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1
111. 미래에서 온 물건(1)
휴대하기 쉽도록 손잡이가 있고, 그 손잡이 아래에 조각처럼 음각으로 새겨진 영문은 분명히 사람이름 같은데, 이름을 스티커로 붙인 것도 아니고, 금속에 조각을 한 듯 아주 깔끔하다.
소흥 5년이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외관은 녹이라고는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는 깔끔한 자태에, 먼지만 살짝 덮여 있다.
다만, 박스를 열어 보려 한 듯, 긁힌 흔적이 영문 좌우에 조금 남아 있다.
손으로 만지자 먼지가 밀려 나갔지만, 알루미늄 케이스로 생각했는데 촉감으로는 알루미늄이 아니었다.
“대체, 재질이 뭐지?”
손에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지만, 어떻게 여는지를 모르겠다.
배낭에서 단검을 꺼내 긁힌 흔적이 있는 부위에 대고 눌러 보았지만, 칼끝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다.
단검의 끝이 미끄러져 한쪽으로 휙 움직였다.
그런데 날카로운 단검의 끝이 긁고 지나갔지만, 긁힌 흔적이 추가로 새겨지지 않았다.
“와, 이게 뭐야?”
그렇다면, 지금 여기 긁힌 흔적은 대체 뭐로 긁어서 남은 거지?
음각으로 새겨진 이름 부분을 단검으로 긁어 보았다.
끼륵, 끼르륵~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검의 이가 나갔을 뿐 가방에 새겨진 이름 부위에는 조금의 손상도 가지 않았다.
“대체, 이 금속은 뭐야?”
손잡이를 붙잡고 다시 한번 들어 보았지만, 가볍게 들린다.
총을 만드는 것과 같이 매우 강한 재질의 금속은 강도가 높지만 무게도 상당하고 얇게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가방은 마치 알루미늄 케이스 같은 느낌이면서도 무척이나 가볍고, 녹도 슬지 않고, 칼로 긁어도 자국도 남지 않았다.
“호장고가 맞긴 하네.”
호장고 안의 선반마다 물건이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했기에 이렇게 신기한 물건이 아니라면 둘러보는데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이 시대에 있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물건이지만, 이 시대의 물건으로 봐서 이상이 없음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 그리고 시대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들이 몇 가지 있긴 했다.
新華(신화)
연대도 없고, 다른 정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라벨에 신화(新華)라는 지명이 적힌 곳에는 납땜할 때 사용하는 전기인두와 전압 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테스트기가 놓여 있다.
전선의 피복은 모두 삭아서 손을 대자마자 부서져 내렸고, 피복 안쪽의 동선이 드러났다.
비닐로 만든 듯한 라벨은 삭지 않았고, 일어와 영어로 제품의 이름이 있었다. 이런 물건들 모두는, 절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대체, 이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백로산(白露山)이라는 지명이 2번, 그 외에 어태(魚台), 용안근(龍眼根), 그리고 신화(新華)라는 지명이 각각 한 번씩 나온 것 외에는 지명이 적혀 있지 않고, 시기도 적혀 있지 않다.
많은 물건들 중에 이해할 수 없는 물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태영이 용도를 알 수 있는 것들이고, 이 시대의 사람들도 거의 알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미래에서 오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미래의 물건들이 제법 있긴 했다.
이들이 총이며, 전기인두며, 드릴이며, 히팅 건을 어찌 알겠는가?
거기다가 히팅 건 가방이나 Rylie Nelson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가방은 열리지도 않는데.
“그럼, 백로산과 미봉산, 어태, 그리고 신화에 차원 이동이나, 아니면 평행세계를 이동할 수 있는 타임 워프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게, 특정한 지역이 있다는 말인가?”
정리를 좀 해 보자.
남양에서는 소총과 스마트폰이 발견되었다.
백로산에서는 열리지 않는 이상한 재질로 만들어진 가방, 그리고 히팅 건이 발견되었다.
어태에서는 전기 드릴과 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 발견되었고, 신화에서는 전기인두와 테스트기가 발견되었다.
용안근이나 다른 곳에서는 미래의 물건이라 보이는 것은 없지만, 중세와 현대 사이에 사용되었거나, 사용되다가 사라졌을 법한 물건들이 있었다.
결국, 이것들은 타임 워프나 차원 이동을 통해서 이 시대의 이 차원으로 날아온 것들임을 알려 주고 있다.
미봉산은 태영이 직접 경험한 곳이니 확인이 필요 없는 곳이다.
남양은 전당강이라는 글자도 있으니, 강에 인접한 어느 지역이겠지만, 다른 곳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지명이다.
“일단, 다음에 생각하자. 다른 건 몰라도 소총과 이 가방, 히팅 건, 그리고 전기 드릴과 전기인두, 테스트기 이것들은 첨단 기기이니 이곳에서 치워야 해.”
