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8
8화. 요리천재, 방송천재 (3)
맛만 보고도 그들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는지 맞춰냈다.
“미림에 알코올을 제대로 안 날렸네. 마는 갈아서 채로 걸어야…….”
윤종혁이 맡았던, 타마고야끼.
나는 그것의 맛을 보고 평가를 내렸다.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윤종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는 나의 지적을 납득한다는 뜻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의 지적이 너무나 구체적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윤종혁은 본인보다 내가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췄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케찹을 너무 많이 넣으셨어요. 감칠맛만 조금 살릴 정도로. 그리고 새우 가루 빼먹으셨어요.”
“아. 아이고, 그렇네예! 근데, 팀장님은 무슨 귀신인가 봐요? 어떻게 맛만 보고 다 아셔?”
나의 오더를 받아 요리를 시작한 팀원들은, 나의 지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민서윤 씨, 이 정도면 다 괜찮은데, 전분 가루에 오징어를 버무려서 튀김옷이 안 벗겨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재료를 튀길 땐 조금씩, 튀김 반죽을 뿌려주시고요.”
물론, 내가 가진 맛의 눈높이를 조금 낮춰서 평가했다.
100년 경력의 내 맛의 눈높이를 저들이 맞추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릴 테니까.
이 미션을 쉽게 성공할 정도의 맛을 주문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맛을 주문했는지, 그것만 생각하세요.”
***
“와……! 무슨…… 떡볶이를?”
우리의 음식을 맛본 심사위원들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표정들.
그런데, 그 충격의 표정들은 얼마 안 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이건 진짜, 우리 엄마가 해준 떡볶이보다 맛있다. 이야, 계란 김밥은 진짜 최고여. 하하하! 떡볶이가 이렇게 강력하다니.”
“푸딩처럼 푹신하고 녹아버리는 타마고야끼……. 아주 바삭한 튀김까지. 흠. 기본기가 대단합니다.”
“이 세 개의 요리는 각각의 요리가 아니라 스토리를 갖춘, 하나의 요리인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을 떡볶이로, 그리고 계란 김밥으로 갔다가 튀김으로. 맛과 식감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감동이고요. 합격입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계속 요리를 먹다가 그렇게 한 마디씩 평가를 던졌다.
뒤이어 심사위원 중 제일 연배가 높은 김애란이 심사평을 요약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여러 악기가 있다고 해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거는, 반유현 씨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조화에요. 처음부터 봤거든예? 요리 선정부터, 분업, 오더까지. 진짜, 지인짜 물건이야. 반유현 씨.”
그리고 특유의 흐뭇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대급의 심사평을 들은 우리 팀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하하하! 역시 우리 팀장님!”
“꺄아! 반유현 팀장님!”
“이길 줄 알았슴니더! 우리 팀장님이 어떤 사람인데예!”
그리곤 승리를 자축했다.
윤종혁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곤 말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니, 나에게 어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축하……. 드립니다.”
그렇게 차례로 다른 팀들의 심사가 끝났고, 남은 합격자들은 한 자리에 다시 모이게 되었다.
총 네 팀. 스무 명이 남아있었다.
합격자들에겐 서로 다른 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합격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유롭게 다른 팀원들이 만들어 낸 요리를 맛봤다.
스무 명밖에 남지 않았고, 이미 서로서로 얼굴을 많이 봐왔던 터라 어색함은 전혀 없었고, 서로의 합격을 축하하는 즐거운 분위기였다.
“와. 이, 이거 떡볶이랑 계란 김밥의 조화되는 것 봐. 튀김도……!”
“이 정도는 분식집 아들이라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식이 아닌디?”
“졌다 졌어. 진짜, 이걸 어떻게 이겨?”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팀이 했던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참가자들이 몰려들었고, 우리의 바로 옆에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대체 뭐로 이런 맛의 조화를 만드는 거지?”
내 100년의 경험 동안 얻은, 미묘한 차이들.
그것들이 누적되면서 합쳐져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맛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진정한 요리사라면 맛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이들도 높은 단계의 맛을 느낄 수 있게 인도해 주는 능력 또한 특출 나야한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 접할 수 있었던 떡볶이와 계란 김밥, 튀김에 그 능력을 담아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와 민서윤 씨! 이거 튀김 민서윤 씨가 했다고요? 엄청 맛있는데?”
