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0
110. 흔적을 찾아서(3)
태영이 알고 있는 목화의 기원은 문익점 기원설과는 다르다.
여러 역사적 사료에서는 삼국 시대에 이미 면직물을 생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널리 보급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목화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 오면서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혼자의 생각일 뿐 근거도 없고, 맞는 것일지 아닐지도 모른다.
목화의 품종 문제와 솜털의 길이 같은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 태영의 생각이다.
문익점의 후손이 목화에서 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물레를 만들어서 보급했다.
삼베는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섬유이긴 해도, 삼베를 삶아서 껍질을 벗겨 내어 그것을 쪼개면 실이 되지만, 목화는 솜뭉치이기에 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문익점과 그 후손들이 물레를 만들어 보급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추앙받아 마땅하고, 아마도 그래서 문익점 기원설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 계십니까?”
따뜻한 곳이라고는 해도 겨울이라 집 안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문간에서 물었다.
“누구요?”
나이 든 노인과 아이 한 명이 문을 열고 내다보는 것을 보니 예상이 맞았다.
“집 뒤에 쌓여 있는 목화를 사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래요? 일손이 부족해서 그리 쌓아 둔 것인데…… 그러시우.”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동전 50문만 주시우.”
이 노인은 돈의 가치에 대한 것이 없는 것인가?
태영은 주점에서 1박을 할 때 은자 하나를 주고 거슬러 받은 동전 꾸러미를 주었다. 계산을 해보면 대략 1,200문이다.
농부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주는 돈은 마다않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목화를 구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구했기에 그냥 그 정도는 주고 싶었다.
태영이 필요한 것은 목화씨만 있으면 된다.
“여기서 씨앗만 뽑아 가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그러시우.”
노인의 표정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가득했지만, 짧은 대답을 한 후에는 힐끔힐끔 몇 번을 쳐다본 뒤에 손주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태영은 한쪽에 세워진 멍석을 꺼내 마당에 펴고는 그 위에 앉아서 씨를 뽑기 시작했다.
씨를 모두 뽑아내는데 1시간쯤 걸렸다.
배낭에 있던 자루를 꺼내 거기에 담으니 반 자루는 된다.
씨앗을 빼어 낸 솜은 멍석 위에 그대로 쌓아 두고 아무 말 없이 그 집을 떠났다.
솜은 저 집에서 사용하면 되고, 태영은 씨앗만 가져가도 목적이 달성된다.
무협지에서는 항주에 가면 서호를 봐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일부러 서호를 물었다.
이름 자체가 서호라면, 항주의 서쪽에 있는 호수라는 말인 것 같다.
지금 태영이 항주의 서쪽에서 항주를 향하고 있으니, 분명 가는 길에 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서니 호수가 보였다.
목화씨가 든 자루와 배낭을 메고 서호를 구경하는 것이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산 위에 있는 큰 건물들이 뭐지?”
태영은 서호 건너편의 산속에 있는 화려한 건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작은 건물이면 눈의 띄지 않았겠지만, 워낙 큰 건물이 군락을 형성한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큰 건물이라면, 황궁이나 유명한 요리 집이나 그런 거 아닐까?”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보겠지만, 이쪽은 사람의 흔적도 없다.
시선을 내려 호수를 바라보니 몸의 피로를 풀어 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인적이 없어서 호수를 따라 좌측으로 한참을 이동하자 호수 주변에 누각들이 일부 보이기 시작하더니, 구경 온 사람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작은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계절이 겨울이라 그런지 그다지 많지는 않다.
21세기를 살아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호가 그리 많은 사람이 찾는 경치 좋은 관광지라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면, 무협지를 보고 너무 기대를 크게 한 것인가?
서호를 벗어나 항주 시내의 저자에 들어서서 주점에 방을 하나 잡고, 항주의 지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넓고 번화한 거리에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어 두고 있고, 수많은 주점과 반점이 보이는 것이 역시 명주보다는 큰 도시라는 느낌이 온다.
아무래도 남송의 수도가 있는 곳이니 그러리라.
상점의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항주의 저자를 구경하는데, 몸에 잘 맞는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송나라 병사들이 몇 명씩 짝을 지어 지나다닌다.
두세 명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인 듯했다.
치안 담당이면 개경의 금오위와 역할이 같을 테지만, 느낌으로는 뭔가 모르게 조금 더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태영이 그들과 스쳐 지나갔지만, 그들이 태영에게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송나라의 평범한 상인의 복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황궁과 장군부의 위치를 확인했다.