결론을 그렇게 냈다.
총에 달려 있는 멜빵을 풀어서 3자루씩 묶었다.
그 정도면 통풍구를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것이다.
히팅 건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가방은 아무 문제없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밖으로 나가서 배낭에 넣으면 된다.
전기인두와 테스트기, 그리고 전기 드릴도 배낭에 모두 넣었다.
***
창고의 특성이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창고 문이 열리지도 않았다. 아마도 여기에 있는 물건이 태영에게 털린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어떤 주기로 창고의 물건들을 확인한다면, 그때는 없어진 것을 알겠지.
“혹시?”
창고의 한쪽에 쪽문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혹시 문을 열었다가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정말 곤란할 것 같아 열어 보지 않았는데, 시계를 보니 야광으로 빛나는 시곗바늘이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사람이 있다 한들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쪽문 앞에서 헤더 랜턴을 켜 보니, 안쪽으로 당겨서 열리는 문이라 살그머니 문을 당겨 보았다.
그다지 문제없이, 그리고 소리 없이 문이 당겨졌다.
서고? 아니면 창고 관리인이 있는 곳?
어둠이 눈에 익자 작은 테이블이 보이고, 서고로 보이는 것이 있는데, 서책으로 보이는 것은 몇 개 보이지 않았다.
그곳으로 들어섰지만, 사람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고 온기도 없다.
분명 창고 관리인이 있는 장소 같다.
서책을 들어 보니 특유의 종이 냄새와 함께 묵향이 풍기는데, 壺漿庫簿(호장고부)라고 표지에 씌어 있다.
다른 서책이 몇 권 있었지만, 천자문과 시집들이었다.
창고 관리인이 공부를 좀 하는 모양인데, 태영이 이것들을 털어 가면 곤욕을 치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하우.”
호장고부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기록조차도 모두 없애 버려야지 싶어 다시 창고로 들어가 없애 버릴 물건들이 있던 곳에 붙은 라벨을 모두 제거했다.
***
“돌아오셨습니까. 대장님.”
“그래.”
대산도에 도착하자, 신도익을 비롯한 병사들이 격하게 반겼다.
10일 만에 돌아오면서 녹슨 총 6자루와 불룩해진 배낭, 그리고 자루 하나와 가방이 손에 들려 있다.
“걱정 많이 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신도익과 그 옆에 선 병사들의 표정에 정말 다행이라는,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배어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자, 별일은?”
“추방 1명 있었는데, 취소했고 이제는 말을 잘 듣습니다. 일꾼들 중에 한 명이 품삯을 지급해 주지 않는다고 대들었는데, 연병장에 수갑 채워서 하루를 매달았더니, 그다음부턴 조용합니다.”
“추방은 왜 취소한 거야?”
“선착장 앞에서 배 없이 나가라고 했더니 바로 엎드렸습니다.”
그럴 테지.
대산도에서 명주까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10킬로가 훨씬 넘는다.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있어서 그곳을 거쳐서 간다고 해도 그 거리도 4킬로가 넘으니, 배가 없이 수영으로는 이 겨울에 결코 건너가지 못한다.
“다행이네.”
“그런데, 그거 웬 총입니까?”
“이거 녹 제거하고 수리 가능한지 확인해 봐.”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거 누구 시켜서 내 방에 좀 가져다 두도록 하고, 이건 씨앗인데, 짚으로 잘 싸서 얼지 않도록 조치해 두고.”
태영은 배낭과 목화씨를 신도익에게 건네주었다.
“따뜻해지면 안 됩니까?”
“아마 그럴 거야.”
따뜻해지면 씨앗이 혹시 봄이 왔나 하고 착각해서 순을 내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대장님.”
소식을 들었는지 윤점돌이 병사 2명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윤점돌의 뒤에 표정이 환한 정규하도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돌아왔어.”
“아, 참으로 이렇게 사람을 걱정시키십니까요?”
“왜 걱정을 해?”
“아, 대장님이 소식도 없이 열흘이 지나가는데 걱정 안 하겠습니까? 사포에 계신 실장님이 이 일을 알았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에구, 무전기가 있어야 할 모양인데, 그건 태영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배낭에 스마트폰이 3개나 들어 있고, 태영이 군 생활을 할 때 나온 신제품들은 대부분 방수가 되니까, 물에 젖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다 말랐을 테고, 분명히 충전하면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마트폰은 무전기와 달라서, 중간에 기지국을 끼지 않고 스마트폰끼리 통화는 불가능하니 무전기처럼 사용할 방법은 없다.
“자, 그사이에 일꾼들 일하는 것과 그 상황은 파악이 되었지?”
