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원맨쇼(4)
나는 곧장 런던으로 향했고, 이들도 나의 발 빠른 행동에 응하기 위해 런던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루이비통 유럽 총괄 사장.
마이클 바크.
“혁신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꾸는 것이죠…….”
그의 모토이자, 신념.
전 세계 수많은 경영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말을, 실제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타공인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CEO가 내 이름에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도 전생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보여주신 행보들을 두 글자로 줄이면 혁신이 아닐까요?”
이미 나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해왔는지, 나의 활약들을 낱낱이 읊기 시작했다.
“파리에 도착하셔서, 미슐랭 스타 셰프 루시앙을 놀라게 했고, 전문적인 셰프가 아닌 일반 셰프들을 데리고 레드테이블 더 파스타를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연이어…… 라스베가스에서의 활약, 그리고 레드테이블 반유현의 런칭……. 포시즌스 장악…… 투르 드 프랑스를 완전히 정복한 브랜드…….”
그리고 박수를 친다.
나보다 스무 살 이상은 많은 그가 나를 존경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덕분에 요리라는 세계를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저 때문에요?”
“맛이 주는 경험이란 게…… 저는 놀라운 것 같습니다. 저희 패션 사업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는 것에 치중해 아이템을 만들고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더 강력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금 박수를 쳤다.
마이클 바크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이 나에게서 받은 영감을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비쳤다.
“보고 듣는 경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만족감, 행복감 더 나아가 황홀함까지……. 저는 그 경험을 우리 고객들에게도 선사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약 없이, 그저 순수한 감각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험에 저희 브랜드를 얹고 싶어졌습니다. 끌어주시죠 반유현 셰프님.”
마이클 버크의 화끈한 제안에, 나를 따라온 몇몇의 반유현팀의 직원들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들에겐 대학 수업에서도 종종 회자되는 세계적인 경영자 자체를 앞에 둔 것도 엄청난 경험이었지만, 그의 파워풀한 말이 더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얼마나 혁신에 목을 맨 사람인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고작 생긴 지 2년도 채 안 된 브랜드에 얹고 싶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 직원들의 표정으로 보건대 속마음을 헤아리자면.
‘루, 루이비통이 반유현 셰프님에게 이끌어 달라……고 말한 거야?’
‘반유현’이라는 브랜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비통이라는 패션 브랜드가 거대했기 때문이다. 저 회사는 자산가치가 30조를 넘는 회사였으니까.
“구체적인 조건들을 알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화끈했으면 좋겠네요.”
무심한 듯 질문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왜?’
그러자 직원들은 다시 고개를 돌렸고, 마이클 버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뭉치를 꺼냈다.
“해러즈(Harrods) 백화점 별관, 그 맨 꼭대기 층에는 카페, 서점, 레스토랑 등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곳의 절반 이상의 공간을 반유현 셰프님께 내어드릴 생각입니다. 이 백화점의 주인이자 세계 최대 국부펀드 카타르 투자청, 카타르 홀딩스 측과도 이미 얘기가 끝났습니다.”
루이비통과 해러즈 백화점의 관계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준비하면서 도와주고 끌어주는 관계인 듯했다.
나의 브랜드를 유치하자는 루이비통 측의 제안에 해러즈 백화점은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 백화점은 런던 올림픽 당시, 600만 명이 찾았을 정도로 이 지역의 명소이며, VIP들을 위한 시스템이 그 어느 백화점보다 뛰어나 셰프님께서도 많은 커넥션을 얻어 가실 수 있으며,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급력을…….”
“이 공간 자체가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제안을 받아서요.”
물론, 해러즈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장점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내 마음을 통째로 빼앗을 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받은 메일함만 열어봐도, 라스베가스, 홍콩, 뉴욕 등 세계 각지에 노른자위 땅이라는 곳에서도 각각의 장점을 부각하며 나를 부르기 위한 손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흠. 이 백화점에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선 브랜드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그것도 꼭대기 층 절반 이상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제안은 그 어떤 브랜드에도 해본 적이 없는 제안입니다. 이 때문에 해러즈 백화점 측에서도 어려움을 표했었죠.”
“그렇군요.”
내가 무심한 말투로 말하자, 마이클 버크는 다급해졌는지 말투가 빨라졌다.
160년 역사를 가진 해러즈 백화점, 그 이름만으로도 권위와 품질을 인정받기에 이곳엔 ‘해러즈’라는 백화점의 이름을 달고 나온 상품들이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백화점 내에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내거는 것 자체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연이어 말했다.
물론 나도,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은 전 세계의 브랜드들이 오매불망 입점을 기다리는 그곳에, 아주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점한다는 것 자체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에겐 중요한 조건이 있었다.
“임대료는 매출의 몇 퍼센트입니까?”
“임대료요? 임대료는 30퍼센트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높은 임대료로 인해 적자를 보더라도, 입점을 시키는 것이 기존 기업들의 방식이었기에, 나의 질문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는 듯이 마이클 버그는 말했다.
“입점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셰프님. 임대료가 천만 불이든 백만 불이든…….”
“대표님이야말로, 이전에 하셨던 말씀과는 앞뒤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해러즈 백화점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런던을 방문했더라면 누구나 찾는 관광명소이자, 이 백화점이 파는 물건들은 모두 ‘명품’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권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루이비통의 직원, 해러즈 백화점의 직원, 그리고 반유현 팀의 직원들 총 스무 명이 넘는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쳐다봤다.
