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뜨거운 열기 (6)
사실 가르쳐줄 게 뭐 있겠나.
그냥 요리를 압도적으로 잘하면, 주방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이다.
주방을 휘어잡으면 셰프들의 노력을 한곳에 뭉쳐 맛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것이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셔야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100년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대체했다.
뭐, 친절하게 가르쳐줄 필요도 없었고.
어쨌든 이 왕세자 놈이 나에게 81억을 던져서 꽤 많은 광고 효과를 얻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돈에 대한, 피고용인으로서 일을 해야 할 차례였다.
“뭐 먹고 싶냐. 81억 받았는데, 나도 일은 해야 할 것 아니냐. 빨리 끝내자.”
“어떤 음식이든, 가능하…… 해요?”
“어.”
돈밖에 없었는데, 그 돈이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상당히 조심스러워진 하이든이었다.
더군다나 미슐랭 7스타, 총주방장이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것을 알고는 저절로 겸손해졌다.
“치킨.”
“뭐? 닭요리?”
“아니요 치킨이요. 한국식 치킨.”
한류 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치맥이 유럽과 미국을 시작해 중동에도 퍼졌다는 얘기를 언제쯤 한번 들어봤었는데, 그 시점이 지금이었던 것 같다.
2021년, 대한민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동남아를 비롯해, 중동 진출을 대거 선언했던 것이 말이다.
그런데, 80억을 내고 치킨을 해달라는 놈은 또 처음이다.
“그 맛있는 음식을 반유현 셰프님이 하면 더 높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하이든이 먹어본 음식은 프렌차이즈에서 내놓은 치킨일 것이다.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지. 걔네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고.”
그런데, 치킨을 먹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이번 생에는 먹어본 적이 없었고, 저번 생에는 한국 여행차 왔다가 한번 먹어봤는데 어떤 맛인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그냥 튀긴 닭.
이들에게 최대한의 충격을 주려면 같은 맛의 범위 안에서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 그게 내 요리 충격요법의 첫 번째였다.
복숭아보다 ‘달콤한 과일’로 수박을 내미는 것보다 아예 꿀맛이 나는 복숭아를 내미는 방법.
“내가 치킨을 안 먹은 지 오래돼서, 비교할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때는, 정확히 1시간 뒤에 그의 수행원들이 이 두바이에 있는 모든 브랜드의 치킨을 사 왔다.
하나씩 입안에 넣으며 그 맛과 레시피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바삭한 치킨, 염지가 잘 안되어 잡내가 나는 치킨, 닭의 수분이 빠지며 튀김옷이 물러진 치킨, 닭의 살이 퍽퍽한 치킨, 맛은 없고 맵고 달기만 한 양념치킨…….
내가 맛을 볼 때에는 모두가 숨을 죽여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었나 보다. 내가 갈라디너에서 보여준 3대 진미 요리들이.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치킨을 사 왔다는 것은, 치킨에서도 그와 비슷한 충격을 느끼고 싶다는 듯한 바람이 묻어있는 듯했다.
“이 주방에 어떤 재료들이 있나 확인 좀 해줘.”
대충 레시피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 뒤에, 최민성과 헨리, 제리에게 말했다.
“확인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세계 모든 재료, 모든 향신료가 있으니까요.”
“확실해요?”
“예. 왕세자님께서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으신지라.”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나의 셰프들이 주방으로 가는 것을 멈췄다.
“다…… 됐어요?”
“음…… 지금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지만, 닭을 염지하고 숙성시키면 더 맛있는 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아침에 먹는 게 어때?”
“오……. 오케이.”
이놈이 밉상이든 말든, 80억을 쓴 놈이다.
내 맘을 흔들 수 있는 액수도 아니고, 어차피 기부하는 돈이라 나에게 큰 의미는 없지만, 쓰는 사람에겐 그 기분을 느끼게 해줘야 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지금은 보는 눈도 많고, 여기는 썩 괜찮아 보이는 고급인력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저놈도 그렇고, 미슐랭 쓰리스타 이상의 셰프들을 치킨으로 놀라게 하려면.’
그리고 이번 생 내내 내 요리는 항상 최고의 맛을 낼 생각이다.
***
염지.
고기에 소금을 쳐, 삼투현상을 이용해 수분을 빼고 보관을 용이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보관 방법이 치킨을 만들 때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닭의 수분에서 닭 특유의 잡내가 났어. 잡내가 전혀 없을 수 있는 닭튀김인데.”
그것도, 치킨을 만들 때에는 수분을 빼내면서 닭에 간을 할 수 있다.
“음? 셰프님, 무슨 치킨을 오늘 처음 드셔본 것처럼 말씀하세요?”
“오늘 처음 먹어봤어.”
“예에? 한국 사람이 무슨 치킨을 안 먹어봤어요?”
“가난했었으니까. 분식집 쪽방에 살았거든. 방송 안 봤어?”
“아…….”
염지를 하기 전에, 닭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관절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자른다. 중요한 것은 자르는 과정에서 닭 껍질이 붙어있는 형상을 조절하는 것이다.
“윙 부분은 전체가 껍질로 싸여있어. 새로운 치킨의 맛을 원했으니까. 이 껍질을 있는 듯 없는 듯 덜어낸다.”
닭 다리, 닭 날개, 닭가슴살 등 닭의 각 부위는 구조상 손질을 할 때 껍질이 말려 떨어지는 부위가 있고, 견고하게 붙어있는 부위가 있다.
당연히 나는 이것마저도 맛을 내는 것에 이용한다.
“닭 한 마리를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닭에 붙어있는 뼈.
뼈의 두께, 그것마저도 맛을 내는 것에 이용했다.