현대의 도시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번잡해 보이는 길들을 익히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길이 좁고 지저분한 데다 마차들이 지나갈 때,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구잡이로 헤치고 다니는 것이 사고를 일으키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에는 짜증이 난다.
마차에 사람이 부딪혀도 마차를 모는 마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치에 부딪히면 네 잘못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그런 번화가에서 조금씩 떨어진 곳에 병영이 있어서 그곳에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병영이 있는 쪽은 경비가 제법 삼엄하다.
주양세가 말한 장군부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바깥으로 한 바퀴 빙 돌기만 했다.
장군부라고 해서 모든 장군 급의 장수들이 기거하는 곳이 아니라, 현대의 한국으로 따지자면 육군 본부나 합참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저녁때까지 기다려야겠네.”
***
장군부 안쪽은 곳곳에 횃불을 밝히고 있지만,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는 진한 어둠이 건물을 덮고 있다.
담과 가까이 붙은 건물 사이의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주양세가 가르쳐 준 기물 창고를 바라보았다.
기물 창고라고 했는데, 병사 두 명이 순찰을 하는 동선에 기물 창고가 있을 뿐 특별히 경비하는 느낌은 없다.
망원경을 꺼내서 기물 창고 앞의 기둥에 붙어 있는 현판을 보자,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던 현판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맞군.
주양세가 태영에게 이것저것 대답하던 중에 기물 창고의 이름을 말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현판에 쓰인 이름, 호장고(壺漿庫)다.
뜻만으로 보면, 단지 안에 든 즙이라는 말인데, 태영이 알기로는 맛대가리 없는 별 볼 일 없는 반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영이 횃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건물의 사이를 가로질러 호장고 뒤쪽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주위를 돌며 호장고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이름이 호장고라고는 해도 들어갈 수 있는 틈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창고라면 바람이 통해야 하니까, 출입문을 제외하고 어딘가에 환기를 위한 통풍구가 있을 텐데.
사포에 있는 창고를 생각하면, 창고 건물을 지은 사람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환기를 위한 통풍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후쿠오카의 창고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저기 있군.
현대식 건축물은 모두 콘크리트이고, 통풍구에 철망을 치지만, 지금 이 건물들은 중세 시대의 건물이다.
태영은 통풍구를 향해 가볍게 뛰어올라, 보머리를 잡은 채 몸을 지탱하고 손으로 더듬어 보며 크기를 대중해 보니 어쩌면 태영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서서는 품속에 넣은 권총과 단검 등을 풀어서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훌쩍 뛰어올라 통풍구 옆의 보머리에 배낭을 걸어 놓고 발목부터 통풍구에 몸을 밀어 넣었다.
안쪽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걱정되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나 있는 구멍이니 쥐덫 정도가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몸을 호장고 안으로 들이밀며 발을 움직여 보았지만,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자를 벗어서 머리까지 가까스로 빠져 들어가니, 마침내 온몸이 호장고 안으로 들어간 셈이다.
여전히 통풍구를 손으로 잡은 채 호장고 안을 둘러보았지만, 불빛 하나 없는 곳이니 보일 리가 없다.
한 손으로 통풍구를 잡고 매달린 상태로 모자를 다시 쓰고는, 헤더 랜턴의 끝이 모자 밖으로 나오도록 해서 스위치를 눌렀다.
팟, 하는 소리가 나는 느낌으로 창고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봐야 워낙 작은 랜턴이어서 불빛이 미치는 몇 미터 전방이 전부이지만 가까운 곳은 살필 수가 있을 정도다.
발아래를 보니, 무기 거치대로 보이는 것이 있고, 칼과 창이 꽂힌 것이 보이는데, 통풍구가 워낙 높은 탓에 창끝이 발에 닿지도 않는다.
랜턴을 끄고는, 고개를 내밀에 보머리에 걸어 둔 배낭을 당겨서 안으로 끌어들인 뒤에 랜턴을 다시 켜서 태영이 뛰어내릴 곳을 살핀 후에 가볍게 뛰어내렸다.
신체능력이 좋아진 뒤로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외부에서 호장고의 크기를 확인했지만, 대략 보기에도 수백 평은 되어 보이는 큰 건물이다.
호장고 안은 선반과 좌대, 거치대 등이 질서 정연하게 갖추어져 있고, 거치대나 선반과의 간격은 충분히 넓어서 서너 명이 나란히 걸어도 부딪치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보다는 빈 공간이 더 많다.
