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뜨거운 열기 (2)
최민성의 평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세세한 맛의 차이들을 지적하고 매번 하는 것처럼, 오픈 직전의 메뉴 테이스팅 때 보겠다고 했다.
오픈 직전의 메뉴 테이스팅만이 남았다는 것은, 지금 당장 손님들에게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요리라는 뜻이었다.
“기대가 커.”
최민성이 듬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주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든 것만 같았다.
물론, 기분만.
“캐비아를 품은 새우는 완벽하게 정리됐고, 다음 요리들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되나?”
루이비통 패션쇼 갈라디너의 메뉴들은, 이곳에 나와 함께 있는 열여덟 명의 셰프.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최정예 셰프들이 모두 숙지한 상태였고, 이제 그 동선을 짜는 일만 남았다.
메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조리법과 재료가 들어가는지 모든 셰프들이 알았으니 업무를 분담하는 순서였다.
“캐비아를 품은 새우,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푸아그라가 품은 안창살. 세 메뉴 다 숙지는 되었을 테고.”
처음 이 메뉴를 셰프들에게 말했을 때는, 로또 육인방을 제외한 교수들은 모두 의심을 품었었다.
세계 3대 진미라 불리는 이 식재료들을 저마다 재료의 특성과 풍미가 강한 재료와 함께 요리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정답은 나의 것이었다. 알량한 10년, 20년의 경력으로 100년의 경험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오답이었으니까.
“진짜…… 충격적인 메뉴들인데, 그 맛은 더 충격적이에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 요리 인생에 이런 메뉴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그 세 가지 메뉴를 먹고 놀랄 고객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이, 어쩌면 매일 밤 런던에 모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파리의 모든 장사가 끝난 뒤에, 오후 여덟 시 오십 분 비행기로 매일같이 런던에 와 갈라디너의 합을 맞추는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 셰프들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도 자신의 본업을 잠시 내려놓고, 밤이 되면 런던으로 모였다.
그만큼 이 행사가 자신들의 커리어에도 중요하리란 것을 알기에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이 요리의 분업이 제일 중요해 트러플 향을 날리는 것부터 메추리 손질까지 들어가야 되니까. 헨리 잠깐 앞으로 나와.”
“예.”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시연해봐, 구분 동작으로 끊어서 담당 업무를 정할 테니까, 새우를 나눴던 것처럼.”
헨리가 내 말에 대답을 한 뒤에는 곧장 메추리 하나를 조리대에 올려놨다.
능숙하게 메추리의 목구멍으로 메추리의 몸속에 있는 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전통방식이죠. 배를 가르고 봉합한 흔적을 보이지 않게,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가금류 손질에 능하신 분들이 이 부분을 맡아주세요. 바로 이전 메뉴인 캐비아를 품은 새우 단계에서, 새우 손질한 다음 수비드 했었죠? 그 역할을 한 셰프가 새우 수비드에 넣은 뒤에 곧바로 메추리 손질 들어가면 될 것 같네요.”
메추리의 몸을 가르고 봉합자국을 없게 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송로버섯, 트러플은 익히면 그 향이 빨리 날아가게 되는데 그것을 최대한 메추리의 몸속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메추리의 몸속에 넣을, 수분을 품은 뜨거운 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모두 방출하지 못해, 메추리의 살을 부드럽게 해주며 메추리의 몸을 갈랐을 때, 트러플의 향이 확 튀어나오는 연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왜 이런 식으로 메추리를 손질하는지는 아까 말해줬었고. 다음.”
헨리는 다음 단계의 요리를 시작했다.
양송이와 양파, 마늘을 볶은 팬에, 아보리오 쌀을 투입해 미리 만들어 둔 야채 육수를 붓는다.
야채 육수가 졸면, 와인을 넣어 풍미를 더 하고 파마산 치즈를 뿌려 고소한 맛을 더했다.
이 리조또는 메추리 안에 들어간 뒤 또 한 번 오븐에 조리될 것이기에 쌀의 텍스쳐를 너무 무르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한 트러플 오일을 곁들여 향을 돋운다.
“이것도 말했듯이, 트러플 껍질을 직접 기름에 재워서 만든 오일이에요. 진짜 트러플 오일이죠.”
곧장 리조또를 메추리 몸속 안에 넣고 오븐에 넣었다.
헨리는 동시에 새콤달콤한 포트와인 소스를 준비했다.
“과정들 보면 협업 동선이 나오죠? 리조또의 야채 육수를 맡은 셰프는, 이전 메뉴의 뵈르블랑 소스, 포트와인 소스, 다음 메뉴에서 쓰일 쥐치 간 레몬 폰즈 소스까지 하면 되겠네.”
메뉴 구성에는 이미 놀란 바 있고, 그 동선과 협업을 고려한 업무 분할까지, 셰프들은 마술쇼를 보듯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로또 육인방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고, 나와 이번에 처음 일을 하게 된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이 그랬다.
저들은 경력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주방을 통솔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어야 되는지.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마지막 메뉴는, 푸아그라가 품은 안창살 스테이크인데, 푸아그라는 쥐치 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대규모의 행사에서 푸아그라라는 식재료를 쓰는 것은 크나큰 도박이다.
