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97
97화. 가장 바쁜 시기 (2)
“대표님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짜……. 저 한 번만 도와주십쇼.”
“그게 내 의사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유 이 양반아. 몸값 80억짜리 셰프를 참내,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어? 허허.”
“대표님께서 반유현 셰프를 처음 요리계로 들였으니, 사제지간에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스타들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로 옮겨 그 안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를 만드는 프로.
JJBC 사의 냉장고를 열어라. 그 방송 프로그램의 PD가 백원종의 양팔을 붙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번 시청률 안 터지면, 저 국장실 불려가서 깨집니다……. 그 유명한 아이돌 Z-드래곤이 와도 못 터트린 시청률……. 유일하게 반유현 셰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침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고.”
“그래, 상황은 이해한다만.”
백원종도 그를 돕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라’의 메인 PD이자 예능국의 부국장인 이원성 PD가 자신을 맨 처음으로 방송계에 입문시켜준 PD였기 때문이다.
“거, PD님의 부탁이니 나도 도와드리고 싶지유 당연히.”
“네, 대표님 저도 어려운 부탁인 걸 알지만요……. 신경 좀 써 주십시오.”
“유현이가 과연 제 말을 들어 줄지는 모르겠네유. 워낙 자신의 일에 관련이 없거나,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든요.”
“예……. 말만 전해주시죠.”
이원성 PD도 반유현을 직접 섭외하려 했지만, 애초에 자신의 말이 전달되는지도 의문이었다.
‘반유현팀’ 이라는 그의 의전과 스케줄을 관할하는 부서에 메일을 아무리 보내도 답장은커녕 읽었다는 표시도 없었다.
하기야, 전 세계 모든 요리 프로들이 그를 섭외하고 싶어 할 테니, 이해는 되지만…….
“지금 또 유현이가 바쁜 시기라 방송 섭외 메일은 아예 확인도 안 하고 있나벼.”
“후…….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대표님. 반유현 셰프가 섭외되면 제가 진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뭐든 하라는 것 다 하겠습니다.”
“하하 뭐, 그렇게까지……. 흠, 말은 한 번 해볼게요.”
***
총 여섯 명의 셰프를 백원종이 보냈다.
그래서 ‘반유현-펌킨’에 원래 근무하던 셰프들과 합쳐 총 열다섯 명의 셰프가 주방에 있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나?”
내가 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지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홀에 있던 사람들은 요리를 먹다 말고 주방 쪽으로 와서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레스토랑 장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이다. 맛을 보러온 손님들이 온전히 맛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으니까.
“저희 본사 내에 있는 조리실도 현재, 직원들이 레시피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음,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할 그곳도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곳은 강남역 인근의 매장이었다.
현재 그곳의 내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그곳에서도 셰프들의 실력을 보고, 메뉴를 가르치며 런칭 이전에 해야 할 교육들을 할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어떤 주방을 가도, 나의 존재가 그 업소의 장사에 영향을 미치기란 마찬가지였다.
“백원종 대표님이 준비해둔 장소가 없다는 말인가요?”
“네……. 원래, 반유현 셰프님께서 한국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이 끝나면 이곳을 사용하려 했던 것이라…….”
시간이 문제였다.
내가 계획보다 빨리 도착해 버렸기에, 백원종 측에서도 미리 장소를 섭외하지 못했던 것.
“음. 골치 아프네.”
내 말에 반유현팀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그때, 백원종에게 전화가 왔다.
“예, 대표님.”
-아니, 왜 이렇게 빨리 왔어유.
“가까운 시간에 비행기 표가 있어서 바로 타고 왔습니다. 급하기도 하고요.”
-셰프들 교육할 만한 장소가 없겠네? 거기 마감까지 6시간 남았잖아. 6시간 동안 쉬고 있을래유?
“흠. 마땅한 장소가 없을까요? 그냥 가만히 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라서요.”
-아, 하긴 일정이 너무 빠듯한데. 6시간은 무린감?
백원종도 내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소를 이리저리 찾고 있었나 보다.
그때, 백원종이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아! 방법이 있네유.
“어디요?”
***
JJBC 냉장고를 열어라 세트장.
가운데에 조리대가 두 개 놓여 있고, 셰프들이 그를 중심으로 쫙 앉아 있을 수 있는 형태였다.
모든 주방집기들까지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어 아마 지금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장소를 어떻게 섭외했습니까?”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방송국의 특성상 일반인들이 몰릴 수도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모여 있긴 있다만 저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이 방송국에 출입이 허가된 직원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나가주시죠.”
방송국 PD와 작가들, 또는 연예인의 매니저들이 이 세트장 앞에 몰려있던 것.
‘반유현-펌킨’에 갔을 때도 그랬고, 이태원 거리도 그랬고, 내 생각보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듯했다.
연예인을 밥 먹듯이 보는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찍어대고 있는 것을 보면.
“저희 셰프들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이제 나가주시죠.”
“워이워이! 나가 주세요.”
그런데, 백원종과 내가 아무리 말해도 저들이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그나마 통제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서로 웃고 떠들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척하더니 다시 돌아온다.
성질(?) 같아서는 욕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빌려 쓰는 입장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자자자! 나가 주세유.”
백원종은 계속 사람 좋은 소리를 하면서 부탁하는 상황.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사진이라도 한 장씩 찍어 주고 보내려는데, 중년의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야. 너희들 다 뭐해. 일없어? 안 바빠?”
