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
001. 프롤로그
“최 병장.”
“네, 통제관님. 이 트럭이 마지막입니다.”
태영은 통제관인 이한정 원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즉시 대답했다.
태영이 관리하고 있는 개인 화기와 지원 화기들 중에서 경화기들은 이 트럭이 마지막이라는 의미이지만, 앞뒤 다 자르고 보고해도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모두 알아듣는다.
어차피 중화기류는 다른 관리자가 있고, 그쪽에 가서 점검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태영의 관리 영역이 아니니까, 이 트럭이 마지막이 맞다.
이한정의 옆에는 고원국 대위가 함께 있었고, 고원국 역시 태영을 쳐다보았다.
“오케이 문 잠그도록.”
트레일러트럭 안에 실린 컨테이너의 적재 목록을 이한정 원사와 함께 일일이 대조했던 고원국 대위의 지시에 따라 태영은 트레일러에 실린 컨테이너의 화물칸을 닫고 레버를 돌려서 걸고는 자물쇠를 채웠다.
3개의 자물쇠가 모두 채워지자 고원국이 붉은색 인장이 찍힌 비표를 부착했다.
문이 열리면 비표가 찢어지도록 되어 있고, 아무리 조심해서 떼어 낸다 해도 찢어지도록 되어 있어 도착지에 가서 확인하면, 이동 중에 문이 열렸는지 아닌지 알 수 있도록 된 비표이다.
물론 단단히 잠그고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을 가기에, 군용 무기인 데다 중무장한 호위대가 따라가는데, 이것을 탈취하려는 간 큰 놈들은 없을 것이다.
지휘부에서도 그러한 사실은 당연히 알 것이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만전을 기하는 것이리라.
“수고했어.”
고원국이 태영에게 짧게 말하면서 돌아섰다.
“탑승하고 출발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이한정의 말에 태영은 대답을 하고 돌아섰다.
오늘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후임인 김정표가 트럭의 뒤쪽에서 돌아 나오고 있었다.
“김 일병, 리스트 가져와라.”
“네, 최 병장님.”
빠닥빠닥 소리가 나도록 기합이 들어간 대답과 함께 후임인 김정표 일병이 종이에 프린트된 간단한 리스트를 넣은 받침을 태영에게 넘겼다.
해는 이미 떨어져 사위가 어두운 탓에 태영은 헬멧에 붙어 있는 작은 라이트를 켜고 리스트에 체크된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 일병, 12호차에 타라.”
“넵. 최 병장님.”
태영은 김정표의 대답을 뒤로하고 헬멧에 붙어서 켜진 소형 헤더 랜턴을 끄면서 혹시 빠트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태영이 고원국과 이한정 쪽을 쳐다보자 그 맞은편 어둠 속에서 자동차 헤더라이터의 불빛에 경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이번 수송 작전의 책임자인 박재천 대령일 것이다.
태영이 2년간의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대형의 무기 수송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다.
이런 일이 군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사단 본부가 이전을 하게 되어서 무기고 역시도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개인 화기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 태영이 함께하게 되었다.
중화기는 태영의 담당이 아니기에 그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수송 작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중화기와 중화기 탄약들을 탑 차에 싣고 있는 모습을 얼핏 보았지만, 자신의 일도 바쁜데 살펴볼 틈은 없었다.
이번 이전 수송 작전에 투입된 트레일러와 대형 탑 차만 무려 26대에 이른다.
컨테이너는 민간에서 사용하는 컨테이너와는 완전히 다른, 특수 제작된 컨테이너라고 들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컨테이너와 어떤 차이가 나는지는 몰라도 무기와 탄약을 실은 이 컨테이너는 방탄은 아니더라도 완전 방수가 된다고 했다.
태영이 있는 사단에 트럭형 탑 차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수송 부대나 예하 부대의 탑 차를 지원받고, 민간에서 트레일러 차량을 임대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그래서 각 차량의 고유 번호 외에 임시 번호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최 병장님이 마지막까지 고생을 하네요.”
트럭의 조수석 문을 닫고 앉자마자 김정표가 말했다.
