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06
106. 정적 제거(1)
“대대장.”
태영은 김웅겸을 불렀다.
“네, 대장님.”
“저놈 데리고 나가서 묶여 있는 지휘관들 중에 저놈 휘하에서 충직한 놈으로 둘, 그리고 졸병 스물을 선택하라고 해.”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 둘에게 방금 고가가 요구한, 막부 추종 세력을 제거하게 하라는 말씀이시죠?”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들어 주니 좋다.
“그래. 맞아.”
고려 말로 했으니, 고가가 알아듣진 못했을 것이다.
“데리고 나가. 그리고 가기 전에 설명해 줘. 무기는 회수해서 쌓아 둔 칼 한 자루씩 내어 주고.”
김웅겸이 병사에게 명령을 하고, 자신도 지휘부를 나섰다.
“어디까지 처리하는지, 우리도 가서 보도록 하죠.”
“그래. 나가자.”
태영이 정하연의 말에 몸을 돌려 지휘부를 벗어나자, 그가 내렸던 지시를 설명하는 병사가 보였다.
각 건물들과 연병장에는 병사들이 몇 명씩 짝을 지어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외지를 공격하게 되면, 저들이 아무리 순번을 정해서 자고, 일부가 경계 근무를 선다고 하지만, 사포에 있을 때에 비하면 잠이 부족하고 힘들 것인데도 얼굴 표정은 환했다.
***
고가 미테루는 사포의 병사가 준 작은 단검을 들고, 연병장의 나무 기둥에 묶인 지휘관 급 왜병 중에 두 명을 골라 그들을 묶은 줄을 끊었다.
그러면서 다른 지휘관을 쳐다보는 모습이, 어떤 왜병 앞에서는 미안한 표정을, 또 어떤 왜병은 죽일 듯이 노려보는 모습을 보였다.
또, 어떤 곳에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서 코 아래쪽에 손을 대 보기도 하고, 어깨를 잡고 흔들어 보기도 했다.
아마도 살아 있는지, 살아서 숨 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리라.
미안한 표정을 지은 경우는 아마도, 너를 풀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으, 흐윽~
지정한 두 명의 왜병을 묶고 있던 줄이 끊어졌지만, 둘은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바닥에 푹 쓰러지며 입에서 가볍게 신음을 내뱉는다.
지난밤이 특별히 더 추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하에 가까운 기온이다.
해안이기에 아무리 고요하다고 해도 바람은 있게 마련이니,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는 더욱더 낮았다.
그렇게 추운데, 겉옷은 모두 벗기고 속옷 차림으로 하루를 묶여 있었으니, 꽤 많은 왜병의 지휘관들이 지난밤을 넘기지 못하고 동사했을 것이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사했는지까지 구분되지는 않지만, 고개를 완전히 떨구고 있는 왜군 지휘관들이 많았다.
“대장님, 간밤에 사망자가 꽤 나온 것 같습니다.”
김웅겸이 태영에게 고려 말로 말했다.
“어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 같은데, 속옷 차림으로 포박되어 이곳 연병장에 방치되었으니 그럴 만하지. 나중에 얼마나 사망했는지 확인해 봐.”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벗겨서 계속 묶어 두면, 추가로 사망자가 나올 것 같은데, 그냥 둘까요?”
“생각 좀 해 보자고. 지금 저들을 수용할 창고나 감방이 제대로 없잖아?”
“네, 장소가 없기는 합니다.”
연병장에 꿇어앉혀서 포박되어 있는 왜병들의 대부분이 묶인 자세 그대로 넘어져 있는데, 일부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일부는 얼굴과 몸이 시퍼렇게 변해 있는데, 아마도 그 중에 상당한 왜병들이 사망한 것 같다.
태영이 자신도 모르게 얻은 신체 능력에 수반된, 엄청나게 좋아진 시력으로 대충 파악해도 수십 명은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고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서 머리에 손을 대고 있는 왜군의 지휘관 역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포박이 풀려서 바닥에 쓰러진 왜병의 지휘관의 몸을 고가가 주저앉아서 주물러 주며, 얼어붙은 몸을 한참 동안 풀어 주자 그 중의 한 명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저기 가서 옷을 골라 입으라고 해.”
김웅겸이 고가에게 말하자 몸을 일으킨 왜군 지휘관에게 전했고, 그들은 마치 목각 인형 같은 동작으로 옷이 쌓인 곳으로 이동했다.