“레스토랑 반유현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파격적이고 새로운 경험은, 해러즈 백화점의 이름값이 필요 없습니다. 임대료는, 레스토랑 ‘반유현’이 해러즈에 입점하는 것의 이익이, 백화점과 루이비통 사에 더 큰지, 제게 더 큰지를 잘 비교해서 다시 측정해주시죠.”
내 브랜드를 품으려고 하는 회사가, 나의 가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나에겐 중요한 조건이었다.
“루이비통사와 해러즈 백화점의 명성을 알지만, 제가 임대료를 딱히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또……. 역사에 한 획을 그리셨습니다.”
“뭔 역사.”
“해러즈 백화점에, 단독으로, 임대료 없이 브랜드를 런칭하신다는 것이요. 그리고, 루이비통 브랜드 역사상 새로운 방식의 패션쇼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 그리고…….”
오스틴은 습관처럼 이번에 성사된 계약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해 말했다.
내가 성과에 대해 항상 무심한 태도를 보여서 그런지,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보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일이 발생해서 얻은 것들에 대해 설명하는 오스틴이다.
160여 년의 역사 동안, 임대료가 없이 입점을 한 브랜드는 다섯 개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 왕족들의 말, 그 안장을 수리하는 브랜드와 왕족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브랜드 등, 10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그 브랜드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내 관심은 어떤 브랜드가 있느냐보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였다.
내가 주어진 이 기회를 정리하자면 단순했다.
해러즈 백화점에 단 한 푼의 임대료 없이, 그저 나의 이름을 내거는 것만으로 입점을 했다는 것이고, 루이비통 사의 최대 규모 패션쇼에 갈라디너를 맡기로 했다는 것.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 갈라디너 또한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내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은 많으나, 실질적으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나의 요리와 레스토랑 ‘반유현’은 저절로 사람들에게 명품화되고 있었으나, 이번 성과는 내 브랜드가 비로소 가시적으로,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명품’이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제가 또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런칭 기간까지…… 크흠! 죄송합니다.”
“그래, 괜한 질문은 하지 마.”
해러즈 백화점 내에 레스토랑 반유현의 런칭까지 51일.
2021 뉴욕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에 갈라디너를 선보인 다음 날 오픈을 할 계획이었다.
“주방 총괄, 최민성.”
“최민성 셰프를 런던으로 부르겠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B-1팀은 ‘반유현-네이비’를 맡기로 했으니, B-2팀하고, B-3팀은 런던으로 땡겨.”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그들의 거주지나 생활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도 해결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생기는 반유현 팩토리의 공백은 어떡할까요?”
나의 레스토랑 런칭 속도를 맞춰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설립했던 ‘반유현-팩토리’는 아직까지 공장처럼 셰프들을 찍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반유현 팩토리 자체에 셰프들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C반 이하의 셰프들은 주방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재원이 되지 못했으니까.
“반유현 팩토리 셰프 모집 공고도 동시에 올려.”
“1년에 한 번 뽑기로…….”
“계획 전면 수정, 두 달에 한 번씩 뽑는다.”
통제력을 잃고 달리는 말처럼 내 계획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그 고삐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니, 채찍질을 더했다. 이번 삶은 반드시 이 지옥 같은 회귀 굴레를 벗어나려고.
“런던에 있는 곳의 이름을 뭐로 하시겠습니까?”
“반유현, 브라운.”
“알겠습니다.”
직원들도 나의 방식에 적응되었는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확인했습니다. 셰프님께서는 메뉴 개발과 런칭에 최대한 힘쓰실 수 있도록 저희가 남은 모든 사안들을…….”
“됐어, 내 이름 아래에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선 안 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통제 하에, 그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
반유현 팩토리, 회의실.
반유현에 의한 회의가 소집되어, 교수들과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저건 뭐야?”
이들은 회의실 맨 앞,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화면을 보고 서로 웅성이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오늘 반유현 셰프님께서 우리를 소집한 이유인 것 같은데…….”
-반유현 브라운, 그랜드 오픈 D-49.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 D-10.
총 두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한 장은 짙은 갈색의 천에, 노란색으로 ‘반유현’이라고 적혀있는 사진이었고, 한 장은 ‘반유현’ 산하 모든 셰프들이 입고 있는 조리복에, ‘신입생 모집’이라고 적혀있는 사진이었다.
“브라운? 레스토랑, ‘반유현 네이비’가 런칭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또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시는 거야?”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은 뭔데, 1년에 한 번 뽑기로 한 것 아니었나.”
현재 상황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적혀있는 사진들이었다.
“저게 가능해? 누가 합성으로 반유현 셰프님 행세하는 걸 제보받은 건가?”
“반유현 셰프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게 사실이라면 괜스레 불안하군요.”
“음. 저도 그렇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하셨다간 조직 전체가…….”
“D-49라는 게 실제 날짜는 아니겠지?”
반유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서 그런가.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들이 혀를 차며 그 계획에 회의감을 표현했다.
그때 마침, 반유현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 한 장을 빼먹었네요. 여기 계신 분들과 관련이 크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아무래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브라운, 그랜드 오픈 D-49.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 D-10.
원래 있던 두 장의 사진 가운데에 한 장의 사진이 또 펼쳐졌다.
-2021 뉴욕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갈라디너 D-48.
“해야 할 일들이 조금 많습니다. 잘 들으세요.”
아무래도 반유현은 저 세 개의 계획을 모두 진행시킬 심산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