태영은 뛰어내린 위치를 기억해 두고, 거기서부터 한 칸 한 칸, 빈틈없이 선반과 거치대를 확인했다.
“총!”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이 작은 헤더 랜턴의 불빛에도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녹이 슬어 있는 K2C 소총 여섯 자루가 삼베로 보이는 천에 나란히 누워 있다.
주양세의 말대로다.
총에는 탄창이 꽂혀 있지 않고, 군용 대검 세 자루도 그 옆에 함께 있었다.
“하.”
입에서 저절로 말이 새어 나왔다.
군용 대검 옆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스마트폰 세 개가 대검과 나란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주양세의 목에 걸려 있던 군번줄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거짓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소총과 함께 스마트폰이라니.
총이 있는 선반 위쪽에 작은 화선지 쪽지가 붙어 있고, 그곳에 글씨가 씌어 있었다.
開禧 元年六月 錢塘江 南陽 (개희 원년육월 전당강 남양)
아무래도 개희는 연도를 가리키는 연호인 모양인데, 몇 년도쯤 되는 것일까?
주양세가 14년 전이라 했으니, 그때로 환산해서 보면 되나?
전단강은 알겠는데, 남양(南陽)은 어디일까?
혹시 항주에 인접한 작은 마을인가?
총에는 붉은색으로 보이는 녹이 이곳저곳에 잔뜩 끼어 있었다. 이래서는 총의 역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홍수가 난 전단강에서 떠내려온 시신에 매여 있던 것이라면,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외견상 녹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물질이 없는 것으로 봐서 물로 씻어 낸 듯했다.
탄띠나 탄창은 없는 건가?
속으로 의문을 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렇게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총탄은 녹이 스는 물건이 아니다.
아, 탄피는 황동으로 되어 있으니, 까맣게 변했거나 푸른색의 녹이 슬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고.”
스마트폰에 눈이 갔다.
태영이 사용하던 것에 비해 훨씬 더 최신형인 듯했다.
하긴, 태영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비싼 돈을 주고 더 좋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할 이유가 없어서 입대 전에 사용하던 것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덮개가 없는 케이스가 씌워진 두 개와 덮개가 있는 케이스가 씌워진 한 개다.
덮개가 있는 폰을 들어 덮개를 펼쳐 보니, 신용 카드 한 장, 캐시 카드 한 장, 그리고, 포인트 카드 한 장이 덮개에 꽂혀 있었다.
“박상진.”
신용 카드에 엠보싱된 영문 이름이다.
폰 케이스 덮개에 신용 카드가 있는 것을 보니 직업 군인인 모양이었다.
이 사람의 가족들은 이 사람이 이 시대의 송나라로 날아와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 간 것을 알고 있을까?
아마,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을 것이다.
태영이 법은 잘 모르니, 실종에서 몇 년이 지나면 사망 처리되는지는 모른다.
“부디 잘 쉬시오.”
태영은 짤막하게 명복을 빌어 주었다.
스마트폰의 전원 스위치를 한참 누르니 액정 중앙에 회색의 건전지 모양과 번개 표시가 보이는데, 모두가 희미한 상태로 보이는 것이 완전 방전 상태다.
하긴, 이 물건들이 주양세가 말한 그 사람들이 소지하고 있던 것이라면, 14년이나 흘렀는데 완전 방전이 안 될 수가 없겠지.
다른 2대의 스마트폰 역시 동일했다. 태영은 일단 스마트폰은 모두 배낭에 집어넣었다.
사포에 가면 조금이라도 충전이 가능할 것이다.
총탄이나 탄창도 있으면 찾아야 하겠지만, 이왕에 들어왔으니 이 넓은 호장고 안에 대체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는 알아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신기한 물건들을 모아 둔 것 같은데, 태영이 넘어 들어온 곳에 있던 칼이나 창을 이 사람들이 이해 못 해서 호장고 안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랜턴의 배터리를 계속 소모시키는 것이 아까우니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창고 안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터이다.
보기에는 빈틈없이 가려져 있지만, 창고 안이라고 해서 햇빛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닐 테고, 환하지는 않겠지만 랜턴 없이 사물을 분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태영은 몸을 날려 보 위로 올라갔다.
건물이 크니 보도 크고 굵어서 태영이 몸을 누이고 쪽잠을 자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
그리고 한쪽에 배낭을 밀어 놓고 그것을 베고 누웠다.
