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03
103. 왜국의 사신단(2)
인구를 자꾸 늘리다 보니, 식량 문제가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렇게 식량이 많이 확보되면 걱정이 없다.
시대가 시대이니, 어차피 냉장창고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그러면 보존 기간이 짧아진다. 그러니, 식량이 넘치더라도 고급은 사람들을 먹이는데 쓰고, 조금 저급한 것들은 농장에 보내서 동물 사료로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그리고, 다른 건물 한곳은 병참 창고인 듯, 온갖 무기와 군복, 그리고 수천 필의 옷감이 쌓여 있습니다.”
김중겸은 종이 한 장을 넘겼다.
“그리고 창고 한곳은 건어물을 저장하는 곳인데, 말린 생선과 해조류가 창고에 반쯤 차 있습니다.”
허, 지금 보고받은 내용만 하더라도 와카마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말 물자가 넘치는 것 같다. 이놈들이 전쟁 준비라도 하는 것인가 싶다.
“마지막 창고는 비었습니다. 창고 뒤에는 왜병의 식용으로 도축하기 위한 짐승으로 생각되는 소와 돼지들을 가두어 둔 곳이 있는데, 규모가 상당합니다.”
“도축용?”
“네, 짐승들을 가두어 둔 곳 옆에 도축장이 있고, 어제 도축한 듯한 소와 돼지가 해체되어 걸려 있습니다.”
그래?
사포의 병사들에게 푸짐하게 먹이면 되겠군.
아무래도 진영이 크니까, 그리고 대외 교역 항이다 보니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이 지역의 총본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많은 물자가 보관되어 있다.
역시, 추수가 끝난 뒤에 조세가 걷힌 이후일 거라 생각한 시기여서 그런지 모든 것이 넘치도록 많다.
그나저나 곡물이 해룡호 5대분 정도가 된다면, 건어물은 몇 번에 걸쳐 옮길 수 있을지, 무기와 의복은 또 얼마나 많은 양이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뒤쪽에 다섯 칸 정도의 큰 감옥이 있는데, 거기에 백 명 정도가 갇혀 있습니다. 그놈들은 그대로 가두어 두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 명을 대기시켰습니다.”
“흠. 잠시 후 둘러보자고. 혹시 우리 지휘부로 쓸 만한 곳이 있나?”
“네, 좌측 첫 건물이 이들의 지휘부였던 것 같은데, 지휘부로 쓰기에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저곳을 지휘부로 사용하기로 하고, 먼저 가 보자고.”
태영의 말에 김중겸이 중대원들에게 비단옷의 왜인들을 포박하라고 지시하고 앞서 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로비 형으로 만들어져 백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고, 큰 탁자에 의자가 나열된 숫자만 해도 50개는 되어 보인다.
물론 지붕을 떠받치기 위해 사이사이에 기둥이 어지럽게 서 있었지만, 그거야 목재로 된 가옥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 외에도 탁자와 의자들이 이곳저곳에 제법 배치되어 있었다.
그 넓은 로비 공간의 옆쪽으로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어떤 곳은 임시로 사람을 가두어 두는 유치장 같은 역할을 하는 곳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쪽의 미닫이문을 열어 보니 그곳은 다다미가 깔려 있고 서가도 있는데, 제법 여러 권의 책들이 꽂혀 있다.
이렇게 큰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방들을 만들어 둔 구조는 조금 특이했다. 가정용 건물이 아닌, 군막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곳을 나와 창고들을 둘러보니 보고한 것처럼 정말 많은 곡식들이 나 좀 데려가라는 듯이 쌓여 있다.
도축장까지 둘러보고 감옥으로 이동하자, 튼튼해 보이는 나무로 지어진 큰 건물 안이 여러 칸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넓은 판자로 잘 이어진 구조가 아니라, 사람의 손가락이 충분히 지나다닐 만큼의 틈이 있어, 바깥이나 감옥 안이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
그곳에 짚을 깔고 죄수들이 모여 앉아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인데, 그 상태에서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죄수들에 대한 대우는 고려보다 더욱더 극심한 모양이었다.
“대장님 포로 인원 점검 끝났습니다.”
감옥을 나와 연병장에 도착하자 김처인의 보고이다.
“그래 몇 명인가?”