지방을 많이 함유한 거위 간을 만들기 위해, 거위의 목에 강제로 파이프를 껴놓고 만드는 푸아그라는 세계 3대 진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이미 세계적으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루이비통 컬렉션 패션쇼, 갈라디너, 세계적인 유명인들과 부호들이 많이 참석하는 자리에 괜히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푸아그라를 올리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어떤 논란도 있어선 안 되겠죠.”
실제로 지난 삶 동안, 이런 대규모 행사에 푸아그라를 대접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는 셰프들을 많이 봐왔었다.
지금까지 조금의 긁어 부스럼 없이 성장했으니, 앞으로도 논란거리를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료가 바뀐 이유에 대해선 고객들이 요리를 먹기 직전에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갈라디너에 준비한 세 개의 요리 중, 그나마 간단한 요리였다.
소 한 마리에서 대략 2kg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 안창살.
식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각종 야채와 올리브유로 3일간 마리네이드(marinate)해 숙성시켰다.
“육즙을 최대한 살려 구울, 그릴 파트가 중요한데. 아, 거기 셰프님, 두 분이 하기로 하셨구나.”
고기를 굽는 역할을 맡은 이 중 한 명은 국제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았었던 알베르였다.
대회가 끝나고,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채용에 응했고, 교수로 채용되었던.
건너 건너로 내 귀로 들어온 바에 의하면, 자신이 처음 요리를 배울 때보다 ‘나’라는 인간 자체를 탐구하는 것에 깊은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어쩌면 로또 육인방 만큼이나 나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지도 모르는 그였다.
“알베르 셰프님께서 이번 메뉴를 시연해 보시겠어요?”
알베르가 곧장 수족관에서 쥐치를 채로 잡아 도마 위에 올렸다.
푸아그라 대신 사용 할 쥐치 간은 마니아층이 두꺼운 별미이고, 신선해야 하기에 즉석에서 쥐치를 잡아 사용할 것이었다.
나는 또 메뉴가 시연되는 동안 각각의 셰프들이 해야 할 일을 집어 주었다.
알베르는 쥐치 간을 분리해내고 물에 살짝 데친 뒤, 채에 걸러 으깼다.
그리고 쯔유간장과 각종 향신료, 레몬을 곁들인 레몬 폰즈 소스에 으깬 쥐치의 간을 첨가했다.
“드셔보시죠, 알베르 셰프님.”
곧장 구운 안창살을 쥐치간을 으깨 만든 레몬 폰즈 소스에 찍어 먹는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파프리카, 최고급 송이버섯은 가니쉬였다.
“제가 만들었지만, 최곱니다. 제가 그 대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수준의 맛을 보지 못했겠죠.”
“행사장에서도 이 맛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 이상을요.”
“예! 셰프!”
최고 연장자 셰프 알베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덕분에 다른 셰프들에게도 의지가 샘솟는 기분이다.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이, 충격적이고 신선한 맛을 빨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런던시티 공항의 격납고를 통째로 빌려, 패션쇼의 현장으로 꾸몄다.
높은 천장과 드넓은 공간엔 모델들과 셀럽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테이블에는 각각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 반유현 ]나도 패션쇼에 초대된 인사 중 한 명이었고, 자리에 앉았다.
최민성과 헨리를 뺀 나머지 셰프들은 약 다섯 시간 뒤, 갈라디너를 준비하는 것에 열중했다.
나도 갈라 디너의 준비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최소 한 시간 정도는 자리에 앉아 있어 달라는 루이비통사의 부탁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화려함뿐이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부터, 그들을 밝게 비추는 조명들까지.
화려함의 대명사라 불리는 스타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나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셰프님?”
유명 기업가부터, 가수, 패션모델 등 직업을 가리지 않고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수많은 모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가져가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 분야가 아니라면 그저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최민성과 헨리, 제리는 그게 아니었는지 내 옆에서 자신들의 목에 매고 있는 검정 스카프를 서로 정리해주고 있다.
“반 셰프, 너무 멋있어요.”
언뜻 봐도 모델의 포스를 풍기는, 깊은 눈동자를 가진 백인 여성이 노골적인 표현을 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당장 갈라 디너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백인 모델을 시작으로 또 다른 모델들도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색해서 앞만 보고 있는 그때, 중동의 남자들이 입는 옷인 칸두라를 입은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반 셰프님?”
“네, 안녕하십니까.”
아주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 사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우리 집, 요리사로 당신을 섭외하고 싶어서요.”
내가 피식 웃으며, 최민성과 헨리를 바라보자 최민성이 발끈하고 일어섰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우리 셰프님을 당신네 집 요리사로 섭외하고 싶다고?”
무시가 섞인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어우. 워워.”
사내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최민성보고 자리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때,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는데, 이 사내의 경호원인 듯했다.
‘중동이 국적……. 온 몸에 금 악세사리, 경호원을 동반, 명품 브랜드 패션쇼…….’
암만 봐도 산유국 거부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개새끼가 어디다 대고.”
최민성은 그놈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씩씩대며 일어섰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네 부하? 이 친구는 왜 기분이 나쁜 거야? 우리 집 주방에만 수십 명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있는데, 너도 들어오라고 말하는 게, 기분 나빠? 웃기는 놈이네. 자존심만 세 가지고.”
“내가 얼마인 줄 알고.”
“얼마? 얼마가 어디 있어, 네가 원하는 자동차, 집, 여자, 돈 다 해줄게.”
기름 왕자, 돈에 한계가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