, 객관적인 평가.” ] [ 반유현 “메이와 25살 차이 나는 셰프, 25년 뒤 메이에겐 미슐랭 9스타가 어려운 일은 아닐 듯.” ]노부 마츠로는 그 문장들을 보고는 이가 갈렸다.
완전히 반유현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를 자신의 원대한 꿈의 계획으로서 이용하려 했던 과거가 후회되기도 했다.
이 모든 프레임을 박살 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마지막 한 번뿐.
“뭐해! 오늘은 모든 혼을 쏟아 넣어야 돼!”
[ 오노 이치로 “아직 노부 마츠로 셰프의 초밥의 맛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스승인 오노 이치로가 자신의 초밥을 먹고 남길 코멘트가 그러했다.
그가 나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모든 것들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점점 대중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반유현의 제자에게 패배했다는 프레임이 씌워진 채로 대중들의 기억에서 천천히 지워지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오노 이치로가 방문하기 약 1시간 전, 노부 마츠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식재료를 정리했다.
전복, 참치, 광어, 소고기, 초밥에 올려질 재료들이며, 밥과 전채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그리고, 오노 이치로가 그의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오셨습니까. 셰프님.”
노부 마츠로를 비롯한 여러 셰프들이 그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게의 영업시간이 끝난 시점이지만, 마츠로의 휘하에 있는 셰프들도 오노 이치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허허. 이거, 셰프들은 퇴근시키지 그래. 왜 나 불편하게 만들어.”
“아닙니다. 본인들이 셰프님을 뵙고 싶어서 자리한 겁니다. 편하게 계시지요.”
“그래, 요즘 고민이 많겠어. 메이? 그 셰프에게 요리를 처음 가르쳐준 게 자네라면서.”
“그렇습니다.”
오노 이치로는 귀엽다는 듯이, 노부 마츠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츠로의 나이도 어언 50이 넘었는데, 이치로가 그를 보는 눈빛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세계 정복을 꿈꾸다……. 코 깨지게 생겼구만. 허허허.”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쯔, 아니긴. 내가 자네의 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네의 요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 알아서 될 터인데, 내가 방송이나 언론에 홍보하는 걸 본 적 있어? 괜히 욕심부리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니야?”
오노 이치로가 노부 마츠로를 나무랐고, 마츠로 또한 그것을 인정하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자네 요리 좀 먹어볼까.”
그의 말에 마츠로가 준비한 식재료들과 밥알들을 주무르며 초밥을 만들어 내어놓았다.
눈을 감고 식재료들이 주는 촉감을 느끼며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주물러 내어놓는다.
장어, 정어리, 문어, 단새우 등등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접시에 올려놓고, 오노 이치로도 맨손으로 그 초밥을 받아먹었다.
“앵콜도 있나?”
“예, 있습니다. 셰프님이라면 코스를 한 번 더 할 수도 있죠.”
“가게를 계속 차리다 보니, 과장이 늘었구만. 광어 지느러미로 하나 더.”
앵콜 메뉴로, 오노 이치로는 광어 지느러미 초밥을 요구했다.
광어 지느러미 특유의 기름진 고소함과 식감, 이 음식이 별미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노부 마츠로가 직접 제조한 식초와 지느러미 겉면에 발라진 특제기름은 풍미를 더했다.
“흠. 맛은 뒤처지지 않아. 어딜 내어놔도 최고의 칭찬을 받아도 될 만한 맛이야.”
“감사합니다.”
최고의 맛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오노 이치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흠…… 맛은 최고야. 그런데, 기대감이 없어 기대감. 모든 초밥이 최고의 맛을 내지만, 코스가 끝났을 때 이, 지금 당장의 맛있는 요리를 또 먹고 싶었지, 자네의 다른 요리를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를 않았네.”
요리에 대한 만족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감정.
맛의 우위는 메이보다 노부 마츠로가 높다고도 할 수 있었다.
쓰이는 식재료부터 달랐으니까.
“반유현 셰프가 말한……. 기대감이라는 게.”
그런데, 식재료의 차이를 아득히 뛰어넘어 메이의 요리를 먹었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노부 마츠로의 요리를 먹은 지금엔 떠오르지 않았다.
“맛은 인정하지만, 자네가 더 잘난 셰프라고는 할 수가 없겠네. 자네가 잘 되는 것은 나도 당연히……. 크흠! 자네의 요리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 이해해주게나.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고 있고, 내 한평생 내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자네가 알지 않나.”
“셰, 셰프님!”
“초밥의 맛은 최고였네, 대외적으로 자네의 요리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나.”
***
[ 메이 셰프의 암묵적인 승리! ] [ 미슐랭 9스타를 눌러 버린 초신성 셰프! ]오노 이치로가 레스토랑 ‘신세카이’를 들렸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노부 마츠로의 요리를 먹어보고 나서 평가하겠다던 오노 이치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오노 이치로 입을 닫은 이유. 제자의 몰락을 막아선 스승. ] [ 반유현의 제자, 스승만큼이나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다. ]대중들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서 생산해냈고, 그에 따라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로 나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지금 이 몸의 요리 경력이 짧듯이, 메이의 요리 경력도 짧은데, 어떻게 그녀에게 저런 요리 실력을 이식했냐는 호기심이 동반된 관심이었다.
불과 요리를 시작한 지 2년도 채 안 된 메이가 유명해졌고, 그녀를 가르친 나는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관심은 내가 설립한 요리 전문 교육 기관인 ‘반유현- 팩토리’로 이어졌다.
“내년 신입생 경쟁률이 기대되네.”
그리고 또, 그러한 대중들의 관심은 이미 테스트로서 팝업 레스토랑을 영업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졌다.
‘반유현-팩토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 그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이들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더 진취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셰프들이 이제, 팝업 레스토랑을 테스트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린데 또.”
“30개의 레스토랑 중 안정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한 팝업 레스토랑들은 더 규모가 큰 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자신들 스스로, 전단지, 시식, 마케팅 수법을 동원해서 아예 그 지역에 자리를 잡겠다는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그 팀의 리더인 교수들도 인프라를 총 동원하고 있고요.”
진행 상황이나, 그 효율은 모르겠으나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말이었다.
내가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혼자의 힘으로 눈덩이를 밀다가, 이제는 그 눈덩이가 커져서 굴리지 않아도 스스로 몸집을 불리면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 끝까지 이제 한 달, 남았나. 그 이후의 결과를 보고 그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줄지…… 말지…….”
내가 지금 한 이 말도, 300명의 셰프들과 그 교수진들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