두 명의 왜군이 옷을 골라서 입고 있었고, 고가가 옷 한 벌을 들고 김웅겸을 쳐다보았다.
어제, 고가에게 옷을 주라고 했지만 한 겹의 얇은 옷이다.
표정으로 보아하니, 너무 추운데 이것을 좀 입어도 될까요, 하고 물어보는 것 같다.
김웅겸이 태영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차려입으라고 해.”
고가는 포로로 잡힐 당시에 꽤 화려한 복장이었다.
고가의 옷을 찢었는지 그런 것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김웅겸이 고가에게 말을 전했고, 옷 무더기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찾듯 뒤집어 보다가, 워낙 많은 옷들로 쌓여 있어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군복을 골라 입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수색 예정 지역은 어디였지?”
“원래 계획은 남동쪽 20리 지점에 있는 오노조 일원을 수색하고, 거기서 숙박을 한 후, 다시 남동쪽 20리 지점에 있는 다자이후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만, 내일 오지카초 계획으로 인해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곳 히카타 만에서 보이는 모든 연안 지역을 수색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겠습니다.”
다자이후.
태영의 기억에 사신관이 있는 곳이다.
여몽 연합군의 왜국 정벌 부분을 읽었을 때, 다자이후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그렇게 해.”
군복을 차려입은 2명의 왜병, 그리고 고가가 한쪽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영으로부터 허락된, 막부 추종 세력을 제거하는 것과 살려야 할 졸병 스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한참의 설명이 이어진 후, 왜국의 지휘관 2명이 여전히 목각 인형 같은 걸음으로 무기가 쌓인 곳으로 가서 무기를 골랐다.
역시 긴 칼이었다.
완만한 곡선의 형태를 지닌 칼인데, 고려군의 칼이나 왜국군의 칼은 차이를 잘 모르겠다.
둘 다 환도처럼 도신이 살짝 휘어 있는데, 배가 나온 부분은 예리하게 날이 서 있지만, 반대쪽에는 날이 없다.
태영이 칼을 주 무기로 쓰지 않는, 비전문가여서 구분을 못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두 명은 다시 작은 단검을 하나씩 더 들고 김웅겸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추가로 지녀도 되느냐 하는 거겠지.
김웅겸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단검을 칼집과 함께 허리에 매고는 왜병들이 꿇어앉은 곳으로 들어가서는 먼저 얼굴을 확인한 후에,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왜병을 묶고 있는 줄을 잘랐다.
왜병들도 줄을 잘랐지만, 묶인 자세 그대로 몸을 펴지 못했다.
추운 곳에서 오래 묶여 있기도 했지만, 꽁꽁 묶었으면 묶인 아래쪽은 괴사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고가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왜병의 몸을 주물러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지휘관이 졸병들의 몸을 풀어 주는 이런 현상도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스물의 졸병을 골라 낸 후에 그들을 바깥쪽으로 데려와서 한곳에 세웠다. 그리고 내 대신을 호위해야 하니 몸을 풀고 기다리라고 했다.
탕~
그때, 요란하게 총성이 울렸고, 풀려난 왜병 한 명이 허벅지에 피가 튀면서 연병장을 굴렀다.
김웅겸의 옆에 선 병사가 쏘았지만, 왜병이 허락도 없이 무기를 집기 위해 무기에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악!”
고가를 비롯한 두 명의 지휘관이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누가 마음대로 무기를 집으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김웅겸의 고함에 고가가 머리를 숙였다.
“저놈은 원위치 시킨다.”
김웅겸의 지시에 왜군의 지휘관 한 명이 나서서, 아무런 항변 없이 총을 맞은 왜병을 다시 연병장의 왜병들이 묶여서 꿇어앉은 곳으로 데리고 갔고, 김웅겸을 쳐다보더니 줄로 묶었다.
그리고 다시 한 명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신 이놈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 없는 표시다.
“좋아.”
김웅겸이 승낙을 해 주자 그놈을 묶은 줄을 풀고는 역시 몸을 마사지하여 데리고 나왔다.
지휘관 둘과 고가가 함께 태영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시행해.”
태영이 김웅겸에게 눈짓을 하자, 김웅겸이 고가에게 말했다.
고가와 두 명의 왜병 지휘관은 기둥에 묶여 있는 또 다른 왜병 지휘관 앞에 섰다.
고가가 신호를 주었다.
쇄액~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왜병 지휘관 한 명의 목으로 칼이 지나갔다.
목이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반쯤 잘린 듯 고개가 꺾이고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초겨울의 알싸한 바람이 신선하게 불어오는 속에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겼다.
