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뜨거운 열기 (3)
세익 하이든 빈 모하메드 알리.
단숨에 말하기도 벅찬 그 이름의 주인공,
하이든 왕자라고 불리는 그는 UAE의 왕세자였다.
이놈의 삼촌이 두바이의 가장 놓은 건물 부르즈 할리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다.
집안 자산 규모는 추정 불가, 기름 왕국의 사람들끼리 매형, 처제, 삼촌 하면서 가족을 맺고 있었으니까.
100년의 인생을 살며, 돈에는 감각이 무뎌졌지만 이런 놈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줄게, 우리 주방으로 들어와. 나랑 우리 가족을 위한 요리만 해줘.”
집안의 재산 규모로만 치면, 이 패션쇼를 개최한 루이비통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현실감이 있긴 하다.
“가장 필요한 게 돈 아니야? 조사 좀 해보니까 미친 듯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데.”
나와 하이든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주변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대화가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 투자를 해주겠다는 건 좋습니다만. 그 싸가지가…….”
“!”
최민성과 헨리의 눈빛이 나에게 꽂힌다.
그가 아랍의 왕세자임을 알고 조용해진 최민성과 달리, 나는 그의 신분을 알고도 저런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있는데 돈이?”
“네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니까?”
워낙 망나니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미 사람들은 우리 둘의 구도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순간 내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그 고민은 역시나 쉽게 끝났다.
매번 하던 대로.
“흠. 너 같은 새끼한테는…….”
그와 가까운 관계를 맺어, 그의 자본과 인프라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될 듯싶지만, 아니다.
지금 나에게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해서 레스토랑을 더 빨리 런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 인생에 목적이 아닌 이상, 이런 놈이랑 엮이는 것 자체가 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를 뒤처지게 할 수 있다.
100년의 삶 동안 수많은 재벌가 놈들이랑 관계를 맺어왔으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했던 경험도 그랬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실력이다.
또, 나에겐 내 의견에 전혀 태클을 걸지 않는 포시즌스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도 했다.
“뭐?”
“꺼지라고. 내 시간 뺏지 말고.”
점점 내 주변으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포착했는지, 내 경호원들이 보충되어 나를 둘러쌌다.
내 앞에 있는 이놈이 가진 경호원보다 많은 인력이었다.
나의 태도, 달라지는 주변 분위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기야, 이런 대우를 어디 가서도 받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너 같은 쓰레기 새끼한테 내 요리를 대접하기 싫은데.”
“뭐? 푸하하하하!”
갑자기 휴대폰을 든, 하이든이 어딘가 전화를 건다.
“어. 나야, 오늘 반유현 갈라디너 다 취소해! 없던 일로 해버려!”
“하, 지랄은.”
뭐, 이 패션쇼의 관계자나 루이비통사의 고위급 간부랑 통화를 했나 보다.
그런데, 이 행사장 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뭔데! 갈라디너를 없애라 마라야!”
“반유현 갈라디너 때문에 여길 왔는데, 헛소리하고 있네.”
“우웩! 별꼴이야!”
“행사장 분위기 망치지 말고 좀 꺼져요!”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하이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꽉 깨문 하이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옮겼다.
***
하이든 왕세자는 430만의 팔로우를 보유한 SNS스타였다.
슈퍼 다이아 수저에, 관심종자 끼가 다분한 그의 성격 덕분이었다.
[ 세계 최고의 셰프로 초대한 이가, 고작 트러플, 캐비아, 푸아그라? 세계 3대 진미를 꺼내놓고 그걸 요리라고, 갈라디너라고 말한다……. 우리 집에 있는 내 요리사들이 더 훌륭하지 않을까. ]최민성이 나에게 게시글을 보여줬다.
“제가 가서 후려치고 올까요? 합의금은 셰프님이 좀 보태주시면…….”
나도 그가 하는 짓을 보아하니 당장 달려가 광대뼈를 후려치고 싶지만…… 후. 100년을 사니까 사람이 원초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댓글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셰프님을 옹호하는 댓글들이 더 많네요. 워낙 망나니라 불리던 인물이라서요.”
-ㅋㅋㅋㅋㅋ 이 망나니형 저기가서 또 진상 짓 하고 있네.
-반유현이랑 자기네 집 주방 셰프들을 비교하는거?
-주방에 있는 셰프들이 미슐랭 스타 세프들이래요.
-푸아그라에서 쥐치 간으로 바뀌었다는데, 메뉴도 모르고 나불대는거 보면 ㅉㅉ
-뇌가 현찰로 가득 찬 듯ㅋㅋㅋ 차라리 그 갈라디너 입장권 나한테 줘라 행복하게 좀 먹게.
관종, 돈지랄, 망나니짓으로 팔로워를 모았던 터라 대부분의 반응들은 나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막 한 시간 남은 갈라디너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 루이비통사의 총 경영자인 마이클 바크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셰프님. 저희 입장도 고려를 좀 해주셔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든 왕세자, 저놈이 내 갈라디너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와 관련해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제가 힘이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셰프님. 이번만…….”
매번 혁신을 외치고, 어디 가나 존경을 받는 경영자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니 괜스레 내 마음도 미안해졌다.
기업가인지라, 거대한 자본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나 보다.