우리 팀이 했던 요리를 맛본 한 참가자가 말했다.
“저희 팀장님이 다 가르쳐주셨어요.”
“에이! 이 정도는 본인 실력도 있는 거지! 가르쳐 준다고 다 되겠어요?”
예쁘장한 민서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세는 감탄과 감동이었다.
참가자들이 우르르 모여서 우리의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이, 떡볶이랑 튀김을 어떻게?”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맛을 즐기기보다는 탐구하는 느낌이었다.
“허허허. 맛있네. 제가 앞이 보이진 않지만. 맛을 보니 정성이 꽤나 많이 들어갔겠는데요? 팀장님도 드셔보세요.”
우리 팀원들도 다른 팀의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밀가루를 얇게 펴 구워 토르티야가 큰 대접의 가운데에 있고, 케이준 치킨 샐러드, 찹 스테이크, 새우 레몬 샐러드가 각각 그 주변을 장식한 요리였다.
개인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토르티야에 각 요리를 싸 먹는 타코를 만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젓가락을 들자마자 내려놨다.
“에? 팀장님 타코 못 드세요? 이렇게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민서윤이 내가 젓가락을 놓는 것을 보자마자 물었다.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접시에 담긴 토르티야의 색만 봐도, 입에 넣으면 요리를 망치는 밀가루 냄새가 풍길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밀가루 냄새도 잡지 못한 요리를 입에 넣기 싫었다.
뿐만 아니라, 토르티야에 싸 먹으라고 만든 요리들의 그 색감만 봐도, 굳이 맛을 안 봐도 나에게 신선하고 특별한 영감을 주지 못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냄새를 맡았더니, 역시나. 먹을 가치가 크게 없었다.
“정말 왜 안 드세요? 꽤 맛있는데 이거?”
당연히, 보기만 해도 맛을 안다고 했다간 중2병 취급받기 딱 좋다.
타고난 요리 천재들도 그 정도 능력은 부리지 못하니까 말이다.
“배불러서요. 많이 드세요. 민서윤 씨.”
그리고 그때. 심사위원 강요한이 마이크를 들었다.
“자! 스톱!”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라고 신호를 주는 강요한.
얼음땡을 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다음 미션 또한 팀 미션입니다.”
즐거운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드디어 또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가진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진행될 미션은 바로! 다른 팀 요리 따라 하기입니다!”
참가자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강요한이 곧장 우리 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반유현 씨 팀. 지금 팀 멤버 총원이 타코 앞에 있습니다. 반유현 씨 팀이 다음 라운드에서 준비해야 할 요리는 바로 타코입니다!”
많은 팀원들이 가까이에 있는 음식이 그 팀이 해야 할 요리가 되었다.
강요한이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각 팀당 요리를 선정하려 했을 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스슥! 스슥!
신발이 바닥에 비벼지는 소리.
우리 팀이 만든 요리를 먹고 있던 많은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보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하듯이 은밀한 걸음으로 서서히 우리의 요리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 누구도, 역대급 심사평을 받은 우리의 요리를 만들기 싫었을 것이다.
떡볶이라는 요리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지만, 저런 단순한 요리로 역대급 평가를 받아낸 팀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것이 좋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터.
“허허. 이래들,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뭐 되겠나!”
그런 모습을 본 김애란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참가자들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궜다.
그리고 우리의 요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한 참가자에게 김애란이 말을 던졌다.
“어이. 최현상 씨? 함 해볼래요?”
구수한 사투리가 섞여 있는 김애란의 말.
저 대답을 거절하면, 화끈한 성격을 가진 김애란에게 쓴소리를 듣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
“예……. 저희가 반유현 씨 팀의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그제서야, 최현성과 그 팀원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기 시작했다.
폭탄이 제거되었으니, 딱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마음들이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나는 그때 저들의 행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우리 팀이 해야 할 것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구워 만드는 토르티야는, 경복 님께서 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예! 팀장님! 허허허. 이번에도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우리 팀이 따라 해야 할 타코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있었다.