목이 꺾인 왜병의 몸이 덜컥덜컥 소리가 날 것처럼 몸을 떨었지만 불과 다섯을 세기도 전에 잠잠해지며 축 늘어졌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 세 사람이 이동할 때마다 목에서 피를 뿜어내는 왜병 지휘관의 숫자가 늘어났고, 비릿한 피 냄새가 진해졌다.
칼질을 하는 왜병 지휘관들이 어제 하루를 모두 굶고, 속옷만 입은 채로 이 추위 속에 묶여 있어서 그런지 목을 자르지는 못하고 깊이 베어서 죽이고 있었다.
비록 적이지만, 기둥에 묶어 둔 상태로 자신의 동료에게 죽어 나가는 모습이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어서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하연과 비서실의 여군들은 칼질이 시작되자, 인상을 찡그리더니 곧바로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지만, 태영이 그럴 수 없다.
언젠가 본 영화에서, 일제 때 죽은 조선인 사망자가 3백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 중에는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 그냥 평범한 양민, 그리고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려간 사람들까지, 참으로 많이도 죽었다.
그 중에 양민의 숫자는 몇인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서 죽었는지, 구분해서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그래,
그걸 생각하면서 저놈들이 죽어 나가는 것에 대해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말자.
오히려 죽어 주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바뀔지는 몰라도, 지금 저놈들을 저렇게 죽여 놓으면, 이후에 올 역사에서 고려 땅이, 조선 땅이 조금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저 모습은 저희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이다.
“많이 죽이는군요.”
김웅겸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고가와 두 명의 왜군 장수가 목을 날린 지휘관 숫자는 50을 넘겼고, 그 외에 연병장에 꿇어앉은 왜병들 중에도 1백 이상의 목을 베었다.
“그래, 많이 죽이네. 간밤에 얼어 죽은 놈 없이 모두 살아남아 있었다면, 더 많이 죽였을 것 같아.”
“그래도 자기들끼리 죽이니, 뭐.”
“그런데 저놈들은 우리가 구사하는 왜어와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아?”
태영은 왜병들이 왜병들을 죽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곳에 와서 느꼈던 것을 무심결에 말했다.
“음,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김웅겸의 대답이다.
“저도 많이 느꼈는데, 지방색도 있는 것 같고, 우리가 왜어를 배운 겐조와 타카오는 왜구인 데다 천민 급이지만, 고가는 왜국에서 귀족 급이니까 말이 다른 게 당연한 거 같아요.”
정하연이 일리 있는 답을 했다.
하긴 고려에서도 고려 조정에서 조정 신료들이 쓰는 말과 양민들이 쓰는 말에 차이가 있다.
“말이 되네. 그렇다고 우리가 배운 걸 바꿀 수는 없으니, 뭐.”
일을 모두 끝낸 고가와 왜국의 지휘관이 태영과 김웅겸이 서 있는 전방으로 와서 도열해 섰다.
“감옥에 스물 정도는 집어넣을 수 있지?”
“네, 지금 있는 죄수들을 몰아서 감옥 한 칸을 비울 수 있습니다.”
대답은 김중겸이 했다.
김중겸과 함께 감옥을 둘러봤기 때문이다.
“그럼, 쟤들, 칼 회수하고 감옥에 집어넣어. 옷은 그대로 입혀 두도록 하고.”
태영은 간단하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김웅겸이 병사들을 지휘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소대장 한 명이 스물두 명의 왜병을 인솔하여 감옥으로 사라졌다.
***
“저기가 오지카초인가?”
“네, 그렇습니다.”
태영의 질문에 고가가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후쿠오카에서 남서쪽으로 150킬로쯤 내려와 섬의 남쪽에 있는 작은 포구다.
눈이가 나침반과 각도기, 그리고 분할자를 사용해서 측정해 낸 것이니 거의 정확할 것이다.
이동 중에 보이는 오지카초의 농토는 수확이 끝난 빈 들판이지만, 그 넓이가 상당했다.
포구에는 자잘한 어선 몇 척을 뒤로하고 사신단의 배로 보이는 제법 큰 배 세 척이 정박해 있었지만, 후쿠오카와는 달리 선착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신단의 배들이 포구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에 정박한 것으로 봐서 포구로 들어가서 접안할 계획은 없어 보였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 봐.”
태영은 고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고가와 두 명의 왜병 지휘관을 갑판에 둔 채로 함교로 올라갔다.