태영이 윤점돌에게 묻는데, 연병장 입구로 총관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 이것들이 우리를 아주 호구로 알았지 뭡니까?”
윤점돌의 말에 정규하와 신도익이 피식 웃는다.
“명주에서는 십장에게 140문에서 200문, 일꾼들은 80문에서 120문 사이를 경력에 따라 지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총관이 거간꾼 노릇을 하면서 품삯의 일부를 지가 처먹었습니다.”
정규하가 윤점돌을 대신해서 말할 때 총관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리를 절면서 연병장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얻어맞은 모양이다. 풀이 죽은 모습이기도 하고 태영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일꾼들에게 과하게 나간 품삯은 총관이 지불을 한 것이니, 초과 지불된 것은 총관이 모두 뱉어 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일꾼 넷은 바로 해고하고 추방했는데, 배가 없어서 못 나간다고 해서 고기잡이를 시켰습니다.”
“그래?”
“네, 그리고, 일한 것을 모두 확인하니, 두 달이면 모두 할 수 있는 일을 7개월 동안 했습니다. 그러니 5개월을 제대로 일도 안 하고 품삯을 받아간 꼴이 되었는데, 그건 총관도 잘못했지만, 일꾼들이 농땡이 부리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니, 5개월 동안 무보수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기간의 숙식비는 일꾼들 본인 부담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윤점돌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잇는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우리가 지급하고 너희들이 일하지 않은 5개월 치 품삯을 토해 내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몸으로 때우겠답니다.”
우리가 지급한 기준의 품삯이면 제법 큰돈이었다.
해룡호가 대산도에 오려면, 사포와 후쿠오카를 오가는 중에 들를 수도 있지만, 지시하기로는 식량을 모두 옮긴 뒤에 오라고 했으니 최소 3개월은 있어야 올 것이고, 그동안은 여기에 체류하면서 대산도 주민들의 군기를 바짝 잡아 놓을 수 있을 터였다.
“잘했어. 우리가 3~4개월쯤 여기 머물러야 하니까 윤 반장이 일꾼들의 질서를 좀 잡아. 그리고 중대장은 여기 주민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방침을 좀 세웠나?”
“네,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도익의 보고를 20분 정도에 걸쳐서 들었다.
“얼마 후에 2개 소대를 데리고 명주에 외상값 받으러 갈 텐데, 내가 이번에 이것저것 손에 넣은 것들이 많아서 그걸 조사하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조사 끝난 뒤에 명주에 갈 테니까, 그동안에 얼마간 대산도를 비우더라도 문제없도록 준비해 둬.”
“네, 알겠습니다.”
일꾼들이 일하는 것을 둘러보고, 대산도의 저자에 나가서 사는 모습을 돌아본 후 장원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오후가 되었다.
태영이 거주할 건물의 거실로 들어서자, 그곳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태영의 배낭이 놓여 있다.
집 안에 들어오며 추가로 가지고 들어온 자루에 전기 드릴과 공구들을 옮겨 담고, 전기인두와 함께 있던 것들도 꺼내서 다른 자루에 옮겨 담았다.
어차피 이런 것들은 사포에 가서 살려 보든 버리든 할 일이고,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떤 소재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소흥 5년에 발견된 이 특이한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똑똑~
“누구?”
태영이 묻자 정규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걱정했느냐?”
“네.”
“괜한 걱정은. 이 세상에서 네 매형을 어쩔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건 뭡니까?”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가방을 보고 궁금한 모양이다.
“별거 아니다.”
태영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해 줄까 하다가, 저 안에서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또 뭔가가 나오면 설명해 주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도 이리 오래 연락도 없이 혼자 다니신 걸 누나가 알면 걱정합니다.”
정규하가 눈은 테이블 위의 물건들에 두고 태영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정규하는 제법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계속 시선을 그쪽으로 주었지만, 태영은 건성건성 맞장구를 쳐 주는 것으로 관심을 끊도록 했다.
“그럼, 저는 이제 가서 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규하가 저 물건에 대해 자신에게 말해 줄 뜻이 없음을 확실하게 느낀 후에야 나가겠다고 한다.
“조만간, 네가 그리 구경하고 싶어 하는 송나라의 명주에 상륙할 거니 구경 잘 하도록 해라.”
“네.”
“그나저나 너는 송나라 말인 한어를 거의 모르지 않느냐?”
“그래서 많이 아쉽기는 합니다. 이번에는 다른 분들의 도움을 좀 받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
정규하가 방을 나가자 태영은 가방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빛이 환하게 빛이 들어오고 있으니 밝은 상태에서 찾아보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대체 어디를 어떻게 해야 가방을 열 수 있을는지 알 수가 없다.
“가방을 열 수도 없는 거야?”
