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9
9화. 너 정도면 쓸 만하지 (1)
자체 시청률 4.1%.
케이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다.
담당 PD 김수호의 말처럼, 실제로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는 대박을 쳤다.
4라운드까지 녹화를 마쳤지만, 방영된 1화는 1라운드가 대부분의 내용이었다.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전혀 상상치 못한 완두콩 특유의 단맛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와······.
1라운드에 내가 선보였던, 관자 요리를 맛보고 충격을 받은 심사위원들의 표정.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충격을 즐기며, 여유롭게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바로 뒤에는 윤종혁의 인터뷰 장면이 비쳤다.
-반유현 씨요? 이번엔 제가 우습게 봤습니다. 그런데, 맛이란 게 원래는 운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운 좋게, 이것저것을 섞었는데 맛있고 신선한 맛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거죠.
-반유현 씨가 만든 관자 요리가 운이란 건가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면 갈수록 그 실력은 드러나겠죠.
대회 시작부터 나의 이름을 거론했던 윤종혁이 나와 같은 관자 구이를 선보이고, 심사위원들이 나의 요리에 압도적인 평가를 하자 그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장면.
1라운드에서는 저런 식으로 인터뷰를 해놓고, 2라운드, 3라운드가 진행되면서 결국, 암암리에 내 실력을 인정한 윤종혁이었다.
앞으로 방송될 2화, 3화에는 윤종혁이 아주 공손한 자세로, 내가 말하는 재료들을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 텐데.
1화가 이런 식으로 방영된 것을 보면, 제작진은 윤종혁을 이미 방송의 제물로 정한 듯했다.
-반유현 씨요? 저는 유학까지 했는데도······ 제가 생각할 수 없던 맛을 만들어 내잖아요? 관자 구이에 크레송 버터 소스, 그리고 맛을 감추기 위한 완두콩 퓌레? 진짜 감탄했어요. 저보다 나이는 몇 살 어리지? 6살? 어리신데, 오빠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때에는 나와 팀이 될 줄 몰랐던 민서윤의 인터뷰까지.
많은 사람의 흑역사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흑역사와는 반대로, 새로운 역사도 탄생되었다.
[ 반유현! 젊은 스타 셰프 윤종혁 격파! ] [ 심사위원 최훈 “관자 요리의 새로운 기준을 선보여준······.” ] [ 김애란 “이런 맛은 처음 본다.” ] [ 두바이 미슐랭 셰프 출신 강요한 심사위원 “충격 그 자체의 맛을 봤다.” ]…
[ ACK 녹화 현장은 반유현 쇼크! ]‘ACK’에 관련된 기사들의 대부분에 내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방송 첫날, 실시간 검색어에 나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였다.
이전의 삶에서도 많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환생한 지 약 3개월 차에 대중들에게 이 정도의 주목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진도가 아주 빠르다.
나에 대한 기사들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반유현의 사소한 행동으로 알아본 반유현의 이상형 맞추기! ]이딴 시원찮은 기사들도 순위에 있는 것을 보면, 각종 온라인 언론사들은 실시간으로 가장 핫한 나에 대한 기사를 무자비하게 찍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중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셰프로서, 요리사로서의 입지는 아직 모자란 듯했다.
꺄아아악!
‘골목가게’가 방영되었을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우리 분식집으로 몰렸었다.
내 이름이 걸린 현수막부터,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까지.
저 장비들을 보면, 저 사람들의 목적은 분식집의 음식 아닌 ‘나’였다.
“흠.”
분식집에는 어머니 또래의 직원들을 세 명이나 뽑았음에도, 일손이 모자랐다.
“오늘 너무 고생했다, 유현아, 밖에서 손님들 줄 세우랴, 팬들 인사해주랴······ 쉬는 날에는 대회 준비해야 될 텐데.”
“어머니가 더 고생하셨어요. 주방에서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영업이 끝난 저녁 시간이 되고, 가게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리고 나에게 어머니가 여러 장의 명함을 건네줬다.
“유현아, 네가 너무 바빠 보인다고, 연락처를 이렇게 많이 남겨놓고 갔어. 우리 아들 진짜 성공했네. 성공했어······.”
1화가 방송되자마자, 눈치 빠른 비즈니스맨들이 우리 가게를 들렸다.
명함을 놓고 간 사람들은, 내가 나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하며 밖에서 뛰어다닌 탓에,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명함들을 바라봤다.
-용신백화점 영업팀장. 이영길
“그 사람은 백화점 사람인데, 무슨 떡볶이를 같이하자는데? 계란 김밥이랑 같이 메뉴로 묶어서 입점을 하겠냐고 물어봤어. 계란 김밥이 뭐니?”
내가 선보인, 떡볶이와 계란 김밥 그리고 튀김은 3라운드였다.
방송된 1화의 분량을 보고는 내가 떡볶이와 계란 김밥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송되지도 않은 걸 어디서 알아 와서, 선점하겠다는 건가.”
방송되기 전에, 레시피와 그에 대한 판권을 계약해 선점하려는 것이었다.
“빠르긴 빨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의 장사꾼들이 안 그러겠냐마는.