“우선, 민간인 고위직으로 보이는 22명, 역시 민간인 하급직 51명, 젊은 여인들이 이상하게도 49명이나 됩니다. 거기에 애들이 남녀 합쳐서 17명, 왜군의 지휘관 급이 86명에 왜병들이 328명, 그리고 하인과 노비로 보이는 사람이 62명입니다.”
“사망자는?”
“692명입니다.”
“이쪽은 포격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망자가 생각 외로 많네?”
“네, 우리들이 이쪽으로 들어올 때 왜병들이 마구잡이로 덤볐는데, 그로 인해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음, 그러네. 그런데, 이곳의 건물과 연병장 크기로 봤을 때 주둔한 왜병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이상하긴 합니다만, 아직 이유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알았어. 이놈을 포함해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들은 모두 기둥에 묶어.”
역시 이곳의 연병장에도 와카마쓰처럼 연병장에 훈련을 위한 나무 기둥들이 줄줄이 박혀 있어서 그렇게 지시를 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영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왜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모두를 두셋씩 기둥에 묶었다.
그때, 연병장 한쪽으로 많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대대장님 오십니다.”
병사의 목소리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니, 김웅겸과 곽병선이 앞장서고 그 뒤쪽으로 족히 오백은 넘을 듯한 왜병들이 줄지어 오리걸음으로 들어오고 있고, 그 옆쪽으로는 사포의 병사들이 총을 옆구리에 받쳐서 이들을 겨눈 상태로 인솔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리걸음을 오래 하면 꽤나 운동을 한 사람도 근육이 뭉쳐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니, 포로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데 꽤나 효과적이다.
김웅겸이 데리고 오는 포로들은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도 하고, 태영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머리에는 김이 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오리걸음이 힘든 운동이긴 하다.
그것도 잠깐 걸어온 것이 아니라 꽤나 먼 길을 이동했을 테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 뒤로는 무기들을 가득 실은 수레가 함께 따라왔다.
수색하면서 생존자들의 무기는 모두 압수하고, 사망한 왜병들의 무기는 수거해서 수레에 싣고 오고 있다.
수레를 끌고 밀고 하는 것은 왜병들이었는데, 모두 두 손이 묶여서 수레의 손잡이에 함께 묶여 있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무기가 실린 수레는 표시가 나는데, 그 외에도 나무로 만든 커다란 상자가 꽤 많이 실려 있는 수레가 뒤따라 들어왔다. 그렇게 들어온 수레는 거의 스물이 넘을 정도였다.
또 다른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3중대가 오고 있습니다.”
신도익과 3중대 병사들이 두 줄로 도열하여 연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충성! 3중대, 해안의 병선 수색을 완료하고 무사 귀환했습니다.”
신도익이 경례를 했다.
“우리 측의 사상자는?”
“신병 두 명이 팔에 칼을 맞아서 다쳤습니다만, 가벼운 상처입니다. 사망자 없습니다.”
“그쪽 상황은 어때?”
“병선 95척에 포로 211명, 그곳에 있는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망자는 수장된 왜군이 많아서 파악이 불가능했습니다.”
“수고했다. 병사들 다치거나 사망자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1구역은 모두 수색했고, 중식을 한 뒤에 2구역과 3구역을 진행하겠습니다.”
신도익이 대답을 마치자마자 김웅겸이 계획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공격 지점을 5개 구역으로 모두 나눌 때 수색 지역도 그렇게 구분했다.
“그래, 일단 오늘 해 넘어가기 전에 기본 수색은 모두 마쳐야 하니까 교대로 식사를 한 후 나머지 수색을 하자고. 여기 4중대도 수색에 참여시키도록 해.”
“여기 방어 병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개 소대만 남기면 될 것 같아. 비서실 병력도 보강이 되었으니.”
“알겠습니다.”
비록 패잔병들이지만, 그들이 혼란한 상황에서 벗어나 조직화하여 대항하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한다.
특히, 지휘관들을 모조리 포박해 버려야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위험이 사라진다.
“중대장, 누구 시켜서 의자 몇 개 좀 구해 와.”
태영의 말에 김중겸이 병사를 향해 의자를 구해 오라고 소리치는데, 한쪽에서 수레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여러 사람이 수군 병사의 지휘들 받으면서 식사를 위한 수레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김밥이었다.
이 시대에 김밥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이지만, 태영은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기에 값싼 야채 김밥이나 삼각 김밥을 아주 즐겨 먹었었다.