밀가루를 얇게 구워낸 토르티야와 케이준 치킨 샐러드, 찹스테이크,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였는데.
나는 먼저,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를 음미하며 그 안에 들어간 재료를 맛보고 있었다.
“재해석은 필요 없습니다. 그 요리와 가장 똑같은 요리를 만드는 팀이 높은 점수를 획득하게 되어있습니다.”
맛있게 만들려면, 더 맛있게 만들겠지만, 심사기준은 ‘똑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에 들어간 재료를 골라내기만 했다.
“레몬즙하고, 레몬껍질을 강판에 갈아서 만든 제스트, 파프리카, 파슬리. 파슬리도 프랑스 파슬리는 아니고, 이탈리안 파슬리에요. 아몬드도 갈아 넣었고…….”
내가 재료들을 말하자, 민서윤과 윤종혁이 그것을 받아 적었다.
내 팀원들은 이제, 나에게 어떠한 토도 달지 않았다.
이전 라운드의 활약으로, 내가 이번엔 돼지 간으로 타코를 만든다고 해도 믿고 따라올 분위기였다.
특히나 윤종혁의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에게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내 팀원들이 모두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강요한이 한마디를 더 던졌다.
“그리고, 이 미션에는 제한 사항이 하나 걸려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든 사람들의 집중을 깨는 말이었다.
“A요리를 만들었던 A팀은 자신들의 요리를 맡게 된 팀의 한 명을 뺄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타코를 만들었던 팀의 팀장이었던 중년의 남성이 손을 들고 말했다.
“반유현 씨를 빼겠습니다.”
강요한의 말이 끝마치자마자 저런 말이 나왔다.
참가자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지명되자마자 ‘야스!’, ‘그럼, 해볼 만해!’라는 말들을 뱉으며 자축하기 시작했다.
“반유현 씨, 반유현 씨는 2층으로 올라가서 대기해 주십시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할 때, 다른 참가자들이 보지 못했던 나의 팀 미션 활약상을 낱낱이 말했고, 그 덕에 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아주 유력한 우승 후보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나를 이번 라운드에서 열외 시키는 것이, 다른 팀들에게도 유리했을 것이다.
아주 강력한 우승 후보와 겨루는 게 좋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
오로지 맛을 겨루는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프로그램.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4라운드, 다른 팀 요리 따라 하기에서 열외자로 선택받은 분들은 모두 자동합격입니다. 이번엔 그냥 2층에 올라가서 쭉 쉬시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네 개의 팀에서 각각 한 명씩,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실력자들이 열외자로 지목되었고, 지금은 나와 함께 2층에 올라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동으로 합격되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합격이라고요?”
제작진의 의도는 하나였다.
매번 주목을 받는 실력자들은 미션에서 한 번쯤 열외를 시켜,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인물들은 새로운 스토리를 화면에 끌어들이고, 그것들은 방송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유현 씨, 떡볶이랑 계란 김밥이랑 튀김은 진짜……. 편안한 강도의 습격이라고 해야 되나? 뭔가에 뒤통수를 맞았지만, 아주 좋았다? 응? 나 뭐라는 거야 진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촤하하하!”
실력이 뛰어나, 열외를 당한 여섯 명의 사람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ACK의 메인 PD인 김수호가 나에게 다가왔다.
“유현 씨, 반가워요. 저 PD 김수호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내가 이곳에 출전할 수 있게 기회를 줬던 사람이었다.
인사를 하곤 반말과 존대를 섞어 나에게 편하게 했다.
“좀 미리 언질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
“예?”
“유현 씨 방송 분량이 너무 많아, 버리기 아까운 장면이나 화면들이 너무 많더라고.”
김수호의 얼굴엔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공존해 있는 것 같았다.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냐에 따라 다르지만, 유현 씨 너무 유명해져도 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크흠! 유명해지면 얻는 것도 많겠지만, 그만큼 또 피곤해지거든.”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단번에 유명해지면, 성격을 버리고 자아를 잃게 되는 것을 많이 봤다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단다.
방송이 되기 전 나에게 그런 조언을 직접 해주러 온 것이다.
“내가 방송경력 23년 차거든? 이번 프로 느낌 좋아. 터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