아무런 죄가 없는 그가 간절하게 사과를 하며 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놈이 내 요리를 먹는 것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저놈이 내 요리를 먹고 어떤 짓을 할지 뻔히 보이니까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패션쇼 현장에 차려진 갈라디너 주방, 밖을 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패션쇼에 초대된 사람들 중에서도 VVIP.
루이비통사가 진정 신선한 충격의 경험을 선보이고 싶은 사람들만을 모았다.
영국 왕실의 사람들도 몇몇 보였고, 패션에 관심이 있는 기업가들,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예!! 셰프!”
우리 셰프들의 대답 소리가 밖에도 들렸는지, 홀에서 환호 소리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셰프들의 엔돌핀을 돌게 하는 소리였다.
***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깔리더니, MC가 나와서 행사를 진행했다.
MC는 미슐랭 12스타를 가진, 제임스 하몬이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인사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두껍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이 행사장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곳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환호를 지르지 않고 작은 소리로 박수만 치는 것도 그랬다.
제임스는 여러 가지 인사말을 내뱉은 뒤에, 곧장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후우우웅!
그때, 이 갈라디너 현장의 주방으로 보였던 공간, 주방과 홀을 분리하고 있던 벽이 사라졌다.
조립식 벽을 행사진행 요원들이 빠르게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
그리고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셰프들을 중심으로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셰프들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우와아아아!
그 대열의 중심에 반유현이 있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아까 MC인 제임스 자신을 소개할 때의 점잖은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열을 갖춰 서 있는 셰프들 모두, 한 번쯤 방송이나 언론에서 비춰줬던 스타 셰프들, 더군다나 로또 육인방이라 불리는 저들은 반유현의 칼잡이라는 다른 별명으로도 불리며, 이 업계에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뭐야! 알베르 셰프님!”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알베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했다.
“카슬로 셰프님! 어? 저 셰프는…….”
라인업 자체로도 놀라는 사람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반유현은 고개를 한 번 더 숙인 뒤에 요리를 시작했다.
‘뭐야, 확실히 다른 건가.’
제임스는 반유현이 세계 3대 진미를 이용한 요리를 한다고 해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줄 알았다.
VVIP들 앞에서 선보이는 요리인지라,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것 말고, 세계 최강의 식재료를 세계 최고의 신선도를 살려 접시에 이쁘게 내놓아 호평을 받는 것이 그의 신상에도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반유현의 이름값은 그가 계란 노른자 위에 트러플을 올려놓아도 사람들은 박수를 쳐줄 정도였으니까.
‘대체 뭔데.’
그런데, 미슐랭 12스타를 가진 제임스가 보기엔 지금 주방을 움직이는 반유현과 셰프들의 몸 놀림은 그런 편안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의문점들이 제임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마침 주방에서 콜-벨이 울렸다.
띵!
약속된 대로 MC인 제임스는 메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캐비아를 품은 새우라는 메뉴입니다!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새우, 그리고 뵈르블랑 소스를 곁들여 새콤달콤한…….”
그런데 그때,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 사람들의 충격적이고 즐거운 표정들, 그리고 탄성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대본에 적힌 대로 메뉴에 대한 설명을 마저 끝내고, 자신의 앞으로 배달된 ‘캐비아를 품은 새우’를 입안에 넣었다.
“하.”
자신이 봤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 요리를 한 입 씹었을 때, 저절로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촉촉하고 통통한 새우의 살과 풍미는, 물에 데치거나 구워서 만들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 요리의 온도, 입안에 퍼지는 따뜻함은 반유현 셰프가 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졌다.
인간의 체온인 36.5도, 캐비아의 향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온도이기도 하다.
새우의 향과 풍미가 느껴질 때쯤, 캐비아 특유의 향이 입안을 덮쳤다.
‘뭐야.’
충격적이었던 것은 캐비아의 향이 완연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 번에 풍기는 것이 아닌, 씹을 때마다 달라지는 향.
‘설마.’
저도 모르게, 이 맛을 어떻게 냈는지 상상이 된다.
캐비아의 짠맛이 올라올 때쯤엔 뵈르블랑 소스가 그것을 중화시켜주었다.
그야말로 환상, 제임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재력으로나 명성으로나 이들에겐 캐비아라는 식재료가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을 건데, 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무 숟가락, 크래커, 계란 위에 올려 먹는 캐비아가 아니라, 진정한 캐비아 ‘요리’가 뭔지 알 수 있었다는 것.
띵!
그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주방에서 또 한 번의 벨이 울렸다.
“어, 어…… 다음은!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입니다!”
호우우우!
우와아아아!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언뜻언뜻 사람들의 욕심이 보이기도 했다.
다들 하이든 왕세자의 반유현 셰프를 갖고 싶다던 욕심이 이해가 된 탓인지, 그를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의 속마음은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세계 최대 부호가 돈으로 반유현 셰프를 얻는 것에 실패했다……. 그럼 어떤 걸 제시해야 되지.’
세계 최고의 VVIP들을 모아놓은 자리인지라,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랐다.
이 충격적인 경험을 이용할 비즈니스들이 무수히 많이 떠올랐던 것이 그렇다.
“반유현, 대단하군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