여러 마리 준비된 닭에서 각각 부위별 맞는 뼈를 취합해 닭 한 마리를 만들었다.
“끔찍합니다.”
“뭐가.”
“맛을 내는 방법이요.”
부위마다 뼈의 굵기가 다르고 살의 결도 다르기에, 튀기는 시간과 튀김옷을 각각 달리해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
그 뼈의 굵기와 살의 양이 가장 적절한 비율로 묶여 있는 닭의 부위를 조합했다.
“오늘 처음 드셔보신 것 같습니까?”
“어.”
“진짜 끔찍하다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주방에는 나를 따라온 셰프들만이 들어오게 했다.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 없이 밖에 있는 이들을 모두 맛으로 죽여 버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끔찍하다는 제리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올리브유, 맛술, 생강, 다진 마늘, 후춧가루, 그리고 내가 파리에서 직접 만들어 놓은 몇 가지 조미료와 향신료를 투하한 후, 각 부위의 조합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닭(?) 한 마리를 버무렸다.
그다음 진공포장 한 뒤, 냉장 숙성을 시켜두었다.
“소스.”
소스는 총 여덟 가지를 준비했다.
갈라디너에서 선보인 뵈르블랑, 레몬폰즈 소스부터…… 아까 전 먹었던 어떤 브랜드의 마늘 간장 소스, 양념 소스에 나만의 맛을 더해서.
“보초는 우리 경호원들 시켜서 한 명씩 서라고 해.”
내 레시피가 궁금한 셰프들이 이 주방에 들어와 진공포장을 열어보고 소스의 맛을 보면 맛이 달라질 터였다.
주방에 경계병을 세워두고, 우리는 하이든 왕세자가 배정해 준 방으로 올라갔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자존심이 있을 텐데……. 레시피를 훔쳐보러 주방에 들어온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구십 프로의 확률로.”
“하기야, 셰프님께서 최강의 맛을 보여준다고 하셨으니 저도 기대가 됩니다.”
***
하이든이 배정해 준 방은 대저택의 한 공간에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였다.
손님들이 머무를 때 쓰는 방인 것 같은데.
호텔보다 호화로운 가구들과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수영장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몸을 녹였다.
“죽여주네요 셰프님. 덕분에 저희가 이런 호사도 누리고…….”
“고생했다 다들. 올해 미슐랭 평가만 잘 해내자.”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나 스스로 나도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병처럼, 일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다 백 대표님.’
미슐랭 평가 기간이 시작되기 전, 백원종의 인프라를 이용해 한국에 레스토랑을 추진하려 했었다.
이번 평가 기간에 마지막으로 런칭될 레스토랑.
반유현 팩토리는 다시 인원을 재정비하는 중이었고, 그를 따르는 실력 있는 셰프들도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니 내가 현재 레스토랑을 늘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백원종이었다.
이전에 전화를 하다가 끊은 기억이 있어,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예, 백 대표님.”
-어어어, 대표님 하지 말라니까. 그냥 원종이라고 불러유.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 인사를 받아 든 백원종이다.
“서울에, 자리 좋은 곳에 레스토랑을 하나 더 추진하고 싶은데요. 셰프들 좀 지원해주시죠.”
-에에? 런던에 레스토랑 런칭한 지 얼마나 됐다고.
“예, 그래서 셰프가 부족합니다.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했어도, 제가 나아가는 속도가 더 빠르네요.”
-하이고……. 어떤 요리로?
내가 맨 처음 이 몸으로 환생했을 때, 백원종은 우리 분식집의 메뉴를 줄이라고 했었다.
그는 단순하게 가장 높은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내가 마구잡이로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을 보니, 그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네야 뭐…… 유일하게 내가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이지만, 생각해둔 메뉴가 있나? 우리 회사 측 셰프는 다들 바쁘고 최대한, 최대한 끌어모으면, 5명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메뉴 다 구성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랑, 셰프만 모아주십시오. 대표님. 미슐랭 평가 기간 전에 한국에 한 번 들어가서 ‘반유현-펌킨’ 점검 좀 할 때, 런칭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려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
다만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본 적 없어,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자, 헨리가 말했다.
“셰프님, 너무 일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건강도 챙기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동이 울려왔다.
“예, 반유현입니다.”
-네, 셰프님. 와…… 81억이라는 숫자에 놀랐습니다.
“네, 뭐. 저도 놀랐으니까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번 전화는 로만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일러두신, 반유현 골목 조성 사업 중, 식료품 매장 사업이요. 그 공장 부지랑 매장 점포 계약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반유현 골목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건물을 계약했구요. 이제 공장에서 찍어낼 반유현 셰프님의 천연 조미료 레시피를 저희가…….
“계약한 장소와 그 건물주가 누군지, 메일로 보내주시고요. 파리 들어갈 때쯤 연락드릴 테니, 그때 맞춰 회의를 주재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일들이 척척 진행되어 가고 있지만.
모든 통제를 내가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만, 기대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문제가 생기는 법.
내가 별 탈 없이 지금까지 빠르게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을 내 손안에 넣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그리고 지금 울리는 이 수화기도 내가 모든 일을 나의 통제하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호원 톰입니다. 셰프들이 주방에 진입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흠. 치킨이 숙성되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주방도 아니고, 그들을 막기가 애매하네요. 제가 직접 내려가겠습니다.”
그들이 가진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약 30개라는 셰프들이, 나의 레시피가 그렇게 궁금했나 보다.
“이야……. 셰프로서의 금기 아닙니까? 남의 주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셰프님께서 직접 내려가시면 많이들 창피하시겠네요.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