그것이 기억나서, 이렇게 전투 중에 간단하게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김밥이 제격일 것이라,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만들라고 시켰던 것이다.
김밥을 자주 먹던 대학 시절에, 대체 김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싶어서 구글링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미 서기 1천 년경부터 김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했다.
이번 원정이 겨울에 접어드는 계절이라 김을 채취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지기에, 약간의 식량과 은자를 준비하여 하동과 순천 지방으로 배를 보내서, 김을 사 오도록 하여 사포에서 말린 것이다.
아마도 해룡호 주방에서는 저 김밥을 싸느라 새벽부터 꽤나 부지런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김밥을 한 덩어리씩 받아 든 병사들이 이것을 받고는 갸우뚱했다.
그러다가 취사병 한 명이 김밥을 입에 넣고 베어 물자 그것을 바라보던 병사들이 모두 따라 했다.
비록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지도 않았고, 당연히 쿠킹 호일로 싸지도 못했지만 그들은 차례차례 김밥을 받아 가면서 입에 넣고 베어 물었다.
와, 이거 맛있네~
이거, 이름이 뭐야? 뭐 이리 맛있는 거야?
이거 한두 줄이면 밥 한 끼 되겠는데. 이렇게 편하게 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히네~
병사들이 김밥을 먹으면서 다들 한마디씩 했다.
추위에 떨면서 포박되어 꿇어앉아 있는 왜병들의 목울대가 움직이고 꿀꺽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을 보니 저들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하긴, 새벽에 눈 뜨기도 전에 공격을 받았고, 당연히 아침을 걸렀으니 배가 고프지.
“정규하.”
“넵. 실장님.”
이번 원정에 함께 가겠다고 떼를 써서, 데려온 막내처남을 정하연이 불렀다.
개경에서 하던 공부를 때려치우고 율촌으로 내려온 이유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인데,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태영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었다.
향촌에도 따라갔다 온 녀석이 또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누나에게 부탁해도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며 꼭 가고 싶다고 하기에, 군사 훈련을 받지 않았으니 전투병으로는 참여할 수 없고, 아무리 양반이고 처남이라 해도 특별대우는 할 수 없으니, 해룡호 취사장에 주방 보조로 따라와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개경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양반집 막내가 주방 보조라니, 기절을 할 일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사포와 율촌이니 말해서 뭐해?
김밥 수레를 밀고 들어온 사람들 역시, 개경에서 걸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포에서 정착하여 이곳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고는, 겨울이라도 상관없으니 군사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한 사람들 중의 일부이다.
“너는 병사들이 식사를 마치면, 정리를 하고 곧바로 해룡호로 돌아간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희미하게 웃는 모습이 뭔가 잔꾀를 부리려 하는 듯한데, 그래도 병사들을 지휘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집에서와 같이 편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태영과 정하연도 김밥을 한 줄씩 받아서 입에 넣고 한입씩 베어 물었다. 역시 김밥은 이 시대의 전쟁터에서 먹어도 맛있다.
태영이 김밥을 먹고 있는 사이에 병사가 가져온 의자를 고가 미테루 앞에 놓았다.
고가의 옆에는 여인들과 아이들도 묶여 있었지만, 기둥에 묶지는 않은 상태이다.
“내 대신은 뭐 하는 자리야?”
“…….”
“궁금함이 많지만, 말해 주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태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고가 미테루의 허벅지를 칼로 찌를 때 비명을 질렀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는 행동으로 보면 고가의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
“저놈 둘, 겉옷 벗기고 여기다 꿇어앉혀.”
태영의 지시에 비서실 병사가 태영이 가리킨 아이 두 명의 옷을 칼로 찢어 내고는 고가 미테루 옆에 꿇어앉혔다.
두 아이가 입은 옷도 비단옷이었지만, 병사들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칼로 쭉쭉 찢어 냈다.
“아, 아, 아버지.”
조금 작은 아이 하나가 고가를 쳐다보며 울면서 아버지를 불렀고, 고가는 입을 앙다물고 분노를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역시 짐작이 맞았다.
한 명은 얼굴만 아이일 뿐 체격은 제법 성인 티를 내고 있어서, 옆에 나란히 꿇어앉히니 비슷한 포로로 보였다.
“지금부터 내가 이놈에게 질문을 할 건데,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면, 이 애새끼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손가락 자르기 불편하면 손목을 잘라도 돼. 자를 곳은 많으니까.”