“그래. 마지막까지 고생을 시키네.”
“전역이 한 달도 안 남았잖아요?”
“29일 남았다.”
“그 정도 남았으면, 이젠 모든 것에서 열외 아닌가요?”
“맞지. 그렇지만, 지지리도 운이 없어서 이번 작전까지 마무리를 해야 전역이 될 모양이다.”
“며칠 후부터 마지막 휴가인데, 마지막 휴가는 가시는 거죠?”
“그거야 가야지. 그건 규정인데.”
김정표는 태영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스물넷이다.
한 살 정도의 차이이기에 사회에서 만났으면 형이라고 불렀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군에서는 태영이 선임이어서, 말 그대로 군대는 짬밥 순이기에 생긴 현상이다.
그때, 휴대형 무전기에서 이한정 원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모든 트럭들이 시동을 걸고 있었지만, 이한정 원사의 목소리에 다들 액셀을 한 번씩 깊게 밟아 주는지 유난히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출발 신호에 맞춰서 차량마다 출발을 알리는 짤막한 보고가 무전기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앞차의 출발 보고를 들은 태영이 12호차의 출발 보고를 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운전병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차는 출발했다.
뒤이어 뒤쪽의 차량으로부터 출발 보고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고 26호차가 자신이 끝이라는 보고를 했다.
26대의 트럭에서 보고가 끝나고도 무전기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는데, 아마 호위 병력을 태운 차량에서 무전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호위 병력의 무전은 비화기를 통해서 흘러나와 비화기가 장착되지 않은 태영의 무전기에서는 이상한 소리만 들렸지만, 아마도 호위 병력을 태운 트럭이 10대는 되는 것 같은데, 호로를 친 트럭에 완전 무장을 한 채로 탑승해 있을 것이다.
작전이 작전인 만큼, 태영과 정표도 기관단총과 방탄복을 지급받았고, 헬멧을 착용한 상태였다.
태영이 부대에서 지급받은 개인 화기는 K2C인데, 그것은 수송 트럭에 들어갔고, 임시로 K1A를 지급받았다.
자신의 소총을 두고 새로이 지급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개머리판을 집어넣으면 길이도 짧고, 무게도 조금 가벼워서 행정 일을 하면서 무기를 소지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트럭이 위병소를 통과하자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정표를 쳐다보니 긴장한 기색이 얼굴에 어려 있다.
이런 일이 늘 있는 일이 아닌 데다 완전 무장 상태인지라 긴장이 될 만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병장쯤 되면 많이 달라진다.
군 생활의 막바지이니 긴장할 일도 별로 없고, 요령도 늘 만큼 늘어서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경험이 쌓여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좋게 말하면 요령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긴장돼?”
“네? 네. 조금요.”
태영의 질문에 정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비가 오네.”
부대를 떠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트럭 유리창에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맞다. 일기 예보를 들은 고원국 대위가 이번에는 기상대의 예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틀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네, 기상대의 일기 예보가 맞을 것 같습니다.”
김정표도 고원국 대위의 말이 기억났던 모양이다.
“아, 정말. 맞으라고 할 때는 잘 틀리더니, 정작 틀렸으면 좋은 이때는 왜 맞히는 거야.”
“흠.”
태영의 투덜거리는 중얼거림에 운전병이 헛기침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거세지고 빗속을 뚫고 이동하는 동안 운전병도, 정표도 입을 다물고 조용했다.
하긴 부대 내부도 아니고 작전 중인데 종알종알 말하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태영 역시도 조용한 상태가 좋았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속을 뚫고 달리는 차 안, 사위는 고요하고 오로지 천장을 두드리며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와 자동차의 소음만이 귓속을 지속적으로 파고들었다.
비록 트럭이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길을 달리며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아련한 추억 한 조각이라도 떠오를 만하지만, 이런 작전 중에 그런 생각은 위험한 사치이리라.
“우비, 입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적막을 깨고 김정표가 물었다.
“내릴 때 입자. 차 안에서 우비 입으면 땀투성이가 돼.”
비가 온다고 한 일기 예보 때문에 우비는 트럭에 실어 둔 상태다.