비서실 병사들이 뒤따랐고, 김웅겸이 신도익에게 병사들을 뒤로 물려서 경계를 하라고 지시했다.
태영이 함교에 도착하여 갑판을 내려다보자, 고가는 선두의 갑판 위에 서서 사신단의 배 쪽으로 해룡호가 접근하기를 기다렸고, 병사들은 뒤쪽으로 물러났다.
해룡호가 사신단의 배로 접근을 하자, 배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전투 준비를 하는 듯 뱃전에 왜병의 숫자가 스무 명쯤 보이고, 손에는 칼을 들었다.
하긴, 해룡호에 고가가 타고 있는 줄은 모르는 데다, 정체불명의 위압적인 배가 다가오니 놀라기는 했을 것이다.
해룡호가 압도적으로 큰 배인 데다 앞부분에 달려 있는 톱 이빨처럼 생긴 뿔로 인해 대단히 위협적이다.
저건, 얼마 전에야 이름이 생겼다.
김하석은 태영에게, 태영은 김하석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서로 미루다가, 정하연이 이름이 없으면 되겠느냐며, 파가기라는 이름으로 부르자고 해서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다.
굳이 의미를 살피자면, 깨뜨릴 파(破)에다 뿔 각(角)을 붙여서 음을 늘인 것이다.
찌르르르~
근데, 웬 위험 신호?
개경에서 최충헌을 때려잡을 때, 확실하게 인정하게 된 위험인지 신호가 몸에서 나타났다.
고가의 말대로라면, 여기서는 아무런 위험이 없어야 했다.
“정 실장.”
“네, 대장님.”
“밖에 대대장에게 신호해서 전투 준비시켜. 그리고 갑판에 있는 병사들은 방어형으로 포진하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땡, 땡땡땡~
함교에서 울리는 신호음과 동시에 갑판으로 나가는 확성기에서 즉시 전투태세로의 전환과 방어진을 구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갑판에서 어지러이 발소리가 들리고, 갑판의 가장자리에 숨겨진 화살 방어용 방패가 들려 올라왔다.
왜선들과의 거리는 불과 40미터 정도.
사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건너올 수는 없을 테지만, 화살 공격 정도는 가능하다.
왜선의 규모는 늘 그랬던 정도의 규모이기에 해룡호를 한참 올려다보아야 한다.
해룡호 갑판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서, 고가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고, 해룡호는 천천히 정지했다.
고가가 함교를 올려다보았지만, 태영은 손짓으로 이야기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난, 고가 미테루다. 니시가와에게 내가 왔다고 고하라.”
고가가 뱃전에서 왜병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마치 싸울 듯한 분위기에서 곧바로 의문이 가득한 표정들로 변하더니 왜병들이 소리쳤지만, 상갑판에 니시가와라는 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니시가와 장군 대신 마츠무라 장군이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들려오는 대답에 고가의 고개가 보일 듯 말 듯 갸우뚱해졌다.
들켰군.
이 일이 가마쿠라 막부에게 들킨 것이고, 사신단의 일부 또는 전부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니시가와라는 놈은 이미 죽었거나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다.
태영의 눈에 건너편에 보이는 왜선의 배 안에서 갑판으로 올라오는 왜병들이 보였다.
저쪽의 상갑판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을 테고, 그 지시에 따라 저들은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리라.
왜선마다 거의 백 명이 넘는 왜병들이 갑판에 올라와 전투 준비를 했고, 뱃전에는 줄에 갈고리를 매단 왜병이 갈고리를 돌리고 있었다.
저희들 나름대로는 고가가 접근할 때까지 너는 들켰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왜병들을 갑판 아래 숨겨 두었다가 이제 불러 올린 것 같은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저들은 모를 것이다.
저 갈고리로 적선의 뱃전에 걸어 당겨서 적선으로 뛰어올라 백병전을 하겠다는 계획인데, 그것도 병선의 규모가 비슷할 때 통하는 방법이지, 해룡호 정도 되면 저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송 함장, 여기 수심 문제없지?”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저놈들 뭉개 버려”
저놈들은 어차피 해룡호에 뛰어오르지 못할 것이고, 적선의 전투 준비 태세로 봐서 화공도 준비하지 않은 것 같으니 총알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영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대답보다 먼저 기관실로 전달되는 지시가 먼저 이루어졌다.
“대장님.”
그때 함교의 문이 열리며 김웅겸이 들어섰다.
태영을 부르는 소리지만, 왜 전투 준비만 시키고 공격 지시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