당연히 왜어로 말하자, 그 말에 여태까지와 달리 고가 미테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추위로 파래진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변했고, 추위로 떨어 대던 모습은 더욱더 심하게 떨었다.
옆에 같이 꿇어앉힌 애들도 얼굴이 파리해지며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자른다는 말로 인한 공포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낮의 햇살도 속옷만 입고 있는 것으로는 추위를 막아 줄 수가 없다.
“이 악마 같은 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고가 미테루가 태영을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너희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태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말했다.
“…….”
“너흰 고려의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씻어서 그 아이를 제사상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놈들이야. 너희 놈들에게 그런 풍습이 있다면서?”
그러면서 옆에 꿇어앉은 애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고가 미테루가 애들을 한번 쳐다보고 태영을 쳐다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얼굴에는 공포가 물들었다.
이놈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혹시 제 놈 옆에 꿇어앉힌 제 애들 중에 한 명을 잡아서 제사의 제물로 쓰려고 하는 줄 하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그리 안 하겠지만, 그리 생각해 주면 좋고.
“그런데, 우리를 보고 악마라고?”
태영은 실실 웃으면서 계속해서 애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고가 미테루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충분히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악마는 바로 너희 같은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이야. 내가 너희들 하는 것처럼 한번 해 볼까?”
실실 웃으면서 내뱉는 태영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고가 미테루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다 곧 눈이 빨개졌고 눈에는 눈물도 고였다.
어쭈구리, 제 새끼는 귀한 모양이다.
고려를 침략한 저희 놈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고 다닌 주제에.
“그리고, 너희들이 고려의 해안 마을을 침략해서 그곳에서 죽인 고려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
“모르지?”
“…….”
태영은 고가 미테루가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말을 계속했다.
“그들이 너희에게 잘못하거나 해를 입힌 적이 있나?”
“…….”
“그들이 왜국을 침략한 적이 있나? 그들이 너희들의 식량을 약탈해 가거나 너희 쪽 사람들을 죽이기라도 했나?”
“…….”
“그들은 병사도 아니고, 너희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고, 너희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없는, 그저 주어진 명대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평범한 양민들이야. 그런데, 너희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남편과 애들이 보는 앞에서 어미를 강간했어.”
“…….”
고가 미테루는 말을 잊은 듯 태영의 말에 단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정하연의 입에서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피식 웃고 있었다.
정하연도 태영이 하고 있는 이런 장난이 재미있는 듯했다.
이젠 장난 그만 치고 조금 진중해져야지.
“저기 서 있는 여군 병사들 중의 절반은 너희 왜병들에게 납치되어서 왜국으로 끌려가던 것을 내가 구해 낸 사람들이야.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아? 너희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어?”
“…….”
“우릴 보고 악마라고?”
“…….”
고가 미테루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는 우리 옆 마을을 침략해서 농사나 짓고, 무기도 없는 평범한 양민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알아?”
“…….”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고려 여인들을 납치해 가려고 했는지 알아?”
“…….”
“우리가 올해 초여름에 와카마쓰에 갔을 때, 너희들은 고려의 여인들을 붙잡아다가 토굴 같은 곳에 가두어 두고 너희 병사들이 그 여인들을 집단으로 강간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구해 낸 고려 여인은 몇이며, 거기서 죽은 고려 여인은 몇 명인지나 알아?”
태영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올라갔다.
“그런데 우리에게 악마라고?”
“…….”
“정말 악마가 어떤 것인지 보여 줘?”
“…….”
“저 여군 병사들은, 너희들 왜병들과 왜인들을 보면 맷돌로 갈아서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뭐라고? 우릴 보고 악마라고?”
태영은 그 말끝에, 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순간 이동의 속도로 고가 미테루의 턱을 올려 차 버렸다.
컥~
마주 보고 앉아 있던 거리는 3미터 정도로, 발을 내뻗자마자 바로 턱에 닿았고 그대로 올려 찼던 것이다. 아니, 그냥 툭 친 것일 뿐이다.
이빨이 몇 개 빠진 듯, 태영의 구두에 턱을 맞고 몇 미터는 밀려 나간 고가 미테루가 쓰러진 채로 배 속에서 밀려 넘어와 입안 가득 고인 피를 뱉어 내는데 허연 것이 몇 개 함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