도착할 때까지 차에서 내릴 일은 없겠지만, 미리 입고 싶지는 않아도 초봄이라서 이렇게 많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 아무래도 감기가 들 것이니 내릴 때에는 입어 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산길로 접어들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내려앉았고 멀리 민가의 불빛은 아스라하게 보인다.
비는 점점 더 강하게 내리고, 트럭 운전석의 천장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귓가를 때리는데 앞선 트럭의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왔다.
무전기에서 이한정 원사의 목소리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들려왔다.
수송단을 호위하는 병력은 그 말에 트럭에서 내려 경계를 서게 될 것이지만, 태영과 정표는 내릴 필요가 없었다.
“우린 안 내려도 됩니까?”
“응, 우린 가만있으면 돼.”
꽈광~!
제법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졌는지 번갯불이 눈을 어지럽혔고, 곧이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어둠도 어둠이지만 전방에는 앞선 트럭이 막고 있고, 우측의 유리창에 어린 빗물로 인해 손으로 문질러 유리에 낀 김을 닦아 내도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분쯤 시간이 지나자 궁금증이 일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내려가 보기도 꺼려졌고, 통제관으로부터 아무런 명령이 없기에 차에서 내리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가만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미는데 머리 위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지지지직~
위이잉~
파바바박~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비까지 내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번갯불 같은 것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회오리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낚싯대에 매달린 낚싯줄이 뻗어나가듯 내리꽂혔고, 그 중의 한 가닥이 태영의 머리에 작렬했다.
“컥.”
마치 감전된 듯한 느낌과 몸속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몸이 부웅 뜨는 듯한 느낌, 아니 하늘을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는데,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닌 불쾌한 느낌이 몸에 화악 닿았다.
그리고 암전.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전역을 한 달 남기고, 군인으로서는 마지막 미션인 부대의 병기고를 이전하던 최태영 병장.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역사 속, 고려 시대로 떨어지게 된다.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이 지니고 있던 K1A 기관단총과 몇 개의 탄창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병기고를 이전하기 위해 무기를 싣고 있던 많은 트럭 중에 몇 대가 자신과 함께 날아왔다.
마을을 찾아서 내려가다가 마주친, 전투 중인 왜구와 관군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평행 세계의 고려에서 좌충우돌하는 말년 병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이 소설, 1217 고려 3군단은 역사 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 속에 내던져진, 전역을 한 달 남겨 둔 말년 병장이 전역을 하지 못한 채, 고려 땅의 역사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역사에 대한 고증은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언제나 부족하고 또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증이 충분치 못한 부분이 분명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이니 역사적 고증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너무 대입하지 마시고, 그냥 소설로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집어삼켰던 일본.
그 일본이 중국 땅도 꽤 많이 집어먹은 후에, 꽤 괜찮은 맛이었던지 이 정도면 세계의 일부를 먹어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전역을 먹기 위해 미국이 차지하고 있던, 석유가 묻혀 있는 남아시아의 지역 일부까지 먹어서 더욱더 세력을 넓히기 위해,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게 덤볐다가 곧바로 작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이미 먹어 치웠던 중국과 우리나라까지 토해 내었지만, 세월이 그다지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잽싸게 미국에 붙어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미국의 손길에 감지덕지하는 원숭이 새끼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린, 그 일본을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왜곡과 날조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경제 보복도 서슴지 않습니다.
중국은, 한때 같이 일본에게 먹혔던 기억으로 동지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착각이고, 중국에서는 우리를 자기들 나라의 변방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현재의 지식과 무기를 통째로 들고, 1개 중대나 1개 대대쯤 고려 시대나 삼국 시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모조리 두들겨 패고, 꼼짝 못 하게 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닌, 조금은 힘주고 사는 우리 땅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꽤 여러 번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된다면 얼마나 신날까?
그 힘 그대로 수백 년이 지나서, 오늘날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가능하다면 미국에까지 너희들 까불지 말라며 은근이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안 될까?
소설 속에서라도 그러면 안 되나?
그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기분으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 뜨락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