***
“역시.”
낮이 되니 환하게 밝은 외부와 같지는 않아도 호장고 안이 제법 밝게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태영이 어젯밤에 들어왔던 그 통풍구와 비슷한 것들이 여러 곳에 보이고, 그곳으로 난반사된 빛이 호장고 안을 밝히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으윽.”
비록 호장고 안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이어서 무척이나 추운데, 보온이라고는 입은 옷 외에는 없는 상태라 몸이 조금 굳어 있었기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기지개를 켜서 굳은 몸을 풀어냈다.
팔다리를 비비고 부지런히 문지르자 삽시간에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태영은 보에 앉은 채, 페트병과 마른 음식을 꺼내 아침 요기를 했다.
배를 채우고 나서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주의를 기울일 만한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
태영은 보 위에서 호장고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붙은 선반 외에 안쪽으로 3칸의 선반이 있고, 한 칸의 선반은 모두 양쪽 방향으로 물건들이 쌓여 있다.
호장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눈앞에 총이 보였다.
그 옆 칸으로 이동하자 그곳에는 이 시대에 종종 보던 물건들이 놓여 있다.
기물 창고라고 해서 특별한 것들이나 대단한 것들만 가져다 둔 것은 아닌가 보다.
다시 발을 옮기자 태영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나무로 만든 물건들이 보였다.
선반 위쪽에 글씨로 써 붙인 쪽지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번호만 붙은 것이 더 많았다.
“이건 뭘까?”
도저히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端拱 三年 白露山(단공 삼년 백로산)
이런 것은 제대로 된 정보가 있는 것이다.
백로산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것이라는 의미로 보이는데, 백로산은 어디쯤 있는 곳일까?
흔하디흔한 이름인데, 같은 이름의 산이 몇 개나 있을까?
정말, 구글링이라도 해 보면 좋겠다.
이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구글링을 생각해 봤지만, 답은 없다.
단공은 또 누구인지, 서기 몇 년, 이러면 참 좋을 텐데, 연호는 정말 년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공구가 든 가방처럼 보이기에 들어 보니 그다지 무겁지 않다. 그런데 열리지는 않는다.
Metal Heating Gun
“금속 히팅 건?”
가방의 하단부에 음각으로 영어가 새겨져 있었다.
머리를 말릴 때 사용하는 헤어드라이어도 따지고 보면 히팅 건에 속하는데, 그건 머리를 말리는 용도이고, 이건 금속용이라고?
AEG
바닥에 새겨진 3개의 알파벳으로 봐서 제조사가 독일의 AEG 제품이다.
웃음이 나왔다.
가방 손잡이 부분에 번호 열쇠는 아닌데, 작은 레버 같은 줄이 10개가 어지러이 배열되어 있다.
저 배열을 맞추면 가방이 열리는 것 같은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그건 대산도에 가서 하면 될 일이다.
몇 칸을 더 지나자 눈에 익은 또 다른 물건이 보인다.
“드릴?”
플라스틱으로 된 공구함과 드릴이 있었다.
공구함을 열자 그 안에는 드릴에 끼워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자잘한 물건들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일자와 십자드라이버를 비롯하여 펜치와 니퍼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물론 완전히 녹슬어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손잡이 부분을 감싸고 있는 실리콘 피복은 삭아서 손을 대자 부스러졌다.
“구형인데.”
태영이 있던 시절에도 드릴은 모두 배터리를 끼워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드릴은 손잡이 하단에 전선이 길게 나와 있고, 그 끝에는 110볼트용 플러그가 달려 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라벨이 붙어 있다.
建隆 二年 魚台(건륭 이년 어태)
이건 또 뭐냐?
건륭이라면 청나라? 아니, 원나라, 명나라 거쳐서 그다음이 청나라이니 그럴 수는 없을 테고, 그럼 송나라 태조?
태영이 중국 역사를 모르긴 해도 건륭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다.
일단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물건을 확인하기보다는 먼저 라벨을 읽었다.
紹興 五年 白露山(소흥 오년 백로산)
“백로산?”
백로산이라면, 히팅 건이 발견된 곳과 같은 지명이다.
선반 위에는 알루미늄 케이스로 만든 듯한, 작은 서류 가방 정도의 크기에 두께가 반 뼘쯤 되는 박스가 놓여 있다.
Rylie Nelson
사람 이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