이 방송국에서 꽤나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내였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아,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죄송합니다. 더 좋은 장소를 물색하려 했는데 다들 촬영 중이라서요.”
명함을 내밀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
-JJBC 예능국 부국장, 냉장고를 열어라 PD. 이원성.
90도 이상 허리를 굽혀 임금에게 인사를 하듯이 나에게 예를 갖췄다.
“팬입니다 반유현 셰프님.”
명함을 보니, 나에게 왜 극진한 대우를 해주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 백원종 대표님이랑 잘 아는 사이신가요?”
내 옆의 백원종을 보니 살금살금 눈치를 보는 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것 같고.
일단, 레스토랑 런칭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교육장을 얻었네요.”
“그래, 그래, 이 PD 일단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있으니까, 이따 봐. 여기 반 셰프가 일정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유.”
“아,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도와드리겠…….”
“얼른 나가봐!”
이원성이 세트장을 나가고 나는 교육을 시작했다.
***
PD, 작가, 카메라, 조명 스탭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재료를 옮겨주고 있었다.
“저래도 되는 겁니까?”
“자네한테 저렇듯 눈도장을 찍고 싶다는데 어떡해.”
오늘 메뉴를 구성하고 그 메뉴에 대해서 교육을 하기 위해 공수한 식재료들이었다.
각종 조미료와 채소, 고기 등 적지 않은 양이었기에, 셰프들이 여러 번 움직여서 이곳까지 옮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방송국의 직원들은 나를 돕는 데 자신들이 쓰이길 바란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였다.
방송국에 취직하고 배추와 닭고기를 나를 줄 알았을까. 아무튼, 저들의 마음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모든 식재료가 옮겨졌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만두입니다.”
“네?”
나의 첫 발언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놀랐다.
다짜고짜 만두라는 단어를 꺼내니, 백원종도 나에게 물었다.
“마, 만두라니?”
“새롭게 런칭 할 레스토랑에 어떤 메뉴를 구성했는지 가장 궁금해하셨을 것 아닙니까?”
“그, 그건 그런디.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니까.”
“한국에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주메뉴이자, 코스를 구성할 메인 테마는 만두입니다.”
원래 말에 이것저것 살을 붙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나.
내 방식대로 나의 생각을 줄줄이 말했다.
“대단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안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만두피는 그 만두가 줄 맛에 호기심을 갖게 하고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기대보다 더, 또는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맛을 내었을 때의 신선한 경험은 고객들이 이 요리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잠재력이 대단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일단 만두피 속 안을 어떤 재료로 채우느냐에 따라 셀 수 없이 무한한 메뉴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다양하기 때문에 맛 또한 강력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죠.”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힝깔리,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수많은 나라에 자신들의 문화를 곁들인 만두가 있듯이, 의도한 맛을 위한 변형에, 만두는 한계가 없었다.
“튀기고, 삶고, 찌고, 끓이고…… 맛을 변주하는 것도 가능하구요.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만두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요.”
레스토랑의 메뉴를 만두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여러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했지만.
사실은 만두가 낼 수 있는 맛에 대한 잠재력을 중점으로 두고 선택한 것이었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어떤 만두를 할 건지 보여드리고,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더 길게 이어가는 것이 귀찮아, 맛을 보여주기로 했다.
조리대 위에 놓인 통돼지 한 마리.
내장이 손질되 어있는 돼지로, 이놈을 옮기느라 직원들과 셰프들이 힘을 꽤나 썼다.
“고기의 어떤 부위가, 어떤 양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맛은 다르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셰프들은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왜 했을까라는 표정.
“그 양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럴 수 있다면 당연한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통돼지의 엉덩잇살을 도려냈고, 지방과 단백질이 있는 부위를 각각 잘라 원하는 양만큼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소고기 우둔살을 도마 위에 함께 넣고 다지기 시작했다.
어떤 만두는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을 만두소의 재료로 사용했고, 어떤 만두는 만두소에 두부를 넣고, 당면을 넣으며 또 어떤 만두는 그것들을 넣지 않는다.
“중간에 궁금한 점 있으면 말하세요. 여기 있는 셰프들도 이 요리를 숙달해야 하니까.”
“이야! 80억짜리 셰프에게 질문을 할 시간도 있네. 하하하! 여기 있는 셰프들 15억씩 모아서 내야겠네.”
나는 계속해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백원종은 옆에서 나의 말에 조미료를 첨가했다.
매우 기대가 된다는 표정, 그의 눈웃음이 그것을 말해줬다.
“돼지 잡내를 잡는 것에 와인이나 맛술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유자청, 매실청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만두피에는 어떤 전분이 들어가나요?”
“만두소 내의 두부는 어떤 의도를…….”
열정을 보니까, 백원종이 꽤나 괜찮은 셰프들을 모아 놓은 듯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여러분은 그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구요. 지금 제가 하는 요리와 질문의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초록창에 검색해도 알 수 있을 만한 질문 말고, 조금 더 신선한 질문 없습니까?”
셰프들은 순간 경직되어 버렸고, 백원종은 그저 ‘허허…….’하며 웃고 있었다.
“그래요. 아직 이 만두가 세계 최고의 만두라는 걸 보여주지 못했으니, 제 잘못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딱 1시간 뒤에 다시 말씀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