답답하니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손잡이를 가방 몸체에 고정시킨 부위는 폭이 3센티쯤으로, 띠처럼 가방의 길이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아오는 구조인데, 그 양쪽에 커버가 덮인 형태로 가방의 양면이 덮여 있다.
가운데 띠 부분과 좌우 커버 부분의 색상은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띠의 좌우에 실금처럼 가는 선이 그어져 있어서 구분이 되고 있고, 그 가는 선 부위에 칼을 넣어 열려고 했던 자국이 긁힌 것처럼 남아 있었다.
가방의 하단부를 봐도 어느 부위에 경첩이 붙었을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고 정교했다.
가방의 손잡이 아래에는 지름이 7밀리쯤 되어 보이는 원형의 불투명한 창 2개가 있고, 그 중앙에 Rylie Nelson이라는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사람의 이름으로 짐작되는, 이 사람은 죽었을까?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 스마트폰 전원을 켤 때를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저 원형 창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닐까?”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 부위인데 원형으로 된, 진한 갈색의 반투명 창으로 보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지 못할 것이다.
그 첫째가 전원 버튼인지도 모를 정도로 작게 숨어 있는 것, 그리고 둘째가 버튼을 누른 상태로 수초 동안 기다려야 하는 동작 때문이다.
현대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이 동작 규칙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에 줘도 사용할 수가 없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그 시대에 맞는 행동 규범과 사회 질서가 있고, 물건들은 그것에 맞는 동작 규칙들이 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사용되는 물건들의 동작 규칙이 아니다.
태영이 어릴 적에는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딸깍거리는 형태의 전원 스위치가 기본이었지만, 그리고 아직도 대부분이 그렇지만, 첨단의 전자 기기류는 모두 수초 간 버튼을 눌러야 켜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태영은 가방을 테이블 위에 눕힌 뒤, 작은 원형 창에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를 가져다 대었다.
10초쯤 흘렀을까?
찰칵~
“헛, 역시 그랬어.”
생각이 맞았다는 놀람과 찰칵 소리가 나는 것에 놀라서 잠시 입에서 헛바람이 나왔다.
이것은 시건 장치가 아니라 동작시키는 어떤 규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배터리가 남아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며 재빨리 손을 떼었다.
지잉~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
태영이 손을 떼는 것과 상관없이 중간의 띠 윗부분이 5밀리쯤 벌어지며 전체적으로 위로 살짝 솟아올랐다.
아주 조금 솟아올랐지만, 왼쪽의 원형 창에 손을 가져다 대자 벌어졌던 틈이 다시 닫힌다.
지잉~ 찰칵~
아마도 잠기는 소리 같다.
외부에서 열거나 닫는 것으로는 저 원형의 창이 유일한 것 같은데, 시건 장치와 일체화된 것 같단 말이지.
다시 엄지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가져다 대고 3초쯤 지났다.
찰칵~ 지잉~
소리와 함께 아까처럼 5밀리쯤 벌어졌다.
“아까는 10초쯤이었는데, 이번에는 왜 3초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잣말이 계속 나왔다.
이번에는 우측에 있는 원형 창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
소리 없이 가방의 윗부분이 열리더니 뒤쪽으로 스르륵 넘어간다.
마치 가방을 손으로 열어젖힌 것처럼 열리는데, 전혀 소리도 나지 않고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다.
“허.”
윗부분이 완전히 젖혀져서 아랫부분과 수평이 이루어질 때까지 넘어갔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거지?
가방 안을 보니, 물건이 들어가야 하는 공간을 정밀하게 파낸 대리석 같은 느낌인데, 그곳에는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이 꽂혀 있고, 가운데는 지름이 3센티는 되어 보이는 원형의 물체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앞쪽으로는 가로로 펼쳐진 액정, 이건 분명히 액정이 맞다. 액정에는 터치 센서 같은 느낌을 주는 버튼 다섯 개가 있었다.
“터치스크린 개념인가?”
대체 언제 적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전기가 있다고? 그래서 구동이 된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Play
Preservation
Recharge
Message Recording
Message Erase
영어로 쓴 글씨라니.
아이콘 아래쪽에 영어로 기능이 씌어 있는데, 아이콘은 스마트폰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적 아이콘과 거의 유사했다.
Play 버튼을 눌러 보았다.
띠링~
버튼을 누르자 아주 맑고 경쾌한 음이 짧게 울리더니, 중간 부분의 원형 물체가 손가락 길이만큼 솟아오르며 영롱하게 빛이 났다.
“헛.”
이건 정말 놀랄 일이다.
태영은 그 빛만 쳐다보았다.
영롱하게 빛이 나는 그것은 허공에 빛을 비추었고, 금방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영화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홀로그램에는 세상에 이런 미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갈색 머리의 미녀가 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