특히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의 장사꾼들은 항상 한 발 더 빠른 것 같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식문화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화음식연구소 과장. 김승한
-(주)대영식당 영업이사, 조정환
-(주)슈가&솔트 대리, 김호찬
···
그밖에도 수많은 명함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돈 부족하세요?”
“아니, 엄마는 이 정도면 충분해. 이 정도 돈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아들이 이렇게 잘되니까 더 행복해. 꼭 지금처럼만······.”
어머니의 의견을 확인하곤, 나는 받았던 명함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다행이에요 어머니, 제가 원하는 것도 이런 게 아니거든요.”
***
방송된 1화에서, 내 실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1라운드에서 선보인 관자 요리에 대해서 말이다.
‘없다면, 이 나라를 당장 떠난다.’
방송을 통해 나왔지만, 요리를 설명하는 내 모습에서 느낀 사람이 있어야 된다.
내가 구현한 맛과, 스토리, 그리고 나의 내공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명함만을 던져놓고 간 저들은 모두 ‘0’점이었다.
나의 실력을 알아봤다면, 명함 하나만을 놓고 갈 리가 없다.
나의 실력을 모르고, 그저 내가 얻은 인기로만 장사를 해보려는 이들이다.
저들의 창업 노하우와 나의 요리를 이용하면, 장사야 잘되겠지만.
돈을 벌고 사업을 하는 것은 미슐랭 스타 30개를 얻는 내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다.
돈은 아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맹목적인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불나방처럼 돈의 맛에 빠져서 미션에 실패했던 두 번째 삶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명함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홀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은 그나마 쓸 만한 사람들이었다.
“마감 시간입니다.”
주방과 붙어 있는 테이블에 각각, 정장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분식집에 딸린 쪽방에서 문을 살짝 열어놓고 그들과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그들의 동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라고 말했는데도, 눈치를 보며 나가지 않는 그들.
“주방 마감해야 되는데,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어머니가 친절한 말투로 한 명의 남자에게 묻자, 남자 한 명이 눈알을 굴린다.
“그, 반유현 씨······.”
웃긴 건 그 남자 한 명이 입을 열었을 때, 남은 두 명의 남자들도 엄청난 집중을 기울인다.
그래서 알았다.
저 세 명의 남자가 모두 따로 왔지만, 목적은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 유현이요? 팬이시구나. 오늘은 유현이가 쉬느라······. 다른 분들도 유현이 못 보고 다 돌아갔거든요?”
가게에 불청객들이 많이 몰리는 탓에, 어머니는 내가 주문한 대로 대사를 날렸다.
“어머니, 저, 방금 들어왔어요.”
나는 어머니가 뱉었던 말이 민망하지 않게, 말을 내뱉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 찾아오셨죠?”
나의 등장과 함께, 각각 다른 정장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명은 동시에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치 잘 짜인 안무를 연습한 것처럼 말이다. 그 안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명함이었다.
세 명은 서로 경쟁하듯이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화윤 호텔 수석 조리장 이기철.
-에드 월 호텔 부주방장 브랜든 킴.
-레스토랑, 다이닝 임프레스. 총 주방장 문상원.
화윤 호텔과 에드 월 호텔은 둘 다 5성급으로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요리인들의 꿈인 곳이기도 하다.
다이닝 임프레션은 이미 프랑스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문상원이 한국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기 위해 차린 레스토랑이었다.
이 세 명의 사람은 각각의 네임드에 걸맞게 나의 실력을 알아본 이들이었다.
짧은 방송으로도 내 실력을 알아본 까마득한 후배들이 기특해서 사탕이라도 쥐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진짜 실력은 저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있지만.
“안녕하십니까.”
“아, 예······. 이기철입니다.”
“이거,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민망하군요.”
저들끼리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각자의 욕망을 꺼내기 시작했다.
“서울시 대회에 참가하셨을 때, 그 결승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들었죠. 꼭 잡아야겠다고. 반유현 씨,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시고자 한다면,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저희 주방의 중간 책임자로서 주방 경험을 하며, 맛을 연구하고······.”
“주방의 책임자보단 반유현 님의 연구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송구스럽게도, 반유현 님의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관자 구이에 곁들여진 퓨레와 가니쉬의 그 창의성은 진짜······.”
“하하하. 우리나라에서 최고인 두 호텔에서, 준비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은······.”
요리에 있어서 자신들의 위치가 높다고 생각할 사람들인데, 내 앞에서 공손해진 걸 보면 정말로 나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런 제안을 받자고 ACK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목표를 위해 훨씬 더 빠른 차를 원한다.
저들의 직급과 위치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내가 탈 차는 아니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래서 나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각 좀 더 해보겠습니다.”
완곡하게 둘러댔다.
그 말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저들의 표정을 보면, 자신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가져왔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지금 나를 찾아온 이 사람들은 요리사로서 꽤나 높은 직급과 명예를 가졌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떤 차를 ‘첫 차’로 타느냐에 따라 인생의 효율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실력과 인프라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거물’이라 불리는 그들은 왜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다.
방영된 1화에서 나의 실력을 다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충분하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자라면 나의 실력을 알아봐야 한다.
이런 나의 확신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내려졌다.
‘대한민국을 떠야겠다.’
이 나라 안에는 내가 써먹을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